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87)
87화
나는 어벙하게 되물었다.
“네에? 뭐가 나쁘지 않다는……?”
[아직 너무 어리기는 하지만, 어리니만큼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겠지.]아니, 잠깐만.
[앞으로 한 10년간 제대로 수련하면 가주직에 오르기 위한 기본적인 검술 실력 정도는 갖출 수 있을 테고. 그 전에 일단 키부터 좀 커야겠지만.]……아냐! 이게 아니에요!
나는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를 빙 둘러싼 영령들께서 제각기 한마디씩 얹고 계셨다.
[일단 입적부터 바로 하라고 해.]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블라스코의 피가 섞이지 않았으면 이런 특이 체질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저 아이 부모에 관해서도 다시 조사하도록 하고.]“저, 그게, 저어…….”
[저런 애는 지금까지 437년 간 한 명도 없었어. 어쩌면 저 아이가 이 사명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일지도 몰라.] [그래, 귀어스트와 영혼 깊숙이 공명할 수만 있다면, 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저기, 저기요오. 똑똑…….”
나는 안타깝게 영령들 주위를 빙빙 돌았다.
저는 이런 의도가 아니었단 말이에요, 어르신들. 이렇게 물렁물렁한 분들이 아니셨잖아!
내가 안절부절못하거나 말거나, 영령들께서는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기 바쁘셨다.
[라몬께서 남기셨다는 유언은 오로지 귀어스트만이 들었다고 하지 않았소, 가이우스? 우리는 전부 실패했지. 어쩌면 저 애가 마귀를 영원히 잠재우는 법을 알아낼지도 몰라.] [말이 사명이지. 이건 후대들에게 사기 치는 격이야. 아무도 영령의 사명이 이런 극악한 무료함을 끝없이 견뎌야 하는 거라곤 말해 주지 않았잖나.] [이 끔찍한 고리를 쟤가 끊어 줄 수 있을지도 몰라…….]“할아버지, 저게 무슨 말이에요?”
보고만 계시지 말고 좀 말려 봐! 내가 무슨 가주야?
헤르젠 할아버지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할아버지는 그저 껄껄 웃기만 하셨다.
[영령들께서 네가 마음에 드셨나 보다, 카티. 사랑받겠어.]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배신감에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다. 이 입, 입이 방정이야……!
[그래도 그렇지, 블라스코의 가주는 당대 최고의 강자여야만 해. 베르너와 아르닌 남매가 있는데, 그 애들은 아예 제쳐 두자고?] [그럼 일단은 가주 후계자에 앉혀 봐. 그리고 나중에 베르너와 아르닌과 가주 결정전을 치르면 가려지겠지.] [그래그래. 일단은 입양부터 하고, 루테더러 잘 키우라고 해.] [밥부터 양껏 먹이라고 전하고. 저렇게 짜리몽땅해서 되겠어?]결국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영령들의 합의가 이뤄졌다. 가이우스 님 주위에 바글바글 몰려들었던 영령들이 흩어지고, 다시 나타난 가이우스 님께서 나를 내려다보셨다.
[좋아. 우리는 너를 받아들이겠다, 카티샤.]“그으……게…….”
[왜, 싫으냐?]“아, 아니요.”
싫다고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했다. 일단 입양은 되어야 하니까.
가이우스 님께서 손바닥만 하던 형체를 커다랗게 키웠다. 늠름하고 위풍당당한 검사가 묵직한 존재감으로 내 앞에 발을 디뎠다.
[무력 외에도 가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여러 가지가 있지.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의 합치. 뭇사람을 아우르고 품어 안는 그릇.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세심하게 살피는 눈. 제 사람을 지키는 희생정신.]영령의 말씀이 귀가 아니라 뇌로 곧바로 흘러드는 듯했다.
나는 홀린 듯이 가이우스 님을 올려다보았다.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나를 향한 그분의 눈빛에 온정이 배어 있었다.
