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도대체 누가 제자야
“허허, 사저들의 관심은 고맙지만 저는 혼자서 자유롭게 지내는 편이 좋아요. 그래서 어느 세력에도 가담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항소운이 완곡하게 거절했으나, 이아훤이 끈질기게 설득하고 나섰다.
“말은 그렇게 해도 강호에 있다 보면 어쩔 수 없어.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긴 힘들잖아. 너도 이런 상황은 잘 알 거야.”
“알아요.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일도 있죠.”
항소운이 자신 있다는 얼굴로 담담히 웃었다.
이제 화강경 정도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고, 적어도 왕급 이상은 돼야 부담을 느꼈다.
그러니 겨우 섬전맹 정도가 대수겠는가?
“아하, 이제 보니 네가 바로 그 항패왕이구나. 화린비 패거리도 겁내지 않더니만, 이젠 천년 지심화까지 얻고 실력이 크게 향상됐으니 섬전맹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네.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화린비는 섬전맹의 부맹주지만, 맹주인 섬전자는 젊은 세대 중 전투력이 가장 강한 인물이야.”
항소운의 신분을 알아차린 이아훤이 넌지시 말했다.
항소운은 이아훤의 말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방금 획쟁의 고금 소리에 빠져들어 자신의 비장의 무기를 남김없이 보이지 않았는가. 자신의 몸에 천년 지심화가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으니 이아훤이 항소운과 항패왕이 동일 인물이란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사저,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도 나름 생각은 하고 있어요. 섬전자란 녀석이 진짜 찾아오면, 운애각 젊은이 중 최고라 불리는 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제대로 겨뤄보고 싶어요.”
항소운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고집은 못 꺾겠다. 그럼 하고 싶은 대로 해.”
이아훤이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곧이어 어여쁜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우린 네가 용암에 빠져 죽은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걸 자룡이가 알게 되면, 분명 가만있지 않을 거야.”
“허허, 그 애가 싸우러 온다면야 전 환영이죠!”
항소운이 웃으며 말했다.
“자룡이는 인황의 직계 후손이라 섬전자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아이야. 섬전자보다 어리지만 않았어도, 젊은 세대의 1인자 자리는 바뀌었을 거야.”
이아훤이 진자룡을 한껏 치켜세우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난 먼저 가볼게. 둘이 못다 한 얘기나 실컷 나누라고.”
그러고는 궁금음을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순간, 궁금음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햇살이 환하게 비추자 그녀는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더 앉아있다 가.”
궁금음의 말에 항소운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는 본래 궁금음과 지난 일을 얘기하며 회포를 풀기 위해 찾아온 터였다. 이제 두 사람만 남게 되니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화염산에 있을 때, 네가 용암 밑으로 떨어졌다고 사저가 말해줬었어. 그래서 난 네가……, 아무튼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궁금음이 일 년여 전 일을 회상하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항소운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녀를 보며, 마음속의 응어리가 많이 풀어졌다. 그래도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의문점 한 가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그 후에 분화구엔 가지 않은 거예요? 당시 사저와 함께 온 사람 중 우두머리가 따로 있었죠?”
궁금음의 낯빛이 살짝 바뀌었다. 금세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그분은 내 사촌 오라버니셔. 나보다 실력이 훨씬 높아서 그 여정은 사촌 오라버니가 주도했었어. 널 속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소운아, 미안해. 그런데 난……,”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항소운이 손을 저으며 말을 가로막았다.
“해명할 필요 없어요. 다만 앞으로 다신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땐 친구도 되기 힘들 거예요.”
항소운이 심각한 어투로 얘기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려 했다.
사실 그는 궁금음을 통해 천년 지심화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천년 지심화를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사촌 오라버니의 신분을 숨긴 일로 그는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내심 화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특히 친구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소운아, 미안해. 당시 난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는 데다, 할아버지도 중병에 걸리셔서 천년 지심화가 정말 필요했어. 설령 지심화가 있는 곳을 안다 해도 쉽게 얻을 수 없으니, 사촌 오라버니를 함께 보낸 거야. 그리고 난 그저 길을 안내하는 역할이었고. 물론 그들이 널 방패막이로 삼으려던 건 맞지만, 나, 나도 어쩔 수 없었어!”
평소의 고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녀는 항소운을 막아서며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
항소운이 나가려는 게 그녀는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무슨 해명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항소운이 다시 표정을 담담하게 바꾸며 말했다.
“알았어요.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엔 절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는 그녀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이 맺힌 응어리를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예전에 그녀가 자신을 도와주지만 않았어도, 훨씬 매몰차게 대했을 것이다.
궁금음은 눈물을 글썽이며 목멘 소리로 말했다.
“소운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거 알아. 그러니 이제 행동으로 증명할게. 앞으로 다시는 너한테 이런 짓을 하지 않을게, 설령 내가 죽더라도 말이야!”
