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81)
81화
유제니 님이 소리 내어 웃었다.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니? 물론 크기를 키울 수는 있다만.]내 손 위의 영령이 별안간 예고 없이 크기를 쑤욱 키웠다.
“끄앙악!”
나는 심장이 떨어질 듯 놀라고 말았다. 족히 2m는 넘는 성인 여성의 모습으로 변한 유제니 님이 나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유지하는 데 힘이 많이 들지. 어차피 실체도 없는 영혼에 불과한데 굳이 이 작은 탑에서 서로 몸 부대낄 필요도 없고.]유제니 님은 곧 다시 조그만 크기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손바닥 위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으셨다.
절대적인 부피가 작아서인지, 영령에게선 걱정했던 것만큼의 위압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주위에 둥둥 떠 있는 영령들을 둘러보았다.
영령은 대부분 죽기 직전의 나이대로 형체를 구성한다. 오십 줄을 넘기기 힘든 블라스코 가주의 특성상 영령들 역시 대부분 젊은 모습이었다. 입은 옷들도 다양했다.
유제니 님처럼 고풍스러운 드레스나 제복을 갖춰 입은 영령들도 있었고, 생전에 입었던 훈련복을 걸친 영령도 있었다. 긴 수도복을 걸친 영령들도 몇 눈에 들어왔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채도가 빠진 희끄무레한 색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조심조심 영령들의 얼굴을 파악해 나갔다. 그러다 유난히 눈매가 부리부리한 한 영령을 발견했다.
‘헉, 가이우스 님이다.’
2대 가주이자 첫 번째 영령, 가이우스 블라스코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뜯어보고 있었다.
[가진 오러는 미약하고. 민첩성은 떨어지고. 작은 것에도 깜짝깜짝 잘 놀라는 걸 보니 강심장을 지니지도 않았구나.]“…….”
[그렇다면 헤르젠이 네 신체 능력을 보고 너를 택한 것은 아닐 터. 아가야, 너는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맞닥뜨리자마자 바로 본론이라니.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가이우스 님의 영령은 다른 영령들과는 확실히 기백부터가 달랐다. 눈빛만으로도 나를 꼬깃꼬깃 접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네 가진 능력이 블라스코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하면 우리는 너를 받아들일 것이고, 필요치 않다 생각하면 내칠 것이다.]무정하리만큼 온기 없는 음성이었다. 나를 둘러싼 영령들 중 몇이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무표정하거나, 완고하게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으시네.’
찾으러 가고 싶어도 내 앞을 막아선 영령들께서 호락호락 비켜 주실 것 같지 않다.
방패 없이 맨몸이라니!
‘뭐, 괜찮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나는 침착함을 회복하고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내 능력이랄 건 보잘것없어. 하지만 확실하게 어필할 건 있지.’
이 탑에 억겁의 세월을 종속당한 영령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뭘까?
나는 일주일 전, 세월의 정원을 나서자마자 나름의 답을 찾았다.
영령들에게 간절한 것은 바로 자극이다. 자극적인 일. 외부인. 사건 사고. 시시각각 변하는 아르템과 블라스코. 무료하게 흘러가는 하루하루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그런 것들 말이다.
나는 내가 내린 이 결론에 걸어 보기로 했다.
일단 시작은 씩씩하고 예절 바르게 인사하는 것부터.
“안녕하세요, 가주님들. 헤르젠 할아버지를 뵈러 온 카티샤라고 합니다.”
수많은 시선이 내게 다닥다닥 붙었다. 목소리를 떨지 않기 위해 일부러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이 탑에 역대 가주님들의 영령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제가 선물을 준비해 왔어요.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영령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이 탑에 외부인이 들어온 것은 무려 11년 만이다. 그리고 영령들은 세월의 정원 밖의 세상은 접할 수 없다.
그간 베르너나 아르닌이 종종 정원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었다곤 하지만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심지어 가주인 공작마저 오래 걸음 하지 않았으니, 영령들이 바깥세상의 일에 얼마나 무지할지 안 봐도 뻔했다.
‘그러니까 즉, 이분들은 심심해서 다시 돌아가실 지경이라는 거야.’
나는 메고 있던 노란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 내가 챙겨 온 영상석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사바나에서 찍었던 영상석은 물론이고,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줄기차게 들고 다녔던 영상석들까지 모조리 지고 왔다.
공작님께 부탁해 영상석 속의 영상을 크게 만드는 확장 마법 도구와 소리 증폭기도 챙겼다.
나는 빈 벽면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재빨리 준비물들을 세팅했다.
‘제발 흥미를 보이셔야 할 텐데.’
마법 도구들 위에 영상석을 올려놓자, 영상석 위로 커다란 화면이 떠올랐다.
