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85)
85화
* * *
헤르젠이 조개 모양의 로켓을 발견한 것은 텔파의 집 앞에서 웬 갓난아이를 주운 그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427년의 4월 1일이다.
“어떤 미친놈이 이 꼭두새벽에 아기를 내버리고 갔어?”
헤르젠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이의 부모를 대차게 욕하며 아기를 집 안으로 들여왔다.
“암만 삶이 팍팍해도 그렇지, 이런 핏덩이를 그냥. 응? 아이고, 조그매라.”
딱 보기에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였다. 최소한 낳은 직후에 내버린 건 아닌지 아기는 깨끗했고, 속싸개와 겉싸개도 의외로 고급이었다. 거기서부터 이미 사연이 있는 아이처럼 보였다.
‘날이 밝으면 치안대에 찾아가 봐야겠군.’
헤르젠은 아기의 보송보송한 주황색 머리털을 살살 쓰다듬었다. 이만큼 작은 갓난아기를 보는 것은 수도에 두고 온 손주들 이후로 처음이다.
울지도 않고 새근새근 잠든 아기는 조개 모양의 로켓을 품에 꼬옥 껴안고 있었다.
로켓은 모서리가 낡아 아기가 쥐고 있기엔 위험해 보였다. 헤르젠이 조심스럽게 목걸이 줄을 아이에게서 벗겨 내려던 순간이었다.
로켓의 틈 사이로 붉은 실금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요사스러운 붉은 빛을 뿜어내는 로켓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활짝 열렸다. 그리고 헤르젠을 집어삼켰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좀 전까지 있던 자신의 집과 전혀 다른 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헤르젠은 그가 일평생 겪어 왔던 일들 중 가장 기묘한 것을 발견했다.
회상에 잠긴 헤르젠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팼다.
[거기에서, 거대한 책을 보았다.]“잠깐만, 책이라고요?”
카티샤가 손을 번쩍 들고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종이책? 낱장 팔랑팔랑 넘기는?”
[그래. 표지가 아주 낡은 책이었다.]헤르젠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쑥쑥 커 갓난아기에서 꼬맹이가 된 카티샤가 덩달아 진지한 눈을 했다.
“사용자 맞춤형 로켓인가……?”
[뭐라고?]“아니에요. 그런데 그 책이요, 제목이 혹시 [지금 우리, 마법처럼>이에요?”
[그래. 역시 너도 보았군.]퍽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은 헤르젠으로서는 기함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내 아들과 손주들이 갑자기 마검의 후계자라며 나타난 웬 소녀를 학대하다 역풍을 맞을 운명이라는 내용이었지.]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그 책은 블라스코를 정말 상종도 못 할 악역으로 묘사해 놓았다.
“내용 자체는 내가 본 거랑 같네…….”
심오해진 카티샤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 책은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하긴. 태워 버렸지.]“……?”
[어떤 놈이 감히 블라스코에 악심을 품고 그딴 책을 써 놨어? 그게 시중에 풀리면 가문 이름에 똥칠하는 격인데. 당장 없애 버려야지.]카티샤가 멍청한 표정으로 헤르젠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작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내 체념의 한숨을 짓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여튼, 이 집안은 다들 성격이 너무 급해.”
[뭐야?]“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어떻게 됐어요?”
[그 책을 불살라 버렸더니, 그 뒤로 로켓이 다시 열리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너도 이 이야기를 아는 걸 보면 네게 열린 적이 있나 보구먼.]“맞아요. 그리고 뒷이야기도 두 회 차나 더 풀렸어요!”
카티샤가 금세 신이 나서 조잘조잘 설명했다.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머리를 굴려 오던 것을 할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 기쁜 모양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말도 일리가 있어요. 뭔가 니엘라, 사기꾼 느낌이 난단 말이죠. 내 감이 외치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아키가 그렇게 싸늘하게 반응할 리가 없잖아요!”
[언제 ‘우리 아키’가 됐냐?]“걔 엄청 예쁘게 생겼어요. 능력도 짱이에요. 한여름에 눈 내리게 할 수 있어요!”
