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33
제1033화 중원을 부탁한다!
혼돈세계를 떠날 때가 오자, 갑자기 항소운이 질문을 던졌다.
“고독 형, 혼돈장벽을 보니까 무슨 생각이 들어?”
고독구패가 잠자코 장벽을 보다가 대답했다.
“이건 혼돈 진의로 만든 천연 장벽이야. 최고의 방어라 할 수 있지.”
“맞아. 근데 우리도 이만한 방어 기술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항소운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고독구패도 재밌다는 듯 씩 웃었다.
“하여튼 비상한 녀석이라니까. 이걸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하하, 너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 아냐.”
“내게는 이미 혼돈천종(混沌天鍾)이 있지.”
고독구패가 의연하게 말했다.
혼돈천종이란 그가 직접 창안한 방어 기술로, 혼돈 진의를 응집시켜 방어력이 굉장했다.
항소운이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럼 네 방어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생령들한테 보여주러 가볼까?”
* * *
끝을 알 수 없는 영역 밖 전장.
미지의 세계는 두려움을 주었으나, 신급 무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전투 무대였다.
3년 전.
인간족 최강자들과 영역 밖 생령 간에 한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결과는 무승부.
이 일로 인간족의 기세는 크게 진작되었다.
하지만 그 후 상황이 급변했다.
생령 쪽 원군이 모두 모이면서 규모가 300만에 이른 것이다.
더군다나 후발대의 병력은 선발대보다 월등히 강했다.
이제 생령 대군 중 구전 경지는 여덟 마리로 늘었다.
중원을 휩쓸 준비는 끝마친 듯 보였다.
양측은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구전 경지끼리 실력을 겨뤄 최종 승부를 결정짓기로 했다.
인간족에서는 구전 경지가 개일 한 사람뿐이었다.
그 혼자서 구전 경지 여덟 마리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인간족에는 구전 경지의 거물이 아홉 명이나 되었다.
수호 공회의 개일, 진홍연, 공손영웅. 그리고 거대 세력의 대표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개일을 도우러 온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원 요청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마족 때문에 대혼란이 벌어져서 진홍연과 공손영웅은 마족을 막으러 갔고, 황천은 시신주의 분신과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만 다른 거물급 인사들은 상황만 주시할 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사는 없어 보였다.
영역 밖 전장은 제 소관이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개일은 홀로 허공에 서 있었다.
공허한 눈빛에선 전에 없이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맞은편에는 구전 경지 생령 여덟 마리가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혼낙천과 환천도 그들 사이에 있었다. 그들은 300만 대군을 이끄는 최고 지휘자였다.
그중 은색 뿔이 달린 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구전 경지 중에서도 가장 강한 존재로, 천각사족이다.
그는 현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옷과 허리띠, 장화, 심지어 손에 쥔 철퇴까지 모두 은은한 은빛을 띠었다.
오만한 눈빛이 개일을 조용히 응시했다.
이름은 은각신왕(銀角神王). 칠전(七轉) 경지로, 구전 경지를 완성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 옆으로 일전(一轉)에서 오전(五轉)에 속한 절세 강자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의 기운은 오롯이 개일 한 사람만을 주목했다.
은각신왕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인간족, 네 무공은 훌륭하다만 혼자라면 패할 수밖에 없지.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수하로 받아주마.”
개일은 아무 말 없이 일보를 디디며 동시에 주먹을 내뻗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신 대답한 것이다.
권법에는 가공할 만한 힘이 실려 있었다.
“어리석은 놈.”
은각신왕은 손바닥을 뻗어 권법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런데 권법을 받아내자마자, 개일이 다시 주먹을 99차례 휘둘렀다.
이번에는 은각신왕뿐 아니라 나머지 일곱 마리까지 한꺼번에 공격했다.
이곳은 순식간에 개일의 독무대로 바뀌었다. 혼자서 여덟 마리를 상대하는 데도 전혀 밀림이 없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1대 8로 싸우시겠단 건가?”
“개일 대인이 어떤 분인데 당연히 가능하겠지. 대인마저 패한다면 중원은 진짜 끝이야.”
“근데 다른 수호신은 왜 안 오시지? 젠장, 다들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나도 구전 경지면 함께 싸울 텐데.”
사람들은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의미 없는 말을 떠들어댔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가담하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안 됐다.
그동안 인간족은 적잖은 지원군을 보냈지만, 구전 경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감히 네가 먼저 공격을 해? 죽고 싶어 발광하는군.”
은각신왕은 벌컥 화를 내더니 다른 생령들에게 소리쳤다.
“놈을 붙잡아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라.”
그는 전신에서 은빛 번개를 발산했다.
곧 거대한 천둥 바다가 형성되면서 뱀들이 머리를 추켜올리며 쏜살같이 달려갔다.
개일은 번개를 가볍게 무시한 채 중원의 형상을 떠올리며 잇달아 권법을 펼쳤다.
번개가 순식간에 파훼 되더니 날카로운 권의가 허공을 가르며 돌진했다.
권법은 지극히 단순한 동작으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은각신왕도 예사 실력은 아니었다.
가장 강한 우두머리이니만큼 무서운 위력을 펼쳤다.
수많은 번개가 거대한 천둥 바다가 되어 사납게 휘몰아쳤다.
우르르-! 콰쾅-!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고막이 떨어져 나갈 듯 굉음이 울렸다.
