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66)
66화
* * *
“그, 그게…….”
나는 첸 블라스코가 말을 더듬는 모습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베르너가 냉랭하게 그를 몰아붙였다.
“가주의 초원에 특수 페로몬을 방출한 장본인입니까, 당백부님?”
“아니다, 베르너!”
“직계로서 배신의 가능성이 있는 자를 심문하고 있습니다. 말 짧게 하지 마시고, 대답하십시오.”
“배, 배신이라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필시 오해가…….”
기세가 꺾인 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난관을 어찌 타파해 나갈지 궁리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변명할 말이 있겠어? 증거가 이렇게 확실한데.
페로몬을 배합한 건 마법사들이겠지만, 그들을 포섭한 건 첸이었다. 감독관으로 이 아르템에 도착한 뒤 일주일 동안 지속적으로 마법사들과 접촉하고, 아마 변이종이 탄생했는지 직접 확인까지 했을 테니 특수 페로몬이 그에게도 미량이나마 남아 있을 건 뻔했다.
‘이걸 빠져나갈 방법이 있겠어?’
나는 속으로 음흉하게 킬킬 웃었다. 그리고 영상석을 끈 다음, 가방에서 새것으로 바꾸었다.
그러고 난 뒤 루시스 경의 소맷자락을 흔들었다.
“저분께 가까이 갈래요, 경.”
“예, 아기씨.”
베르너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첸 블라스코가 점차 가까워졌다.
나는 루시스에게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가볍게 바닥을 디뎠다.
“아저씨.”
“너, 이…….”
첸은 제 코앞에 들이민 영상석에 제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깨닫고 입술을 물었다.
“그러게 왜 그러셨담.”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저도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요. 그런데 제가 절대 용납 못 하는 게 딱 한 가지 있어요. 뭔 줄 아세요?”
“…….”
“우리 할아버지를 모욕하는 거예요.”
나를 위협하는 건 백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 쳐. 왜냐? 객관적으로 난 불청객 포지션인 게 맞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질 욕하는 건 다른 문제다.
“노망난 노친네.”
“비루먹은 것이나 주워다 키운.”
그렇다면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상대를 모욕해 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주위에서 내 말을 듣지 못하도록 첸에게로 한발 다가갔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꼴사납지 않아요? 자객을 보내거나 해서 직접 손을 썼으면 또 몰라.”
본인 손은 더럽히기 싫어서, 수도에서는 소문의 힘과 용병단, 검투장 운영주까지 몇 단계나 거치고, 이번에는 변이종이나 만들고.
내가 사근사근하게 빈정거리는 동안 첸 블라스코의 표정은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그렇게 꼬리가 기니까…….”
나는 등 뒤의 어구스트들을 향해 턱짓한 후, 생글 눈가를 휘었다.
“밟히는 거예요. 나같이 비루먹은 어린애한테.”
지지난 달부터 속으로 꼭꼭 눌러 왔던 분기가 가볍게 임계점을 넘었다.
나는 손안에 든 영상석을 가볍게 위로 던졌다가 받았다.
“꼬리가 밟혔으니 이젠 몸통이 낱낱이 까발려질 차례예요, 아저씨.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그렇게 잡아먹을 것처럼 째려보지 마요.”
“이…….”
“헤헤, 그러게 왜 두 번이나 건드려? 사람 성격 나빠지게.”
나는 옷자락을 탁탁 털었다. 그리고 나를 보호하듯 선 루시스에게 다시 안겼다.
“괜찮으시지요, 아기씨?”
“네!”
나는 방긋 웃었다.
옆에서 대화를 다 들은 루시스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아르닌 언니는, 어깨 불편한 것 같았는데.’
흘끗 뒤쪽을 보니, 아르닌은 이미 가볍게 몸을 날려 세 마리의 변이 어구스트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상처를 내고 로프로 단단히 포박해 두었다.
사태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급박히 이동진을 엮던 마법사들에게도 곧장 아르닌의 살기가 겨누어졌다.
“지금부터 한 발자국이라도 자리를 뜨는 놈들은 블라스코에 불복하는 배신자들로 간주, 직계의 권한에 따라 이곳에서 즉결 처분하겠다.”
아르닌의 음성에 가시가 돋아 있었다. 감히 직계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는 없었다.
베르너가 거칠게 첸 블라스코의 어깨를 잡아 일으킨 다음, 두 손을 뒤로 해 포박했다. 첸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루시스가 그 거친 광경을 내게 보여 줄 수 없다는 듯 얼른 등을 돌렸다.
“갈까요, 아기씨?”
“네!”
곧 아르닌의 손에 멱살이 잡힌 마법사가 덜덜 떨며 이동진을 엮었다.
곧장 눈앞이 뒤바뀌었다. 사바나의 열기가 간데없이 사라졌다. 초원을 나온 것이다. 꽉 채워 나흘 만의 여정이 끝났다.
두 번째 시험이 내 승리로 끝났다.
‘우하하. 다행이다.’
나는 입꼬리를 양쪽으로 사악하게 끌어 올렸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그 시각, 공작의 서재에는 사바나보다 더한 열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누군가 내뿜는 분노와 살기의 들들 끓는 온도였다.
