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48
제148화 감정을 담은 연주
그런 항소운을 보며 궁금음이 저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소운아, 너 다도에 대해 아니?”
차를 이해하는 사람은 차를 음미하고 즐기는 법을 알고 있기 마련이다.
항소운의 행동이 바로 그러했다.
궁금음의 질문에 항소운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냥 조금 알 뿐이에요.”
그는 이 말을 할 때 전혀 겸손한 기색이 없이 오히려 조금은 오만하게 보였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긴 궁금음이 다시 물었다.
“그럼 좀 가르쳐줄 수 있어?”
이아훤 역시 그의 고견을 듣고 싶은 것처럼 흥미진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항소운이 다시 차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입을 열었다.
“다도는 찻물과 찻잎 그리고 다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연한 차는 따뜻한 물에 우려내고 진한 차는 끓는 물을 사용하죠. 그리고 찻잎의 수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져요. 이런 기본적인 내용은 사저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다만 너무 형식에 치우쳤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차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깊은 맛을 내지 못하고 불의 세기도 조절하지 못한 것 같아요.”
“형태는 있는데 깊은 맛을 내지 못했다는 건 무슨 뜻이야?”
궁금음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사실 그건 고금과 같은 이치에요. 찻물의 진하고 옅음은 마음에 따라 끓이는 것이지, 정해진 규칙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어요. 사저가 온 마음을 집중시킨다면, 차도 고금 소리처럼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죠.”
항소운이 진지하게 설명하자, 고금에 조예가 깊은 궁금음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옆에 있던 이아훤은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눈치 있게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항소운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궁금음이 마치 지기(知己)라도 만난 듯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소운아, 우리 스승님도 너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 뜻밖에도 네가 이렇게 아는 것이 많다니, 분명 넌 다도와 고금 실력 모두 뛰어나겠지?”
“하하, 그냥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것뿐이에요.”
항소운이 겸손하게 말했다.
과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던 그는 이런 것들에 어느 정도 능통했었다.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던 탓인지 정수(精髓)를 배운 후 흥미를 잃고 포기하긴 했지만.
더욱 호기심이 생긴 궁금음이 그의 말을 믿지 못하고 더욱 진지한 태도로 되물었다.
“난 그 말 못 믿겠어. 그럼 우리한테 차를 끓여주거나 한 곡 연주해주는 건 어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항소운이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졌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천생배필이 아니던가.
‘내가 왜 이러지? 설마 이 애를 정말 좋아하게 된 건가?’
사실 그녀는 예전부터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애써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녀 스스로도 항소운에게 끌리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돼 버렸다.
항소운은 본래 거절하려 했으나, 이아훤이 옆에서 부추기기 시작했다.
“좋은 생각이야. 나도 항 사제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고 싶은걸.”
항소운은 눈앞의 미녀들을 보자, 마음속에 자부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좋아요. 그럼 제 능력을 보여드리죠!”
항소운이 나름 자신감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궁금음과 자리를 바꾸고 옆에 있던 맑은 물로 손을 깨끗이 씻었다.
궁금음은 그런 항소운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것은 다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었다.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은 차에 대한 예의이자 차를 마시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했다.
항소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기분이 꽤 좋아진 것 같았다.
그는 어느 것에도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보내던 지난 시절이 떠올라 문득 예전이 그리워졌다.
이런 생각에 빠져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어색했던 동작들이 차츰 능숙하고 자연스러워지면서 보는 이의 마음마저 즐거워졌다.
궁금음은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속으로 외쳤다.
‘정말 멋있다!’
이아훤은 다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항소운의 얼굴에 어린 미소와 정교하면서도 우아한 동작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녀는 다도가 이토록 재미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누가 차를 끓이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었다.
‘왜 이렇게 저 애가 낯설지 않게 느껴지지? 어디선가 만났던 것 같아!’
이아훤이 속으로 생각했다. 마음속의 궁금증이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항소운이 차를 한 주전자 우려냈다.
이 순간, 뜰 안에는 은은한 향내가 가득 퍼져 그 향기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항소운은 찻잔을 건네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
“아가씨들, 드시지요.”
궁금음이 먼저 급히 찻잔을 받아 들고는 조금씩 음미하기 시작했다.
이아훤도 이전보다 심혈을 기울여 천천히 차를 마셨다.
두 여인은 뜨거운 찻물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을 느끼며 온몸의 긴장이 완전히 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더니 온갖 번뇌가 일순간에 사라지면서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
두 여인이 분위기에 흠뻑 취해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자, 항소운의 얼굴에 예사롭지 않은 기묘한 웃음이 어렸다.
그것은 호강스럽게 자란 세도가 자제의 오만하면서도 어찌 보면 사악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과거, 주변의 수많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던 그는 이렇게 두 미녀를 앞에 두고 있자니 마치 호화롭던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이윽고 정신이 든 이아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항 사제, 차를 우려내는 솜씨가 정말 대단한데! 정확히 어느 부분이 좋은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궁 사매가 만들어준 차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
그러고는 궁금음을 보며 말했다.