[어쩌면 네게서도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때로는 다정한 마음이 검보다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지. 네가 가져온 것들, 꽤나 재미있었다, 아가.]영령께서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촉감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나 눈빛과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다정함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살아 있는 것 같았지. 그러니 앞으로도 종종 이곳에 들러, 네가 보는 세상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렴. 우리가 더는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네!”
[귀어스트에게도 종종 말을 걸어 주고. 어쩌면 네가 우리의 오랜 숙원을 풀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사실 그 희망을 준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우리에게 기꺼운 존재란다.]코끝이 찡했다.
나는 손등으로 코 밑을 마구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도움이 된다면야.’
어차피 후계자는 베르너인데, 갑자기 공작님이 나를 후계로 지목하실 리도 없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이우스 님께서 손바람을 불어 일으켰다. 푸른 빛무리가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자, 가져가거라. 영령의 탑을 지키는 32인의 숨결을 담은 증표다.]허공에서 블라스코의 상징 중 하나인 푸른 나비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검자루에 매다는 술 장식이었다.
나는 이것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해 냈다. 마검 귀어스트의 그림에서 보았다. 검자루에 매여 있던 것이다.
영령들의 숨결이 담긴 나비가 작게 날갯짓하는 듯했다. 나는 그것을 소중히 내 앞주머니에 넣었다.
‘통과……!’
이렇게 세 번째 시험까지 무사히 끝났다.
너무 좋아서 찔끔찔끔 눈물이 다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주책맞게 히끅거리고 있으면 나약한 애라고 이거 도로 뺏어 가실지도 몰라.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영령들이 하나둘씩 날아와 내 머리며 어깨를 톡톡 쓰다듬고 가셨다.
눈물 콧물을 참느라 새빨개진 내게, 마지막으로 헤르젠 할아버지가 포르르 날아왔다.
[축하한다, 아가. 이제 시험이 몇 개 남았다고?]“이제 하나 남았어요.”
마지막 시험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공작님이 며칠 전 간단히 언질을 주신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험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마음이 벌써부터 풍선처럼 크게 부풀었다.
‘고지가 이제 정말 눈앞이야.’
얼른 이 증표를 공작님께 보여 드리고 싶었다.
서둘러 빈 가방을 챙기는 나를 영령들께서 배웅했다.
[탑에 자주 놀러 오렴, 아가야. 우리 그렇게 나쁜 영혼들 아니란다.] [다음 화도 꼭 들고 오고!]“네! 업데이트해서 다시 올게요.”
못내 아쉬우신지, 영령들은 탑 아래의 계단까지 나를 따라오셨다.
나는 그들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경쾌한 걸음으로 탑을 내려왔다. 영령의 탑에 들어온 지 정확히 엿새 만이었다.
* * *
세월의 정원에 발을 들이는 것은 몇 년 만이었다. 공작은 생경한 기분으로 역대 가주들의 동상이 세워진 널따란 정원을 둘러보았다.
가주의 외면 속에서도 정원과 탑은 훌륭한 조경을 자랑했다. 블라스코에서 가장 상징성 있는 곳이니만큼, 정원사가 이곳을 가꾸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늘 신경을 쓴 덕이다.
오늘은 카티샤가 영령의 탑으로 들어간 지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하도 그를 재촉하는 바람에 결국 정원까지 왔다.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요?”
“가주님들 모두 제 부름에 응답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평소 같으면 제가 세월의 정원에 발을 딛자마자 와글와글 입을 여셨을 분들께서요.”
“귀어스트한테 잡아먹힌 거 아니에요, 카티?”
공작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아버지가 꼬마의 목숨이 위험할 만한 일을 꾸미지는 않았으리라는 믿음 때문이고, 또 아이가 가진 특수한 파장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카티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라면 저 신수가 저리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다.
공작은 정원의 끄트머리에서 배를 깔고 웅크린 자그마한 새끼 눈표범의 등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꼬마.”
눈표범은 그가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카티샤가 영령의 탑으로 들어간 날부터 지금까지 엿새간, 눈표범은 저곳에 자리를 잡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인간들에게 가리지 않고 발톱을 세워 대는 바람에 결국 모두가 포기한 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