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72
제1072화
세월의 무상함
항소운은 외부 평판에 관심이 없었다.
어느덧 그는 수호 공회와 멸인대군의 교전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인간족 강자들이 속속 도착한 덕분에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다.
수호 공회 외에도 선로궐과 광릉궁, 신맹 등에서 대규모 인원이 결집해 멸인대군에 맞서 싸웠다.
지금 같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로 뭉치지 않는다면 살길이 막막했다.
이곳 역시 성급 이하끼리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신급 이상 고수들은 영역 밖에서 치열히 싸웠다.
아마도 최종 승부는 신급 전투에 따라 판가름 날 터.
만일 신급 전투에서 패한다면 인간족은 패망이 거의 확실했다.
한편, 진구는 수호 공회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하루아침에 득세했다.
한 사람이 벼슬을 하면 주변 사람까지 덕을 본다더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덩달아 지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반면 공손영웅을 비롯해 진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최전방으로 보내졌다.
이 때문에 공손영웅파나 중도파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적군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는데 한가하게 편 가르기나 하고 있다니, 수호 공회 사람들은 진구에 대한 실망이 대단했다.
현재 선두에선 공손영웅을 비롯한 여러 명이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었다.
노영웅의 무공은 믿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혼자서 팔전급 생령 셋과 싸우면서도 끈덕지게 버텨냈다.
생령 셋 중 두 마리는 영역 밖에서 왔고, 나머지 한 마리는 사룡족이었다.
하나같이 대단한 무력의 소유자였다.
적들이 사납게 공격을 퍼붓자 주변은 파괴되다 못해 가루로 변해버렸다.
“인간족, 발버둥 쳐봤자 결과는 매한가지다. 이만 순순히 항복해라.”
생령 하나가 입술을 비죽이며 웃었다.
“그래, 어차피 도우러 올 사람도 없잖아. 넌 이제 죽은 목숨이야.”
“뭐 하러 말 붙이고 있어? 그냥 죽여버리면 되잖아.”
사룡이 불만스레 쏘아붙였다.
팔전급 강자 셋이 힘을 합치자 결국 공손영웅도 절초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새빨간 태양과 같은 모습으로 손에는 거대한 빨간 바퀴를 움켜쥐었다.
운명의 무기인 ‘대일홍륜(大日紅輪)’이었다.
태양정석(太陽精石)에다가 혼돈신석을 소량 넣어 만든 구전급 병기였다.
공손영웅이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태양과도 같은 무기가 폭발적인 힘을 터뜨려 공격을 고스란히 막아냈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 감히 중원을 탐내다니, 어림없다!”
공손영웅은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에 집중했다.
그 역시 팔전급이나 실제 힘은 오히려 구전급보다 강했다.
낙일부도(落日浮屠)!
태양 빛이 사방으로 터지더니 극양의 힘이 장애물을 뚫고 셋 중 가장 약한 적을 노렸다.
‘저놈을 죽여야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
갑자기 맹공격을 퍼붓자, 상대는 미처 막아내질 못하고 몸이 폭발했다.
그렇게 한 놈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그 대가는 참혹했다.
다른 생령이 달려들어 삼지창으로 허리를 분질러 놓은 데다 사룡의 사룡주에 걸려드는 바람에 영혼이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상처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중상을 입힌 적에게 끝까지 따라붙어 적을 죽이고 영혼까지 완전히 소멸시켰다.
그 와중에 다른 생령과 사룡에게 하도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영웅이란 이름답게 다친 몸을 이끌고 반격에 나서 생령과 사룡에게 끝내 중상을 입혔다.
이들의 전투는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치열해서 다른 자들은 감히 얼씬도 못 했다.
어느새 공손영웅의 머리는 터져버렸고, 사룡도 대일홍륜에 당해 허리가 잘려 나갔다.
다른 생령은 이때를 틈타 공손영웅의 잘려 나간 몸통을 집어삼키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공손영웅이 무시무시한 태양으로 변해 태우려 하자 상대는 겁을 먹고 연신 뒷걸음질 쳤다.
공손영웅은 자신의 피를 불사르며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오늘 여기서 죽는구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의 얼굴에 쓸쓸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적들과 마주 선 순간, 어디선가 여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럿이서 한 명을 괴롭히는 거냐? 우리가 아주 우습지!!”
항소운은 서둘러 전장에 도착했다.
그가 이곳에 온 건 당연히 동족을 위해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공손영웅이 죽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설령 상대가 원치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생령과 사룡은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아무런 낌새도 못 느꼈는데 인간족이 떡 하고 등장하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공손영웅은 복잡한 눈빛이었다.
그는 갑작스레 등장한 젊은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항소운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도 아닌 손자 공손삼양에게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공손삼양은 어려서부터 자존심이 강해서 또래를 칭찬한 적이 없거늘 영역 밖 전장에서 돌아온 후로는 항소운에 관한 칭찬이 자자했다.
심지어 “저와 진구의 능력을 합쳐도 항소운만 못할걸요.”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공손삼양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오로지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사룡을 여럿 죽였고, 결국 절대 강자급 사룡과 싸우다가 머나먼 영역 밖 공간까지 나가게 되었다.
그 후로 행방이 묘연하여 소문만 무성했는데, 실은 그 사룡을 죽이고 끝없는 공간에서 경지를 돌파할 기회만을 찾고 있었다.
허나 끝내 성공하질 못하고 다시 공회로 돌아갔다.
개인의 명망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적을 죽이기 위한 결단이었다.
수호신이란 신분에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안타깝게 피지 못한 손자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진구의 지시에도 군말 없이 따랐다.
