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67)
67화
공작은 팔짱을 끼고 아이를 떠보았다.
“일단 시험은 통과했고, 더 중요한 게 남았지?”
카티샤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쥐가 있었나요?”
“뭐?”
“할아버지 금고를 야금야금 파먹은 쥐새…… 쥐요.”
“아아.”
공작의 입술이 비뚜름하게 휘었다.
“있었지, 쥐새끼들이.”
“방계인가요? 광산업 쪽?”
“그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카티샤가 팽 콧김을 뿜었다.
“역시, 진짜 치사한 아저씨들이야. 본인들 뒤도 제대로 안 닦고 애먼 사람만 죽일 듯이 잡고 말이에요. 그런 어른이 되면 안 돼요.”
“그렇지. 그런 어른이 되면 못쓰지.”
“저는 절대 그런 어른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 그래. 기특하기도 해라.”
“제가 반드시 다 잡아 족칠…… 아니,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거예요.”
공작은 억울해 열변을 토하는 카티샤를 쑥 안아 든 다음, 창가 앞에 놓여 있던 적당한 스툴을 가져와 그 위에 내려놓았다. 그제야 눈높이가 아이에게 조금 자비로워졌다.
그는 의자 다리를 팡팡 치는 새끼 눈표범도 들어다 카티샤에게 안겨 주었다.
아이가 숨도 쉬지 않고 물었다.
“그 쥐들이 얼마나 파먹었어요?”
“12만 골드.”
“엑!”
카티샤가 숨이 꼴딱 넘어갈 듯 눈을 부릅떴다. 그러곤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내 돈!”
그게 왜 네 거야? 내 거지.
루티어드는 그렇게 골려 주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그러면 또 말실수를 했다며 허둥거릴 텐데, 지금은 아이를 놀려 먹는 못된 어른이 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12만 골드……. 그 아저씰 당장 경매장에 내다 판대도 12골드가 안 될 것 같은데…….”
카티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듯했다.
한참을 속 쓰려 하던 아이가 가방을 뒤져 작은 영상구를 꺼냈다.
“이건 제가 찍은 증거 자료들이에요. 변이종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요.”
루티어드는 아이가 두 손바닥으로 받쳐 내민 영상구를 집어 들었다. 영상구에 반짝 불이 들어오며 크루어드의 늪지대에서 찍은 영상이 유리구슬 안을 가득 채웠다.
“저어기, 크루어드 오른쪽 목 부분에 남은 마법 수식 흔적이요. 이쪽에서는 잘 안 보이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스툴에서 발딱 일어난 카티샤가 루티어드의 손 위에 놓인 영상구를 이리저리 굴렸다.
“앗 보인다. 보이시죠! 덜 지워진 흔적!”
“그래. 마법사들의 소행이 분명하군.”
“독성이 깃든 페로몬에 과하게 노출되면 이런 식으로 변이한대요. 미쳐 가는 거죠. 진짜 나빠. 쟤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공작 역시도 아르닌이 소지하고 있던 영상석을 통해 사바나에서 벌어진 일들의 전말을 대강은 알고 있었다.
방계 쪽의 누군가가 시험을 방해할 목적으로 마법사들을 포섭했다. 그리고 변이종을 만들어 냈다.
카티샤가 당당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그래서 미리 루시스 경을 제 관리자로 지정해 감독관 첸과 관리자들을 감시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미리 알았다고?”
공작은 놀라 되물었다. 되짚어 보니 시험 규칙의 특약 6번은 카티샤가 직접 요청한 내용이었다.
아이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스 경은 나흘 동안 그들을 감시한 뒤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이들은 모두 사바나로 들여보냈어요.”
“……이럴 줄 알고 관리자를 네가 선정하겠다고 한 거야?”
“으음, 절반쯤은요.”
카티샤가 개구지게 눈을 빛냈다.
“웬 지저분한 검투장에서 딱딱한 빵에 구릿한 치즈로 배를 채운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도 당해 줄 수는 없으니까!”
“…….”
