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46
제1046화 잠자코 보고 있어
“마, 말도 안 돼. 명음지문이 이리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명자가 분해서 소리쳤다.
그는 영역 밖 생령 가운데 가장 강한 존재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족을 죽일 수 있다고 자신했건만 지금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다.
이미 항소운이 상서로운 기운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전신에서 발산되던 태초의 힘은 곧 상서로운 기운으로 바뀌었다. 용과 범이 좌우로 나타나 고개를 들이밀자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이때 경지가 갑작스레 상승하기 시작했다. 8품을 넘어 9품에 안착하더니 혈맥과 오장육부를 비롯한 신체가 깨끗이 씻기면서 체질이 몇 단계나 훌쩍 뛰어올랐다. 이로써 완전무결한 육신이 갖춰진 것이다.
성해건곤도 이전보다 얼마나 넓어졌는지 모른다. 그 속의 만물도 질적인 성장을 겪었다. 성급 약초였던 것이 신급으로 높아졌으며, 평범한 영약은 황급이나 제급으로 바뀌었다.
특히 영롱신수의 변화가 놀라웠다.
상공을 향해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는 짙은 기운 사이로 아름드리 꽃을 피워냈다.
일반적으로 이 나무는 5만 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5만 년에 한 번 열매를 맺으며 또 5만 년이 지나야 열매가 완전히 숙성된다. 무려 15만 년을 들여야 영롱신과(玲瓏神果) 한 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상서로운 기운은 성해건곤을 자극해 영롱신수의 성숙을 촉진했으니, 실로 긴 세월을 절약한 셈이다.
그리고 혼돈신련 역시 큰 수혜자였다.
일전에 연화단 하나를 고독구패에게 준 뒤로 힘이 크게 줄어들었는데, 오늘 힘이 대거 회복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항소운 몸에 짝 들러붙어 있던 은자 역시 상상도 못 한 혜택을 얻었다. 경지가 단번에 5품 요신까지 오른 것이다.
지금 천둥의 겁을 넘는다면 6품도 가능할지 모른다. 약간이나마 태초의 기운도 갖고 있으니 최상급 천둥은 문제없었다.
한편, 귀척은 명황족의 영혼력을 대거 흡수한 덕분에 혈맥의 힘이 진화해서 경지가 거침없이 상승했다.
하지만 항소운을 가장 기쁘게 한 일은 따로 있었다.
상서로운 기운 한 가닥을 동재원의 몸속에 넣자 육신의 경지가 신급으로 높아지면서 혼돈신혈이 생겨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쳐 그녀의 영혼은 3품 신급으로 올라섰다. 이 상태면 혼자서도 혼돈신천과 생명신천을 배합해 머리를 만들고 육신을 소생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아무래도 남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그녀가 직접 회복하는 편이 빠르고 수월했다.
끝으로 항소운은 9품 신급 경지가 되었다. 그것도 단박에 후기까지 올라 9품 정점을 목전에 두었다. 상서로운 기운에 내포된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증거다.
달라진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에 없이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아직 거인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자줏빛 기운이 거대한 몸을 휘감고 한층 비범한 분위기를 풍겼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가 창생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골망은 몹시도 불쾌했다.
“명자야, 놈은 내가 처리하마!”
그러고는 낫을 들고 돌진했다.
단단히 벼른 듯 이번에는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뼈를 녹여버리는 화골 능력도 극에 달해있었다.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했다.
“운아, 돌아와라. 나중에 구전 경지가 돼서 싸워도 늦지 않아!”
항양전이 걱정스레 외쳤다.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 지금도 충분히 저 둘을 상대할 수 있으니까요.”
항소운은 침착하게 손을 뻗어 도광을 움켜쥐었다.
손바닥 한가운데 새겨진 태초의 진의가 화골의 진의를 단숨에 없애버렸다. 이렇게 되니 남은 힘도 별다른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
“이럴 수가!!”
골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상대가 맨손으로 잡아낼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굉장하군. 너 정도면 전력을 써도 되겠어. 장로님, 쉬고 계십시오. 놈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명자가 마장을 힘껏 내리쳤다. 위력은 이전보다 몇 배는 강했다.
이것이 바로 젊은 생령 최강자의 진정한 실력이었다.
명자는 모든 생령이 인정하는 최강자였다. 그런 그가 전력을 다하자 바람이 세차게 불며 장력이 하늘을 뒤덮었다.
항소운은 거인의 몸으로 직접 맞섰다. 아주 간단한 권법이지만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쿵-!
권법과 장법이 충돌한 순간, 육중한 폭발음이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공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퉈 무너져 내렸다.
“이게 최선인가? 그렇다면 실망인데.”
항소운은 상대를 한껏 내려다보았다.
“실력 좀 늘었다고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그럼 지금부터 진짜 실력 차이를 보여주지!”
돌연 명자의 미간이 번쩍이더니 마기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최심층의 마도가 사납게 살기를 토해냈다. 마치 수많은 마귀가 동시에 울부짖는 듯했다.
담력이 약한 자는 싸우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쓰러질 판이었다.
허나 항소운은 산전수전을 겪고 죽음의 문턱에서 몇 번이나 살아남은 자였다. 하여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빡이지 않거늘, 어찌 이런 일로 놀라겠는가. 하물며 마도는 그에게 너무도 익숙한 영역이었다.
“마도? 그거라면 나도 할 줄 알지.”
