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62)
62화
[고생은 쟤보다 내가 배는 더 하고 있는데, 나는 뭐 없어?]앗, 그렇구나. 나는 빠르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궁리했다.
공작이 피로 회복제를 절실하게 원했다는 사실이 퍼뜩 생각났다. 주먹이 저절로 불끈 쥐어졌다.
“공작님, 제가 더 정진해서 꼭 성공할게요. 피로 회복제 배합!”
[……그게 끝이야?]“네!”
자신 있게 대답했으나 공작의 미간에 난 금은 메꿔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아주 쌀쌀맞게 대꾸했다.
[됐어. 네가 준 고농축 카페인이나 들이켜고 일벌레처럼 일만 하지 뭐.]‘이게 아닌가 봐.’
공작님도, 그리고 베르너도. 블라스코가 남자들은 도무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뭘 원하는 걸까? 설마 내 뽀뽀 같은 걸 바라는 건 아닐 거 아니야…….
부루퉁한 생각이 곧바로 이어진 공작의 목소리에 쏙 들어갔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쩔래, 카티샤?]“어? 어, 네에?”
당황해서 바보처럼 말을 더듬었다. 공작이 오렌지, 혹은 꼬마, 꼬맹이가 아니라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공작이 나른하게 고개를 기울여 손등에 괴었다.
[나올래?]“나가고 싶다고 하면 꺼내 주실 거예요?”
[당장이라도.]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요. 깃발 뽑고 갈래요.”
[위험할 텐데.]“공자님이 와 주셨으니까 괜찮아요. 변이종들만 처리해 주시면, 남은 시험은 마저 다 보고 나갈래요.”
[…….]“어차피 그쪽이나 이쪽이나 반칙의 향연이라면, 기왕 이렇게 된 거 끝장을 보자 이거죠.”
여기서 포기하고 나간대도 어차피 시험은 무효 처리되겠지만, 역시 내키지 않는다. 나는 방계가 트집을 잡을 만한 구석은 단 한 개도 만들어 주지 않을 셈이었다.
심지어 어차피 거리도 고작 3분의 1밖에 안 남았고, 이대로면 아무리 늦어도 모레 오전 중엔 도착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항복?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이거야!
“저는 깃발 가지고 나갈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무리하지 마세요!”
공작은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그러냐, 했다.
나는 씩씩하게 저녁 인사를 한 다음, 영상구를 껐다.
* * *
사바나 생존기 나흘째. 여정은 순탄했다.
영상구를 드는 일은 베르너가 맡았다. 나는 지도를 보고 방위를 다시 잡은 다음, 동쪽을 향해 기운차게 걷기 시작했다. 아이칼은 내 체력을 고려했는지 순순히 걸어 따라왔다.
영상구 탓에 베르너는 나를 대놓고 도와주지는 않았다. 발을 헛디디거나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구덩이에 빠질 뻔했을 때에만 미묘하게 영상구의 각도를 틀어 놓고 나를 재빨리 낚아챘다.
나 역시 혹시라도 영상구에 찍힐까 봐 눈짓으로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렇게 씩씩하게 여정을 이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베르너가 보기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가 짜증스럽게 영상구를 허리춤의 주머니에 쑤셔 박는 것을 보고 놀라 멈췄다.
“이리 와, 카티샤.”
“어, 공자님 방금……”
내 이름 불렀다!
그 사실에 감격할 틈도 없이 베르너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는 뭔가가 무척 불편한 것처럼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아프지도 않아?”
“네?”
“발 말이야. 종아리부터 퉁퉁 부었잖아.”
참고 참다가 더 못 봐 주겠어서 하는 말이라는 양, 사나운 잔소리가 쉼 없이 떨어졌다.
“아까부터 오른쪽 발을 내디딜 때 힘이 덜 들어가잖아. 그래서 벌써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고.”
“어, 그랬……”
“아프면 도와 달라고 해. 네가 여기서 나한테 업혀 간다고 뭐라 말 얹을 사람 아무도 없어.”
분명 나를 걱정하는 말인데 어쩐지 혼이 나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본 베르너가 가까이 있는 높은 바위 위에 나를 들어 앉혔다. 내가 신고 있던 신발과 양말이 휙휙 날아갔다. 나는 드러난 내 오른발을 보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피 난다.”
“…….”
“이게 왜 이러지?”
베르너의 말대로였다. 새끼발톱이 깨져 빨갛게 부어 있었다. 말을 듣고 보니 종아리가 쑤시는 것도 같았다.
‘아, 하긴. 반나절 내내 걸었구나.’
