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078
제1078화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창공 위 개일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무사와 항소운을 불렀다.
“난 단시간에 윤회 경지를 돌파하긴 힘들 것 같구나. 더군다나 내가 그 경지에 오르면 생령이 쳐들어올 필요도 없이 중원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무사와 항소운뿐 아니라 백리웅사와 진홍연, 진구, 공손영웅도 근처에 왔다가 개일의 말을 들었다.
백리웅사는 바로 입맛을 다셨다.
“네가 못하겠다면 내가 하마.”
진홍연과 진구도 탐욕스러운 두 눈을 번뜩였다.
대지의 정수 신원을 얻는다는 것은 중원의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중원의 힘을 통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넌 해보지 않았더냐?”
개일이 되묻자, 백리웅사가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그 전에 네가 먼저 차지하지 않았더냐?”
“중원의 인정을 받는 건 아주 간단하다. 중원을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지.”
개일이 담담히 말했다.
즉 중원을 지킬 확고한 결심이 있어야 대지의 정수 신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백리웅사는 개일이 등 뒤에 중원의 지도를 떠받치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제야 왜 개일은 가능하고 자신은 불가능했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흥, 중원의 힘이 없어도 윤회 경지는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어.”
백리웅사는 몸을 홱 돌려 떠났다.
그러자 진홍연이 곁으로 다가와 개일에게 말했다.
“사질, 이자는 우리 공회가 직접 추대한 신(新) 회장 진구일세. 아직 젊은 청년이지만, 천 살도 안 된 나이에 벌써 적무심경을 완벽히 연마했다네.
공회의 회장이라 당연히 중원을 지키고자 하는 결심이 있을 테니, 대지의 정수 신원을 약간이나마 흡수해보도록 하는 게 어떤가?
어쩌면 자네보다 더 빨리 경지를 돌파할지도 모르네.”
말이 끝나자마자 공손영웅의 질책이 쏟아졌다.
“에끼,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누가 보더라도 회장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대놓고 정수 신원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자 진구가 적반하장으로 공손영웅을 나무랐다.
“공손 태상,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제게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까. 하물며 이제 전 회장인데, 개일 태상께서도 제 명령에 따르시겠지요.
자, 신원을 제게 주십시오. 반드시 단시간에 경지를 돌파해서 생령을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습니다.”
“사형, 제가 저 두 놈을 혼내주고 올까요?”
무사가 물었다.
무사는 눈을 부릅뜨고 진홍연과 진구를 노려보았다.
이제 팔전 경지라서 진홍연과도 충분히 겨뤄볼 만했다.
“사숙께서 굳이 나서실 필요 없습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개일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 있던 항소운이 말을 받았다.
그러고는 진홍연과 진구를 향해 가차 없이 손바닥을 날렸다.
그래도 명색이 고수인지라 진홍연과 진구는 반응이 재빨랐다.
특히 진홍연은 순식간에 손자 앞을 막아섰으나, 정작 자신은 방어를 못 하고 뺨을 얻어맞더니 이내 나동그라졌다.
진홍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노발대발했다.
“저 망할 마족 놈이!!”
그는 즉시 기세를 일으켜 항소운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롭게 뻗은 양손은 손에 잡힌 건 뭐든 갈기갈기 찢어 죽일 기세였다.
절대 강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상대를 제압할 강력한 수단이 있다는 뜻이다.
진홍연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이었다.
비록 전쟁의 일선에서 물러난 지는 오래지만 일단 공격을 시작하자 기세가 세찬 파도처럼 일었다.
개일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제자의 실력이 자신만큼 강하다는 걸 알기에 진홍연에 당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항소운은 피하기는커녕 정면으로 주먹을 날렸다.
가장 난폭하고 거친 방식으로 진홍연의 장법을 격파해 태초전체의 강대함을 마음껏 드러냈다.
한시가 급한 이때, 한가하게 겨룰 시간 따윈 없다.
썩은 가지 꺾듯 진홍연을 단숨에 제압한 그는 일방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아직 몸속에는 혼돈 연밥과 신원 한 알의 힘이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마침 진홍연은 적당히 힘을 쏟을 수 있는 상대였다.
이참에 그 힘들을 성해건곤과 몸속으로 전부 흡수시켰다.
진홍연은 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항소운이 이리 강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의 공격은 허공만 휘두르다 사라지는 꼴이라 정작 상대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항소운은 주먹으로 진홍연의 얼굴을 가격했다가 발로 아랫배를 차며 지극히 단순한 공격으로 상대를 사정없이 뭉갰다.
옆에선 진구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영감, 내가 오래 참은 거 알지? 소회장 후보 자격 박탈한 거 네가 꾸민 짓 맞잖아.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란 생각 마. 그딴 자리, 줘도 안 가져. 퉤!”
한참을 때리고 나서 그간 쌓아뒀던 분노까지 모두 토해내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온몸이 시뻘겋게 멍든 진홍연을 보자, 공손영웅은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과연 삼양이 말한 대로 보통 녀석이 아니구나. 참으로 아깝도다.’
공손영웅은 남몰래 탄식했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분명 원시신존을 잇는 인물이 될 수 있을 텐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항소운은 진홍연을 다 때리고 나자 이번에는 몰래 도망치려던 진구를 붙잡아 혼쭐을 내주었다.