“근데 사실 변이종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라서, 좀 당황했어요. 특수 페로몬까지 썼을 줄도 몰랐고요. 끽해야 변이종을 어디서 따로 데리고 들어온 줄 알았는데…….”
“…….”
“뭐어, 페로몬 조작이라면 범인 찾는 것도 쉬우니까 결국엔 잘된 거죠!”
공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바나로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해맑기만 해서 근심 가득이었는데. 실은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니?
관리자를 선정할 때부터 준비해 왔다면 꼬박 일주일 넘게 대비한 셈이었다.
그는 당혹스럽게 중얼거렸다.
“얘기를…… 하지.”
그렇게 속으로 투지를 불태우는 줄 알았으면 뭐라도 손써 줄 수 있었을 텐데. 초원을 미리 점검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막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네엥?”
카티샤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어차피 안 믿으셨을 거잖아요.”
“뭐?”
공작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당황했다.
카티샤가 제가 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확증이 없었는걸요. 제가 무턱대고 방계가 의심스럽다고만 하면 아무도 저를 안 믿었을 거예요.”
“……나도?”
“당연히 공작님도요.”
내가 이렇게 증거들을 영상석에 다 넣어 왔으니까 믿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아이의 무구한 눈에 그런 의문이 가득 차 있었다.
공작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믿지 않았을 거란 건…….’
그 말은 애초에 이 블라스코가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는 기대 자체가 없었다는 뜻도 된다. 왜일지 자문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맞는 말이기는 했으니까.
블라스코의 직계와 방계 사이에 결코 넘을 수 없는 순혈의 벽이 자리하기는 하지만, 수로 보면 방계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컸다. 방계의 대표들이 각자 가업의 묵직한 요직을 맡고 있으니 그들의 영향력을 아예 무시하기란 어려웠다.
심지어 지금은 내부 균열이 있어서도 안 되는 시기였다. 황실의 견제는 날로 심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니 심증만으로 시원하게 방계를 뒤엎고 가업 구조를 재편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카티샤는 최고 권력자인 가주가 보호하는 아이였다.
혼자 동동거리고 머리를 써 가며 증거들을 확보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자신과 베르너, 아르닌, 셋 중 한 명이라도 믿기만 했다면 말이다.
“어…….”
공작의 굳은 표정을 알아챈 카티샤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그으, 제가 공작님이 못미덥다거나, 그런 건 절대 절대 아니고요……. 어어, 저보다는 방계 아저씨들이 당연히 더 믿음직스러우실 테니까……. 저는, 그러니까…… 아직 아무것도 아니고…….”
“…….”
“여, 여기서는 마음대로 어리광부리면 안 되니까…….”
“됐어. 무슨 말 하는지 알겠으니까.”
루티어드는 황급히 아이의 말을 끊고, 표정을 수습했다.
“그렇지. 확증은 중요하지. 아버지께서 잘 가르치셨군. 계속 설명해 봐.”
“네!”
카티샤가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다시 영상구를 가리켰다.
“그래서 그 의심 가는 관리자들을 들여보내서 변이종을 맞닥뜨리게 하니까, 변이종들이 자기 가족인 줄 알더라고요. 당연하지! 그 특수 페로몬을 만든 인간들인데. 나빠, 아주.”
공작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카티샤의 쫑알거림을 막지 않았다. 그는 아이가 충분히 상황을 설명하고 제 억울함을 토로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입이 썼다.
‘내가 키워 보겠다고 나서 놓고선 신뢰를 못 줬군.’
씁쓸한 깨달음이었다.
카티샤는 처음 블라스코에 머뭇머뭇 발을 들이던 날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이곳과 제 삶을 분리해 생각하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이곳은 아직 제 집이 아닌 것이다. 하기야 목숨의 위협을 받는 곳을 편히 여기기가 더 어려울 터.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는데.’
카티샤가 생생하게 담아 온 이 영상구는 곧 본가를 다시 방문할 게스파 숙부님께 전해질 예정이었다.
아무리 방계의 우두머리 격인 웃어른이라고 해도 이토록 정확한 숫자와 영상, 무시할 수 없는 증인들의 향연 앞에서는 첸과 시벨을 감싸기만 하지는 못하실 것이다.
