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15
제1015화 광릉궁 제1 궁녀 능자약
위전은 4품 신급인지라 팔이 부러진 것쯤 금방 이어 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잡힌 순간,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위전은 상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반대쪽 손에 전력을 실어 권법을 펼쳤다.
그러나 남괴는 그런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주먹이 채 닿기도 전에 위전의 아랫배를 힘껏 걷어차자 상대는 등을 한껏 굽힌 채 데굴데굴 굴렀다.
남괴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색 빛을 그리며 쏜살같이 쫓아가서는 위전의 몸에 올라타 얼굴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퍽-! 퍽-!
위전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았다.
여천간이 달려가 구하려 하자, 이번에는 홍괴와 녹괴가 동시에 여천간을 공격했다. 둘이 일제히 힘을 가하니, 옴짝달싹 못 했다.
홍괴와 녹괴는 여천간을 제압하고선 일방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명색이 5품 소생 경지인 여천간은 둘의 마구잡이식 공격에 반격조차 불가능했다.
“당장 가서 두천왕인지 뭔 천왕인지 데려와라. 괜히 늑장 부리다 나중에 우리 소주께서 출관하시고 나면 그땐 그놈도 똑같은 꼴 날 줄 알아라!”
홍괴가 여천간의 엉덩이를 호되게 걷어차며 소리쳤다.
여천간은 너무 창피해서 얼굴도 들 수 없었다. 신급 경지에 오른 후로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에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멀지 않은 여러 처소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기, 기다려라. 두천왕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거다!”
여천간은 벌게진 얼굴로 위전을 데리고 황급히 도망쳤다.
“그래, 어서 가서 두천왕더러 우리 소주께 복종하라고 전해라. 아니면 우리가 쳐들어갈 테다!”
녹괴가 뒤에 대고 소리쳤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생각이 없다니까. 감히 소주님더러 누구 밑으로 들어가란 거야? 한심한 놈들.”
남괴가 혀를 끌끌 찼다.
“됐어, 이쯤하고 다시 잘 지키자고. 다른 자들이 소주님을 방해 못 하게 해야지.”
홍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필요 없어. 이제 좀 나가서 걷자.”
대문 앞에 누군가 홀연히 나타났다.
줄곧 폐관 중이던 항소운이었다.
그는 금실이 수놓아진 자줏빛 옷을 입고 있었다.
평소의 수수한 옷차림과 달라서일까. 오늘은 귀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한결 품위가 있었다.
“소주님, 출관하셨군요.”
삼괴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2, 3개월 만에 두 품급을 뛰어넘어 지금은 5품 소생 경지였다. 무공은 높아졌지만 항소운을 향한 충성심은 변함없었다.
“보면 모르겠나?”
항소운이 당연하단 투로 되물었다.
“아니요. 혹시 저희가 방해를 했나 해서요.”
홍괴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이게 다 그놈들 때문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잡아둘 걸 그랬습니다.”
녹괴가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면 당장 가서 두 놈을 잡아 올까요? 아예 두천왕인가 뭔가 하는 녀석도 함께 붙잡아서 소주님 앞에 무릎 꿇리겠습니다.”
남괴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삼괴는 당장이라도 여천간과 위전을 쫓아갈 기세였다.
“됐어. 실은 이틀 전쯤 출관해서 나오지 않았던 것뿐이야.”
항소운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이제 이웃들에게 인사나 하러 가자. 다들 안면이라도 터 두면 서로 편하겠지.”
홍괴가 즉시 말을 받았다.
“좋지요. 사람들더러 소주님을 따르라고 하겠습니다.”
녹괴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역시 소주님은 배포가 크십니다. 어떻게 친히 방문할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저들도 소주님의 넓은 도량에 탄복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남괴가 마무리를 지었다.
“맞습니다. 다들 소주님을 소회장으로 인정할 겁니다.”
우둔해 보여도 셋이 합을 맞출 때면 기가 막혔다. 상대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다.
항소운도 삼괴의 성격에 차츰 적응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네 사람은 근처에 있는 80호원으로 걸어갔다.
이젠 처소마다 사람이 살고 있어서 80호 원에도 누군가 묵고 있었다.
대문 앞을 두 사람이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었다.
항소운 일행이 다가가자, 그들이 경고하듯 눈을 부릅떴다.
삼괴가 말을 하려 하자, 항소운이 가만히 있으란 뜻으로 손을 저었다.
그는 두 문지기에게 정중히 말을 건넸다.
“전 항소운이란 사람입니다. 귀댁의 주인을 뵙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항소운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각 처소를 돌며 방문 의사를 밝혔지만, 매번 문전박대를 당했다. 사람들은 그 뒷모습을 보며 자기들끼리 비웃었다.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집집을 돌며 왜 사서 고생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삼괴는 그가 몹시 안쓰러웠다. 귀하신 분이 어찌 웃음거리를 자처한단 말인가.
그들은 소주께서 일일이 찾아갈 필요 없이 당연히 저들이 소주를 찾아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작 항소운은 빙긋이 웃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가 이러는 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 맞는 친구를 몇 명 사귀고 싶어서였다.
훗날 함께 힘을 모아 영역 밖 생령에 맞서 싸울 생각도 했으나, 다들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포기하고 처소로 돌아가려 할 때쯤, 8호원의 광릉궁 능자약이 만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삼괴도 따라가고 싶었으나, 문지기가 저지했다. 힘을 써서라도 들어가려 하자, 항소운이 그냥 있으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는 수 없이 삼괴는 밖에서 기다리고, 항소운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8호원은 모든 면에서 그가 사는 처소보다 훌륭했다.
