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어쨌든 그런 거 아니야. 난 널 싫어하지 않아.”
같은 말을 두 번씩이나 반복하는 베르너의 목덜미가 약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좀처럼 속을 보여 주려 하지 않는 그의 성격상, 이만큼 속마음을 털어놓는 데에도 큰 결심이 필요했으리라.
이제 그는 숫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물론 아르닌이 했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야. 내가 각하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 건 맞아……. 그날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보호받을 수밖에 없었던 날이 다시 반복되는 것만큼은 싫어서.”
베르너가 말하는 ‘그날’이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11년 전, 블라스코에 불어닥친 비극의 날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헤르젠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던 그날 말이다.
블라스코에 속한 모두의 마음에 아프게 남은 그날.
베르너는 당시의 기억을 상기하는 것조차도 힘겨운 듯했다. 표정을 관리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래도 내가 이만큼은 컸다고, 보여 드리고 싶었어. 그 방법으로 생각한 게 블라스코의 후계자가 되는 거였고. 나는 가주직을 이어받을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나라는 존재가 들이닥쳐 당황한 것이다.
베르너가 삼킨 뒷말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네가 각하께 너무 스스럼없이…… 아니, 친근하게, 아니.”
몇 번인가 스스로의 말을 부정하기를 거듭하던 베르너가 결국 짜증스레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래, 뭐. 여기까지 말했는데 더 민망할 것도 없겠지. 난 네가 좀 부러울 뿐이야.”
“…….”
“나는 아직도 그분께 다가갈 방법을 모르겠는데.”
내가 부럽다니!
충격적이기까지 한 발언이었다.
나는 허둥지둥 그간의 내 행적을 되짚어 보았다.
‘역시 너무 치댔나? 사이가 좋아 보였던 걸까?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버린 그런 상황인 건가?’
이 가족의 실타래가 꼬인 원인은 바로 나였던 것인가!
그러나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 나와는 달리, 베르너는 속이 후련해졌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그것뿐이야. 안 싫어해. 오히려 날 꺼리는 건 오히려 네 쪽 아니야?”
“제, 제가요?”
“아르닌에게는…… 언니라고 잘만 부르잖아.”
그렇게 말하는 베르너의 목덜미가 빨갛게 익어 있었다.
아.
순간 종전과는 비할 바 없이 거대한 깨달음이 망치처럼 정수리를 쾅 찍었다.
설마. 설마!
나는 하던 생각을 몽땅 까먹고 당장 외쳤다.
“오빠!”
“뭐, 뭐…….”
베르너가 화들짝 놀라 왼손으로 귀를 막았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 더 빽 외쳤다.
“공자님,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그렇게 부르니까 정색을 하길래. 딱 질색인 줄 알았는데!
베르너가 얼떨떨한 기색으로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뭐, 뭔. 갑자기……. 무슨 태세 전환이 이렇게 빨라? 아부할 셈이라면 안 통해.”
아부 아니고 진짠데?
내가 입을 크게 벌린 순간, 베르너가 팩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애, 애초에 그렇게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어!”
그는 두서없이 그렇게 외치곤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내가 지금 무슨 망언을…….”
아예 내 옆에서 한 걸음 떨어지기까지 한 베르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약간 실망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가 봐.’
나는 벌게진 두 귀를 하고 더 멀어지려는 베르너의 옷자락을 주욱 잡아 늘어뜨렸다.
사실 호칭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오해는 풀고 싶다.
“저도 공자님 꺼리지 않아요. 저도, 예전 일 누구에게 말해 본 거 처음이란 말이에요.”
카티샤 아인슬리라는 이름으로 환생해 전생을 떠올린 지 이제 5년. 그동안 나는 의식적으로라도 인생 1회 차를 떠올리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술과 클럽을 좋아하고, 한 달에도 몇 번씩 바뀌는 애인들과 노느라 바빴던 친엄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도망가고 없는 친아빠.
가난에 시달리던 날들과, 열여섯 살에 갑작스럽게 생긴 새아버지.
하고 싶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파리 날리는 새아버지의 식당에서 테이블이나 닦던 날들.
