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Heiress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96)
96화
“뭐…… 뭐가 해금된다고?”
사라진 세계가 뭐야? 171 화부터는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나?
나는 큰 고민 없이 [예]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나타난 것은 빈 페이지였다.
새하얀 백지 위에 커서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야? 시스템 오류인가?’
무심코 그렇게 생각한 것과 거의 동시에, 타자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나는 멍청하게 귀신 들린 타자기를 바라보다,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들었다. 비어 있던 페이지에 방금 전까지는 없던 활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안녕?> [마침내 너와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유일한 독자님.>“…….”
나는 멍한 기분으로 새로운 페이지를 바라보다, 허억 숨을 집어삼켰다. 비명은 한 박자 늦게 터졌다.
“으아아악!”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너를 해칠 생각이 없거든. 그럴 힘도 없고.>“누구세요죄송해요잘못했어요제가이창고를잠시좀빌렸어요잘못했어요!”
[모처럼의 기회인데, 그렇게 소리만 지르다 날려 버릴 거야?>새롭게 나타난 글자들을 읽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벌렁거리는 왼쪽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호, 혹시……?”
나를 분명히 독자님이라고 불렀어. 그러면 설마?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설마? 나는 더듬더듬 말문을 열었다.
“혹시…… [지금 우리, 마법처럼> 작가님이세요?”
차원 너머의 작가님. 내가 이 세계에서 환생하는 동안 연재를 재개하신 작가님 말이다. [지.우.마>의 창조주.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괴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닿기는 할까? 생각하기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타자기가 눌리기 시작했다. 무서워!
[뭐, 작가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모든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일 테니, 본질적인 의미는 비슷할 거야.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나는 작가보다는 이야기 그 자체라고 보는 편이 좋겠다.>
“이야기 그 자체……?”
[그래. 그럼 정식으로 소개할까? 나는 ‘사라진 세계’야.>사라진 세계.
나는 간신히 두려움을 누르고 그 의미심장한 자기소개를 곱씹었다.
“사라진 세계라는 건…… [지금 우리, 마법처럼>의 세계를 뜻하는 건가요?”
[그렇지. 나는 네가 등장함으로써 멸망해 버린 세계야. 본래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했어야 하지만, 운명의 안배로 이렇게 활자로나마 존재하고 있지. 물론 하나의 세계로서의 권능은 전부 잃었지만.>“어…….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사과의 말이 튀어 나갔다. 결국 내가 [지.우.마> 속에서 환생하며 원작을 다 어그러뜨려 놓았다는 말이잖아.
그 때문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소멸 위기에 처한 세계라니. 조금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살아나시면 안 돼요……. 이왕이면 그냥 이야기로만 남고 내 현실에는 나타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사기꾼 니엘라랑 마주치기 싫어!’
내 속마음이 ‘사라진 세계’에게는 다 전해진 모양이었다. 스크린에 같은 글자들이 조로록 찍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웃는 걸까?
대답이라도 하듯, 타자기가 타닥타닥 움직였다.
[맹랑하기도 하지. 이런 즐거움을 맛보라고 그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남겨 둔 걸까? 걱정할 것 없어. 난 애초부터 어긋나 있었으니까.네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도 난 소멸했을 거야. 그리고 그건,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어지는 세계’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소멸했을 거라니?
‘결국 [지.우.마>는 절벽 엔딩이라는 뜻?’
세계 멸망 엔딩이라니, 수습이 불가능해서 그냥 다 뒤엎어 버렸나 봐. 어쩐지 너무 막장 전개로 가더라.
‘아니, 그런데. 지금 내 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불길한 예감에 얼굴에 핏기가 사악 가셨다.
“저기, 그러면 지금 제 세계도 까딱하면 멸망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렇지. 바뀌지 않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거든.>“무슨 짓을 해도 세계 멸망 엔딩이라고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그래, 네게 익숙한 예로 빗대어 설명하자면, 변하지 않는 ‘설정’과 ‘스토리’가 있는 거야. 그게 바로 전능한 운명이지.>
“그렇다면 바뀌는 건 뭔데요?”
[거대한 ‘스토리’를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플롯’들이겠지.하나의 플롯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지 않겠어?
그렇게 개연성이 어긋난 채로 이어진 이야기는 아무도 읽지 않고, 인정하지 않겠지. 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가 이야기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닐걸.
세계도 마찬가지야. 세계의 구성원들이 정면으로 부정하는 세계들은 언젠가는 사멸하고 말아. 나는 그렇게 죽어 버린 수많은 세계 중 하나야.>
“……그럼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뭐예요?”
[지.우.마>가 이미 멸망한 세계라며? 그럼 여긴 [지.우.마> 속 세계가 아닌 거야?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활자들이 나타났다.
[네가 사는 그곳은 ‘새롭게 이어진 세계’지. 사실, 사멸한 세계가 이렇게 ‘새롭게 이어지는’ 일은 잘 없어.>나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했다. [지.우.마>는 이미 망해버렸는데, 모종의 이유로 세계가 사멸하지 않고 리셋되어, 결과적으로 지금은 [지.우.마>가 본격적으로 망테크를 타기 전 세상이라는 뜻일까?
아직 ‘어긋난’ 것들이 없어서?
“그러면 결론적으로 이 세계가 [지.우.마>처럼 사멸하지 않으려면, [지.우.마>에서 어긋나 버렸던 것들을 다시 맞추면 된다는 말인가요?”