그럼 그 배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젠데…….
‘아무래도 애가 있는 집에서 칼부림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겠지.’
피비린내가 좀 날지도 모르고, 사용인들의 분위기를 단속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애가 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던가? 안전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집’은 깨끗하고 평화로워야 한다.
공작은 곧 명쾌하게 결론을 냈다.
‘가문 회의가 끝나면 초원 안에서 깔끔히, 조용히 처리하고 와야겠군.’
블라스코 공작이 그의 사바나에서 인간 학살을 즐긴다는 소문 역시 아니 땐 굴뚝에서 난 소문은 아니었다. 실제로 용납할 수 없는 중죄를 저지른 배신자들은 예외 없이 초원에 내던져지니까.
“……그래서! 결론은 방계가 일임하는 사업부 수뇌부들을 싹 물갈이하셔야 한다!”
“그래, 명심하마. 안 그래도 이번 기회에 대대적으로 청소할 거야.”
“그리고 이왕이면 세 번째 시험 문제는 좀 쉽게…… 간단한 걸로 타협을 본다!”
한참을 조잘거린 카티샤가 숨이 차는지 학학댔다.
“그래. 더 공신력 있는 과제로 선정해 보도록 하지.”
공작이 순순히 동조해 주자, 카티샤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했다.
공작은 저도 모르게 아이를 칭찬해 주었다.
“잘했다.”
“……!”
카티샤의 얼굴에 지잉 진한 감동이 흘렀다.
좋아 죽겠는데 얌전하고 어른스럽게 칭찬을 소화하려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는 게 공작의 눈에는 다 보였다. 어쩐지 칭찬을 조금 더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카데미 고등 과정까지 허투루 공부한 게 아니군. 약초학도 잘하고, 머리도 굴릴 줄 알고.”
“헤헤.”
“네가 없었으면 방계를 터는 데 꽤 골머리를 썩였을 거야.”
카티샤가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아주 귀여웠다.
좀 더 칭찬해 줄 게 없을까? 사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칭찬해 주려면 사흘 밤낮도 부족할 것 같지만……. 공작이 기억을 더듬는 사이, 아이가 눈을 빛냈다.
“그러면요, 공작님. 저도 가문 회의에 참석하게 해 주세요.”
“회의에?”
“네!”
뜻밖의 요구였다. 갑자기 가문 회의라니?
카티샤의 연녹색 눈에 갑작스레 차가운 그늘이 드리웠다. 눈꺼풀을 반쯤 내리깔았다가 든 아이가 빙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공작은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저런 순간적인 태세 전환. 표적 외엔 죄다 머리에서 지워 버린 공격적인 눈빛과 냉소적인 입매. 어딘지 익숙한데…….
“아무래도, 제가 어린애라고 자꾸 무시하는 것 같아서요.”
“…….”
“솔직히 덩치 큰 털보 산적이 상속자라고 나타났으면 이딴 식으로 날 죽이려곤 안 했겠지. 비겁한 아저씨들.”
“…….”
“그러니까 저도 회의에 참석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조금, 어, 회의장을 어지럽혀도 봐주세요.”
어지럽혀? 공작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은 없다만.”
“부서지진 않겠죠? 바닥이 내려앉는다거나.”
“……들소 열 마리가 뛰어다녀도 이 집이 무너질 일은 없어.”
“열 마리……. 아슬아슬한데…….”
카티샤가 심각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쯤 되니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뭘 하게?”
“헤헤.”
카티샤가 사랑스럽게 눈을 찡끗했다. 그러나 귀여운 윙크와 조그만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정확히 극과 극에 있었다.
“저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이번 기회에 똑똑히 보여 주려고요.”
“…….”
“피는 안 섞였어도, 누구보다 블라스코답다는 걸 보여 줄 거예요. 나, 우리 할아버지가 강하게 키운 꼬마라 이거예요.”
어디선가 음산한 한기가 날아드는 것도 같았다.
공작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걸 보통, 이 집에서는…….’
훼까닥 돌았다, 라고 하는데. 괜찮을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