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49
제1049화 명시(冥弑)
허공에 나타난 명음지문이 달려들었다.
명음지문의 위력이야 말해 무엇하랴. 시커먼 문 사이로 명음마가 손을 쭉 뻗어 오견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오견은 이런 상황에도 침착하게 힘을 발산해 명음마의 손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명음지문의 흡입력까지 힘에 막히는 바람에 오견을 집어삼킬 방도가 없었다.
“고작 이 정도에 당할 것 같으냐? 헛수고 그만해라.”
오견은 가소롭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명음지문을 베어버릴 심산으로 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바로 그때 항소운이 있는 힘을 다해 오견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시공장하!
다시 한번 무한한 시공이 펼쳐졌다.
돌연 강력한 힘이 불어닥쳐 오견을 힘껏 밀었다. 등 뒤로는 시커먼 명음지문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견은 깜짝 놀라서 어떻게든 피해 보려 했으나 시간의 기묘한 흐름 탓에 검광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명음지문으로 떨어진 순간, 오견은 황급히 힘을 내보내 항소운을 붙잡았다.
“혼자 죽을 순 없지!”
어찌나 악착같이 붙잡았던지 항소운의 분신도 오견과 함께 명음지문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명음지문은 명음마의 땅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동안 실제 존재하는 곳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는데, 오늘 뜻하지 않게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곳은 명음의 기운이 그득한 곳이었다. 명음마의 삶의 터전이자, 바깥세상에선 볼 수 없는 마물이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항소운은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몸속 깊숙이 전해지는 같은 뿌리의 기운이었다.
미간에 조용히 전문이 떠오르더니 무수한 마기가 흘러 나와 이곳을 뒤덮었다. 어디선가 무수히 많은 명음마가 달려 나와 기쁨에 겨워 소리 지르며 앞다퉈 무릎 꿇었다.
함께 들어온 오견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항소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망할 놈. 비겁하게 명황족 졸개가 사는 곳으로 데려온 거냐?”
오견은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런데 공격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어디선가 마운이 휙 몰려오더니 웬 손이 오견을 후려쳤다.
어찌나 강력하던지 오견은 맥을 못 추고 온몸이 으스러졌다.
오견은 깜짝 놀라서 더는 항소운을 공격할 엄두를 못 내고 황급히 육신을 재조합해 이곳을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그러나 상대는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손바닥을 움츠려 오견을 꽉 움켜쥐었다.
“살려줘!”
오견이 기겁해서 소리쳤다.
적어도 칠전급은 될 직한 힘이었다. 어쩌면 진정한 구전급에 오른 무적의 존재일지 모른다.
그렇게 오견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터져버렸고 영혼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항소운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낯선 이에게선 결코 맞설 수 없는 절대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게 정녕 명음마의 힘이란 말인가.’
만약 명음마가 이 정도로 강하다면 어째서 명황족의 부름에 따르는 것일까.
문득 명황족의 내력이 궁금해졌다.
비록 혈맥의 힘은 각성했지만 다른 명황족과 달리 능력만 각성했을 뿐, 종족의 기억까지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명황족과 명음마가 무슨 사이인지 알 턱이 없었다.
“명자 전하를 뵈옵니다.”
수없이 많은 명음마의 음성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듣기 거북할 정도로 잔뜩 쉰 목소리. 인간의 언어가 아닌 마족의 언어였으나, 항소운은 분명히 알아들었다.
순간 전문 위로 알 수 없는 힘이 일렁였다. 그제야 그는 자신에게 올리는 인사란 걸 깨달았다.
“모두 일어나거라.”
이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자 전하, 이리로 오셔서 이야기나 나누시지요.”
잠시 후 마운이 용솟음치며 다리가 하나 생겨났다. 발아래 생겨난 다리를 따라 끝까지 걸어가니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마산이 보였다. 거대한 송곳니를 위로 박아 놓은 듯한 모습에서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그 산에는 몸집이 아주 크고 험상궂게 생긴 명음마가 서 있었다. 마치 죄인처럼 쇠사슬에 칭칭 감겨있어 한 발자국도 떠날 수 없는 상태였다.
항소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적어도 저 명음마는 구전급의 존재였다. 오견을 죽인 것도 저자가 틀림없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갇혀있는 걸까.
“자네가 부른 건가?”
항소운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드디어 명자 전하께서 오셨군요. 어서 절 여기서 꺼내주십시오.”
명음마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항소운은 더욱 미궁에 빠진 기분이었다.
과연 예상대로 명음마는 명황족과 한 핏줄이 아니라 지배받는 종족 중 하나였다.
아주 먼 옛날, 명음마는 굉장히 강하고 용맹한 종족이었다. 다만 지능이 낮은 것이 유일한 약점으로, 아주 높은 경지에 올라야 요수 정도의 지능을 보유할 수 있다.
비록 지략은 낮지만, 전투력만은 모든 종족을 통틀어 최상위권에 속했다. 특히 구전 경지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때는 명음마도 4대 마족에 들고자 숨 가쁘게 싸우던 시기가 있었다. 천하를 누비며 세력을 확장했으나, 끝내 명황족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결국 윤회 경지의 무적 명황은 이곳을 강제로 진압하고 명음마를 전부 복종시켰다. 게다가 명황족의 혈맥에 명음마의 통제 능력까지 새겨놓았다.
명황족의 순수한 혈맥을 지닌 후대가 능력을 쓰면 이곳이 자동으로 연결되면서 그에 상응하는 전투력을 지닌 명음마가 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오직 윤회 경지의 절대적 존재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저 명음마는 일찍이 무적 명황에게 제압당했던 명음마 족장이다.