그건 누구에게 털어놓기는커녕 나 자신조차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 치부를 겉 표면이나마 입 밖으로 내어 본 상대는 베르너가 처음이었다. 그와 나는 다를 게 없다.
귓불과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그, 그리고 오빠나 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고…….”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네…….”
나는 형제라는 걸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부모에 대한 기대가 바닥이라, 자연히 형제가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덜 외로웠을까, 하고 생각했던 날이 잦았다. 원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선망이 더 큰 법이니까.
그때였다. 베르너가 작고 빠르게 말했다. 거의 혼잣말에 가까웠다.
“……시험을 다 통과하고 나면, 해 줄게.”
“네? 뭘요?”
“갖고 싶다며.”
그러니까 뭘?
나는 어벙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헉 소리를 내며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설마, 내 오빠가 되어 주겠다는 건 아니겠지?
베르너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놀란 눈으로 그를 보자, 베르너가 멋쩍은 기색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막냇동생 하나 더 생긴 셈 치는 게 나쁠 것 같지도 않고…….”
“어어…….”
“너는, 어, 약초도 잘 빻고, 음. 나름 똑똑하기도 하고, 돈도 많고. 각하께서도 네가 마음에 드신 눈치고. 아르닌도…….”
베르너는 한참이나 요구한 적 없는 변명을 이어 갔다. 장황하게 말을 잇느라 제가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게 틀림없었다.
‘진짜 오빠가 되어 주겠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베르너가 선뜻 이런 말을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소환석을 주고, 위험할 때 나를 구해 주기는 했지만. 날 싫어하지 않는다곤 했지만…….’
정작 나는 베르너에게 아무것도 준 게 없었다.
뇌물이라곤 고작 작은 약초즙 하나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 덜컥 나와 가족이 되고 싶을 리가 없잖아.’
전생의 내 친엄마조차 내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고아원에 버리고 갈 거라는 협박을 습관처럼 일삼았다. 낳아준 부모도 그러는 걸, 뭐. 헤르젠 할아버지가 독특한 분이었던 것이다.
관계라는 건 이해나 사랑, 배려, 적당한 유대 같은 것으로만 형성되는 게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으니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는 건 일종의 사회적 약속 아닌가?
적당한 이해관계. 내가 아는 관계 맺음의 첫 단추는 그것이다.
난 베르너에게 해준 게 없다. 그러니 베르너도 내게 이런 말을 굳이 해줄 이유가 없다.
‘그러면 왜?’
나는 곧 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냈다.
‘아, 아르닌 언니와 사이가 소원해서 그런가 봐.’
그래서 새로운 동생이 갖고 싶은 걸지도 몰라!
퍼뜩 떠오른 그 가정은 무척이나 타당하게 여겨졌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결연하게 다짐했다.
“제가 꼭 보란 듯이 시험 통과해서 은혜를 갚을게요, 공자님. 걱정 마세요.”
“어……. 그래.”
“제가 최대한 다 해결해 드릴게요!”
블라스코에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알겠다. 바로 가족의 큐피드였다.
아르닌과 베르너뿐만 아니라 남매와 공작, 공작과 헤르젠 할아버지의 관계까지. 꼬이고 꼬인 이 실타래를 조금이라도 풀어 주고 싶었다.
편히 마음을 둘 곳이 없어 보이는 베르너를 보니 내 마음도 찌르르 아파 왔다. 오죽하면 몇 번 이야기도 나눠 보지 못한 평민 어린아이를 동생 삼아 준다는 말까지 하겠는가.
아무리 천재라 칭송받아도 고작해야 열일곱 살이었다.
“공자님, 파이팅.”
“갑자기 내가 왜 파이팅을…….”
베르너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건 그건데.’
해소하지 못한 의문이 못 받은 잔금처럼 찜찜하게 남았다. 무언가 이상하게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냥, 아버지처럼 느껴지지는 않으니까. 아직 입에 안 붙었다.”
“나는 아직도 그분께 다가갈 방법을 모르겠는데.”
아무리 사이가 서먹한 부자라도, 아들이 친아버지를 대하는 태도로는 조금 부자연스럽지 않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