결국 권법은 천둥 바다를 뚫고 적의 가슴에 꽂혔다. 검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런데 개일이 미처 거리를 벌릴 새도 없이 은색 뿔에서 갑자기 빛이 뿜어져 나와 개일을 공격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파괴할 천둥의 빛이었다. 극에 달한 파괴력은 구전 정점이라도 받아내기 어려웠다.
개일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맞고 말았다.
어깨를 시작으로 몸의 반쪽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참혹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무서우리만치 침착했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자 두 눈에서 뿜어져 나간 빛이 적의 몸을 관통했다.
이렇게 되자 은각신왕도 더는 외뿔의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개일이나 은각신왕이나 부상 정도가 심각했으나, 이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히 몸을 회복했다.
이쯤 되자 다른 구전 경지 생령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혼낙천의 영혼 공격을 시작으로 다른 생령까지 가담해 시뻘건 불을 토해냈다.
나머지도 온갖 무기를 꺼내 절초를 펼쳤다.
개일을 향해 끝을 알 수 없는 공격이 쏟아지고 있을 무렵, 항소운과 고독구패가 전장 밖에 나타났다.
항소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스승님!”
항소운과 고독구패는 혼돈세계에서 나온 후, 곧 사람의 기운을 느꼈다.
개일과 은각신왕의 전투는 워낙 치열해서 그냥 지나칠래야 지나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전속력을 다해 도착했을 때, 개일은 구전 경지 생령 여덟 마리와 한창 싸우고 있었다.
개일은 적들에 둘러싸여 몹시 위험한 상황이었다.
항소운은 격분했다.
비록 스승과 함께 보낸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것들을 가르쳐주었었다.
그는 스승 개일을 부모와 같이 섬기고 존경했으며, 언젠가는 자신도 개일처럼 인간족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스승이자 인생의 이정표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개일이 지금 적들에 둘러싸여 공격당하고 계셨다. 게다가 부상도 심각해 보였다.
항소운은 앞뒤 가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스승님을 돌아가시게 놔둘 수는 없다.’
그런데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공간이 급격히 뒤틀리더니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소용돌이는 구전 경지의 모든 강자와 그들의 힘을 남김없이 휩쓸어갔다.
이 소용돌이를 일으킨 장본인은 뜻밖에도 개일이었다.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개일이 적들을 모두 물리쳤구나 싶어 안도하던 찰나, 갑자기 개일의 전음이 들렸다.
“중원을 부탁한다!”
유언과도 같은 말이 사람들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항소운은 큰 충격을 받아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개일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소용돌이로 뛰어들었다.
온몸으로 소용돌이의 출구를 막아선 그는 잠시 후 소용돌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이 찰나에 벌어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대인들이 전부 사라졌잖아!”
“그 인간 놈이 술수를 부린 거야. 설마 대인들을 전부 죽인 걸까?”
“그건 불가능해. 쉽게 돌아가실 분들이 아냐. 아마도 놈이 술법을 부려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킨 게 분명해.”
“빌어먹을 놈들.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생령 대군은 크게 분노했다.
인간족 한 놈 때문에 우두머리들이 모조리 사라지다니. 남은 놈들이라도 죽여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한편, 인간족은 부담이 한결 줄었으나 전반적인 실력에선 여전히 적에 밀렸다.
만일 이 상태에서 맞붙는다면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놈들. 너희는 무사할 줄 알았더냐? 모두 스승님을 위한 제물로 바쳐주마!”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구전 경지라 해도 믿을 만큼 압도적인 기세였다.
소리 나는 쪽을 보니 아주 잘생긴 청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볼품없이 생긴 젊은이가 뒤따라왔는데, 그는 뜻밖에도 혼돈천룡을 타고 있었다.
항소운과 고독구패였다.
“패왕이다! 패왕이 돌아왔어요!”
마희가 놀라 소리쳤다.
반가운 마음에 마중을 가려니, 항양전이 말렸다.
“지금은 가지 말거라. 지금 운이는 단단히 화가 난 상태야.”
“저러다 위험해질까 봐 그러죠.”
“위험한 건 오히려 적들입니다.”
옆에서 자전신후가 조용히 대꾸했다.
그의 직감에 따르면 이미 패왕의 실력은 자신을 넘어섰다.
신급 경지에선 가히 최고라 할 만했다.
이때, 진무 학당 쪽 사람들이 고독구패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고독구패가 혼돈세계의 최대 수혜자라고 생각했다.
위풍당당한 천룡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까 그놈의 제자로군. 놈의 목을 베어 올 테니 그 후에 다 같이 진격한다!”
8품 신급 생령이 괴성을 지르며 항소운에게 돌진했다.
상대는 날개가 여덟 개 달린 늑대였다.
꽤 영향력 있는 황족으로, 실제 전투력은 9품에 육박했다.
늑대는 힘차게 발을 굴러 순식간에 앞까지 들이닥쳤다.
날카로운 앞발이 바로 심장을 노렸다.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 기억 속 항소운은 십여 년 전 불과 4품 경지였다.
아무리 혼돈세계에서 성장했다 한들 눈앞의 8품 늑대는 당해내지 못할 듯싶었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사람들 틈에서 두천왕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제자 하나 잘못 들였다가 개일 부회장의 명성만 실추되겠어.”
옆에서 제림이 거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는 눈치였다.
개일이 어렵사리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놨는데, 항소운이 경솔하게 모든 걸 망치는구나 싶었다.
바로 그때 눈앞에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