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30
제1030화 혼돈신련
서른세 번째 혼돈장벽 너머는 고풍스러운 기운과 생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세계였다.
산과 나무, 짐승이 있어 살아있는 성진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아주 오래돼 보였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낡은 돌과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나무 그리고 거대한 몸집의 짐승들은 혼돈세계와 다른 곳을 구분 지었다.
항소운은 십 년 만에 서른세 개의 벽을 통과해 이곳에 도착했다.
기뻐할 새도 없이 그는 깜짝 놀랐다.
난생처음 보는 흉측한 생물이 그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뾰족한 부리와 무정한 두 눈은 그를 한 마리 벌레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는 저 새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순순히 잡아먹힐 수는 없었다.
새가 앞까지 다가오자 그는 재빨리 손을 뻗어 뾰족한 부리를 덥석 움켜쥐고는 녀석을 힘껏 내동댕이쳤다.
쿵-!
거대한 몸이 땅에 부딪히자, 먼지가 뿌옇게 일면서 바닥이 갈라졌다.
그는 손바닥 위로 화염을 불러내 새를 단숨에 구워버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기 고기 맛은 어떤가 볼까.”
그 자리에 풀썩 앉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조용히 맛을 음미하던 그는 곧 게눈감추듯 먹어 치웠다.
아무래도 아주 맛있는 모양이었다.
배불리 먹고서 고개를 드니 언제 왔는지 아주 작은 생령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녀석들의 간절한 눈은 남은 고기를 향했다.
“이리 와서 먹어.”
그는 빙긋 웃으며 생령들에게 손짓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이곳에는 약초가 상당히 많았다.
대부분은 성급 약초로, 신급 약초도 더러 있었다.
이 정도면 거대한 약초밭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그는 이곳저곳을 거닐며 다양한 생물과 마주쳤다.
신급 생물도 적지 않았다.
녀석들의 지능은 요수 정도로 높아서 몇 차례나 속임수에 넘어갈 뻔했다.
절대적인 실력에서 앞서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작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수확은 꽤 짭짤했다.
어딜 가도 약초 천지라서 이젠 약초를 봐도 처음과 같은 흥분은 없었다.
얼마 후, 그는 신급 광맥이 흐르는 땅을 발견했다.
맑고 깨끗한 신급 수정의 기운이 백여 개의 산을 감싸고 있었다.
다만 강한 생령들이 살고 있어서 가져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네!’
이곳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물은 혼돈세계에서 맨 처음 태어난 생령이었다.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이들은 한창 다양한 문명을 부흥시키고 있었다.
이곳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세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작은 신급 광맥이 흐르는 땅을 발견했다.
본래 십여 마리 신급 생령이 지키던 곳이나, 그는 힘으로 전부 쫓아버리고 이곳을 차지했다.
광맥을 캐려던 그는 우연히 바위에서 사람이 남긴 글자를 발견했다.
‘진군(眞君), 이곳에 다녀가다.’
‘원시, 우연히 들렸다가 진군께서 남긴 흔적을 발견하다.’
‘백리웅사(百里雄獅), 이곳을 지나가다.’
항소운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미 혼돈세계에 다녀간 사람이 있다니.
게다가 한 명이 아니라 세 사람이나 되었다.
‘진군?!’
항소운은 제 눈을 의심했다.
그는 다름 아닌 인간족 무학 시조 중 한 사람이었다.
원시신존보다도 한참 항렬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는 먼 옛날 중원에서 종적을 감춰 아무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중원이 아닌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계실 거라고 믿었다.
다음으로 원시신존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적 인물이다.
수호 공회를 설립하고 영역 밖 생령을 막았으며, 마족을 진압했다.
지금도 그는 중원에서 가장 위대한 수호신으로 손꼽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백리웅사.
그는 역사적 기록이 전혀 없어서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시조급 인물도 다녀가신 걸 보면, 혼돈세계는 정말 오래됐나 보군. 어쩐지 괴물 같은 생령이 너무 많다 했어.’
세 분 밑에 자신의 이름도 남기려는데, 갑자기 뒤편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한 사람이 독특한 보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 외에 혼돈세계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고독구패밖에 없었다.
고독구패는 평범한 무사복을 입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은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항소운을 보고도 전혀 놀라는 얼굴이 아니었다.
“역시 너도 들어왔군.”
고독구패가 태연히 말했다.
“들어온 지 좀 됐어. 넌 나보다 먼저 들어온 것 같다?”
“그래, 혼돈장벽이 생기고 가장 먼저 들어왔지.”
고독구패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항소운은 사뭇 놀랐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럼 꽤 많은 걸 얻었겠네?”
과연 고독구패의 실력은 이미 9품 소생 경지였다.
그의 능력이면 구전 경지 밑으로는 누구든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항소운은 내심 탄복했다.
역시 많은 수확을 얻긴 했으나, 그래봤자 아직 7품 소생 경지였다.
경지에선 상대와 두 품급이나 차이가 났다.
그렇지만 막상 겨룬다면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손에 넣고 싶은 게 있는데, 네가 도와줬으면 해서.”
고독구패가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대체 뭐길래 너 혼자 힘으로 안 되는 거야?”
항소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혼돈신련(混沌神蓮).”
고독구패의 대답은 간단했다.
항소운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혼돈신련.
그것은 혼돈이 맨 처음 만들어낸 신물이었다.
최초이면서 가장 신비로운 꽃이다.
그 꽃을 차지하는 자는 구전 경지를 통과할 수 있으며, 심지어 윤회 경지도 가능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혼돈신련이 자라는 곳에는 몹시 귀하다고 알려진 혼돈신천이 흘렀다.
