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187
제187화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그렇게 설명을 들어도 항소운은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패왕전천결을 운행시켜 전천도를 부르자, 전천도는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고 영패도 덩달아 아래로 떨어졌다.
항소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영패를 손에 쥐었다.
바로 그 순간, 아주 친숙한 느낌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왠지 모를 익숙한 감정이 흘러들자 피가 끓어오르면서 자줏빛 뼈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고 용과 호랑이의 기세가 한층 짙어지며 천하 누구도 무찌를 수 있는 무적(無敵)의 기운이 점점 차올랐다.
“패(覇)!”
항소운이 영패 위의 글자를 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패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항소운의 눈빛에선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두려울 것 없다는 당당함이 엿보였다.
이것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천성으로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으나, 영패가 천성적인 기질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자 드디어 항소운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주, 주인님!”
마른 시체 같은 자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푸른 눈동자만이 주체할 수 없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항소운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물밀듯 스며드는 것을 느꼈으나, 도무지 그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차츰 정신이 든 항소운이 그에게 말했다.
“전천도와 영패의 내력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이제 항소운은 눈앞의 상대에게 더 두려움 따윈 없었다. 그는 어느 순간 한층 여유 있는 태도로 상대를 대하고 있었다.
“좋다. 전천도와 영패는 주인님께서 직접 만드신 것이다. 주인님은 구신주에서 가장 강한 존재로 이름은 항정천, 사람들은 패왕이라 불렀지. 그 분은 정상급 명문가인 항씨 가문을 직접 일궈내셨고 서막(西漠)을 제패하셨단다. 그리고 다른 8대 주(州)의 점령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그만……, 간계에 빠지는 바람에 8대 주의 최고 고수들에게 변을 당하신 거지. 그분은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로 대단한 대결을 벌이셨다가, 결국 우리 같은 수하가 먼저 퇴각하도록 후방을 지키시다가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단다.”
푸른 동공의 주인공이 회상에 잠겨 말했다.
항소운은 천하를 제패한 한 남자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머릿속에 보이는 듯했다. 혼자서 8대 주 최고 고수들을 상대로 싸우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패기인가. 역시 패왕이란 호칭이 무색하지 않았다.
“그럼 왜 여기에 갇혀 계신 거예요?”
항소운이 물었다.
“당시 주인님이 돌아가셨을 때, 8대 주 세력으로부터 항씨 가문을 지키기 위해 우린 목숨을 걸고 그들과 사투를 벌였지. 그러다가 상대도 더 이상의 싸움이 힘들다고 느꼈는지 양측은 서로 합의를 거쳐 8대 주는 서막에서 물러나고 다신 항씨 가문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그 대신 항씨 가문은 다신 서막을 점령할 수 없고 다른 대주(大州)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조로 걸었지. 그것도 모자라 나를 포함한 장군 몇은 각기 다른 공간에 구금되어 5천 년을 보내게 됐단다.”
그가 울분을 참지 못하며 토로하더니, 다시 화난 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디 5천 년뿐이겠느냐. 일만 년이 지났어도 그 몹쓸 놈들은 날 풀어주질 않았다고!”
순간, 항소운은 깜짝 놀랐다.
구신주에서 무인의 수명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길었다.
항소운처럼 화강경에 오른 무인만 해도 이삼백 살까지는 살 수 있으니, 비천경에 오르면 오륙백 살도 가능했고 인황은 천세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식견이 그렇게 좁은 것은 아니었다. 그도 인황을 뛰어넘는 훨씬 대단한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만년 이상을 살았다는 것은 구신주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으뜸가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항소운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그럼 제게 내보내 달란 말씀이신가요?”
“네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내게 위협을 당하지도 않았겠지.”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우선 네 상황에 대해 말해 보거라. 넌 주인님의 후손일 뿐 아니라, 그분이 선택하신 후계자일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구나.”
항소운은 가만히 손에 쥔 옥패를 움켜쥐었다. 눈앞의 이 사람은 그가 얻은 계승과 일련의 관련이 있다고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 비경에서 패왕전천결을 우연히 얻게 된 이야기를 상대에게 들려주었다.
“패왕전천결. 진짜 패왕전천결이라니. 주인님이 돌아가신 후, 전승이 끊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었다니. 잘됐군, 정말 잘됐어. 주인님의 위대한 업적을 이을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구나.”
그가 크게 기뻐하다가,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네 몸을 빌려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구나.”
항소운은 상대의 마지막 말을 듣고, 몸을 부르르 떨며 생각했다.
‘원래는 날 이용할 심산이었군.’
항소운은 마른 시체같은 자와 자신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인연이 없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럼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항소운이 물었다.
“내 영혼을 옮길 수 있는 몸을 찾아오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그가 나름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간단하네요. 제가 사람만 잡아 오면 되는 거죠?”
항소운이 말했다.
섬전맹의 일원은 그를 보면 분명 죽이려 달려들 테니 그 틈에 상대를 사로잡아 여기로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하하.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어렵단다.”