그녀는 마치 맹세하듯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고는 더 항소운을 막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떠날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는 육소청과 달리 도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비록 항소운을 흠모하는 마음은 있으나, 육소청처럼 가냘프고 애처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집스럽게 강한 모습을 드러냈다.
항소운은 그런 그녀를 보자, 이유 없이 마음이 약해져 속으로 중얼거렸다.
‘부디 그 말을 지켜줬으면 좋겠네요.’
그러고는 곧바로 궁금음의 별원을 빠져나왔다.
궁금음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난 절대 두 번 실수는 안 해.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만 좋아할 거야. 그러니 반드시 너에게 내 마음을 증명해 보이고 말 거야!”
항소운은 우선 용휘의 장로원으로 돌아가 획쟁이 새로 처소를 마련해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처소를 옮기고 나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작정이었다.
그는 은연중에 자신에게 곧 위기가 닥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것도 커다란 위기였다.
섬전맹이 아닌 반역자들이 조용히 접근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느낌은 갈수록 강해졌다. 이 지역의 거대 세력이 그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설사 날개를 달았다고 해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 * *
등용주(騰龍州)의 어느 험한 산중.
숨어있던 무리가 백수산 쪽으로 아주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급 요수를 타고 고급 갑옷을 입고 있었다. 전쟁터로 돌진하는 용맹한 장군들처럼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들은 모두 막강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총령, 우리는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가는 겁니까? 이렇게 되면, 괜히 시간을 허비하는 거잖습니까?”
무리 중 누군가 묻자, 우두머리가 태연히 대답했다.
“등용주 안은 용문(龍門)의 근거지야. 용문과 우리 자릉종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대대적으로 그들의 구역에 들어가는 걸 상대가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우릴 쉽게 놓아줄 리가 없다. 그러니 만전을 기하기 위해 길을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용문을 두려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군요.”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이는 분을 참지 못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영감탱이가 우릴 유인해서 헛고생을 시키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진작에 그 쓸모없는 놈을 잡아서 돌아갔을 텐데 말입니다.”
“에휴, 이번에 그놈 머리를 따가지 못한다면, 필경 우리 목이 달아날 것이다.”
우두머리가 울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우두머리가 되어 이들을 이끌며 사람을 잡으러 다닌 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아직 목표물인 그놈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아무 성과 없이 돌아간다면, 참혹한 꼴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서둘러 부하들을 재촉해 목적지로 향했다.
* * *
운애각의 항소운은 궁금음의 별원을 떠나 용휘의 장로원으로 돌아왔다.
그가 장로원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 낙심한 표정으로 정원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자는 바로 항소운을 공격했던 탁의였다.
그는 항소운의 반격으로 팔이 부러지자, 스승에게 달려가 하소연을 했다. 당연히 스승이 항소운을 처벌할 거로 생각했으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되려 스승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을 뿐 아니라, 항소운이 돌아올 때까지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라는 벌을 받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탁의는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면서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대체 나와 그놈 중 누가 제자야?’
근거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그는 스승이 밖에서 낳은 사생아가 바로 항소운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생각이 들자, 자신이 항소운에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만일 항소운이 탁의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이 녀석, 상상력 한번 대단하군!’
항소운은 탁의와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앗다. 태연한 눈으로 힐끔 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의 처소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탁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 항소운, 잠깐만!”
항소운이 고개를 돌려 딱한 표정의 탁의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너, 너 스승님께 날 좀 용서해달라고 말씀 좀 드릴 수 있어?”
탁의가 계면쩍은 듯 말했다.
“허허, 참 이상하네. 너 오늘 나를 공격하지 않았던가?”
항소운이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네가 대신 스승님께 말씀을 드려준다면 섬전맹에 들어올 수 있도록 추천해줄게. 그리고 문금서, 왕교화와의 원한도 풀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말이야.”
탁의가 이렇게 말하자, 항소운이 흥미롭다는 듯 대꾸했다.
“내 기억으론, 용 장로님이 너더러 섬전맹을 탈퇴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왜 말을 듣지 않는 거지?”
그 말에 탁의가 굳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절대 섬전맹을 탈퇴하지 않을 거야.”
“어째서지? 너 설마 그깟 섬전맹이 스승의 가르침보다 중요하단 거야?”
항소운이 물었다.
“흥,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우리 맹주는 전투력에선 따라올 자가 없어서 비천경 1인자라 불린다고. 그리고 얼마 후면 실력도 비천경을 돌파해서 이 기수에서 가장 빨리 경지에 오른 젊은 왕이 될 거야. 게다가 맹주의 스승은 부각주인 뇌왕(雷王)이야. 인황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지. 그러니 맹주를 따르게 되면 당연히 각내에서 내 지위도 높아질 거 아냐? 그리고 스승님도 처음에는 내가 섬전맹에 들어가는 걸 허락하셨다고. 너만 아니었으면, 상황이 이렇게 엉망이 되진 않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