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277
제277화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요
땅으로 내려선 제동은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이 형님과 같이 돌아가자. 아무도 널 괴롭힐 사람은 없어. 정로(程老), 자네가 가서 데려와.”
제동이 말한 정로란 자는 바로 제존급 강자로, 이름은 정유(程瑜)였다. 얼마 전, 혼태경에 오른 자로 제동을 수행하며 이곳 죄혈성에 온 것이다.
항소운이 어찌할 바를 몰라 초조해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여인네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 멍하니 서서 뭐 하고 있어? 어서 연회에 가야지.”
맑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더니 돌연 알 수 없는 힘이 정유의 기세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항소운은 그제야 젊은 부인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난생처음 보는 여인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귀에 익은 음성이었다.
분명 자신과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전혀 기억이 없었다.
“이건 자릉종의 집안일이니, 상관없는 사람은 비키시오!”
정유가 눈썹을 찌푸리며 버럭 호통을 치더니 제존의 기세를 불러일으켜 여인을 공격했다.
“하하, 또 힘만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놈이었네? 그런 거라면 나도 좋아하지!”
여인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음성은 마치 마음(魔音)처럼 사람의 마음을 홀렸다. 마성을 띤 음성이 정유의 귓속으로 들어가자, 제존의 기세가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별안간 그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는 허겁지겁 옷을 벗고 두 팔로 허공을 부둥켜안으며 중얼대기 시작했다.
“예쁜이, 어서 이리 와, 어서……!”
놀랍게도 제존은 여인의 미혼술에 걸려 환각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옆에 있던 제동과 여러 인황들은 그 광경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항소운은 그제야 이 여인이 둔갑술에 능한 요교교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누님,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요.”
항소운은 고마운 나머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하, 그 말 기억하고 있을게.”
요교교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어서 들어가 봐. 넌 분명 잘될 거야.”
항소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월각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발가벗은 정유를 보며 쯧쯧 혀를 찼다.
“어휴, 창피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뭐 하는 짓이람? 그러고도 제존이라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유는 흠칫 놀라며 환상에서 깨어났다.
그는 자신의 꼴을 보더니 얼굴이 흙빛이 되어버렸다. 그는 재빨리 기세를 일으켜 몸을 휘감고는 요교교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년을 죽여버리겠다!”
그러고는 분노에 가득 차 주먹을 날렸다.
순간, 주변의 힘이 전부 그를 따라 움직이며 방대한 성진의 힘까지 하늘에서 떨어지자 순식간에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제존의 놀라운 힘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제존의 경지에 오른 무인의 힘은 요교교의 눈에 한낱 장난에 불과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그녀가 손바닥을 가볍게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순식간에 정유의 공격을 깨뜨리고 곧장 상대의 뺨으로 떨어졌다.
‘짝’ 하는 낭랑한 소리와 함께 정유는 날아가고 말았다.
명색이 1품 제존인 자를 가볍게 날려 보내다니, 그녀의 무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도련님, 어서 피하십시오!”
다른 수하가 놀라 소리쳤다.
여인이 마음먹고 이들을 전부 상대한다면, 제동 등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러자 제동이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여자가 우릴 공격할 생각이라면, 지금 도망쳐봤자 아무 소용 없을 거야. 우선 상황을 지켜보자.”
제동은 배짱 있게 말을 하긴 했으나, 속은 편하지 않았다.
“저놈한테 언제 저런 강자가 붙은 거지? 설마 그 늙은이가 미리 수를 써둔 건가.”
그는 다길이 항소운을 지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길은 보이지 않고 웬 정체 모를 여인이 나타나 항소운을 돕고 있었다. 그는 녀석을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 혹여 자신들이 뺏은 것들을 전부 잃진 않을까 두려웠다.
“하하, 재밌는데. 그런데 지금 이 몸은 너희를 상대할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앞으로 다시 한번 내 동생을 건드렸다간 그땐 너희가 누구든 전부 죽여버릴 거야!”
요교교는 제동을 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금세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연회에 왔다가 우연히 항소운을 발견하고 도와줬을 뿐, 그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사실 7대 악인은 상상도 못 할 내기를 하고 있어서 그녀는 항소운과 다른 제자들이 우가 사위 후보가 되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항소운이 연회에 참석도 못 하고 죽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우월각. 이곳은 흔히 볼 수 있는 누각이 아니라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정원이었다.
석가산 옆으로 연못이 흐르고 나무와 화초가 조화를 이루었으며 고즈넉한 정자가 운치를 자아냈다. 어느 것 하나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누구든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마음이 깨끗해져 악한 기운도 자연히 억제되었다.
널따란 첫 번째 정원에는 수십 개의 누각이 있는데 주색에 빠진 자들로 넘쳐났다.
술에 한껏 취해 흥청거리는 사람이 다반사였고, 계집질에 도박까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어서 아주 시끌벅적했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술값이 저렴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두 번째 정원이 나타났다. 이곳의 여인들은 외모가 훨씬 수려했는데 그저 평범한 여인네가 아니라 무술을 연마하는 자들이었다. 그런 여인들이 접객을 하니 손님들은 더욱 만족스러웠다.
