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263
제263화 이 술을 바치겠습니다
탁자 앞의 사내는 경기를 주관하고 심판을 볼 뿐 아니라 도박사업도 같이 운영하고 있어 양측의 실력에 따라 배당금을 결정했다.
대결 상대 간에 실력 차가 크면 배당금은 자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실력이 비등한 경우에는 동일한 비율로 진행됐다.
도박 주관자는 항소운을 아주 낮게 평가해서 배당금을 이렇게 책정한 것이다.
구경꾼들은 항소운과 혈촉을 보더니, 돈을 걸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혈촉 쪽에 걸었고, 항소운에게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혈자와 혈촉은 기분이 좋아져서는 잔뜩 멸시하는 눈초리로 지고루와 항소운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명색이 혈살방의 군주라는 자가 겨우 중품 수정 일만 개라니, 이거 신분에 맞지 않는걸. 난 우리 항 도련님께 중품 수정 10만 개를 걸겠네.”
지고루가 혈자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중품 수정 10만 개라니, 절대 적지 않은 액수였다.
순간, 항소운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그가 혹시 은둔 고수는 아닐까 생각하면서 본래 혈촉에게 걸려던 자도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마 항소운에게 걸 용기는 없어서 이번 대결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자 혈자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말했다.
“오냐. 이 고약한 고루방 놈들. 그럼 나도 내 아들에게 다시 중품 수정 9만 개를 걸으마.”
그러면서 수정을 한 무더기 꺼내자 영험한 기운이 사방에 넘실거렸다.
주관자는 수정을 재빨리 거둬들이고는 하나하나 종이에 기록했다.
“또 걸 사람이 있느냐?”
주관자가 장을 마감하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기다리시오. 나도 사겠소.”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그자를 보며 하나같이 기이한 표정을 지었고, 낮게 수군대는 자들도 있었다.
“저거 도귀(賭鬼) 아냐? 저자가 걸면 백발백중 맞던데 이번에는 누구한테 거나 한번 봐야겠군.”
“그러게 말이야. 저 늙은이는 매번 거는 금액은 달라도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잖은가. 게다가 신기한 법칙이 있는데, 저자가 돈을 적게 걸수록 싸우는 자가 이길 확률이 높고, 돈을 많이 걸면 오히려 이길 확률이 낮아진다네. 이번에는 누구를 찍나 모르겠군.”
“맞는 말이야. 저 늙은이가 생긴 게 추하긴 해도 도박 하나는 기가 막히지.”
“가만있어 봐. 난 저자가 하는 대로 따라 걸어야겠어. 그럼 분명 이기겠지.”
이때, 항소운의 눈에도 그자가 들어왔는데 아주 못생긴 늙은이였다.
이마는 툭 튀어나오고 눈은 푹 꺼진 데다 코는 작고 입은 함지막하게 컸다. 게다가 차림새까지 꾀죄죄해서 거지나 다름이 없었는데 몸에서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는 바람에 근처에는 사람이 얼씬도 못 했다.
이 자는 죄혈성의 7대 악인 중 하나인 도귀였다.
죄혈성에는 7대 악인이 있는데, 악독하기로 유명한 절명검(絶命劍) 여절천(厲絶天)과 식인입을 가진 식렬(食咧), 둔갑술에 능한 요녀 요교교(妖嬌嬌), 웃는 승려 원소(元笑), 못생긴 도귀 방남양(龐南陽), 천잔각(天殘脚) 잔료흔(殘了痕) 그리고 독에 능한 독무생(毒無生)이 있었다.
7대 악인은 죄혈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온갖 악행은 다 저지르는 데다 무공 또한 대단해서 이들을 보면 다들 멀리 돌아갈 정도였다. 그런데 도귀 방남양이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뒤에 대고 ‘도귀’라 부르기는 해도, 절대 ‘못생겼다’는 말은 삼갔는데 혹여나 입 밖에 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었다.
