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71)
71화
견고하던 문이 마침내 활짝 열렸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얼굴이 새빨개진 아르닌이 와악 고함을 질렀다.
“노이로제 걸리겠다, 이 융통성 없는 인간아! 왜! 왜! 용건이 대체 뭔데!”
“너 어깨 아프냐?”
미친.
그 소리는 대장간 안에 앉아 있던 카티샤에게서 나왔다.
카티샤는 베르너를 뇌 없는 심해 생물을 보듯 하고 있었다.
반면 아르닌의 표정은 급속도로 싸늘하게 식었다.
“그딴 얘기 하러 왔어? 할 말 없으니까 꺼져.”
그녀는 앙칼지게 대꾸하며 문을 홱 밀어 닫았다. 그러나 베르너가 재빨리 문틈에 검을 괴는 게 빨랐다.
“언제까지 애처럼 피하기만 할……”
“우와아악! 이야악! 공자님!”
카티샤가 괴성을 지르며 베르너의 말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카티샤의 환장하겠다는 표정을 보니 그제야 뭔가 잘못 말하고 있다는 직감이 왔다. 그제야 저 애가 당부하고 또 당부했던 게 떠올랐다.
‘아, 참. 부드럽고 사려 깊게 이야기를 시작하라고 했지.’
그러나 이미 늦었다. 아르닌은 카티샤를 꾹 끌어안고 베르너에게서 등을 완전히 돌린 후였다.
억센 힘으로 안기게 된 카티샤와 아이가 안은 새끼 눈표범이 동시에 목 졸리는 소리를 냈다.
아르닌의 품에 뺨이 인정사정없이 뭉개진 카티샤가 웅얼거렸다.
“어, 언니. 아포…….”
베르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왈가닥과 제대로 된 대화를 시도하는 게 대체 몇 년 만이더라? 앞이 막막했다.
“나랑 이야기 좀 해, 아르닌.”
“할 얘기 없어.”
베르너는 그 쌀쌀맞은 반응에 멈칫했다가, 아르닌의 품에 안긴 카티샤가 있는 힘껏 입을 뻐끔거리는 것을 보았다.
‘계속해! 얘기! 멈추지 마!’
여기서 멈췄다간 꼬마가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기세였다. 왜인지 용기가 솟았다. 더불어 오늘만큼은 반드시 동생의 무거운 입을 열어야겠다는 사명감마저 일었다.
“너 오른쪽이 자꾸 비는 것 말이야. 훈련을 게을리해서가 아니지?”
하긴, 아르닌이 게으름을 피울 리가 없었다. 왜 이제까지는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던 걸까? 저렇게 티가 나는데.
“어깨, 언제 어쩌다가 다쳤어?”
“…….”
“아르닌, 이렇게 계속 피하기만 할 거야? 문제가 있으면 말을 해야 원인을 찾고 해결할 수 있어.”
아르닌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분노와 짜증, 상처 입은 자존심의 합작이었다.
“원인은 찾을 필요도 없어.”
아르닌이 인형처럼 부둥켜안고 있던 카티샤를 떼어 냈다. 그리곤 베르너가 아니라 카티샤에게 말하듯 마구 쏟아 내기 시작했다.
“쟤 진짜 짜증 나, 카티. 내가 왜 이 꼴이 난 건데…….”
“어, 언니이…….”
“물론 백 퍼센트 저 둔탱이 탓은 아니지만. 내가 바보 같았기 때문이지만! 저렇게 한심스러울 줄 알았으면 그때 쟬 구하지도 않았을 거야.”
가만히 아르닌의 말을 듣고만 있던 카티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구해요? 누가요? 언니가 공자님을요?”
베르너 역시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나를 구해? 아르닌이? 언제?’
거 보란 듯 아르닌이 팽 콧방귀를 뀌었다.
“저 봐, 본인은 기억하지도 못하잖아. 내가 쟤 대신에 마차에 깔렸을 때 얼마나 아팠는데.”
그제야 퍼뜩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베르너는 나직하게 신음했다.
‘아, 설마. 마차 사고…….’
지금이야 극복했다만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베르너는 마차를 타는 것을 무서워했다. 블라스코의 비극을 초래한 사고가 바로 마차 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사고의 정황을 뒤늦게 전해 들은 것뿐이었으나, 그 트라우마는 꽤 오랜 시간 베르너를 괴롭혔다.
그러다 2년 전, 남매가 타고 있던 마차의 바퀴가 부러져 하마터먼 전복할 뻔한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마차는 베르너가 앉았던 오른쪽으로 뒤집어졌다. 그러나 베르너가 깨어났을 때, 그는 놀라우리만큼 멀쩡했다. 그 무거운 마차에 깔렸다면 최소 골절상이라도 입는 게 당연했을 텐데.