항소운은 씩 웃더니 마주의 힘을 일으켰다. 곧 부정적인 감정이 물밀듯이 일며 양 눈썹 사이로 명황족의 상징인 전문이 떠올랐다.
“마, 말도 안 돼”
명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세상에 말도 안 되는 건 없어.”
항소운은 바로 선제공격을 가했다.
두 눈이 새빨갛게 물들더니 혈기와 마기가 한데 뭉쳐 맹공격을 퍼부었다.
권법이 쉴 틈 없이 뻗어나갔다.
이번에 경지를 돌파하면서 일신의 무공은 무서운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 같은 변화는 비단 경지 때문만이 아니라 상서로운 기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상서로운 기운은 그동안 축적해온 힘의 근간을 더욱 견고히 만들어, 태초 전체에 적합한 힘으로 변화시켰다.
지금은 마주의 힘만을 쓰고 있지만 이미 일전(一轉)에 견줄 만한 실력이었다. 거기다 육신의 폭발적인 힘까지 더하면 이전(二轉) 경지도 충분히 싸워볼 만했다.
어차피 쓰러뜨려야 될 적이니, 명자를 상대로 새 경지의 힘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물론 명자도 넋 놓고 당하지는 않았다. 체급 차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법을 연신 휘둘러 방어에 나섰다.
그런데 고작 한 차례 막았을 뿐인데 반작용으로 그만 튕겨 날아갔다.
단순히 힘만 놓고 봐도 항소운에게 밀리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상대는 일개 개미처럼 사소한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개미가 이 정도까지 강해지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생령들은 말문이 턱 막혔다.
다른 이도 아니고 명자가 힘에서 밀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역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이었군.”
항소운은 한심하단 눈초리로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마도의 힘과 살기가 한데 뒤섞여 압도적인 힘이 각법에 실렸다.
태초의 진의를 깨우친 덕분에 모든 진의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 가지를 터득하니 다른 것들도 자연스레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각법은 구유보와 기본 원리는 비슷하지만, 그 속에 담긴 힘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어떤 힘으로든 자유자재로 바꾸고 운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쯤 되자 명자도 단단히 화가 났다. 노한 얼굴로 양 손바닥을 한데 합치더니 네 손가락을 세워 항소운의 발을 힘껏 찔렀다.
마얼지(魔孼指)!
지광이 만물을 뚫을 기세로 솟구쳤다.
그러나 회심의 일격은 각법에 밟혀 산산조각이 났다. 곧 거대한 발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명자는 황급히 몸을 돌려 아슬아슬하게 각법을 피했다.
하지만 안도할 새도 없이 바로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연이은 각법이 등을 내리찍자 피부가 갈라지면서 피가 마구 솟구쳤다.
항소운은 이때를 틈타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세 번째, 네 번째 각법을 연이어 펼치며 상대를 압박해 들어갔다.
아무리 명자가 빠르다 해도 바람의 성진을 지닌 항소운에 비할 수는 없었다. 다시 등 뒤를 가격하자 이번에는 뚝, 하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모든 사람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생령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까지 등골이 오싹했다. 저 자리에 있었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항소운이 재차 발을 들어 올리자, 분노한 명자가 괴성을 지르며 창을 뽑아 들었다.
무려 구전급 병기였다. 날카로운 창은 곧장 허리를 공격해 들어갔다.
지금 항소운은 거인처럼 몸이 거대해진 상태였다. 절대적인 힘에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몸집이 커진 탓에 피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예리한 창은 정확히 허리를 찔렀다.
거의 무방비 상태였는데도 창에 찔린 부분이 움푹 들어가기만 했을 뿐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
‘상서로운 기운 덕분에 정말 단단해졌구나.’
항소운은 내심 기뻤다.
육신의 강도만 봐도 본래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던 그였다. 그런데다 상서로운 기운의 세례까지 받고 나자 구전급 병기에도 끄떡없는 몸이 되었다.
명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시 창을 휘둘렀다. 그런데 미처 창이 닿기도 전에 거대한 손바닥이 쭉 뻗어져 나와 명자를 힘껏 후려치는 것이었다.
퍽-!
명자는 맥을 못 추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 모습을 본 생령들은 일제히 분노했다. 저런 놈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한편, 이와 상반되게 인간족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뭐야?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나도 똑똑히 봤어. 저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야. 어떻게 일 장에 생령을 날려버리지?”
“아무튼 대단해. 설마 구전 경지를 돌파한 건가?”
“그건 아니야. 아마도 비술로 몸집을 키우면서 힘도 강해졌을 거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반면 생령들은 분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히 명자를 능멸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었다.
골망은 무기를 꽉 움켜쥐었다. 너무 위험한 놈이라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게 뻔했다.
그런데 골망이 미처 나서기도 전에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던 최강 생령 여럿이 일제히 출격했다. 혼자 이길 수 없다면 협공을 해서라도 반드시 죽이고 말리라 다짐했다.
먼저 옥기요가 명옥 공간을 펼치고, 이어서 이족 여왕벌이 독침으로 급소를 노렸다. 맹독을 품은 독침이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이어서 괴상하게 생긴 새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칼날을 연상케 하는 두 날개는 생기를 닥치는 대로 베어버렸다.
최강 생령 5인은 저마다 다른 능력을 펼치며 무서운 기세로 덤볐다. 설령 구전급 강자라 해도 저들과 싸워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판이었다.
“패왕, 저도 돕겠습니다!”
자전신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9품 신급 경지를 돌파한 터라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항소운이 거절했다.
“괜찮아. 잠자코 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