진홍연 등은 지금껏 도우러 오지 않았고, 그런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불씨를 불살라 적군과 함께 죽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때, 생각지도 못하게 ‘마족’이라 불리는 항소운이 나타난 것이다.
“이놈은 또 뭐야?? 제 발로 죽으러 온 건가. 흥, 그렇다면 네놈도 잡아 먹어주마.”
팔전급 생령은 기이한 소리를 내며 팔을 쭉 뻗었다.
팔은 무한대로 늘어나 순식간에 항소운의 앞으로 들이닥쳤다.
공손영웅이 도우려 하자, 사룡이 한발 앞서 앞을 막았다.
“조급해할 거 없어. 저놈이 죽는 걸 천천히 구경이나 하라고.”
사룡이 차갑게 웃었다.
항소운은 제자리에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배짱에 비해 쉬운 상대라 생각하며 생령이 손바닥에 힘을 불어넣었다.
항소운을 압살시켜 그대로 집어삼킬 작정이었다.
바로 그때, 항소운의 동공이 묘하게 확장되더니 돌연 죽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생기를 앗아가기 시작했다.
몸의 변화를 눈치챈 생령은 황급히 손에 힘을 주어 상대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미 항소운은 태초장벽으로 전신을 단단히 방어한 후였다.
생령의 공격은 태초장벽에 부딪친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동시에 항소운은 공격을 시작했다.
항소운은 환영을 일으키며 눈 깜짝할 사이 생령 앞에 나타나 냉소를 지었다.
“여긴 만성 영역이 아니야. 행패를 부리려거든 장소를 봐가면서 하든가.”
그러면서 복부를 가격하자 방어막이 종이짝처럼 훅 찢어졌다.
공손영웅과 사룡은 제 눈을 의심했다.
팔전급의 방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에 놀라움은 더했다.
‘구전급 병기도 뚫기 힘든데 맨손으로 뚫어버리다니. 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공간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몸을 단련하고, 끝없이 쏟아지는 혼돈 천둥 속에 몸을 담궈 육신을 완벽한 상태로 만든 그였다.
그야말로 이제는 신체 각 부위가 무서운 병기였다.
쾅-! 쾅-!
주먹을 내뻗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생령은 이렇다 할 방어도 못 하고 정신없이 얻어맞았다.
그렇다고 쉽사리 죽을 녀석은 아니었다.
그 정도 경지쯤 되면 목숨 지킬 수단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생령은 전력을 다해 공격을 피하고는 다시 반격에 나섰다.
마침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간 녀석은 뜻밖에도 안개 무늬 나비였다.
날갯짓 몇 번에 주변의 암석과 죽은 성진이 가루로 변해버렸다.
“망할 인간 놈. 더는 안 봐준다!”
생령은 고래고래 악을 쓰며 빠르게 날갯짓했다.
자욱한 안개 문양은 이내 특수한 자기장을 형성해 사방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마치 예리한 칼날이라도 달린 듯 안개 문양이 스쳐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가루로 변했다.
항소운도 자기장 안에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면 발버둥 칠수록 고약한 안개 문양에 사정없이 베였다.
태초장벽에도 잇달아 균열이 발생했다.
안개 문양은 파괴력도 무섭지만, 영혼을 홀리는 능력까지 있어 적을 환상 속에 가둬버린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적은 결국 허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그때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다.
어느새 생령은 항소운의 머리 위에 조용히 나타났다.
양 날개는 예리한 힘으로 변해 머리를 힘껏 내리찍었다.
역시 날개는 가장 단단한 부위답게 날카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날개는 거침없이 태초장벽을 뚫고 들어가 이제 목숨을 노렸다.
항소운은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확실히 느꼈으나, 얼굴에는 외려 냉소가 피어났다.
“이래야 재밌지. 이제 제대로 싸울 맛이 나겠어.”
그는 양손을 번쩍 들어 날아오는 날개를 덥석 잡았다.
깡-!
무기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불꽃이 파지직 일었다.
아무래도 손의 강도는 날개보다 약했던 걸까.
날개에 베이는 바람에 피가 나긴 했으나,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
태극음양수!
그는 양 날개를 꽉 움켜쥔 채 빠르게 양손을 돌려 상대의 공격을 와해시키고는 날개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단단하기 그지없던 날개는 순식간에 넝마가 됐다.
허나 생령은 필사적으로 싸웠다.
입에서 노을빛을 뿜어내는가 하면 발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잡아 뜯으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죄다 쓰고 있었다.
이에 맞선 항소운도 만만치 않았다.
태극음양수의 방어력은 무적이라 불릴 정도인데다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
결국 생령은 일방적으로 얻어맞다가 좌우도 구분 못 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공손영웅은 그 광경을 보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팔전급 생령은 항소운의 연이은 공격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공격은 먹히지를 않아서 패배는 불 보듯 뻔했다.
사룡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사룡은 공손영웅과 싸우느라 제 앞가림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목숨이라도 부지하는 수밖에. 생령은 가까스로 공격에서 벗어나 죽어라 달아났다.
영역 밖에선 이들뿐 아니라 훨씬 강한 자들이 싸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후방은 가장 강한 존재가 지키고 있으니, 이번 싸움은 졌어도 충분히 만회할 기회는 있다.
팔전급 생령이 작정하고 달아나자 잡기도 쉽지 않았다.
명시를 불러내면 또 모를까, 혼자 힘으로는 무리였다.
항소운은 과감하게 생령을 포기하고 사룡을 공격했다.
항소운이 다가오자 사룡은 더는 싸울 엄두를 못 내고, 허공을 뚫고 부리나케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