카티샤는 그새 그 아이칼이라는 신수와 친해진 모양이었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그래서 나를 여기로 보낸 거예요? 니엘라를 막으라고?”
[아니. 내가 우리 꼬맹이한테 그런 귀찮은 일을 떠맡기지는 않지. 그런 싸구려 가십지 같은 소설 따윈 믿을 것도 못 되고.]“에엥, 그럼 왜?”
헤르젠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사실 그가 아이를 직접 키워야겠다고 결심한 진짜 계기는 따로 있었다.
[아가, 내가 그 로켓 속에 네 이름이 적힌 쪽지가 있었다고 했지?]“아, 맞다. 그랬어요.”
[거기 실은 이름만 적혀 있었던 게 아니다.]카티샤 아인슬리. 그 밑에는 누군가가 몹시 급하게 휘갈겨 쓴 듯 알아보기 힘든 악필로 한 줄이 더 적혀 있었다.
[역행한 모든 것이 새로이 시작되었노니, 새 생명이 어긋난 것들을 되맞추리라.>“또 퀴즈야?”
카티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헤르젠은 아이의 말을 정정했다.
[퀴즈가 아니라 예언에 가깝지.]“그걸 믿고 나를 여기로 보낸 거예요?”
[나도 처음부터 믿은 건 아니다. 출처도 모르는 졸작 따위를 어떻게 믿으며, 또 블라스코와는 아무런 연도 없는 갓난아기가 귀어스트의 주인이 될 거라는 엉터리 예언은 뭘 보고 믿겠어?]“그런데요?”
[그런데 네가 커 가면서, 어쩐지 그게 영 못 믿을 예언은 아니다 싶더라는 거지.]“왜?”
[네 오러가 무척이나 특이하기 때문에.]카티샤가 얼른 제 양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끙 힘을 주자 주황색 오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카티샤가 손바닥을 헤르젠의 눈앞에 쭉 들이밀었다.
“이상해요?”
[이상하다기보다는, 희한하지. 대륙을 다 뒤져도 너 같은 파장의 오러를 지닌 인간은 없을 게야.]“오오.”
카티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킬킬거렸다.
“희귀템이네, 나! 나도 잘하면 아르닌 언니나 공자님처럼 클 수 있어요?”
[……글쎄.]아이는 태평한 데 비해, 헤르젠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육신의 한계를 초월한 영령의 눈으로 보니 그간 긴가민가했던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카티, 혹시 그 아이칼이라는 신수가 네게서 유독 떨어지지 않으려 하지 않더냐?]“어, 맞아요. 아키는 저 좋아해요.”
[그럼 그 녀석도 네게서 뭔가 특별한 것을 느꼈나 보군.]카티샤는 공존할 수 없는 양극단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마검에 깃든 마귀, 귀어스트의 타락한 마기, 그리고 그와 정반대되는 성검 힐라이야의 오러.
그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살아 있는 증거가 지금 바로 앞에서 눈을 깜빡거리고 있지 않나.
그러나 카티샤가 가진 오러 자체의 기운은 무척 약한 편이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는 잔병치레도 심했다. 다행히 회복력은 무척 좋아 호되게 앓은 적은 없었지만.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도 다 저 특유의 오러 덕분이었던가.
‘귀어스트의 파괴, 힐라이야의 재생. 그 두 힘이 카티샤에게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나?’
그렇다면 카티샤는 이 세상에 존재가 드러나면 안 될 아이였다.
아마 가진 오러의 기가 강력하기만 했다면 세계 제패는 거뜬히 하고도 남을 영웅이 되거나, 대륙의 암흑기를 다시 불러올 희대의 악당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카티샤는 겨우 걸음마나 하던 때부터 헤르젠의 오러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리고 다섯 살을 넘긴 시점부터는 오러를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발소리를 오러로 갈무리해 기척을 없애는 법을 알았다.
헤르젠이 알기로, 저 어린 나이에 오러 민감도가 저만큼이나 높은 이는 블라스코에서도 근 150년을 통틀어 그의 둘째 아들인 루테가 유일했다. 그건 노력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재능이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블라스코와 연관되어 있는 아이가 아닐까?
정말로, 단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은 게 맞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