화면에 아득한 열대 초원의 모습이 가득 들어찼다. 멀리서 코끼리가 뿌우우 우는 소리, 괴조들이 날갯짓하는 소리, 장초가 바람에 사각거리는 야생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낯선 풍경을 본 영령들이 수군거렸다.
[……? 저게 뭐야? 초원?]“아르템 북쪽에 있는 공작님의 초원이에요.”
[아, 헤르젠의 밭을 밀어 버리고 만들었다는?] [그게 저렇게 생겼어?] [어디 봐. 호오, 보기엔 퍽 완벽하군. 마법사를 몇 명을 갈아 넣은 거지?]유제니 님이 흥미로운 기색으로 내 곁으로 포르르 날아오셨다. 마찬가지로 흥미를 보인 영령 두엇이 화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럼 시작할게요!”
나는 명랑하게 손뼉을 쳤다.
“연기, 연출, 제작, 배급, 카티샤! 사바나 생존기와 방계 물 먹이기 대작전!”
내가 개업한 미니 상영관이 무료로 영업을 시작했다.
* * *
《“호수에 약을 푼 놈이 도망을 시도한 모양이다. 검기의 흐름이 일방적이고, 방향이 일정해. 표적 하나를 집요하게 뒤쫓았다는 뜻이지.”》
좌중이 조용했다.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물론 영령들께서는 숨을 쉬진 않으시지만.’
정말 탑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확장용 더듬이를 꼽은 영상석 위로 기록된 내용이 비디오테이프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저건 바로 내가 아르템의 사바나에서 찍은 영상석이다.
화면 안에서는 베르너와 아르닌, 그리고 내가 목적지에 다다라 세 마리의 어구스트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 중이었다.
《“거기, 당장 피해!”》
《“쯧, 귀찮은 것들이 따라붙어선…….”》
《“언니, 어깨 조심해요! 오른쪽!”》
이렇게 보니 한 편의 액션 영화 뺨쳤다.
영령석 앞에 옹기종기 모여 둥둥 떠 있는 영령들은 정신없이 영상을 관람하고 있었다.
[베르너는 여전히 잘생겼구나! 그런데 어째 제 아비보다 루테를 더 닮은 것 같은데? 말투부터 눈빛까지 말이다.] [루테가 11년이나 키웠으니 그렇지.] [아르닌은 움직임이 굼떠진 듯도 한데. 어마나! 쟤 어깨가 왜 저런다니!]내 옆에 딱 붙어 영상을 보던 영령 두 분이 마구 호들갑을 떨며 공중으로 파르륵 날아가셨다. 20대 가주와 13대 가주였다.
내 무릎 위로 17대 가주가 자리를 잡았다. 블라스코의 상징 문양이 그려진 북슬북슬한 털 망토를 걸친 그가 영상 아래를 검지로 가리켰다.
[아가, 저 하얗고 복실복실한 생명체는 무엇이니? 무늬가 무척 특이하구나.]“제 반려동물이에요. 이름은 아키고요. 눈표범이에요.”
[오, 설원에 사는 짐승인가 보구나. 영상석으로 보아도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혹 신수니?]“네, 맞아요. 아직 어리지만요.”
[그렇다면 이클라스족이겠구나. 나도 살아 있을 때 딱 한 번 봤지.]나는 영령들 틈에 끼어 영상석을 봤다. 흘끗 곁눈질하니 관심 없는 척 뒤쪽을 떠돌던 영령들도 연신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토…… 통했나?’
[그런데 저기, 규모가 저렇게 컸나? 세월의 정원에 들락거리며 주워들은 바론 저렇게까지 넓은 줄은 몰랐는데.] [루테가 원래 저런 집채만 한 짐승들을 좋아했어. 제 애인도 그러다 만났잖아. 저 어디야, 황금 사막 쪽으로 스쾨티모르 보러 간댔다가…….] [그래, 저런 취미라도 가져야 애도 숨통 좀 트고 살지. 오죽하겄어?]서른 명 가까이 되는 영령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얹으니 조용할 새가 없었다. 사방에서 서른 마리 종달새가 쉴 틈 없이 짹짹 지저귀는 것만 같다.
‘팝콘을 좀 튀겨 올걸.’
나는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가,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다.
‘무슨 소리야! 이미 돌아가신 분들 앞에서 눈치 없이!’
사바나 여행기가 끝나자, 영령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조로록 나를 향해 뒤돌았다.
[더 없니, 아가?]나는 대답 대신 가방을 열어 영상석들을 한 움큼 꺼냈다. 영령들이 반색하며 내 가방 주위에 와글와글 모여들었다.
‘효과가 꽤 괜찮은 것 같지?’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해 볼 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