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61)
61화
* * *
몇 시간 전.
반짝. 공작의 서재 한가운데 놓인 영상구가 빛을 내뿜었다. 밤늦도록 서재에 둘러앉아 영상구만 노려보던 세 명이 동시에 반응했다.
“벌써 도착했나?”
저녁 내내 한 장의 서류도 넘기지 못했던 공작이 영상구로 손을 뻗었다. 그가 유리로 된 표면을 가볍게 두드리자, 자욱한 연기가 끼어 있던 영상구 내부가 차차 밝아지며 어떤 광경을 그려 냈다.
“……?”
기대에 차 상체를 쑥 기울인 아르닌이 설핏 미간을 찡그렸다. 기대했던 풍경이 아닌 탓이다.
베이스캠프에 안전하게 도착한 카티샤가 방실방실 웃으며 영상구에 얼굴을 쑥 내민 장면을 기대했건만, 영상구에 떠오른 장면은 모두의 예상을 비껴갔다.
두 마리의 악어가 치열하게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이 어딘가 이상했다. 크기가 이상하리만큼 비대했고, 몸체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 있었으며 몸을 기이한 각도로 움직였다. 게다가 눈은 흰자가 없이 온통 붉었다.
아르닌이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저게 뭐야?”
“변이종이다.”
답은 공작으로부터 돌아왔다.
피로마저도 싹 날려 버린 공작의 만면에 싸늘한 예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키우는 괴수들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시피 했다. 눈구멍이 죄다 새빨개진 저 현상을 뭐라고 부르는지도 잘 알았다.
“크루어드가 변이했군.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변이. 환상종들이 어떠한 감염 경로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본래의 습성을 잃고 난폭하게 폭주하는 현상.
그렇게 변이해 사냥 위기에 내몰린 괴수들을 수배해 치료하고, 사바나를 꾸며 안식처를 제공한 이가 바로 자신이니 모를 리가 없다. 먹이 사슬 균형을 맞춰 놓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런데 그곳에서 또다시 변이종이 발생했다고?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였다. 누군가가 그의 사바나에 침입해, 평화롭게 이어져 오던 생태계를 교란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더 이상 황실의 농간일 수가 없었다. 적은 내부에 있다. 이가 으득 갈렸다.
감히, 이딴 식으로 나오시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공작이 차디찬 음성으로 명령했다.
“베르너, 아르닌. 둘 중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라. 한 명은 가서 꼬맹이 데리고 나오고, 한 명은 변이종 발생의 근원지를 조사해 와. 그리고 가주의 권한으로 이 시험은 무효 처리한다.”
그때였다. 베르너의 주위로 기하학적인 도형이 팟 퍼져 나갔다. 마법 수식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공작과 아르닌이 눈을 치켜뜨자, 베르너가 한 박자 늦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카티샤에게는 제가 가야 하나 봅니다, 각하. 꼬마가 부르는 모양이네요.”
“뭐?”
공작이 눈살을 찌푸리고 옭아 들어가는 마법진을 읽었다. 소환진이다. 깨달음은 금세 왔다.
베르너가 아이에게 소환석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될 줄 예상했는지, 베르너가 자리에서 일어나 곧게 섰다.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진 즉시 마법진이 발동했다. 검은 잔상과 함께 베르너의 모습이 깨끗이 서재에서 지워졌다.
* * *
“……직접 보니 더 가관이군.”
수 초 만에 초원으로 소환당한 베르너가 음산하게 뇌까렸다.
나는 속으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오 예! 어서 와요, 내 증인!
그의 눈을 피해 재빠르게 새끼 눈표범으로 돌아간 아이칼이 꼬리로 내 발목을 휘감아 대롱대롱 매달렸다. 동시에 발밑을 받치고 있던 얼음 발판이 깨끗이 녹아내렸다. 섬뜩한 낙하감이 덮쳐 온 순간, 팔뚝을 세게 잡혔다.
나는 갓 미끼를 문 활어처럼 베르너에게 휙 낚여 올라갔다.
“흠.”
베르너가 내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고 그대로 쑥 들어 올렸다.
“얼른 꺼내 달라고 해야지, 뭔 뚱딴지같은 소리부터 하고 있어?”
그러면서도 그는 다른 한 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어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영상구였다.
베르너가 그것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손 없다. 네가 들고 있어, 잘 보이게. 놓치지 말고. 할 수 있지?”
“네!”
나는 양손으로 야무지게 영상구를 붙잡았다.
베르너가 입꼬리를 슥 끌어당겼다.
“좋아. 간다.”
나 역시 입술이 사악하게 말려 올라갔다.
‘이 치사한 방계 놈들. 썩은 뿌리가 어디인지 속속들이 다 찍어 주마.’
이번 기회에야말로 똑똑히 보여 주겠어. 성난 오렌지를 건드리면 어떤 꼴이 나는지!
* * *
베르너가 소환석에 의해 사바나에 모습을 드러낸 지 딱 두 시간째.
나는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변이종들의 습격보다 베르너의 검기가 그리는 화려한 궤적에 더 신경이 몰렸다.
‘와…….’
천재가 여기에도 또 있다.
베르너 역시 이곳의 모든 생명이 공작이 아끼는 반려동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상해를 입히지 않으며 정확히 검기를 날려 기절시키는 솜씨가 가히 발군이었다.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늪지대에서부터 가파른 협곡 지대까지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이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단순히 상대를 처리하는 데 집중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베르너가 뒤로 고개를 빼 나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잘 보이게 찍었어?”
