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216
제216화 무슨 일이 있었어?
줄곧 항소운의 곁을 지키고 있던 야조모의 어여쁜 얼굴도 계속되는 간호에 지친 탓인지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오라버니, 언제까지 그렇게 잘 거예요? 제가 보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평생 절 잊지 않고 기억할 거라고 했잖아요. 전부 다 거짓말이었어요? 계속 안 깨어나면 저도 화낼 거에요.
어렸을 때 화내면 오라버니가 거북이 흉내를 내며 화를 풀어줬었죠. 아버지처럼 그렇게 잘해줬었는데…….
전 오라버니와 아버지가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계속 아무런 걱정 없이 즐겁게 살 줄만 알았는데, 갑자기 스승님이 절 억지로 데려간다고 해서 마음이 괴롭고 우울했어요. 그래도 오라버니와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스승님을 따라갔죠.
오라버니, 아세요? 그때는 스승님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것만 같아서 너무도 미웠어요. 그래서 반드시 스승님보다 훨씬 강해져서 나중에 꼭 혼내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열심히 수련만 했어요. 그래도 오라버니가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죠.
언젠가는 날 보러 무사곡(無邪谷)에 와줄 거라 기대했지만, 오라버니는 무공을 배운 적이 없어서 그곳까지 오기 힘들 거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라버니가 그 여우 같은 계집애한테 홀딱 빠져서 저 같은 건 진작에 잊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어요. 분명 그 계집에겐 다른 속셈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봐요, 진짜 일이 터졌잖아요. 분명 오라버니도 많이 괴로웠겠죠. 이젠 제가 있으니 지난 일은 전부 잊으세요. 제가 크면 그 계집보다 훨씬 예쁠 거라고 오라버니가 말했잖아요.
이제 저도 다 커서 남자들은 저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요. 이젠 그 계집만큼 예뻐졌으니까, 몇 년만 더 있으면 몸도 자라서 그 계집애가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그리고 오라버니, 계속 제 가슴이 작다고 놀렸죠? 이젠 그렇게 놀리지도 못할 거예요.”
야조모는 다정스러운 눈길로 항소운을 바라보더니, 어느새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살며시 올려놓는 것이었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으며 입에서는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어떤 남자라도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끓어오르는 흥분을 주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혼미 상태의 항소운도 뭔가를 느꼈는지 그녀의 가슴을 쥐고 있던 손바닥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가만히 감싸 쥐었다.
순간, 그녀는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작은 고양이가 울부짖듯 정신이 혼미해지는 소리였다.
그녀는 침상에 누워있는 항소운을 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짓더니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못된 오라버니, 이제 실컷 만졌죠?”
그러나 항소운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의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쁜 오라버니, 계속 안 깨어나면 제가 침상으로 올라갈 거에요. 오라버니가 죽어도 우리 항씨 가문의 대는 이어야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항소운은 가슴에서 손을 떼더니 몸을 벌떡 일으키며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지금 여긴 어디야?”
그의 행동이나 표정은 확실히 그럴듯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속아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야조모가 누군가. 그녀는 어려서부터 항소운과 같이 자란 터라 그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매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오라버니, 계속 잠든 척해 보지 그래요? 당장 아버지한테 가서 오라버니가 또 가슴 만졌다고 말할 거에요. 아마 아버지도 가만있진 않을걸요.”
“에이, 조모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지금은 네가 내 손을 가져다 만지게 한 거잖아. 내가 먼저 만진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내 탓을 하면 안 되지. 히히히”
깜짝 놀란 항소운이 서둘러 해명 아닌 해명을 늘어놓았다.
“헤헤, 그럼 이젠 괜찮은 거죠?”
야조모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항소운은 친여동생보다 훨씬 사이가 좋은 그녀를 보며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만히 그녀의 눈물을 닦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바보야, 왜 울고 그래. 설마 오라버니를 봐서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니지?”
“오라버니…….”
그녀는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항소운의 품으로 뛰어든 채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고 쌓였던 슬픔과 그리움이 이 순간 전부 폭발한 것이다.
항소운도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어떤 말로도 지금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어느새 야조모는 울다 지쳐 그의 품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항소운은 그녀를 침상에 똑바로 눕히고, 어린 티를 벗고 어엿하게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탄식을 했다.
“우리 마녀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네가 그 계집보다 백 배는 더 예뻐.”
그리고는 그녀에게 가만히 이불을 덮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보름 동안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속에서 그는 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다시 환생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다시 태어났는데 이번에는 대단한 업적을 쌓으며 승승장구했으나 말로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수없이 죽고 다시 태어났으나, 매번 인생은 새롭기만 했고 느끼는 점도 달랐다.
그 중, 한 인생에서는 어렴풋이 서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였고 그 말고도 몇 사람이 더 있었으나,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역시 대전을 치르던 중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산산이 흩어져 참혹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항소운은 생사의 윤회를 겪으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배회하느라 줄곧 깨어나질 못했다.