그것도 잘 닦인 평지가 아니라 굴곡진 초원에서 내 허벅지까지 자란 풀들을 헤치며 걸었지. 새삼 열 살 어린아이의 몸은 이런 고난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도 큰 부상처럼 보이진 않는데…….’
사실 내겐 익숙한 통증이기도 했다. 하루 열 시간씩 아르바이트하며 노동 착취를 당하면 늘 이렇게 다리가 퉁퉁 붓는다.
“괜찮아요, 공자님. 이런 건 연고 바르면 금방 나아요!”
서둘러 응급 처치라도 하려는데, 베르너가 더 빨랐다. 나는 그의 손에 든 작은 유리 용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그거 아직 안 쓰셨어요?”
바로 내가 몇 주 전에 베르너의 망토 주머니에 몰래 넣어 두고 왔던 선물이었다. 진정 효과가 있는 약초즙이다.
베르너가 그것을 내 종아리에 콸콸 들이부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시원하게 가라앉으며 부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베르너가 한 박자 늦게 내 질문에 대꾸했다.
“이거, 네 선물 아니었어?”
“맞아요.”
“그러니까.”
앞뒤 맥락이 토막 난 말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말뜻을 분석했다.
내가 준 선물이라 못 썼다는 이야기일까?
‘아무래도 그건 너무 멀리 간 거겠지?’
그럼 달랑 하나만 줘서 그런가 봐. 합리적인 가능성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로켓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둔 약초 병들이 떠올랐다. 아직 400개 다 못 채웠는데, 더 정진해야겠다.
“제가 나중에 더 드릴게요, 공자님. 걱정 마세요.”
“……그러든가.”
무뚝뚝하게 대꾸한 베르너가 허리에 차고 있던 꾸러미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의 손바닥만 한 그것은 푹신푹신해 보이는 작은 양말이었다. 내 거다.
‘공자님이 저런 게 어디서 났지?’
갑자기 소환당해서 맨몸일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베르너는 꽤 단단히 준비한 차림새였다.
‘에이, 설마……. 내가 부를 때를 대비하고 있었을 리는 없겠지.’
나는 베르너가 내 방에서 작은 양말을 주워 가방에 주섬주섬 넣는 상상을 해 보았다.
세상에,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부르르 도리질하는 사이, 베르너는 내게 양말을 슥슥 신기고 신발 끈까지 꽉 묶어 주었다. 그의 기세가 꽤 누그러져 있었다. 이때다 싶은 마음이 들어, 나는 조심스레 말을 붙여 보았다.
“저기, 공자님. 이제 화는 다 풀리셨어요?”
“화?”
베르너가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힐끔 바라봤다. 눈초리가 날카로워 나는 아이칼의 북슬북슬한 머리 뒤로 슬금 숨었다.
“그게…… 제가 처음에, 공자님을 속여서……. 그때 화 많이 나신 것 같았는데.”
“화는 안 났어. 어이가 없었을 뿐이야.”
베르너가 딱 잘라 정정했다.
“나한테 거짓말은 안 했다면서?”
“안 했어요! 절대 절대 절대요.”
나는 손까지 휘저어 가며 결백을 주장했다.
베르너가 대수롭잖게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럼 됐어. 대신, 너도 그때 내가 했던 말 다른 곳에서는 하지 마. 특히 아르닌이나 각하께는.”
그는 거기까지 말하곤 내가 앉은 바위에 등을 기댔다.
나는 힐끔 그의 옆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날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를 되짚어 보았다.
“옛날에는 그 애와 대련하는 게 즐겁기만 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아냐. 대체 뭐가 매번 그렇게 절박한지도 모르겠고.”
“그냥, 아버지처럼 느껴지지는 않으니까. 아직 입에 안 붙었다.”
그 말들을 입도 뻥끗 말라는 것을 보면, 그는 무심코 속마음을 꺼내 버린 게 후회스러운 듯했다.
무언가를 한참 고민하듯 어두운 눈으로 허공을 더듬던 베르너가 나직한 한숨을 쉬며 미간을 문질렀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난 네가 싫은 게 아니야. 이 상황이 싫은 거지.”
“…….”
“아르닌은 내게 자격지심이라면서 면전에 욕을 퍼부었지만…….”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꼭 그날처럼, 이번에도 베르너의 속이 꽤 시끄러운 것만 같다는 직감이 왔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유치하게 질투나 할 만큼 반푼이로 보이나 보지, 내가. 걘 항상 그런 식으로 날 매도해. 알지도 못하면서.”
“…….”
“그러면서 제 실력도 모르고 덤비기나 하고.”
하지만 언니도 언니만의 사정이 있는데…….
대체 이 남매의 꼬인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나로서는 감도 오지 않았다. 섣불리 얄팍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가만히 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