그때 아르닌은 이미 저택에 없었다. 듣기로는 그보다 먼저 정신을 차리고 남부 지방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쪽을 등지고 앉은 아르닌의 어깨가 우울하게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런 주제에 그녀는 바락바락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아버지께도 그래! 대체 언제까지 철없게 굴 셈이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아르닌이 카티샤를 바닥에 내려 주고 홱 돌아섰다. 그리고 베르너를 향해 마구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말끝마다 꼬박꼬박 각하, 각하.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버지로는 인정 못 하겠다 이거야? 어? 이쯤 됐으면 그만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도 됐잖아!”
“…….”
“11년 전에 벌어진 일,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였어. 공작님은 가문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신 거라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뀌었으니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오빠만 그래? 나는 더했어!”
갑작스럽게 화제가 뒤바뀌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남매간에 그어진 깊은 골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
아르닌이 이때다 싶었는지 참았던 말들을 마구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그분을 받아들였다고. 언젠가는 복수의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날을 누구보다 염원하는 사람은 그분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
“내가 너 오빠 새끼만 보면 속이 터져요. 제발, 친밀하게 굴 자신이 없으면 분위기라도 맞춰. 혼자 독불장군처럼 고집부리고 있지 말고, 이 멍청아!”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던 아르닌이 카티샤의 손을 낚아채듯 쥐었다.
“아버지께 가자, 카티. 걱정하실 거야.”
졸지에 붙들린 카티샤가 아르닌을 따라 엉거주춤 걸음을 옮겼다.
대장간 안에는 얼빠진 베르너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 * *
“아, 싫어!”
베르너가 신경질을 내며 돌하르방처럼 버티고 섰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겨도 보고, 뒤에서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밀어 보기도 하며 생난리를 부렸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베르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도 어제 들었잖아, 카티! 아르닌 걘 나랑 화해할 생각이 발톱 때만큼도 없다고!”
“아, 그래도 오빠잖아요!”
“오빠 취급을 해 줘야 오빠지. 불리할 때만 오빠냐?”
“그래도, 흐억, 형제가 아프면, 한번 굽히고 들어갈 수도 있는 거지!”
“말을 할수록 사이가 틀어진다니까? 걔랑 난 그냥 남남처럼 지내는 게 이 세상의 평화에 기여하는 길이야!”
“무슨 세계 평화까지 가! 그게 그럴 일이냐고요!”
나는 열 걸음 물러났다가 전력을 다해 베르너에게 몸통 박치기를 시전했다.
“옛날에 언니가 공자님 구해 줬다면서요! 늦게라도 그걸 알았으면 공자님이 백 번은 굽히고 들어가야지 무슨 소리야!”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연무장으로 쳐들어가, 막 오전 수련을 시작하려는 그를 끌어내는 중이었다.
“한 번만요. 한 번만, 가서 5분이라도 얼굴 보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면 돼요.”
“…….”
“그러면 뽀뽀 열 번 해 준다니까……!”
내 호령에 드디어 베르너가 반응했다. 귀가 솔깃한 표정이었다.
“누, 누가 뽀뽀 받고 싶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격언을 인간으로 만들면 베르너가 될 것이다.
나는 마지못해 한두 걸음 떼기 시작한 베르너를 질질 끌고 아르닌의 대장간이 있는 별채로 향했다.
‘그래도 어제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어.’
적어도 아르닌 언니가 속에 든 마음을 밖으로 꺼냈으니까!
치고 박고 싸우더라도 이야기만 하면 돼. 묵은 감정들까지 전부 쏟아 내면 돼!
아르닌의 대장간은 이제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했다. 나는 기척에 주의해 대장간을 곧장 가로질렀다. 반면 내 손에 끌려오는 베르너는 이렇게 깊은 안쪽까지 들어와 보는 것 자체가 처음인지, 연신 어색하게 주위를 흘낏거리고 있었다.
나는 대장간의 휴게실 앞에 다다라,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 아르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야? 카티?”
“네! 저예요, 언니.”
최근에야 안 사실인데, 아르닌이 대장간에 파묻혀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간 큰 인간은 나뿐이었다. 연금과 제련에 몰입할 때의 아르닌이 평소보다 다섯 배는 더 예민하다는 걸 온 블라스코 사용인들이 다 아는 탓이다.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 열려 있어.”
아르닌의 목소리 끄트머리가 가슬가슬 갈라져 있었다. 언니도 어제 잠을 설친 게 분명했다.
나는 살며시 문을 열며 베르너에게 눈짓했다.
‘또 싸우면 바로 공작님께 일러바칠 거임!’
베르너는 여전히 만면을 한껏 구기고 있었다.
나는 그의 등을 낑낑 밀어 겨우 방 안에 들여보낸 뒤, 가차 없이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리고 개운하게 손을 탁탁 털었다.
‘자, 이제 기다려 보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