그가 껄껄 웃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몸은 만 년 동안 구금되면서 피와 살이 메말라 생기를 잃었단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죽은 사람이라 할 수 있지. 그러나 그들도 내 혼태(魂台)가 저절로 회복될 줄은 몰랐던 거야.
그래서 나도 지금까지 살 수 있었지만, 그들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금기를 쳐놓는 바람에 이곳은 비천경 아래의 무인들만 들어올 수 있어 아직까지 내 혼태를 맡길 몸을 찾지 못했던 거지. 못된 놈들 같으니라고.”
혼태(魂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항소운은 그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무예에는 끝이 없어 무인들은 무공이 일정 수준에 오르면 끊임없는 단련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높여갔다.
무예의 경지는 입무경(入武境), 성력경, 화강경으로 구분되며 소위 왕의 경지라 부르는 비천경이 그 상위 단계이다. 왕의 경지를 뛰어넘은 자는 인황이라 불리는 ‘입룡경(入龍境)’의 경지에 올라 매우 뛰어난 존재로 칭송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인황을 뛰어넘은 자는 제존이라 일컬어지는데, 제존은 ‘혼태경(魂台境)’이라 불리기도 했다.
눈앞의 이 자가 잇따라 혼태란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 봐도, 그가 혼태 이상의 무서운 경지임을 알 수 있었다.
7품 종문 세력에서 태어난 항소운은 제존의 경지에 오른다 해도 만년 이상을 사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자는 혼태를 뛰어넘는 존재란 뜻이었다.
물론 지금 육신은 사실상 죽고 영혼만 남은 상태지만, 그 영혼만으로도 범인은 감당할 수조차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푸른 동공의 주인공은 항소운이 비범한 정신과 재능을 지녔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리고 그의 몸을 빼앗아 다시 살아나기 위해 이곳까지 유인한 것이다.
다만 항소운은 그가 모시던 주인의 계승자였으니, 항소운의 몸을 빼앗는 일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대인의 혼태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이곳을 떠나실 수 있다는 거죠?”
항소운이 물었다.
“그렇다. 이곳에는 금기가 걸려있어서 내 영혼은 여길 빠져나가지 못해. 아니면 진작 여길 나갔겠지.”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무공이 어느 수준은 돼야 대인의 혼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항소운이 다시 물었다.
이 자를 구해내면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항소운은 가슴이 뛰었다.
“적어도 입룡경 후기는 돼야 한단다.”
그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입룡경이란 인황의 경지를 뜻하는 것으로, 게다가 후기에 오른 자라니 보통 어려운 조건이 아니었다.
알려진 바대로 인황은 이곳에 들어오는 것조차 금지되었으며, 이 규율을 어기게 되면 이곳의 금기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다.
“여기에 인황은 못 들어온다는 금기가 있으니,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항소운이 곤란한 듯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있고 말고. 영혼을 보관할 수 있는 보물을 가져오면 된단다.”
그가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다, 됐다. 네 실력으로 그런 보물을 얻기란 불가능하지. 그러지 말고 여기서 나가거든 가문의 고수를 찾아 날 구하러 와달라고 전해주렴. 패왕 수하의 5대 대장군 중 하나인 서귀(徐鬼)가 보냈다고 하면, 알아서 구하러 올 거다.”
서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이름이다. 일만 년 전만 해도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던 대단한 인물이었으나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있었다.
서귀의 말에 항소운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전 항가에 갈 수가 없어서 그 말은 전해드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보아하니 항가도 예전만 못한가 보구나.”
서귀가 짧게 한숨을 쉬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됐다. 나중에 네가 그만한 실력이 되거든 다시 와서 날 구해주거라. 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아! 날 이렇게 만들다니, 천벌 받을 놈들!”
서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는 원한이 잔뜩 서려 있어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 서귀를 보며 항소운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마음속에서 누군가 반드시 서귀를 구해 이곳을 떠나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명룡혼고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항소운은 생각 끝에 명룡혼고를 떠올렸다.
명룡혼고는 타인의 영혼을 제어할 수 있는 보물로, 서귀의 영혼을 보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영혼이 명룡혼고의 두 마리 용이 휘어 감고 있는 구슬의 자리에 보관되어 각종 영혼력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강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구슬이 있던 자리를 비워내고 서귀를 그 안으로 보내면 충분히 이곳에서 데리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항소운은 명룡혼고를 불러냈다.
서귀는 명룡혼고를 보자 푸른 동공이 확대되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이건 명황족의 명룡혼고가 아닌가. 이걸 어떻게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대인, 이걸 아세요?”
항소운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명룡혼고는 운애각에서 경매로 나온 물건이었다. 운애각의 사람들조차 이 물건의 내력을 알지 못했고 주인이 누군지조차 몰랐는데, 서귀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일찍이 서귀는 명룡혼고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하하. 내 어찌 모르겠느냐. 당시 명황족은 주인님을 공격하던 주요 세력이었지. 명황족의 선조는 주인님의 칼에 맞아 목숨을 잃었는데, 뜻밖에도 이 명룡혼고를 네가 가지고 있을 줄이야. 이 물건은 명황족의 직계 후손만이 조종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