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42
제1042화 음양 생령과 혼돈 전체
“자, 다음은 나다. 누구든 덤벼라. 늙은이라도 상관없다.”
식혼수(食魂獸)가 앞으로 성큼 걸어 나왔다.
식혼수와 천혼족은 오랜 숙적이나 연합군 안에서는 별다른 마찰 없이 협력하고 있었다. 분명 이들을 아우르는 강력한 존재가 있다는 뜻일 터. 어쩌면 구전 경지를 초월했을지도 모른다.
식혼수의 등장에 사람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벌써부터 영혼이 극심한 압박을 느꼈다.
저런 자와 맞붙는다면 영혼이 버텨내질 못해서 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때 구궁 학당의 십궁이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비록 9품 경지는 아니지만, 무기만큼은 구전급이었다.
허나 구전급 병기라면 식혼수에게도 있었다.
녀석은 탄혼로(呑魂爐)라는 화로로 구궁신탑을 꼼짝 못 하게 가두더니 영혼에 압박을 가해 십궁을 너무도 쉽게 물리쳤다.
흠칫 놀란 구궁의 9품 강자가 어떻게든 구해 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결국 십궁의 영혼은 적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감히 우리 학당의 후계자를 죽이다니. 살려두지 않겠다!”
구궁 학당의 태상 장로가 불같이 화를 내며 돌진했다.
경혼후(驚魂吼)!
돌연 식혼수가 태상 장로를 향해 매섭게 포효했다. 포효는 영혼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상대가 혼란에 빠진 사이 식혼수는 잰걸음으로 달려가 태상 장로를 산 채로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구궁 학당은 말을 잃고 침묵에 빠졌다. 허나 아무리 슬퍼하고 노해도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순 없었다.
최상급 생령은 너무도 강해서 겨우 몇 사람만 상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 분에 못 이겨 싸우려 하자, 고독구패가 막아섰다.
“귀한 목숨 낭비하지 마. 놈은 너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저놈은 내가 맡는다.”
이에 깜짝 놀란 진무 학당의 태상 장로가 말리고 나섰다.
“구패야, 섣불리 나서선 안 돼.”
고독구패는 구전 경지에 오를 가장 유력한 인재였다. 그런 자를 헛되이 보낼 순 없다.
“괜찮습니다.”
옆에서 항소운도 만류했다.
“차라리 내가 나갈게. 놈은 영혼을 압박하니 싸우기 힘들 거야.”
고독구패는 씩 웃었다.
“내가 안 되면 그땐 네가 싸워라. 인간족의 희망은 너한테 달려 있으니까.”
고독구패의 말에 진구와 공손삼양의 낯빛이 변했다.
고독구패는 혼돈 전체지만 지금껏 권력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래서 경쟁자로 생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항소운을 이토록 높이 평가하고 있다니.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식혼수는 구궁 학당의 십궁과 태상 장로를 집어삼킨 뒤로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이런 상황에서 고독구패의 출전은 한껏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가 뛰어난 천재란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진구, 공손삼양에도 밀리지 않는다는 게 전반적인 의견이다. 그러다 혼돈세계를 거친 후로는 오히려 두 사람을 앞질렀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다만 과시하는 성격은 아닌지라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덜할 뿐이었다.
지금 그들은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전초전이나 다름없는 싸움에서 절대 질 수는 없다.
“허세 부리기는.”
태연히 걸어 나오는 고독구패를 향해 식혼수가 포효를 내질렀다.
구궁 학당의 태상 장로에게 했던 것보다 몇 배는 강한 음공이었다. 이번에도 단박에 숨통을 끊어놓을 작정이었다.
포효가 울려 퍼진 순간, 돌연 고독구패 위로 오색 종이 떠올라 음파를 막아냈다.
혼돈천종.
고독구패가 직접 창안한 기술로 혼돈장벽과 유사하며 방어력은 가히 최강이었다.
혼돈장벽을 뚫지 못하니 당연히 영혼도 무사했다.
