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블라스코 밖에서 데려온 아이라기에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어리고, 예상보다 더 평범하네.]인간의 육성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고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지는 전음과 비슷한 것 같지도 않았다.
공간 전체를 헤집으며 끝없는 파문처럼 퍼져 나가는 음성이었다. 공간감이 엄청났다.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또렷하지 않고 메아리가 심했다. 비유하자면 거대한 콘서트홀에서 수십 대의 스피커를 동시에 틀어 놓은 것과 비슷할 것이다.
오늘도 나를 따라온 아이칼이 꼬리를 바짝 세운 채 사납게 그르렁거렸다.
나는 재빨리 아이칼을 안아 들고 토닥였다.
머리로는 며칠간 열심히 정리한 원작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 마법처럼>의 166 화에서, 니엘라는 영령의 탑으로 진입하는 그녀를 막으려는 수십 명의 영령들의 음성과 맞닥뜨린다. 그녀가 택한 방법은 세월의 정원을 반파하고, 이곳의 모든 흉상을 베어 버리는 것이었다.니엘라는 세월의 정원으로 들어선 즉시 서른세 개의 동상들을 모두 파괴한 뒤, 불을 질렀다.
‘사이다라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니엘라는 블라스코에 악감정을 품고 있었으며, 영령들의 환심을 살 필요조차 없었다. 그러니 그런 화끈한 방법을 택했을 터.
하지만 내 경우엔 다르다. 어떠한 경우에서든 영령들의 분노를 사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그들은 마검의 봉인을 지키고, 검과 거의 동화하다시피 하며 마귀와 가장 가까이서 접촉하는 존재들이다.
심지어 영령들은 오랜 세월 블라스코를 지켜오며 수백 년간 축적한 지혜와 지식을 보유한 이들이기도 했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봐야 해.’
당장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얕은 호감을 쌓는 것보다, 더 친근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뭘 위해? 내 빛나는 미래를 향한 탄탄대로를 쌓아 가기 위해!
‘유제니 블라스코. 당대 상업계의 큰손.’
당장 지금 본인의 흉상을 통해 나를 샅샅이 뜯어보고 계실 유제니 블라스코만 하더라도, 무려 140년 전에 처음으로 상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신 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귀족이 상업에 종사한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이다. 가문 내의 반대를 모조리 누르고 처음으로 판매용 무기 제작을 추진하신 분이 바로 나를 뜯어보고 계시는 이 귀부인이시다.
‘한마디로, 타고난 사업가.’
무조건 호감을 사 둬서 나쁠 게 없는 훌륭한 컨설턴트!
‘이런 인맥은 돈 주고도 못 얻어.’
나는 얼른 잔머리를 깔끔하게 양쪽 귀 뒤로 넘기고, 옷매무새도 탈탈 털어 정리했다. 그리고 씩씩하고 예의 바르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가주님! 카티샤 아인슬리라고 합니다.”
[그래, 안녕.]지나치게 평범한 첫인상을 남긴 것치고, 유제니 님은 온화하게 내 인사를 받아 주셨다.
[조금 더 가까이 와 보겠니? 네 오러의 파장을 읽고 싶구나.]나는 냉큼 흉상 앞으로 다가갔다. 발밑의 비석을 밟지 않도록 상체만 힘껏 내밀어 흉상과 눈을 맞추자, 흉상이 호오, 하고 흥미로운 감탄사를 흘렸다.
[아가, 네 오러는 무척 특이한 파장을 가졌구나. 우리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전혀 다른걸.]“헤르젠 할아버지의 영향이 아닐까요? 저는 할아버지와 10년이나 함께 살았으니까요.”
은근슬쩍 할아버지와 내 돈독한 관계도 어필해 봤다.
흉상은 별다른 대꾸 없이 낮은 웃음소리만 흘렸다.
[귀귀가 어떻게 반응할지 무척이나 기대되는구나.]그 말을 끝으로, 벌어져 있던 흉상의 입술이 천천히 다물렸다. 깃들었던 영령이 떠난 것이다.
어, 이렇게 금방?
나는 당혹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귀귀는 또 뭐지……?’
그때 저만치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하고 보았더니, 베르너가 다른 가주의 동상 앞에 붙들려 있었다.