도귀는 내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몇 해 전, 그는 어느 최상급 인황에게 내기를 하자며 끈덕지게 요구했다. 그러면서 내기에 진 자는 그 대가로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는데, 인황은 계속 내기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도귀가 64일을 귀찮게 매달리자, 인황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홧김에 내기에 응했는데 결국 인황이 지는 바람에 결국 두 다리가 잘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도귀의 이름이 죄혈성에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7대 악인 중 하나로 유명해졌다.
그는 내기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도박 기술도 뛰어나 정확히 맞추기까지 했다. 돈을 걸었다 하면, 기본적으로 손해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편이라서 어느 때는 하품 수정 1~2개를 걸 때도 있고, 또 어느 때는 상품 수정 수백 만개를 걸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 목숨을 걸 때도 있었다. 그러니 그가 도박하는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주관자는 도귀를 보더니 긴장하며 물었다.
“대인께선 누구에게 거실 생각이십니까?”
그는 도귀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자가 나타나면, 그날은 돈 벌 생각은 접는 편이 나았다.
도귀가 걸었다 하면, 다른 자들도 전부 같은 무인에게 거는 바람에 결국 주관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아무리 주관자의 배후에 성주부가 있다 해도 감히 도귀를 건드리는 자는 없었다.
주관자뿐만 아니라 지고루와 혈자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도귀를 보았다.
지고루가 긴장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자가 항소운에게 돈을 걸면 다행이지만, 만일 혈촉에게 걸면 항소운이 연무대에서 죽는단 뜻이니 명룡혼고에 걸린 자신도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혈자도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아들인 혈촉이 죽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도귀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흐리멍덩한 눈을 껌뻑였다. 그러고는 품에서 하품 수정 1개를 꺼내 항소운의 이름 앞에 내려놓았다.
“난 이 자한테 걸겠네.”
그러고는 땅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술을 마시며 대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주관자는 하품 수정 1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히 이 앞에 하품 수정 1만 개부터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는데, 겨우 1개를 내다니 이곳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였다. 하나,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지고루는 도귀가 항소운에게 돈을 건 것을 보고 금세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하, 좋군. 아주 좋아.”
한편, 혈자는 핏기 하나 없이 안색이 창백해졌다.
“도, 도귀 대인. 다, 다시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혈자가 조심스럽게 말했으나 도귀는 상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혈촉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겨우 3품 비천경인 녀석이 네 번째 연무대에 도전하다니 용기는 가상하다만, 그래도 내 상대가 될 순 없지. 내 반드시 널 이겨서 도귀의 법칙을 깨뜨리고 말겠다!”
그러고는 연무대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항소운, 어서 올라와서 죽을 준비나 하시지!”
혈촉이 항소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흥, 그건 내가 할 소리다!”
항소운은 냉소를 짓더니, 품에서 술병을 꺼내 도귀에게 건넸다.
“대인의 혜안에 감사드리는 의미로 이 술을 바치겠습니다.”
그 술은 두훤호가 청죽전에서 가져온 귀한 술로 백 년산 청죽주였다.
도귀는 입을 비죽이며 보기 흉한 웃음을 짓더니 냉큼 술을 받았다.
“하하, 꽤 괜찮은 녀석이군.”
술병을 열자 은은한 술 냄새가 향긋하게 퍼졌다. 그는 가만히 냄새를 맡더니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 순간, 항소운은 발을 가볍게 굴러 제비처럼 날렵하게 연무대 위로 올라섰다.
“시작!”
주관자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겨우 3품 비천경이 이곳에 올라오다니, 오늘 네 놈의 피로 내 강인함을 증명해 보이마!”
혈촉은 포효를 하며 한 줄기 혈광(血光)이 되어 빠르게 돌진했다.
혈충권(血冲拳)!
혈권이 용솟음치자 살기가 거세게 일어나며 무서운 위력을 드러냈다.