“관리자 열두 명 중 무려 셋씩이나 뇌물을 받아 처먹었다라.”
공작은 말끝을 길게 늘이며 의자에 등을 파묻었다.
첸 블라스코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아 매수된 마법사들은 비교적 최근에 새로이 고용한 이들이었다. 아마 블라스코 공작의 성질머리를 직접 겪어 본 바가 없으니 그런 잔돈푼에 어이없이 넘어갔으리라.
스산하게 가라앉은 청안이 바로 두 시간 전 최종 점검까지 끝낸 회계 장부를 스쳤다. 붉은 펜으로 선명하게 표시된, 차액.
“마정석 채굴량을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고, 3분의 1은 멋대로 페테로에 팔아넘긴 뒤에 뒷주머니에 넣고, 모자란 수입은 고정 경비 명목으로 금고에서 꺼내 셈을 맞췄다…….”
전류를 닮은 푸르스름한 살기가 튀어나왔다.
“결국 첸이 채굴업을 이어받은 뒤로 18년 동안 생산된 마정석의 3분의 1을 몰래 팔아넘겼단 말이네?”
“그렇지요…….”
“본격적으로 뒷돈을 불리기 시작한 게 11년 전부터? 호오. 그것도 426년의 7월?”
공작의 음성이 기이하게 고조해 있었다. 제미언은 그것이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고 당장 입을 닥쳤다.
‘큰일 났다. 눈깔이 제대로 맛이 가셨다.’
“본가가 그 난리 통에 빠져 있는 사이에 방계에선 이때다 하고 저들 주머니를 불렸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첸 블라스코가 분기마다 올리는 장부에는 어긋나는 계산이 전혀 없었다. 금고의 입출금 내역과 일일이 대조해 보지 않는 이상 수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치밀했다. 그러니 상속녀의 존재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당장 사업 자금이 끊긴 게 문제가 아니었다. 등쳐 먹을 구석이 없어졌으니 당장 구멍을 메울 돈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차액이 눈에 띌 수밖에 없고, 본가에서 알아차리는 건 시간문제였을 터.
‘그 전에 애를 처리하려고 한 건가?’
오랜만에 눈에서 불길이 이는 듯했다.
처리해? 누굴? 아버지가 그에게 남겼고, 자신이 직접 보호하겠다 나선 아이를?
“제미언.”
“예, 각하.”
“18년 치 손해액이 얼마라고?”
“419년부터 426년까지 한 해 평균 5000골드, 그리고 426년부터 지금까지는 평균 8000골드씩…… 대략 12만 골드입니다.”
“처먹은 돈이 12만 골드라.”
공작의 단정한 입가에 점차 조소가 번졌다.
“어쩌나? 그들 목숨값이 그 정도까진 안 될 텐데.”
이윽고 그가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수련소에서 시벨 블라스코 꺼내 와.”
“알겠습니다. 가문 회의를 소집할까요?”
“배신자를 처리하는 걸 번거롭게 회의에 부칠 필요조차 없지만, 본보기는 보여야겠지. 소집해. 당장 내일까지, 어떤 방법을 써서든 강제 집합이다.”
말끝에 이를 가는 소리가 섞였다. 갈무리하지 않은 푸른 살기가 공작의 손끝에서, 소매 사이에서, 뺨과 목깃 속에서 거칠게 비집고 나왔다.
마호가니 원목 책상이 가가각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긁혀 나갔다.
그때였다.
똑똑똑. 뜬금없게 느껴질 만큼 경쾌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밖에 선 커다란 존재감과, 그 위에 얹힌 작고 연약한 기척. 방문객을 알아차린 순간 거짓말처럼 공작의 살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들어와.”
“각하!”
문이 활짝 열리고, 키스 경이 함빡 웃음을 지으며 들어섰다.
“아기씨께서 돌아오셨답니다!”
주황 머리 꼬마가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키스 경의 목말을 타고 들어왔다.
카티샤가 블라스코의 푸른 깃발을 치켜들고 명랑하게 외쳤다.
“합격!”
“…….”
“도장 찍어 주세요, 공작님!”
그러다 한 박자 늦게 싸늘히 식어 있는 서재의 공기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카티샤가 몸을 움찔하며 공작과 제미언을 번갈아 살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공작은 당장 넓게 퍼진 오러를 긁어모아 갈무리했다.
“자아, 각하께 가실까요, 아기씨?”
키스 경이 기민하게 공작의 기색을 알아채고 카티샤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미끄러지듯이 착지한 카티샤가 깃발을 흔들며 공작에게로 총총 달려왔다.
“저, 깃발 뽑아 왔는데!”
책상을 빙 돌아 다가온 카티샤가 깃발을 그에게 내밀었다. 공주에게 장미꽃을 바치는 왕자처럼 씩씩했다. 연녹색 눈에는 비장미마저 흐르고 있었다.
합격 도장을 언제 찍어 주나? 지금 찍어 줬으면 좋겠는데 안 찍어 주시나? 합격, 합격, 합격! 조그만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으로 꽉 차 있는 것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그래, 찍어 주마.”
공작이 웃음을 참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 두루마리가 나타났다.
두 번째 항목, 아르템의 사바나 칸에 쾅 하고 블라스코의 나비 인장이 찍혔다.
그제야 카티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