[역시 똑똑하구나. 그래, 맞아. ‘어긋난 것’을 하나씩 짜 맞추면, 나의 최후에도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지.‘사라진 세계’와 ‘이어지는 세계’는 개별적인 이야기가 아니야.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다른 플롯의 이야기들일 뿐.
그러니 네가 ‘어긋난 것들’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 갈수록, 나와 ‘이어지는 세계’의 이야기들이 완성될 거다.
나의 다음 이야기들이 풀리면, 내가 어떻게 사멸했는지 알 수 있겠지. 넌 그 이야기를 보고 너의 ‘이어지는 세계’에 써먹을 수 있을 테고.
그게 바로 내가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는 이유야.>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대강 종합하면, 결국 ‘어긋난 것’을 찾아 되돌릴수록 [지.우.마>의 아직 풀리지 않은 다음 회차들이 풀린다는 뜻이렷다. 나아가서는 이 세계의 사멸도 막을 수 있고.
“그럼 그 ‘어긋난 것’들이라는 게 뭔데요?”
[⎕⎕⎕과 ⎕⎕⎕이 ⎕⎕⎕ ⎕⎕⎕⎕⎕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또한 ⎕⎕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 ⎕⎕⎕.
하지만 일리는 있었어. ⎕⎕⎕⎕, 그리고 ⎕⎕⎕⎕ 역시도 ⎕⎕⎕ ⎕⎕ ⎕⎕⎕⎕⎕……. 흐음, 이건 안 되나?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모르겠네.>
수많은 단어가 빈 네모 칸 처리되어 입력되었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사라진 세계’도 그것을 인식했는지, 스크린에 여러 문장이 써졌다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어긋난 것’들이란, ⎕⎕ ⎕ ⎕⎕⎕⎕⎕ ⎕ 것들을 ⎕⎕⎕…….음, 이것도 안 되고. 아직 해금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를 막고 있네. 하긴, ⎕⎕⎕에게 스포를 주는 건 개연성에 어긋나지.
네가 지금까지 지난 회차들을 해금한 규칙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거야. 아니,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타자기가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뒤쫓기기라도 하듯, 군데군데 오타가 났다.
[이런, 제한 시간이 다해 가네. 나는 이제 슬슬 가 봐야겠ㅆ어.>아니, 이렇게 빨리?
나는 급히 그 미지의 존재를 붙잡았다.
“이렇게 가시는 거예요? 다시는 안 돌아오세요?”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말을 증명하듯, 엄청나게 많은 활자가 스크린에 우수수 쏟아졌다.
[이곳에 버젓이 나의 이야기가 기록된 [지금 우리, 마법처럼>이 남아 있는데 내가 어디를 가겠어? 단지 너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다했을 뿐이야.원래는 아무리 사멸한 세계라 할지라도 본 세계의 구성원에게 이렇게 직접 의사를 표현할 수 없지. ⎕⎕⎕과 ⎕⎕⎕이 이런 방식을 택한 건 아주 똘똘한 일이었어.
아, 이제 정말 가야겠다. 너무 많이 떠들었군. 부디 이 시간이 네게 도움이 되었기를. 그리고 ‘새롭게 이어진 세계’의 네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를.>
[그럼 안ㄴ녕, 나의 하나뿐인 독자님.>그게 마지막이었다.
스크린에 깜빡거리던 커서가 빠른 속도로 뒤로 이동하며 활자를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
타자기의 백스페이스는 ‘사라진 세계’와 내가 나눈 대화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꾸욱 눌려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빈 페이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긋난 것.’
[지.우.마>의 니엘라는 사기꾼이다.내가 니엘라가 어그러뜨려 놓은 것들을 하나씩 대신 가져올 때마다 [지.우.마>의 새로운 회 차가 열렸다.
그럼 결국 니엘라가 ‘스토리’이자 ‘운명’을 흐트려 놓은 장본인이라는 거네?
‘여주인공이 사실 세계 멸망의 주범이었다는 반전 소설은 처음 봐.’
그렇다면 일단 니엘라부터 만나야 하는 걸까?
나는 스크린을 뒤로 넘겨 다시 170 화를 펼쳤다.
“니엘라가 블라스코에 본격적으로 잠입하는 건 열일곱 살. 앞으로 4년 정도 남았나.”
아직 시간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전에라도 그녀를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찾아서 일찍 갱생시키면 안 될까?’
그렇게 몇 분이나 오도카니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나는 퍼뜩 이곳에 빨려 들어오기 직전의 상황을 상기했다.
맞다, 공작님! 같이 있던 중이었는데!
아이칼도 내가 아공간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걸 아는데, 공작님이 느끼지 못하실 것 같지가 않다.
게다가 ‘사라진 세계’도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지고 갔다.
‘이어지는 세계의 내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를, 이라니. 꼭 그쪽 세계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을 거란 말이잖아.’
나는 황급히 궤짝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어, 그런데 뭔가, 좀…….’
궤짝에 몸을 뉘자마자, 전신이 눅진하게 무거워졌다. 몸이 심해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어, 이게 왜 이러지……?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눈이 깜빡깜빡 감겼다. 거인 두 명이 눈꺼풀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눈이 무거워지나 싶더니, 누군가 의식을 가위로 석둑 자른 듯 세상이 암경에 묻혔다.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땐,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