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9)
9화
“그러니 너 하기 달렸단 소리다. 이해했나?”
“네!”
“빠릿빠릿해서 좋군.”
입을 꽉 앙다물어 튀어나온 뺨을 공작이 검지로 건드렸다.
말랑말랑한 뺨을 포옥 찌르는 느낌에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아버지가 습관처럼 내게 하시던 애정 표현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공작 역시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확히는 본인이 찔러 놓고 외려 더 놀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왜, 왜 저러시지?’
내가 당황해 눈만 굴리는 사이, 재차 다가온 엄지와 검지가 내 뺨을 잡아 늘렸다. 양 볼이 찹쌀떡처럼 주욱 늘어났다.
“어에……?”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공작이 몹시 심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왜 주워다 키우셨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
“못생겼어.”
“…….”
어느새 당혹감을 지운 공작은 찰흙 덩어리라도 가지고 노는 듯 내 뺨을 마구 괴롭혔다. 그것도 사악하게 피실피실 웃으면서. 그러곤 한참 만에 놓아주었다.
나는 양 뺨이 퉁퉁 불어난 와중에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못생겼다니. 저 못된 대사까지 할아버지랑 정말 똑같아!
“아르닌은 괜찮을 법도 한데……. 베르너가 난관이겠군.”
공작이 뜻 모를 혼잣말을 하곤 몸을 일으켰다.
“그럼 밥 남기지 말고 먹어라, 꼬맹이.”
“어, 네!”
얼른 따라 일어나려는 나를 건성으로 제지한 그가 조찬실을 나서려다 말고 멈칫했다.
“아, 그리고 참.”
“네?”
“베르너와 아르닌이 곧 돌아온다.”
“아아, 네…… 네?”
나는 씩씩하게 웃는 얼굴 그대로 굳었다.
“베르너는 아카데미에서, 아르닌은 남부에서 출발하니 대충 사흘 뒤에 엇비슷하게 도착하겠군”
그렇게 빨리 돌아온다고?
공작이 얼어붙은 나를 동정하기라도 하듯 한쪽 입꼬리를 슥 올렸다.
“그 애들은 나처럼 온건하지 않을 테니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아, 온건…….
나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공작은 온건하다의 뜻을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까 나랑 나눈 이야기. 선대께서 해 주셨다는 말씀들. 나 이외에 다른 이들 앞에서는 입도 뻥끗 말아라. 알겠나?”
“걱정 마세요! 입 꾹.”
어차피 남의 가정사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공작은 내게 묘한 눈빛을 보내곤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 * *
‘생각보다 씩씩한데.’
루티어드는 서재로 올라가며 조금 전까지 저를 똑바로 쳐다보던 작은 아이를 떠올렸다.
골치 아픈 상속인이 생기는 바람에 이를 갈며 기다렸더니, 어딜 봐도 열 살처럼은 안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 덜렁 도착했다.
그것만으로도 기가 막힌데, 저 작달막한 아이는 정말로 겁이 없었다.
오죽하면 어제 서재로 쳐들어온 아이를 목격한 사용인들이며 기사들이 촉각을 다 곤두세웠을까. 그가 까딱 오러로 어린애를 질식시키기라도 할까 봐.
그러나 루티어드는 아이를 상대로 살기를 뿜지 않았고, 아이는 그런 그와 스스럼없이 말을 나눴다.
“저 잘할게요! 저 청소도 잘하고, 약초도 잘 찧고, 사과도 백조 모양으로 깎을 수 있고, 거스름돈 계산도 잘하고, 또……. 잔디도 깎을 줄 알고, 책도 많이 읽었고요. 할아버지랑 체력 훈련도 했고, 그리고, 그리고…….”
하필 그런 말을 들어선. 루티어드는 혀를 차며 책상 앞에 앉았다.
좁쌀만 한 아이가 어떻게든 제 장점을 늘어놓으며 매달리는 게 퍽 안쓰럽다가도, 또 다른 한편으론 흥미가 이는 것이다.
‘꼬맹이가 청소도 하고, 약초도 다루고 과일도 깎아?’
그것도 백조 모양으로?
굉장하지 않은가?
심지어 잔디도 깎을 줄 안다니. 정원 가위가 제 몸집만 할 것 같은데.
게다가 카티샤는 연녹색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기는 했지만 끝까지 울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살짝만 건드리면 꽈당 넘어져 울음바다를 만들 것처럼 생겼는데. 톡 치면 발랑 넘어져 뒤구르기로 짠 하고 일어날 것 같은 애라니.
거참 신기하기도 하지.
꽤 똘똘해 보이는 걸 보니, 역시 아버지가 보는 눈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계획하셨겠지만.
‘성인이기만 했어도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을 텐데.’
카티샤가 아직 한참 어린 아이라는 걸 알고 난 뒤로, 루티어드는 가문 회의에서 상속 시험을 제안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아무리 방계의 세가 강한 집안이라고는 하나 가주는 가주.
공작의 권한으로 상속 시험을 선언하면 반대할 이는 없을 터다.
그러니 굳이 카티샤에게 시험을 치를 기회를 따내 보라고 한 건 순전히 호기심 탓이다. 그 아이가 자신의 두 아들딸에게는 어떤 식으로 다가갈지 궁금해서.
‘여전히 사이가 안 좋지, 그 애들은.’