[그래서 어떤 타입인데? 똘똘하니? 블라스코다워? 우리 귀귀가 좋아할 것 같아?]“음…… 보시다시피, 귀엽게 생겼습니다. 작고요……. 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성깔이 꽤 무시무시합니다.”
[전혀 상상이 안 가는걸. 작아도 너무 작은데! 검을 뽑을 수는 있겠어? 검날에 깔려 넘어지면 어떡하지?]“시어드 님, 그럼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안 돼! 난 그 시험인지 뭔지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공명정대함을 유지할 거란다. 말 붙였다가 정이라도 들면 어떡하니?]“예에…….”
베르너가 붙들린 21대 가주, 시어드 님은, 외람되지만 엄청난 수다쟁이셨다.
낌새를 보건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내가 쳐다보는 것을 알았는지, 영령들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그래서 체르타가 벼르고 있다는 거 아니니. 걘 아르닌에 걸었거든. 아까 아르닌에게도 한참 잔소리를 퍼붓고 갔단다…….]이어지는 말들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워 이쪽까지는 닿지 않았다.
하기야, 바로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블라스코의 후계자 후보는 둘뿐이었던 데다, 둘 다 이 세월의 정원에서 영령들과 만났던 적이 많을 것이다. 탑 안의 영령들이 남매를 편애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조금 초조해졌다. 내가 언니 오빠보다 더 뛰어난 점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은데…….
[너무 신경 쓰지 말렴, 아가야.]그때, 떠난 줄 알았던 유제니 가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휴가계가 걸려 있어서 저렇게 유난들인 게지. 우리에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휴가계거든. 물론 목숨은 한 130년 전쯤에 다했다만.]“가주님께서는 어느 쪽에 거셨어요?”
[나? 난 내기 안 했지. 지금 대의 가주가 공작위에 올랐을 때 이미 휴가권을 땄거든. 뜻밖에도 말이야. 그래서 내 휴가는 아직 39년이나 남았단다.]“아아…….”
낮게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무척 개운한 표정을 짓고 계실 것만 같았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묻자. 그 아이는 잘 지내니? 가주위에 오르고 나서는 통 안 오더구나.]이어진 유제니 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벼운 음색이었지만, 이번에는 어딘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문득 이 가문의 특성이 떠올랐다.
‘영령들도 시험을 좋아해. 다들 블라스코니까.’
온화하게 다가오셨지만 유제니 님도 결국 블라스코다. 이유 없이 다정하실 리가.
‘그렇다면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주의 깊게 평가하고 계실지도.’
문맥상 ‘그 아이’라면 공작님을 뜻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가주가 공작 위에 올랐을 때.’
11년 전, 블라스코 가주 후계자는 전시관에 걸릴 초상화까지 그렸지만 결국 공작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 자리에 대신 오른 사람은 현 공작님.
‘루테, 아르텐사, 블라스코.’
나는 그 이름을 입속으로 꼭꼭 외었다. 그러자 금방 답이 나왔다.
‘유제니 님은 루테 블라스코에 거셨구나.’
그래서 ‘뜻밖에’ 휴가계를 따신 거야. 결국 공작은 후계로 내정되었던 ‘루티어드’가 아니라 ‘루테’가 되었으니까.
‘그럼 굳이 나를 이렇게 떠보신다는 건, 내가 얼마만큼 이 가문에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겠지.’
영령의 호감을 살 절호의 기회였다.
머리가 결론을 내자,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잘 지내고 계세요.”
나는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엄지를 착 치켜세웠다.
“늘 일을 열심히 하시고요. 블라스코의 품격을 높여 주고 계시는 훌륭한 가주님이세요!”
[그러니? ‘둘째’가?]“아니요. ‘첫째’ 루티어드 님이요.”
모른 척하자.
그게 내 결론이었다.
나는 비장하게 주먹을 꾹 쥐었다.
‘공작님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어.’
영령들이 지금 세대의 비밀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상관없었다. 나는 공작님과 약속을 했고, 아무리 시험대 위에 섰다고 해도 그분의 비밀을 함부로 입에 올리고 싶진 않았다.
‘호의를 못 얻으면 뭐 어때? 다른 영령들이 서른한 분이나 계신데.’
난 공작님 배신 안 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