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70
제170화 너한테 반했어
이 청년은 섬전맹의 맹주인 섬전자였다.
본명은 자경운(紫驚雲)이며 화강경 정점의 경지였다. 그 역시 전투 왕으로 불렸는데, 8품 화강경일 때 비천경을 상대로 이긴 적도 있었다.
그와 그의 사촌 형인 소뇌왕은 부각주 뇌왕의 직전제자였다. 뇌왕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운애각의 새 시대를 이끌어갈 인물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었다.
“섬전자, 가식 떨지 마라!”
화홍루의 뒤에 있던 진자룡이 냉소를 띠며 말했다.
진자룡은 재능 면에서 자경운과 비등한 수준이었으나, 진자룡이 인황의 자손인지라 운애각 내에서 자경운은 진자룡보다 지위가 낮았다.
“진자룡, 네가 인황 자손이라 굳이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나, 계속 버릇없이 군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아.”
자경운이 강압적인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나도 기꺼이 상대해주지. 나도 이 대결을 오랫동안 기다렸으니까.”
진자룡이 입술을 핥으며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자룡아, 이제 곧 혼천지지에 들어갈 텐데 충동적으로 굴지 마. 힘을 아낄 때니까.”
이아훤이 옆에서 조용히 충고했다.
“진자룡, 쓸데없는 걱정일랑 하지 마라. 대결을 피할 생각은 없으니까.”
자경운이 이렇게 말하더니, 뒤쪽의 항소운을 보며 말했다.
“우리 섬전맹에게 불경한 짓을 한 녀석이 네 놈이지? 맹주인 내가 왔는데 인사도 하지 않고 뭣 하는 거야?”
그랬다. 자경운은 항소운에게 으름장을 놓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항소운은 짐짓 못 들은 척 마른 풀을 입에 물고 여유롭게 앉아있었다.
“항소운, 간덩이가 부었구나. 맹주님께서 부르시는데, 빨리 뛰어오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자경운 곁의 호법이 항소운을 큰 소리로 꾸짖었다.
“항소운은 우리 홍루 사람이니, 예의를 차리시죠!”
화홍루가 눈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화 사매, 난 저 녀석이 너희 홍루에 들어갔다는 말은 못 들은 것 같은데. 이쯤에서 홍루는 빠지는 게 좋을 거야.”
자경운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수 없다면요?”
화홍루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강한 기세로 쏘아붙였다.
“항소운, 넌 여자들의 치마폭 뒤에 숨어서 안 나올 작정이냐?”
호법이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항소운이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귀를 후비더니 그제야 섬전맹 무리를 보며 말했다.
“아, 파리들이 정말 성가시게 하네. 며칠을 날아와서 이제 좀 쉬려고 하는데 그것도 못 하게 해?”
항소운의 말에 섬전맹 무리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심지어 홍루 사람들도 그가 앞뒤 가리지 않고 너무 거침없이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듣던 대로 과연 담력이 대단한 놈이구나. 섬전맹에게 그런 말을 지껄인 놈은 네가 처음이야.”
자경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잠시 후 옆의 사람에게 말했다.
“린비, 너 항소운과 싸워보고 싶다고 했지? 그럼 가서 저놈을 처리하고 와. 혼천지지에 들어가기 전에 몸도 풀 겸 말이지.”
화린비가 화갑(火甲)을 걸치고 나타나자, 비범한 기운이 사방을 압도했다.
그는 일전에 항소운에게 도전장을 보냈다가, 상대가 도전을 받아들이자 갑자기 대결을 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나선 이유는 그날 비천경을 돌파한 사람이 항소운이 아닌 다른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어찌나 망신스럽던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집사에게 호되게 욕을 퍼부었다.
항소운이 비천경의 경지가 아니란 것도 알았으니, 이제는 제대로 겨뤄볼 심산이었다.
화린비는 섬전자 못지않은 실력이었다. 이 둘의 무공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런 화린비를 내보냈다는 것은 섬전자가 항소운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앞으로 나선 화린비가 항소운을 향해 열염도를 겨누며 소리쳤다.
“항소운, 자신 있으면 한판 붙어보자!”
그러자 항소운이 화린비를 의미심장하게 보더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항소운이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리자, 화린비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왜 웃는 거야? 설마 나랑 싸울 자신이 없다는 건가?”
“누가 할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너 전에 나한테 도전장을 보냈지. 그래서 다음날 승낙하니까 갑자기 날 피하면서 싸우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뭐 누가 싸울 자신이 없다고? 꽁무니나 빼는 주제에 넌 수치심도 없냐?”
항소운이 좌중을 압도하는 기세로 화린비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사람들은 이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던 터라, 하나같이 항소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의아하다는 눈길로 화린비를 쳐다보았다.
화린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으나, 그래도 뻔뻔스럽게 모르쇠로 일관했다.
“도전장을 보낸 건 난데, 내가 왜 싸움을 두려워한단 거야? 잔말 말고, 기왕 만났으니 오늘 결판을 보자. 혼천지지가 열리기 전에 네 놈부터 처리해주마!”
“내가 왜 너와 싸워야 되는 건데? 진짜 멍청한 놈이군.”
항소운이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도 항소운이 이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답변이었다.
화린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다시 말해봐!”
“너보고 멍청하다고 했다. 이제 곧 혼천지지가 열릴 텐데, 힘을 비축했다가 혼천을 찾으러 갈 생각은 안 하고 나더러 싸우자고? 누가 보면 우리가 대단한 원수지간인 줄 알겠어.
설령 우리가 싸운다 해도 승패와 상관없이 너도 부상을 입을 텐데 그런 몸으로 나중에 혼천을 찾을 때 실력 발휘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 네가 참 멍청하단 거야. 남한테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항소운이 경멸하는 눈초리로 쏘아붙였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화린비의 안색이 수차례 바뀌었다.