찰싹-!
그는 진구의 옷깃을 잡고 뺨을 수십 차례 갈겼다.
“고약한 놈. 날 몇 번이나 죽이려 했겠다? 정녕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더냐??”
진구는 겁먹은 두 눈으로 소리쳤다.
“아, 아냐.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 제발 풀어주라. 난 수호 공회 회장이란 말이다.”
혹여 홧김에 자신을 죽여버릴까 너무도 겁이 났다.
“회장 좋아하네.”
항소운은 한심하단 눈초리로 쏘아보고선 또 한바탕 마구 때렸다.
그러고는 정체 모를 힘을 진구의 몸에 불어넣어 일신의 힘을 무력화시킨 뒤 죽음의 기운을 각 부위로 흘려보내 나름의 형벌을 가했다.
사형은 아니라 바로 죽진 않을 거다.
뭐 한동안은 숨이 붙어 있을 테지만, 무공이 서서히 사라지다가 불구가 되어 결국 죽고 말 거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자에게 베풀 자비는 없었다.
항소운은 진구를 땅에 내던졌다.
먼 곳에선 선로궐의 노선인과 광릉궁 궁주가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젊은 세대 중에 이렇게 무공이 뛰어난 자가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자신들이라도 저 젊은이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더니, 사람도 꼭 같구나.”
노선인의 얼굴엔 감탄과 탄식이 섞여 있었다.
광릉릉 궁주는 흡족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자약이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겠는걸. 두 아이가 함께한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또 없지.”
반면 신맹 맹주는 벌레 씹은 표정을 했다.
그는 신속히 신맹으로 돌아가 숨기에 급급했다.
항소운이 복수하겠다고 찾아오면 무슨 수로 막아내겠는가.
“개일, 자네 제자가 이 늙은이와 회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도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인가?”
어느새 원래 모습을 회복한 진홍연이 대놓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가 아는 개일은 공사를 분명히 하는 인물이다.
그는 개일이 이 일을 공정히 처리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정작 돌아온 답은 신속히 날아온 손바닥과 화끈거리는 뺨뿐이었다.
“네, 네가 어찌”
진홍연은 너무 화가 나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개일이 자신을 때릴 줄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언제까지 나이를 들먹거릴 거냐? 너와 공손이 중원에 한 약간의 공헌만 아니었어도 진작 너희는 내 손에 죽었다.
멀쩡한 공회를 니들 마음대로 굽고 삶아 부패의 온상지로 만들어놓고선, 뭐? 내 제자를 혼내??
저 아이의 후보 자격을 마음대로 박탈해 놓고서 어디서 행패질이냐? 정녕 내가 그리 만만해 보이더냐!”
개일은 진홍연을 엄히 꾸짖었다.
확실히 그는 권력욕 따위는 없었다.
회장 자리를 놓고 싸우는 걸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제자가 그 자리에 앉는 걸 원치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홍연과 공손영웅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항소운이 새 시대를 이끌 적임자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의 자격을 가차 없이 박탈했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아는데 스승인 자가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진홍연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독이 찬 얼굴로 진구를 데리고 떠났다.
공손영웅이 다가와 미안한 빛을 내비쳤다.
“개일, 그 일은 사숙이 잘못했다.”
“이제 와 그런 말 해봤자 무슨 소용이오? 어차피 중원도 지킬 수 없게 된 것을.”
개일의 얼굴에 쓸쓸한 빛이 감돌았다.
“사형도 방법이 없는 겁니까?”
무사가 물었다.
“중원에 있는 정수 신원을 모두 흡수한다면 윤회 경지는 오를 수 있을 거다. 대신 중원은 몰락하고 말겠지.
그렇게 되면 수많은 생명체가 살 곳을 잃고 죽고 말 텐데, 생령에 의해 멸망 당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이냐.”
줄곧 개일을 괴롭히던 마음속 우려였다.
이에 사람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개일의 말대로라면 성급부터는 중원을 떠나 영역 밖에서 살 곳을 모색할 수 있지만, 일반 백성을 비롯한 성급 아래 생명체들은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중원을 지킬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사형, 윤회 경지를 돌파하세요. 그럼 적어도 영역 밖 생령을 몰아내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남겨줄 수는 있잖습니까.”
무사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나 개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손으로 직접 중원을 몰락시키는 일만은 절대 할 수 없었다.
항소운은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스승님, 사람들이 제 명령에 따를 수 있게 힘써 주신다면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항소운은 자신의 성해건곤이 성진의 형태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현재 성해건곤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조차 그곳을 비밀 수련지로 알고 있을 뿐, 항소운의 몸속인 건 까맣게 몰랐다.
그의 사정을 아는 건 은자가 유일했다.
천하의 모든 이를 성해건곤에 넣을 생각 따윈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터무니없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의 자발적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승께서 곤경에 빠졌는데, 제자 된 도리로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중원에 사는 생명체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면 스승님께서도 안심하고 정수 신원을 흡수하여 윤회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터였다.
개일과 무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그의 말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항소운은 두 사람에게 조용히 전음을 보냈다.
“여기를 차단해주세요. 두 분께 제 비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스승과 사숙께 비밀을 터놓지 않으면, 아무래도 설득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