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41
제1041화 흥, 큰소리는
“이럴 수가!”
“쯧쯧, 환술의 ‘환’자도 모르는 놈이 큰 소리는.”
환요헌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돌아볼 새도 없이 손날이 목을 베면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분시술(分尸術)!
계비선에게 그랬던 것처럼 환요헌은 다시 분시술을 사용해 묵도를 사정없이 토막 냈다.
처참히 망가진 육신은 다시 회생할 기회도 상실한 채 영혼까지 붙들리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묵도의 영혼도 옥병에 가둬졌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묵 공자까지 당하다니. 이제 어쩌지?”
“끝장난 거야. 우리 중에 환족을 이길 사람이 어딨어. 이대로 가다가는 전부 죽고 말 거야.”
“어서 도망치자. 가서 수호신께 도움을 청해야지. 이러다가 중원까지 쳐들어오겠어.”
“다들 진정해. 아직 포기하긴 일러.”
그 후로도 환요헌은 계속 방향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영혼을 손에 넣었다.
젊은 신급 무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서둘러 진영으로 후퇴했다.
“하나같이 약해빠졌군.”
정신없이 달아나는 사람들을 보며 환요헌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마라!”
진구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제법 강해 보이는군. 그래, 졸개로 삼으면 되겠어.”
환요헌이 눈동자를 굴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진구는 무턱대고 접근하지 않았다.
‘무(無)’의 상태로 접어든 그는 상대의 환술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지자, 머리 아홉 달린 이무기가 되어 돌진했다.
환요헌의 표정이 굳어졌다. 환술이 실패하다니, 이건 타격이 컸다.
용사기의(龍蛇起義)!
진구는 시원스럽게 쭉 뻗어나가며 막강한 공격을 펼쳤다.
방대한 힘이 차곡차곡 쌓이자 소름 끼치도록 황량한 적막감이 주변을 감쌌다.
“설마 ‘적무심경(寂無心經)’을 완성한 건가?!”
공손삼양은 전에 없이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적무심경.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심법으로, 연마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전해진다. 그런 심법을 진구가 벌써 완성했을 줄은 몰랐다.
적무심경이 경지에 이르면 어떠한 잡념이나 방해에도 흔들림 없이 최강의 전투태세에 돌입할 수 있다고 했다.
적무심경의 역사는 아득히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심법을 익힌 자는 부동심을 얻고 적무(寂無)의 상태로 접어든다. 극한의 고통을 경험한 자만이 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육신을 잊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비로소 아무 잡념 없는 상태에 돌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환술이 전혀 통하지 않는지라 환요헌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한데 진구도 이런 상태는 처음이었다. 환요헌이 환술로 아군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것을 보자 극에 달한 분노가 깨달음으로 바뀌어 지금과 같은 상태에 진입한 것이다.
과연 재능이나 이해력 어느 면에 있어서나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온 힘을 폭발시키자 구전 경지에 맞설 만한 힘이 터져 나왔다. 이것으로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한다면 그땐 생령이 강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진구의 대단한 기세 앞에 환요헌도 한층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연거푸 수인을 맺어 결계를 형성하자, 동서남북 사방이 환영 거울로 둘러싸여 무수히 많은 환요헌을 생생해 냈다.
환경만살(幻鏡萬殺)!
환영 거울에서 뛰쳐나온 형체들이 앞다퉈 공격을 퍼부었다.
진신보다 약하다 뿐이지 공격력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진구는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단단하고 두꺼운 힘을 끌어올려 온몸으로 공격을 받아냈다.
그는 그중 한 놈에게 거칠게 달려들었다.
용사탄천(龍蛇呑天)!
머리 아홉 달린 이무기는 공격을 집어삼킨 것도 모자라 그대로 적을 들이받았다.
환요헌은 종이짝처럼 나뒹굴었다.
이 와중에도 환영 거울을 겹겹이 쌓아 진구의 공격을 막아보려 했으나, 그만 쩍 소리가 나며 갈라졌다.
“이리 강할 수가!”
환요헌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진구는 여전히 무표정할 뿐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즉시 손바닥을 뻗어 균열이 일어난 환영 거울에 압박을 가하자 거울층이 깨지면서 상대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진구는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환요헌이 위기에 빠지자, 최강 생령 9인은 안절부절못했다.
“놈한테는 환영 거울이 안 통합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패한다면 도망칠 여력도 없을 테니 그냥 죽게 내버려 둬라.”
어둠의 기운에 휩싸인 생령이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그의 발언은 절대적이어서 아무도 거역하지 못했다.
그사이, 환요헌은 허겁지겁 구전급 갑옷을 걸쳤다. 방어는 물론 공간의 틈새에 숨을 수 있는 옷이었다.
눈앞에서 공격 목표가 사라지자 진구는 잠자코 주변의 움직임을 살피기 시작했다. 감응력이 조금씩 공간 속으로 파고들었다.
환요헌은 숨죽인 채 기습할 기회만 노렸다.
‘망할 놈. 환술을 뚫다니. 조금만 기다려라.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줄 테니.’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인간족, 생령 할 것 없이 이번 승부에 집중했다.
특히 인간족은 진구가 지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만일 진다면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 큰 타격이었다.
과연 구전급 갑옷은 예사롭지 않았다.
기운을 완전히 덮어버리자 적무 상태에 접어든 진구도 상대가 어디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환요헌이 공격을 시작했다.
그가 진구의 머리 위로 다가왔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손에 쥔 두 개의 비수를 사선으로 교차해 몹시도 예리한 허상의 칼날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먹잇감을 노리던 독사처럼 집요하고 무자비했다.
전두파구(剪斗破軀)!