그러자 자경운 곁의 호법이 다시 끼어들었다.
“부맹주님, 저놈 말은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놈은 지금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겁니다.”
“그럼 이야기나 하게 화린비 말고 네가 나와.”
항소운이 호법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너와 할 얘기 없어.”
호법이 대꾸했다.
이 자는 구중뢰와 마찬가지로 섬전맹의 4대 호법 중 하나인 라문(螺文)이었다.
“난 네게 도전하겠다.”
항소운이 분명한 말투로 말했다.
“왜, 왜 나한테 도전한다는 거야? 부맹주님과 먼저 싸우기로 했잖아.”
라문이 살짝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라문의 실력은 구중뢰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구중뢰가 상대에게 호되게 당했으니 그가 어찌 싸울 엄두를 내겠는가.
“그건 상관없어. 먼저 너와 싸워서, 내가 지면 당연히 너희 부맹주와 싸울 능력이 없는 거고, 내가 운 좋게 이기면 그때 가서 다시 겨루면 되니까. 왜? 넌 부맹주를 위해 그 정도도 못 하는 거야? 아니면 아예 그는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항소운이 날카롭게 질문을 퍼부어대자 라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자경운이 부득이하게 나섰다.
“항소운, 번지르르한 말빨은 인정하마. 네가 앞으로도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우린 이만 가자. 사람들한테 우리 운애각은 단결도 되지 않는다는 소릴 들을 순 없지. 사실 나도 항소운이 얼마나 담력이 있는 놈인지 확인하려 했을 뿐이야. 오늘 하는 걸 보니 그래도 날 실망하게 하진 않았군.”
자경운이 그렇게 자리를 뜨자, 섬전맹 일원들도 그 뒤를 따라 사라졌다.
다만 화린비는 선뜻 자리를 뜨지 못하며, 항소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뒤끝이 있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조만간 다시 붙자.”
그러자 항소운이 언제 붙든 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섬전맹이 떠나고 나자, 화홍루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항소운을 보았다. 그녀의 앳된 얼굴이 환히 빛나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이,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데? 설마 내 매력에 빠진 거야?”
항소운이 자아도취에 빠져 물었다.
“맞아. 나 너한테 반했어.”
화홍루가 큰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잘됐네. 그럼 오늘 밤 내 침대를 덥혀주면 되겠다. 여긴 침대는 없지만 도처에 널린 게 풀밭이니, 오늘 밤.…….”
항소운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 진짜 뻔뻔하구나!”
화홍루가 버럭 화를 냈다.
“별말씀을.”
항소운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인 양 대꾸했다.
“자, 그만들 하고 이번에 항소운이 섬전맹을 이간질하진 못했지만, 분명 이번 일로 그들 사이에 불만이 쌓일 거야. 하여간 말 한마디로 섬전맹의 자존심을 확 무너뜨렸으니 정말 대단해.”
이아훤이 탄복한 시선으로 항소운을 보며 말했다.
“그렇게 쉽게는 안 될걸요. 어쨌든 언젠가는 실력으로 판가름을 내야죠.”
진자룡이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섬전자의 말 중 일리 있는 말은 있었어요. 다른 성에서 온 녀석들에게 얕보여선 안 된다는 것 말이에요.”
“맞는 말이야. 세력이 가장 강한 만검종와 마혈문의 요물들은 아주 무섭기로 유명한 놈들이니까. 그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우리끼리 힘을 합쳐야지, 내분이 일어나선 안 돼.”
화홍루가 그의 말에 찬성하고 나섰다.
“아무튼 나한테 먼저 시비만 안 걸면, 난 다른 사람한텐 관심도 없다고.”
항소운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섬전맹 얘기는 그만하고. 자, 그럼 이제 우리도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볼까.”
화홍루가 이렇게 말하며 혼천지지에 들어간 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항소운은 홍루의 일원이 아니라 본래 참여할 생각이 없었으나 섬전맹이 고까워서인지 그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 이런 기이한 곳은 시시각각으로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워도 별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화홍루는 이런 쪽으로 일가견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내놓았다.
홍루의 고위층은 화홍루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해서 그녀가 하는 말을 전부 기억하는 것은 물론, 진지한 태도로 행동에 옮겼다.
항소운은 화홍루가 만일 남자였다면 분명 섬전자보다 훨씬 지도력이 뛰어난 우두머리였을 것으로 생각했다. 홍루의 세력도 섬전맹보다 강했을 것이다.
“항소운, 넌 우리 홍루의 일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순간엔 우릴 도와줬으면 좋겠어.”
화홍루는 사람들을 해산시킨 후, 따로 항소운을 불러 당부했다.
“그럼 나한텐 무슨 이득이 있는데?”
항소운이 되물었다.
“뭐라고?”
항소운의 말에 화홍루는 다소 당황스러운 어투로 반문했다.
“참나, 귀찮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지.“
항소운이 말을 이었다.
“걱정 마.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면 반드시 도울 테니까. 대신 돌아가면 나 대신 사람들 좀 챙겨줘.”
“그게 누군데?”
화홍루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돌아가서 궁금음한테 물어보면 알게 될 거야.”
항소운이 대답했다. 그의 머릿속에 몇몇 얼굴이 떠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흘이 흐르면서 만검종과 마혈문, 현빙궁, 향불사를 비롯한 여러 세력이 도착했다.
그 중 만검종은 특히 위세가 대단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을 등에 멘 채 비룡이 끄는 융거를 타고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땅에 내려서서 일제히 검을 뽑아 하늘 높이 치켜올리자 만검(萬劍)이 하늘을 찌르듯 무서운 기세가 좌중을 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