생령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혼돈 전체가 굉장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명불허전이었다.
고독구패는 혼돈천종에 감싸인 채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윽고 그가 한 손을 내뻗었다. 한없이 느린 동작이지만 주변 공간이 급속도로 압박되면서 식혼수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상대도 달리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흥. 공격 하나 받아냈다고 이길 것 같더냐?”
식혼수는 나선의 힘을 일으켜 정면으로 맞서면서 탄혼로를 뱉어내 힘껏 날렸다. 탄혼로는 영혼을 집어삼키는 능력이 있었다.
비록 고독구패가 혼돈천종으로 방어력을 높였다고는 하나 영혼에 가해지는 압박은 피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끔찍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고독구패도 더는 끌려다닐 수 없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었다. 이젠 적극적으로 나설 때였다.
그는 짙은 전의를 번뜩이며 맨손으로 장법을 날렸다.
쿵-!
고독구패는 실로 강력했다.
매 장법에는 혼돈의 진의가 실려 있어 파괴력이 극에 달했다. 이미 구전 경지 초입에 버금갈 만한 실력이었다.
힘이 계속 교차함에 따라 공간이 정신없이 흔들리면서 허공에 틈이 발생했다.
탄혼로는 식혼족을 대표하는 무기였다. 구전 경지라도 막아내려면 진땀을 흘리거늘 고독구패는 그냥 맨손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식혼수가 놀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허나 싸움을 시작한 이상, 물러설 수는 없었다.
식혼수는 강력한 영혼력으로 탄혼로를 통제해 가며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대폭 늘어난 영혼력이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혼돈천종도 어쩔 수 없이 균열이 생겼다.
식혼수가 의기양양해하던 그때, 고독구패가 교묘한 보법으로 적의 시야를 벗어났다. 순간 그의 발밑으로 혼돈신련 한 송이가 피어났다.
꽃잎이 하나, 둘, 셋 마침내 다섯 번째 꽃잎까지 활짝 피어나자 혼돈 진의가 극에 달하면서 식혼수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그러자 탄혼로와의 연결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신련개화(神蓮開化)!
항소운은 고독구패의 초식을 보며 놀랐다.
‘정말 무서울 정도로 똑똑한 녀석이네. 역시 특별한 전체치고 평범한 사람은 없다니까.’
식혼수는 탄혼로를 쓸 수 없게 되자 조바심이 났다. 녀석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몸집을 더욱 키워서 혼돈신련에 맨몸으로 부딪쳤다. 그러나 이런 몸부림도 아무 소용없었다.
얼마 후 혼돈신련이 힘껏 오므리자 그 안에서 피가 툭 터져 나왔다.
생령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구전 경지가 아니고선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잘했다! 역시 최강 혼돈 전체라니까. 이제야 만회했네.”
“고독구패야말로 우리 중 최강이지.”
“저 사람이 소회장이 된다면 나도 적극 지지할래.”
“잠깐 있어 봐. 아무래도 생령 쪽에서 더 강한 놈이 나오려나 봐.”
“정말 말도 안 되게 강한 녀석이군. 완벽한 혼돈 전체에, 전투력은 기상천외할 지경이야. 난 상대가 못 돼.”
최강 생령 10인 가운데 한 생령이 한숨을 푹 쉬었다.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들이지만, 고독구패를 보고 있자니 자괴감이 들었다.
“반드시 괴뢰로 만들어 주마.”
서열 3위의 생령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자는 쌍둥이 생령이었다.
두 개의 몸이 앞뒤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는 남자 얼굴이고 반대편은 여자 얼굴이었다. 흉악한 얼굴이 기이하리만큼 똑 닮은 그들은 음양요체(陰陽妖體)였다.
쌍둥이 생령은 괴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어찌나 빠르던지 잔영이 사라지기도 전에 고독구패 앞에 나타나 기다란 선홍색 혀를 쭉 내밀었다.
왜 혀를 내미는가 싶었는데 글쎄 혀가 무기였다.