베르너와 아르닌은 늘 루티어드의 아픈 손가락들이었다. 그러나 아끼는 것과는 별개로, 남매간의 깊은 골은 아무리 그라도 섣불리 건드리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루티어드는 살가운 아버지 역할에 능숙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애들을 다룰 수 있는 가정 교사는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성질들이, 같은 블라스코로서 봐도, 참…….
‘괜히 애들의 호감을 사라는 말을 했나?’
문득 이는 걱정에, 루티어드는 직속 호위 기사인 키스를 불러다 명령해 두었다.
“키스, 베르너와 아르닌이 돌아오면, 카티샤에게 혹시라도 위해를 가하는 일이 없도록 잘 감시해라. 마가렛 윈스티드에게도 똑같이 전하고.”
“예, 각하. 철저히 살피겠습니다. 아기씨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요!”
“…….”
“철통 보호, 명심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집 자식들은 베르너와 아르닌 남매인데. 취급이 참…….
루티어드는 조금 전 시험을 보게 해 달라며 당당하게 주장하던 꼬마 카티샤를 다시 떠올렸다.
자세가 바르고 눈빛이 흔들리지 않으며, 무엇보다 비굴함이 없다.
자신만큼 유하지 않은 블라스코 남매 앞에서도 그렇게 당차고 사랑스럽게 굴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를 닮았다면 불가능한 건 아닐 텐데.’
형제와 다투고 나면 늘 엄격하지만 다정하게 중재하곤 하셨으니.
루티어드는 유년의 추억으로만 남은 헤르젠의 얼굴을 가만히 그려 보았다가, 실소와 함께 이만 생각을 접었다.
다 너무 오래전에 지나간 일이었다.
* * *
공작이 조찬실을 나간 뒤, 나는 테이블에 혼자 남아 골똘히 생각했다.
‘공자와 공녀가 내 상속 시험에 동의하면, 내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지?’
사흘 후라.
[지.우.마>에서 그 둘의 등장 신이 중반부에 몰려 있었기에, 이렇게 일찍 마주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제 몫을 가로채 간 정체불명의 상속인을 족치기 위해 달려오는 게 틀림없었다.설렜던 게 무색하게도 오한이 일었다. 어제 소설을 정독하며 공자와 공녀에 대해서도 기억을 복기한 차였다.
‘그냥, 한마디로 성격 파탄자들.’
원작에서 묘사된 그 둘의 악행들 역시 공작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특히 공녀는 허구한 날 니엘라를 검술 대련 상대로 지목해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곤 했다. ‘나만 보면 눈치나 살피며 벌벌 떠는 게 블라스코답지 않아 짜증이 난다’라는 단순하고 어이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기어이 니엘라의 다리를 부러뜨렸지. 무서운 사람 같으니.’
보통은 공녀가 그렇게 먼저 시비를 거는 편이었고, 공자는 무심한 방관자로 동조하는 쪽이다.
공통점은 무능력한 자들을 혐오한다는 것.
‘일단 그 둘 앞에서는 겁먹은 티를 절대 내면 안 되겠다.’
센 척, 무조건 센 척 해야 돼! 기선제압!
나는 그날 온종일 내가 가진 능력 중 남매에게 먹힐 만한 것이 뭐가 있을지 궁리하며 보냈다.
그러나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다.
사흘 뒤에 돌아온다던 공작의 언질이 무색하게도, 바로 다음 날 블라스코 남매가 저택의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 * *
베르너 블라스코, 그리고 아르닌 블라스코. 성에서 짐작 가능하다시피, 그 둘은 이 공작가의 공자와 공녀다.
첫째 아들, 베르너 블라스코. 나이 17세.
현재 황립 비에스토 아카데미 검술부에 재학 중으로, 입학 이래 단 한 번도 학과 수석을 놓치지 않은 수재이며 제국에 딱 일곱 명밖에 없다는 오러 유저 중 한 명이다.
심지어 바로 작년, 전 대륙적인 규모로 개최되는 국제 검술제에서 16세의 나이로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연히 다음 대 블라스코 공작으로 유력하게 손꼽히는 후보다.
둘째 딸, 아르닌 블라스코. 나이는 15세.
공녀 역시 어릴 적부터 걸출한 실력을 뽐내던 인재였으나, 일찍이 검으로는 오빠인 베르너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진로를 틀었다.
그녀의 선택은 연금술과 제련이었다.
수년 동안 철광 채굴과 가공, 제련에 매진한 결과 그녀는 아스트로카 제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장인의 칭호를 획득했다. 그녀가 제작한 무기들은 경매장에서 나날이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었다.
남매는 둘 모두 성인도 되지 않은 나이에 각 분야의 경지에 이른 무서운 천재들이었다. 최강 명문가의 직계라는 고귀한 혈통에, 타고난 능력치에, 심지어는 알아주는 악바리들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노력하는 천재들.
‘그런데 이제 그 반대급부로 인성은 말아먹은…….’
콰앙. 저택의 중앙 현관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그 기세가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열린 문 너머로부터 부연 먼지구름이 이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양쪽으로 활짝 열린 문 너머로부터 검기와 마력이 뒤섞인 폭풍이 휘몰아쳤다.
부연 먼지가 가라앉자 저택으로 들어서는 두 인영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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