“다 찍었어요.”
베르너는 변이종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일부러 접근전을 선택했다. 그는 내가 영상구로 변이종의 변이 상태와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몸체 곳곳의 상처를 담을 수 있을 만큼 아슬아슬한 거리를 가뿐히 유지했다.
나는 이제 베르너가 조금 무서워졌다. 원래 천재라는 건 다 이런 건가?
마지막으로 따라붙은 변이종을 가볍게 발로 걷어찬 베르너가 협곡 위의 평지로 도약했다. 줄곧 내 발목에 꼬리를 감고 편안히 매달려 온 아이칼이 폴짝 뛰어내렸다.
협곡 아래를 확인한 베르너가 마침내 나를 내려 주었다.
“다친 데 없어?”
“공자님은요?”
나야 아까 늪지대에서 끈적한 녹조류가 몇 방울 튄 것을 제외하면 말짱했다. 나는 황급히 베르너의 주위를 두 바퀴 돌며 그가 혹시 어디 상하지 않았을지 꼼꼼히 살폈다.
베르너는 옷자락 하나 스친 부분 없이 무사했다.
“다행이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베르너가 내게 못마땅한 눈빛을 던졌다. 그러더니 이상한 소리를 했다.
“왜 나는 아직도 공자님이지?”
“네?”
“아르닌은…….”
베르너가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맹하게 중얼거렸다.
“공자님이 공자님이라서…… 공자님이라고 하는 건데…….”
“…….”
“저어, 뭐가 잘못됐나요?”
“아니! 전혀. 아무것도.”
베르너가 득달같이 부정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어, 좋네. 그래, 뭐.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
베르너는 뜻 모를 소리만 하곤, 입을 꾹 다물고 돌아섰다. 좋다는 말과는 달리 무척이나 기분이 상한 표정이었다.
‘뭐지? 내가 뭘 놓치고 있나?’
나는 어리둥절해서 앞서 나가는 그의 뒤를 바삐 따라갔다.
* * *
두 번째 베이스캠프는 다행히 아직 잘 남아 있었다.
베르너가 먼저 천막을 젖히고 내부로 들어섰다.
이번 시험에서 캠프로 활용하는 게르는 공작이 사바나에서 휴식을 취할 때 이용하는 곳이라고 들었다. 간단한 생활용품과 잠자리를 갖추고 있기는 했지만 대충 구색만 맞춘 것에 가까웠다. 조금 더 화려하고 편안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베르너가 게르 안쪽을 향해 고갯짓했다.
“영상구 켜고 각하께 연락해, 꼬마.”
“네!”
나는 얼른 영상구 쪽으로 달려갔다. 유리 표면을 톡톡 치자 곧장 저택의 서재와 연결되었다.
영상구는 공작의 서재 책상을 비추고 있었다. 영상구의 각도가 맞지 않아 보이는 것이라곤 서류 더미들과 바삐 움직이는 펜, 펜을 쥔 굳은살 박인 손뿐이었다. 반가움에 얼굴을 들이밀고 냅다 외쳤다.
“공작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서류 더미 하나가 옆으로 치워지고 공작의 얼굴이 보였다. 고작 하루 하고 반나절 지났을 뿐인데 그는 이전보다 훨씬 피로하고 예민해 보였다. 영상구 속의 나를 발견한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오렌지, 괜찮아?]“네! 말짱해요.”
[베르너랑, 그 하얀 아기는?]“공자님도 여기 계시고, 아키도 잘 있어요.”
아이칼을 끙 들어 올려 부숭부숭한 앞발을 쥐고 흔들어 보였다. 약간의 침묵 끝에, 영상구 속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이쪽으로 넘어왔다.
보던 서류를 왼쪽으로 밀어 놓은 공작이 책상에 팔을 대고 상체를 이쪽으로 살짝 숙였다.
[어디 보자. 또 꼬질꼬질해졌나, 아닌가.]나는 슬그머니 반바지 끝에 묻은 이끼를 손등으로 훔쳤다. 종전보다 한결 편안하게 풀어져 있던 공작의 입매가 허물어졌다.
그가 낮게 키득거렸다.
[코에도 묻었다, 꼬맹.]“아앗.”
얼른 손등으로 코도 문질렀다. 공작은 뭐가 웃긴지 계속해서 피식댔다. 이쪽은 반가운 마음만 가득이었는데, 사람 얼굴을 보고 웃기나 하다니. 너무하다.
그러다 서재에 가득 쌓인 긴 종이 무더기에 시선이 갔다. 풀린 두루마리 휴지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다란 종이에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숫자들이 다닥다닥 적혀 있었다. 내가 넘기고 온 중앙은행 금고의 입출금 내역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제미언이 죽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뽀뽀 이야기가 나오니 공작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는 영상구에 더 바싹 다가가 소곤거렸다.
“소득이 있나요, 공작님?”
[하나하나 다 뜯어보는 중이다. 네가 말한 대로 첸 블라스코와 시벨 블라스코가 이끌고 있던 남부 광산 채광업 중심으로.]근 34년간의 기록을 다 뜯어보려면 보통 중노동이 아닐 것이다. 제미언이 골골거리며 철푸덕 엎어지는 소리가 났다. 일 더미를 떠맡기고 온 것이 미안해져서, 나는 얼른 외쳤다.
“젬, 뽀뽀 스무 번!”
[……오렌지. 나는?]“네?”
대답은 엉뚱하게도 공작에게서 돌아왔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