“사매, 내가 너무 솔직하게 말했다고 기분 상하면 안 돼.”
궁금음이 감고 있던 눈을 지그시 뜨며 이아훤에게 인정한다는 투로 말했다.
“사저, 저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니에요.”
그러고는 항소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형식과 본질을 모두 갖춘 건가? 차를 마시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즐거워지더라.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차를 음미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셨는데, 뜻밖에도 네가 우리 스승님과 같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니 정말 대단해!”
궁금음은 존경 어린 눈빛으로 항소운을 봤다. 항소운은 얼굴마저 발그레해졌다.
“그만 쳐다보세요. 부끄럽다고요.”
항소운이 수줍어하자, 두 여인이 꽃처럼 활짝 웃었다.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두 여인이 환하게 웃자 주변의 꽃들마저 빛을 잃고 그 아름다움에 고개를 숙일 정도였다. 조금 과장하면 수화(羞花)의 경지라고나 할까.
“항 사제는 정말 재미있다니까.”
이아훤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그녀는 항소운처럼 이렇게 유쾌한 소년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운애각의 젊은 청년 중 감히 그녀를 이렇게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궁금음도 웃으며 항소운에게 말했다.
“소운아, 다도 실력이 뛰어난 건 알았으니 이제 우리한테 한 곡조 들려주는 건 어때? 난 고금을 배운지 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거든.”
그러자 항소운이 물었다.
“사저, 안 하면 안 돼요?”
“안 돼!”
궁금음과 이아훤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런데 제 연주를 듣고 나서, 사저들이 절 흠모하게 되면 어떡해요?”
항소운이 아래턱을 만지며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 말에 두 여인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렇게 네가 대단하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우리 같은 미녀들이 널 좋아하면 너로서도 꽤 체면이 서지 않겠어?”
“하하, 그건 그렇네요. 그럼 제가 한 곡조 들려드리죠!”
항소운이 호탕하게 웃더니, 고금이 놓인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자리에 앉은 후 바로 연주를 시작하지 않고, 고금 줄을 가볍게 몇 번 퉁겼다. 그러자,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금이 평범하긴 하지만, 그래도 연주는 할 수 있겠네요.”
항소운이 이렇게 평가하자, 궁금음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건 스승님께서 주신 왕급 고금인데, 왜 좋은 금(琴)이 아니란 거야?”
그 말에 항소운이 웃으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설명을 해줘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그는 온몸의 긴장을 풀며 두 손을 고금 위에 올려놓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득한 고금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항소운은 가장 먼저 흔히 들을 수 있는 민요를 연주했다. 신명 나고 경쾌한 곡조는 그리 특별한 데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 이아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궁금음은 사소한 부분까지 주목하며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항소운의 연주는 고상하고 품위가 있었으며, 은연중에 대가다운 품격이 묻어났다.
하나, 아직 그녀가 탄복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보다 항소운이 고금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느낌 정도였다.
두 사람이 따분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고금 소리가 바뀌더니 분노와 격앙된 감정이 섞인 음률이 별원에 가득 울려 퍼졌다. 마치 울창한 숲속에 작은 요수 한 마리가 거대한 요수들에 둘러싸여 공격을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반항하고 저항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전장에서 생사를 같이하던 전우가 칼에 맞아 죽어가는 비통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순간, 궁금음과 이아훤은 깜짝 놀랐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음률이 전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들은 항소운의 연주를 통해 약육강식의 세계를 느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고통을 선명하게 느끼면서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별원 한구석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매(梅) 할멈은 고금 소리를 듣더니, 두 눈에서 날카로운 빛을 번뜩였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고금에 담다니, 배신으로 인한 괴로운 감정과 분노가 고금 소리에 녹아 있구나. 이건 증오로 가득 찬 마음이야. 어찌 됐든 지금 고금을 연주하는 자는 이미 대가의 풍격을 지녔어. 성력을 그 안에 넣기만 하면, 음공을 사용할 수 있겠군. 아주 좋은 재목이야.’
고금 소리는 비통한 감정에서 차츰 다른 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열심히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배신과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이 환골탈태하여 스스로 강해지는 길을 선택한 듯했다.
이렇듯 역경을 이겨내고 용감하게 전진하고자 하는 의지는 두 여인뿐만 아니라 몰래 듣고 있던 노파에게도 전해졌다. 그녀들은 괴로운 감정에서 벗어나, 미래에 대한 희망에 고조된 눈빛으로 굳은 의지를 불태웠다.
확실히 그녀들은 고금 소리를 통해 그 안에 스며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꼈다.
뿐만 아니라, 항소운도 감정에 완전히 몰입되어 연주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머릿속에 끊임없이 옛일이 떠올라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의 감정이 고금 소리에 전부 녹아들자,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는 것처럼 점차 힘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성력이 고금 줄로 스며들자, 음표를 따라 사람의 마음을 제어하는 마력이 생겨나면서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