땅도 널찍하고, 성진의 힘도 한층 짙었으며 환경이야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다.
잠시 후 정원에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아홉 명의 여인이 보였다.
꾀꼬리가 지저귀듯 맑은 웃음소리와 꽃처럼 어여쁜 얼굴. 그녀들은 광릉궁의 궁녀였다.
그녀들은 무공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자색은 더욱 빼어났기에 어떤 남자라도 홀딱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의지가 대단한 항소운도 처음 본 순간 마음을 뺏길 뻔했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제야 그를 발견한 듯 그녀들이 사뿐히 걸어왔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매력적인 눈웃음에 또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어머, 정말 잘생긴 남자네. 나 가슴이 떨려.”
자주색 옷을 입은 여인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연분홍빛 옷의 여인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맞장구를 쳤다.
“나도 이런 남자가 좋더라. 여기 온 남자들은 재능은 뛰어나지만, 이 사람처럼 완벽하게 생긴 남자는 드물지.”
“그러다 겁먹고 가면 어떡해. 신녀께서 뵙고자 하는 분인데, 그만 보내드리자.”
푸른 옷의 여인이 말했다.
이때 무리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와 항소운에게 인사를 했다.
“항 공자, 오랜만이에요.”
누군가 했더니 상고 공간에서 만난 적이 있던 월희였다.
그녀의 미모는 한층 물이 올라 절세미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함께 있는 몇몇 여인 역시 그녀에게 견줄 정도니, 광릉궁 궁녀들의 미색은 천하제일이라 할 만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항소운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실례랄 게 있나요. 능 사저의 손님인데, 사매 된 도리로 당연히 나와봐야죠.”
그때만 해도 반신이었는데, 지금 그녀는 1품 신급 경지였다.
“이제 보니 월 사매의 친구였구나. 그것도 모르고 우리가 짓궂게 굴었네.”
한 여인이 놀리듯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안면이 있는 정도에요.”
월희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상고 공간에서 항소운이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연모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는 여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잠시 후, 항소운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실내로 들어서니 수수한 차림의 여인이 작은 탁자 앞에 앉아 찻물을 끓이고 있었다.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보는 것만으로도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게다가 그녀는 이 공간과 완벽한 합일을 이루어 어떤 기운도 발산하지 않았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경지와 품격, 모든 면에서 낯선 경험이었다.
여인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하지만 두 번째 봤을 때는 어딘가 모르게 특별했고, 세 번째 봤을 때는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마치 온갖 화려한 꽃에 가려져 있는 연꽃 같다고나 할까. 시간이 흐를수록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매력이 느껴졌다.
어느새 항소운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동안 미인이라면 숱하게 보아온 그였다. 우채접이나 야조모, 마희는 경국지색이란 말이 떠오를 만큼 완벽한 미색이지만, 눈앞의 여인에 비하면 무언가 부족했다.
여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저절로 평온하고 차분해졌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볼 뿐,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고귀함이 있었다.
그녀는 광릉궁의 제1 궁녀 능자약이었다.
후보는 대부분 남자로, 여자는 극히 적었다. 더군다나 소회장으로 뽑힐 확률은 아주 낮았다. 오직 능자약만이 최종 5인에 들 가장 유력한 여인이었다. 무공이 출중할뿐더러 3대 세력인 광릉궁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어서다.
차를 우려내고 나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항 공자, 드시지요.”
그제야 정신이 든 그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조심스레 찻잔을 들어 먼저 향을 감상했다.
“만년 청천(淸泉)에 만년 찻잎. 거기에 능숙한 솜씨가 더해지니 신차수(神茶水)라 할 만하군요.”
그러고는 차를 천천히 음미했다.
찻물이 목을 적시며 넘어가자 펄펄 끓는 뜨거운 힘이 목구멍을 자극했다. 마치 아주 오래 끓인 물을 목구멍에 들이부은 것 같아 뜨겁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찻물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증기처럼 뜨거운 힘이 몸 밖으로 방출되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는 가만히 눈을 감고 황결을 운행했다.
찻물의 힘을 성해건곤으로 조금씩 흘려보내자 곧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마치 연화기지에서 겪었던 신비로운 경험처럼 시야와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눈을 떴다.
“혹시 전설로 내려오는 염신차(焰神茶) 입니까?”
“다도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한 잔 더 드시지요.”
능자약은 차분히 찻잔을 건넸다.
항소운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찻잔을 깨끗이 비웠다.
이번에는 목 넘김이 아까와 완전히 달랐다. 온천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는 느낌이랄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무언의 깨달음까지 얻었다.
영혼이 한없이 맑아지면서 영혼의 힘도 뚜렷하게 상승했다.
“이건 청혼신차(淸魂神茶)네요?”
항소운이 확신에 차 물었다.
“맞아요. 세 번째 잔도 드실 자격이 있네요.”
그녀는 언뜻 즐거운 표정을 내비쳤다.
그렇게 또 한 잔을 마시고 나자, 더는 기운을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신력이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이건 전의신차(戰意神茶)군요!”
전의는 하늘 높이 치솟아 8호원의 신급 진을 뚫더니 공간 밖으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