여느 검보다 날카로운 기운을 지녔고, 몹시 역겨운 냄새까지 진동했다.
고독구패는 침착하게 손날로 혀를 내리쳤다.
혼돈의 진의를 품고 있어 무엇이든 산산조각 낼 수 있건만 이번에는 마찰로 인한 불꽃만 일 뿐 도저히 자를 수 없었다.
게다가 악취가 혼돈천종으로 스며들더니 급기야 육신을 공격했다.
“독이다!”
고독구패의 눈빛이 움츠러들었다.
그는 재빨리 혼돈천종을 터뜨렸다. 그러자 독기와 혀가 폭발의 여파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른바 ‘천종자폭(天鐘自爆)’이라는 기술이다.
그 폭발력은 9품 신급 무인이 자폭하는 것과도 같아서 구전 경지라도 당해내기 어려웠다.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 한 일부 생령은 고독구패가 죽으려고 자폭한 줄로만 알았다.
허나 음양 생령은 혼돈천종만 폭발했을 뿐, 상대의 본체는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되려 저 폭발 때문에 자신의 혀는 너덜너덜해지고 독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이에 비해 아주 노련한 놈이었다.
뒤이어 고독구패가 음양 생령 머리 위에 나타났다. 거대한 기세가 응집된 일격이 머리로 곧장 떨어졌다.
혼돈의 힘은 워낙 기세가 대단해서 일격이면 숨통을 끊어놓았다.
약점을 포착한 그는 적을 궁지로 몰아붙였다.
그런데 장법이 머리를 내리친 순간, 별안간 머리 위로 알 수 없는 힘이 떠오르더니 음과 양이 둥그런 맷돌이 되어 장력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음양 맷돌은 곧 시커먼 구멍으로 변해 달려들었다.
워낙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고독구패는 미처 피하질 못하고 구멍에 먹히고 말았다.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고독구패가 어떤 인물인데 이리 쉽게 당한단 말인가.
“어리석은 놈. 약점을 찾은 줄 알았지? 이 머리가 비장의 무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남자 얼굴이 껄껄 웃었다.
“혼돈 전체라더니 별거 없네. 음양 구멍에 들어간 이상, 살아나오긴 힘들지.”
반대편의 여자 얼굴도 고소하다는 듯 자지러지게 웃었다.
바로 그때, 혼돈의 진의가 구멍 사이로 솟구치면서 거의 닫히고 있던 음양 구멍을 뚫어버렸다.
음양 생령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사이 밖으로 뛰쳐나온 고독구패는 재빨리 검을 휘둘러 적을 둘로 잘라버렸다.
하지만 음양 생령도 보통은 아니었다. 서로 분리됐지만, 공격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흑과 백의 깃발을 각각 쥐고 바로 덤벼들었다.
과연 음양 생령은 천상 음양 전체였다. 시간의 도는 깨우치지 못했지만, 음양의 도에는 아주 능통했다.
좌우 음양의 협공이 빈틈없이 전개되면서 한쪽은 빛의 힘을, 반대쪽은 어둠의 힘을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거기다 소름 끼치는 소리까지 가세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에 맞선 고독구패는 망설임이라고는 없는 시원스러운 검법으로 적의 공격을 거침없이 파훼했다.
역시 음양 전체는 한 몸일 때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둘로 나뉘자 위력이 전보다 못해서 협공에도 불구하고 고독구패를 제압할 방도가 없었다.
검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다시 한 몸이 되어 본격적으로 음양의 도를 펼쳤다.
음양량반(陰陽兩半)!
결합과 함께 각자 쥐고 있던 깃발이 동시에 잘리면서 갑자기 단층이 나타났다.
반은 빛으로, 반은 어둠으로 변하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고독구패는 착각 때문에 정통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혼돈천종이 터지면서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전투에서 처음 당한 부상이었다.
그나마 방어력이 강해서 이 정도지, 그렇지 않았으면 몸이 두 동강 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