그는 전력을 다한 일격으로 항소운을 죽여 도귀의 법칙을 깨뜨리고 싶었다.
구경꾼들은 연무대 아래 모여 과연 항소운이 이 주먹을 받아낼 수 있을지 지켜보았다.
그들은 본래 항소운을 얕잡아보았으나, 도귀의 등장으로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품급을 뛰어넘어 전투를 펼치는 왕중왕(王中王)일 수도 있었다.
상대의 주먹이 빠르게 날아오자, 항소운은 혈충권의 기세가 족히 5품 비천경은 된다고 느꼈다. 그러자 오히려 전의가 불타올랐다.
‘연무대에 올라온 이상,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긴다!’
항소운은 마음속으로 이 말을 되뇌며 전력을 다해 주먹을 날렸다.
분뇌권!
벼락이 내리치듯 강력한 기세가 주변을 삼키더니 교룡이 포효하듯 주먹이 힘차게 돌진했다.
쿵!
두 주먹이 충돌하자, 서로 다른 힘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진법에 가로막혀 곧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적잖은 충격에 한 사람이 튕겼는데 그자는 바로 혈촉이었다. 항소운은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누가 더 강한지 마음속에 판단이 섰다.
‘이럴 수가. 겨우 3품인 녀석이 어떻게 주먹 하나로 내 아들을 밀려나게 한 거지! 설마 저 녀석은 진짜 왕중왕이란 말인가!’
혈자의 안색은 한층 창백해졌다.
그가 오늘 아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대결을 통해 5품 비천경을 뛰어넘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특별히 약해 보이는 놈을 대결 상대로 골라줬더니, 하필 상대는 물어도 뜯기지 않는 강골 같은 녀석이었다. 이대로라면 아들이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지고루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먹 한 번으로 4품 비천경을 밀려나게 하다니, ‘왕중왕’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것은 품급을 뛰어넘어 전투를 펼치는 소왕만이 가질 수 있는 칭호였다.
따라서 왕중왕이 나타날 때마다 무림은 들썩였다.
연무대 위의 항소운은 혈촉에게 주먹을 날린 후 곧바로 공격을 가하지 않고 천천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이 대결을 빨리 끝낼 생각이 없었다.
혈촉이 전력을 다해 싸워야 그도 싸울 맛이 날 터였다. 상대는 아직 가장 강한 힘은 남겨 둔 상태라서, 그는 상대가 힘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렸다.
다른 사람이 이런 생각을 알아챈다면, 이상한 놈이라며 욕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적을 얕잡아본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가 목숨을 건 치열한 격전을 벌일 때 무예도 한층 성숙해진다고 믿었다.
혈촉은 항소운의 주먹에 부딪혀 팔이 저리고 아팠다. 그는 그제야 상대가 자신과 겨룰 만큼 충분한 실력이 있다는 걸 느꼈다. 아니, 심지어 자신보다 훨씬 강했다. 그는 교만한 마음을 접고 다시 온몸의 힘을 끌어올리더니 혈극(血戟)을 꺼내 들고 달려들었다.
바로 피의 물결이 상대를 덮치는 초식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혈극이 거센 파도로 변하여 항소운을 압박해 들어갔다.
혈기(血氣)에는 무서운 살기가 들어있는데, 혈극에 죽어 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혈흔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강력한 불의 힘마저 실려있어 위력이 배가 되었다.
혈촉이 병기를 꺼내든 걸 보니 이젠 진심으로 싸울 준비가 됐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이번 대결은 평범한 전투가 아니라, 생사를 건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항소운도 병기를 꺼내 들 줄 알았으나, 뜻밖에도 그는 육갑금공을 일으켜 온몸을 빈틈없이 막고는 혈촉의 공격을 그대로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교룡처럼 날렵한 몸놀림으로 상대의 공격을 뚫고 들어가 천둥의 힘이 실린 주먹을 힘껏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