과거에는 무력이 구전급에 달해 윤회 경지가 멀지 않았으나, 무적 명황에게 힘을 일부 빼앗기고 오랜 세월 묶여 있다 보니 현재는 팔전(八轉) 경지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최상급 존재임은 분명했다.
항소운은 명황족과 명음마 사이에 이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이곳에 와서 산발적인 기억이 깨어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일이다.
저 명음마가 그를 ‘명자’라 부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과거 무적 명황이 “명황족 명자가 너를 친히 구해줄 것이다.”란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여 ‘명자’란 존재를 기다린 지도 벌써 수만 년이나 되었다.
“내 실력은 자네보다 못한데 어떻게 구해준단 말인가.”
항소운은 솔직히 털어놓았다.
“더군다나 자네도 느꼈겠지만, 지금 난 분신의 형태야.”
“괜찮습니다. 혈맥의 힘을 쇠사슬에 떨어뜨려 주시면 쇠사슬이 저절로 사라질 겁니다.”
명음마가 다급히 말했다.
그의 이름은 명시(冥弑)로, 일찍이 수많은 자를 죽였던 명음마 족장이었다.
“그렇게 간단해?”
항소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명황께서 그리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절 속이실 리 없습니다.”
“한데 진신은 여기 없어서 자넬 구할 수가 없어.”
“제발 안 된다는 말씀은 마십시오. 분신이라도 피와 살로 되어 있는 건 압니다. 구해만 주시면 평생 충직한 하인으로 살겠습니다.”
명시는 간절히 애원했다.
“구해줬다가 오히려 날 죽이려 할 수도 있잖아?”
“전 명황의 저주에 걸렸습니다. 명황족을 공격하면 저도 고통을 받게끔 되어 있어요.”
항소운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알았어. 그럼 한번 해보지.”
잠시 후 미간의 전문이 번쩍하더니 눈부신 빛이 명시를 비추었다. 명시의 말처럼 진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믿었다간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른다.
빛이 명시의 몸을 비추자, 그 주위로 어떤 힘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명황이 명시의 몸 안에 봉인해둔 힘이었다. 오직 명황족의 전문만이 그 힘을 깨울 수 있는데, 일단 작동되면 명시는 죽은 목숨이었다.
“이제 제 말을 믿으시겠죠.”
명시는 혹여 잘못될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
무적 명황은 실로 강력했다. 무력을 일부 없앤 것도 모자라 몸 안에 무시무시한 힘까지 심어두었으니 말이다. 그 힘에서 벗어나고자 수없이 노력했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은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파악한 항소운은 생각에 잠겼다.
‘이 녀석을 수하로 부릴 수 있다면 중원을 구할 방법도 생길 거야. 한데 생령 대군에도 명황족은 있을 텐데 어쩌지? 놈들이 명음마의 비밀을 알아채면 아무 소용 없을 텐데…….
어쨌든 만반의 대책을 세워야겠어.’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 말은 믿네. 허나 풀어줄 수는 없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분명 명황께서는 후대가 살려줄 거라고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명시는 감정이 격앙되어 소리쳤다.
그러자 강력한 기운이 훅 불어닥쳤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압박감에 항소운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자넬 구할 방법이 없는 건 아냐.”
거리를 벌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절세 강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살고자 발버둥 치는 죄수의 모습뿐이었다.
“그럼 혼백의 절반을 내놓게.”
모든 생명체는 혼백을 가지고 있었다.
마족의 혼백은 마핵 안에 있는데, 절반을 내놓으라는 것은 목숨의 반을 항소운이 쥐고 있겠다는 뜻이다. 명령을 거역할 경우 언제든 혼백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거다.
“좋습니다. 어서 가져가십시오.”
명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혼백의 반을 선뜻 내어놓았다.
항소운은 즉시 옥병을 만들어 그 속에 혼백을 가두고 혼돈의 불로 입구를 봉했다.
혼백이 이상한 낌새라도 보이면 혼돈의 불로 바로 죽일 참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마친 후에야 그는 비로소 정혈을 쇠사슬 위에 떨어뜨렸다. 그러고 나서 전문의 힘으로 속박의 힘과 공명을 이루자 쇠사슬의 힘이 차츰 약해지면서 더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제야 명시는 힘으로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구전급에 달하는 쇠사슬을 단순히 힘만으로 끊어버린 것이다.
명시는 거대한 몸을 일으키며 큰소리로 포효했다.
“드디어 벗어났구나! 하하하……!”
명시의 기세는 하늘을 뚫고 올라가 온 하늘을 마기로 물들였다. 수많은 명음마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항소운도 기세에 밀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 숨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다.
“제발 녀석이 말을 들어야 할 텐데.”
속박에서 벗어난 명시를 항소운은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녀석이 이상한 낌새라도 보이면 바로 혼백을 제거할 참이었다.
다행히 명시는 별달리 이상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상공으로 날아가 한참을 포효하더니 항소운 앞으로 내려와 씩 웃었다.
“감사합니다, 명자 전하.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말은 이러해도 크게 고마워하거나 공경하는 기색은 없었다.
되려 대놓고 기세를 방출해 항소운을 압박하는 중이었다.
항소운은 태연히 맞받아쳤다.
“그래, 어떻게 보답할 텐가?”
아무래도 상대는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항소운도 급할 건 없었다. 재촉해봤자 자신에게 불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