이곳은 배포가 큰 거부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정원은 개인 토지로, 우씨 일가의 초대를 받은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우가가 귀빈을 접대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항소운은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세 번째 정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갈 순 없었고, 시험을 통과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현재 세 번째 정원 앞에는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이곳에 모여 있는 젊은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차례로 나와 이름을 적고 시험에 응하도록 해라. 시험에 통과한 자 중에 상위 50명만 들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전부 돌아가야 한다.”
이번에 준성녀를 따라 마연에 갈 수 있는 자는 단지 30명뿐이었다. 따라서 시험을 통과한 50명은 세 번째 정원으로 들어가 최종 시험을 거쳐 30명 안에 들어야 했다.
항소운은 생각보다 복잡한 절차에 거부감이 훅 일었지만, 도귀가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마당에 돌아설 순 없었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곳의 규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항소운은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옥패를 하나 받았다. 놀랍게도 옥패 위에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백여 명의 젊은이가 전부 절차를 끝내고 나자, 중년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다들 준비하도록 해라. 내 압력을 받고도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버틴 50명만 통과하는 것이다.”
순간, 남자는 온몸에서 방대한 기세를 일으켜 백여 명의 젊은이를 완전히 뒤덮었다.
놀랍게도 남자는 입룡경 후기의 경지였다.
인황의 기세가 사납게 몰려들며 앞다퉈 짓눌렀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짓누르는 것만 같아 젊은이들의 자세는 점점 허물어졌고, 무공이 약한 자는 선혈을 토하며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항소운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다행히 인황의 기세가 오히려 자극제가 됐는지 9대 성진의 힘이 일제히 폭발하면서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남자는 인황의 기세를 일부 발휘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이었다.
이곳은 소왕급 무인들의 실력과 의지를 시험하는 자리였다.
이 정도 기세도 견뎌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우가의 사위가 된단 말인가.
게다가 마연에서 마족과 싸워야 했으니 이런 시험을 통해 가장 강한 자를 가려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보통 비천경 정점의 경지였다.
서른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비천경 정점이라면,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우가는 사위를 뽑는다는 목적이 있어서 딱히 비난받을 짓도 아니었다.
그래도 서막에서 명성이 자자한 집안인데 아무나 연회에 들인다면 면이 서지 않았다.
아무리 9대 성진의 힘이 돕고 있다 해도 무섭게 내리누르는 인황의 기세 속에 항소운은 숨이 턱턱 막혔다.
어쨌든 그는 아직 비천경 3품이라 다른 자들에 비해 경지가 한참 낮았다.
전력을 다하면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최후 50인 안에 들기는 무리였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땀투성이가 되어 무척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은 아직 안정적인 자세로 서 있었다. 물론 힘에 부치는 자도 더러 있었으나 다들 항소운보다는 상태가 괜찮았다.
특히 그중 십여 명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허리를 꼿꼿이 펴고 편안한 얼굴을 했다.
그들은 비천경 정점의 무인들로 적어도 9품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그들 주위로 용의 기운이 희미하게 넘실대고 있었다.
이미 용의 기운을 어느 정도 모은 걸 보니 입룡의 경지에 오를 날도 머지않은 것 같았다.
입룡의 경지에 오르면 용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진정한 용이 될 수 있었다.
그들 십여 명 중에는 용운천과 사 공자, 제동, 식해, 소균, 곽욱동 등이 있었다.
이밖에 또 눈길을 끄는 자들이 있었는데 성주부의 당용비(唐龍飛), 7품 세력 금각종(金角宗)의 금수(金水), 7품 세력 표묘봉(縹緲峰)의 약수풍(若隨風), 6품 세력 만수종의 소수황(小獸皇) 등이었다.
당용비는 성주 대인의 맏손자로, 이미 용의 기운을 절반이나 응집시켜 죄혈성의 젊은 세대 중 가장 뛰어난 자로 손꼽히고 있었다. 심지어 소균이나 나찰녀도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였고, 일찍이 죄혈 연무대에서 49차례나 연승을 거두면서 소왕의 경지를 넘어선 자로 유명해졌다.
이 일로 그는 죄혈성의 최강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그는 무공만 뛰어난 게 아니라 외모까지 수려했다. 손으로 빚은 듯 잘생긴 용모에선 굳센 의지와 비범한 기개가 느껴졌고, 용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편, 금수란 자는 금각종 현(現) 종주의 아들로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볼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차분한 표정이었으나, 가물거리는 용의 기운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금각종은 죄혈성 근처가 아닌 다른 소주의 세력이었다. 그는 아주 멀리서 이곳까지 찾아온 젊은 강자였다.
그리고 표묘봉의 약수풍 역시 대단한 요물로 알려져 있었다. 29세의 나이에 9품 비천경 후기에 올라 이미 용의 기운을 작게나마 갖추고 있었다. 그는 바람의 힘을 수련해서 작은 바람의 신, 소풍신(小風神)으로 불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수종의 소수황은 6품 세력 출신으로 여타 7품 세력의 천재와 비교하면 실력이 다소 낮았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요수와 교감이 깊어서 요수를 자기 뜻대로 부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옆에는 항상 최상급 요왕 여러 마리가 지키고 있어 소수황이라는 이름에 딱 걸맞았다.
이 밖에도 이들과 막상막하의 실력을 지닌 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역시 대단한 신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