야조모가 날마다 말을 건네며 익숙하고 따뜻했던 감정으로 그를 잡아끌지 않았더라면 또 얼마나 많은 꿈을 꾸고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생사를 겪었을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꿈은 실제처럼 느껴졌다가 또 어느 순간 모호해져서 그 속에서 발생했던 일들은 자세히 기억나질 않았다. 하기야 그래서 꿈이라 부르는 것 같았다.
항소운이 방문을 열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다길과 응일이 고개를 돌리더니 즉시 반색하고 나섰다.
“소종주님!”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다길의 인자한 눈빛에선 기쁨이 느껴졌으나, 응일은 놀라움 속에도 은근히 경멸의 눈초리를 숨기고 있었다.
십삼응은 자릉종의 사람들로, 당시 항소운의 아버지 항양전이 야조모에게 호위무사로 딸려 보낸 자들이었으며 자릉종과 항양전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응일은 어째서 항소운을 경멸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항소운은 소종주였지만, 무예는 배우지도 않고 항상 먹고 놀며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으니 내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무예를 숭상하는 시대에 자릉종에 이런 무위도식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수치라고 여겼으니, 어느 누가 존경이나 하겠는가.
그래서 응일은 자릉종에 모반이 발생한 원인을 항소운 본인의 탓으로 돌린 것이다.
“소종주님, 쾌차하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다길이 앞으로 나서며 항소운에게 예를 올리자, 그가 재빨리 저지하며 말했다.
“술고래, 그런 말 마. 자네들이 아니었으면, 난 진작 죽었을 거야.”
“소종주님을 구하는 것은 저희의 당연한 소임입니다.”
다길이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어느덧 항소운이 화강경 정점에 오른 것을 보니, 그는 한편으로 마음이 놓였다.
항소운을 데리고 도망칠 때만 해도, 겨우 3품 무도의 경지였는데 2년 반 만에 벌써 이렇게 성장했으니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속도였다.
혼천지지에 있을 때만 해도 9품 화강경이었으나, 보름 동안 힘이 크게 강화되면서 벌써 화강경 정점에 오른 게 바로 항소운이었다.
그러나 몸속의 약성이 이번에 전부 사용되면서 앞으로는 이런 방식으로 실력을 높이기는 힘들 터였다.
어쨌든 약성의 가장 큰 효과는 몸속의 오장육부와 혈도를 깨끗이 씻고 혈맥을 확장하는 것으로, 항소운에게는 품급을 한 개 높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이었다.
“소종주님. 아가씨께서는?”
옆에 있던 응일이 물었다.
“그동안 고생해서 한숨 푹 자라고 했어.”
항소운은 응일이 내심 자신을 무시한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젠 그도 많이 성숙해져서 상대방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은 철저히 실력에 의해 모든 것이 입증되는 세상이라, 강한 자만이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항소운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술고래, 여기가 어디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줘.”
그러자 다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동안 발생한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소백이도 왔다고? 지금 어디 있어?”
항소운이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된 얼굴로 물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백이가 나타나며 큰소리로 외쳤다.
“형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항소운은 인간의 모습을 한 소백이를 보며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드디어 우리 형제가 다시 만났네.”
항소운은 앞으로 다가가 소백이와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술고래의 말에 따르면, 소백이는 가장 위급한 순간에 나타나 그의 목숨을 구했으며 그들이 없었더라면 전부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얼마나 감동 받았는지 모른다.
비록 다른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과 진실된 정을 나누는 형제와 수하가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형님. 저와 함께 백수산으로 가요. 거기엔 우리 호랑이 족이 있어서 아무도 형님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소백이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며 항소운이 말했다.
“네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난 너와 함께 갈 수 없어. 꼭 해결해야 할 일이 있거든.”
“그래도 실력이 더 강해진 다음에 나와도 되잖아요. 우리 종족이 사는 곳에는 자원이 풍부해서 형님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요.”
소백이가 말했다.
“소백아. 네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하지만 진짜 같이 갈 수 없어.”
항소운이 자신의 생각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로 말했다.
소백이의 제안은 썩 괜찮았지만, 그는 더 이상 세상을 등지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세상과 부딪히며 더욱 적극적으로 실력을 높일 수 있는 장소나 기회를 찾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무책임하게 여동생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힘으로 가문의 영광을 되찾고 싶었다.
항소운이 생각을 굽히지 않자 소백이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금옥이더러 이곳에 남아 형님을 지키라고 할게요. 그 애는 벌써 황급 요수가 됐거든요.”
항소운이 그 제안도 다시 거절하려 하자, 소백이가 말을 덧붙였다.
“잠시 제가 없는 동안 탈것으로 쓰면 되잖아요. 그리고 형님을 대신해 곤란한 일도 처리해 줄 수 있고요. 저도 수련에 성공하고 나면 꼭 형님과 함께 적을 무찌르고 다닐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