이런 기습이라면 구전 경지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다.
진구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순식간에 한쪽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으나, 이내 팔이 뒤틀리며 축 늘어졌다.
그렇게 진구는 한쪽 팔을 잃었으나, 어째 환요헌은 조금도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허나 이미 진구는 반대편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용사린비(龍蛇鱗臂)!
팔 위로 용 비늘이 겹겹이 솟아나더니 마치 이무기가 거대한 몸통으로 내리찍듯 머리를 힘껏 후려쳤다.
극강의 일격이자 오랜 내공이 쌓인 결정체였다. 환요헌의 머리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진구는 신력으로 팔을 다시 소생시킨 뒤 본격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환요헌은 구전급 갑옷 덕택에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비록 머리는 폭발했지만, 영혼은 아직 무사해서 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다.
환요헌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과감히 후퇴했다.
“전 상대가 안 되니, 형님들이 나서셔야겠습니다!”
환요헌이 전함 쪽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진구는 얼마쯤 쫓아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돌아서서 자신의 진영으로 향했다.
“9공자! 9공자!”
수하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지금껏 환요헌이 얼마나 많은 신급 강자들을 죽였는지 생각해보면, 싸움에서 이긴 것만도 대단한 성과였다.
‘휴, 큰일 날뻔했네. 적무심경 덕분에 살았어.’
진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무심경을 완벽히 깨우치지 못했다면 아마 환술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이번 대결에서 승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는 생령 대군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보니 영역 밖 생령도 별것 아니구나!”
확실히 그는 이런 말 할 자격이 있었다.
“건방진 놈. 반 시진을 줄 테니 제대로 회복하고 이 몸과 싸우자!”
금빛 기운을 번뜩이며 사내가 호통을 질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곱슬머리. 흡사 사자를 연상케 하는 포악한 눈.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금색 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네놈은 내가 상대해주마.”
돌연 공손삼양이 미늘창을 들고 달려 나왔다.
대부분의 신급 무인은 지금 마음이 꺾인 상태였다. 이런 때일수록 제대로 실력 발휘해서 인심을 끌어모아야 한다.
“그럼 죽여주마.”
사내가 차갑게 웃었다.
금신쇄(金臣鎖). 금옥족(金玉族) 황자이자 9품 신급의 실력자다.
공손삼양이 패기 있게 도전장을 내밀자, 사내는 흔쾌히 공격을 펼쳤다.
공손삼양과 진구는 어려서부터 경쟁해온 만큼 실력도 엇비슷했다.
진구가 적무 상태로 환술을 깨뜨렸다면, 그에게는 세 개의 태양이 있었다.
세 태양은 삼각형 모양을 이루며 그를 전방위로 보호했다. 손에 쥔 미늘창을 휘두르자 강렬한 태양의 힘이 터져 나왔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신비롭게도 세 개의 태양이 나타났다 하여 이름을 ‘삼양’이라 지었다.
진구에게 ‘적무심경’이 있다면 그에게는 ‘극양신공(極陽神功)’이 있었다.
전결을 완벽한 수준으로 연마한 그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적과 연신 충돌했다.
일파만균(日破萬鈞)!
황금옥쇄(黃金獄鎖)!
두 강자는 화려한 공격을 펼치며 치열하게 맞붙었다.
진구와 환요헌의 앞선 전투만큼 숨 막히는 싸움이 이어졌다.
구전 경지라도 놀랄 수밖에 없는 대결이었다.
‘인간족 중에 저런 강자가 있었다니!’
구전 경지의 생령은 놀라움을 삼켰다.
‘공손삼양……. 지금껏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진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젠 공손삼양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공손삼양과 금신쇄의 싸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에 절기로 적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했다.
“고작 불이냐? 순진하군. 진짜 태양 불을 가져온다 해도 날 녹이진 못할 거다.”
괴성에 이어 금신쇄의 몸집이 순식간에 커졌다. 덩달아 커진 양손을 한데 모으자 금색 병이 생겨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금병도괘(金甁倒掛)!
병 입구는 곧바로 공손삼양을 향했다. 그 속에서 터져 나온 수많은 금살의 힘은 수천수만 개의 칼날이 되어 공간을 찢고 갈랐다.
공손삼양은 혼돈갑옷을 걸쳐 단단히 방어한 뒤 전력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삼양개태(三陽開泰)!
세 개의 태양이 일제히 무수한 빛을 폭발시켜 금살의 힘과 정면충돌했다.
두 힘이 충돌을 거듭할수록 여파는 점점 커져서 주변의 죽은 성진은 가루가 되어버렸다.
사람이건 생령이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거리를 벌렸다.
“역시 수호 공회가 배출한 후계자는 다르네. 우리 광릉궁은 따라잡지도 못하겠어.”
능자약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난 9품 경지가 되면 저 녀석하고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송천도가 칼을 꽉 움켜쥐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잠시 후 공격이 사라진 자리에는 붉은 피가 흥건했다.
둘 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뒤로 밀려나 있었다.
“망할 갑옷만 아니었으면 죽여버렸을 텐데!”
금신쇄는 무승부로 끝났다는 것에 분통이 터졌다.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던 단단한 육신도 갈라져 버리고 아무리 해도 아물지를 않았다. 태양의 힘은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흥, 큰소리는. 넌 조금만 늦었어도 타 죽었어.”
공손삼양이 콧방귀를 뀌었다.
말은 이래도 그 역시 꼴이 말이 아니었다.
갑옷이 가리지 못한 부분은 갈라지고 찢어져 끔찍했다. 갑옷이 없었으면 정말 위험할 뻔했다.
이렇게 해서 대결은 무승부로 끝났다. 다시 싸운다 해도 결과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