오직 그런 신급 샘물만이 혼돈신련과 같은 귀한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아울러 그 주변에는 수정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 함께 있었다.
항소운은 고독구패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고독구패를 따라 혼돈세계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깊이 들어갈수록 혼돈의 기운은 더욱 짙어졌으며, 심지어 혼돈천룡까지 나타났다.
두 사람은 용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혼돈천룡이야말로 혼돈세계의 진정한 지배자였다.
실력은 무려 구전 경지다.
이외에도 다양한 혼돈 생령이 존재했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강했는데, 서로 물리적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상당히 치열해서 곳곳이 파괴되었으나, 무형의 힘에 또 저절로 복구되었다.
그것은 거대한 순환의 과정이었다.
항소운은 걸음을 옮기며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관찰했다.
어느덧 혼돈세계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어졌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언젠가 자신도 혼돈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성해건곤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매 순간 많은 것을 경험하고 깨우쳤다.
고독구패는 항소운처럼 몸속에 독자적인 건곤은 없었다.
타고난 자질이 다르기에 두 사람의 길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혼돈전체로서 지극히 순수한 혼돈의 길을 가게 될 터이니, 장차 크게 대성할 것은 분명했다.
잠복해서 이동한 끝에 마침내 혼돈의 힘이 가장 짙은 곳에 도착했다.
항소운은 무언가에 홀리듯 이곳의 힘을 정신없이 흡수했다.
혼돈의 힘은 눈부시게 맑은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오색 영롱한 혼돈신천이었다.
신급 강자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것이었다.
호수 중앙에는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 혼돈신련이 피어 있었다.
단 한 송이뿐이지만 흔들림 없이 꼿꼿했다.
다섯 장의 꽃잎은 각기 다른 색채를 발하며 순수한 힘을 내뿜었다.
오색 빛깔은 서로 교차하며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연화단(蓮花壇)이 들어 있었다.
그 주위로 혼돈의 기운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저것이 바로 가장 중심이 되는 혼돈 본연의 힘인 모양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게 혼돈신련이구나!”
항소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 우리가 힘을 합해 공략해야 할 대상이지. 혼돈신련은 네게 줄게. 난 연화단이면 돼.”
고독구패는 비로소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분명히 했다.
혼돈신련은 꽃잎을 비롯한 모든 부분이 다 귀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은 연화단이었다.
연화단에 앉아 수련하면 수련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질뿐더러 혼돈의 마지막 진의를 최단 시간에 깨우칠 수 있다.
고독구패의 목표는 간결하고 명확했다.
그는 가장 좋은 것을 원하고 있었다.
항소운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고독 형은 안목이 뛰어나다니까. 근데 나도 저 연화단이 탐나는데 어쩌지?”
저것만 있으면 장차 구전 경지는 물론이고 윤회 경지도 가능했다.
그걸 알기에 자연스레 갖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네가 여기 머물 생각이라면 연화단은 네게 주마.”
고독구패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무슨 뜻이지?”
항소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윤회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머물며 혼돈세계의 힘을 흡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해. 혼돈세계의 힘과 완벽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거지. 그렇지 않고선 윤회는 꿈같은 얘기야.
난 윤회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 작정이야. 백 년, 천 년,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 모르지.”
“여기 남겠다고?”
항소운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내 목표는 무학의 정상에 오르는 거야. 이곳은 또 태생적으로 나와 잘 맞기도 하고. 어쩌면 이곳의 주인이 되는 게 내 숙명이 아닐까 한다.”
말을 마친 고독구패는 담담히 웃었다.
항소운은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저 태연한 얼굴에서 다른 감정이라도 찾고 싶었다.
홀로 이곳에서 살아가겠다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 녀석은 세속의 욕망에 관심도 없단 말인가?
이런 속마음을 고독구패가 안다면 기가 차서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것이다.
항소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알았어, 연화단은 네게 줄게. 대신 저 꽃은 내 거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주변에 위험한 건 없어 보이는데? 난 왜 부른 거야?”
“저 혼돈신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녀석이지. 잘 봐.”
고독구패는 혼돈신련을 향해 손바닥을 쭉 뻗었다.
손바닥이 거의 닿으려는 순간, 갑자기 혼돈의 힘이 상공으로 솟구치더니 고독구패의 힘을 깨뜨렸다.
그제야 항소운은 상대의 말뜻이 이해되었다.
“설마 구전 경지 정도는 아니겠지?”
항소운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9품 신급 경지면서 혼돈전체인 고독구패가 굴복시키지 못하다니.
대체 저 꽃은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네 말대로 구전 경지쯤 될 거야. 난 녀석을 맡을 테니, 넌 때맞춰 움직이면 돼.
줄기를 자르면 신력은 바로 약해질 거야. 그럼 상황 종료지.”
말을 마친 고독구패는 곧장 혼돈신련으로 돌진했다.
그 순간 혼돈신련 위로 사람의 형체가 떠올랐다. 순수한 오색 빛이 일렁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뜻밖에도 그자는 고독구패와 꼭 닮아 있었다.
그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포기를 못 했나 보군.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나?”
“날 따른다면 다신 여기에 오지 않으마.”
고독구패가 차분히 대꾸했다.
“그렇게 지고도 계속 주둥이를 나불대는군. 정 그렇다면 네 소원대로 죽여주마. 네 육신과 내 의지를 결합하면 이곳의 주인이 될 수 있겠지.”
혼돈신련은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