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317
제317화 저세상으로 보내주마
천하의 그 누가 제대로 된 은신술을 구사한단 말인가.
하나, 4대 마족 중 하나인 명황족은 가능했다.
명영둔은 혈맥 속에 흐르는 천부적 재능을 사용해야 촉발되는 기술로, 육신이 주변 환경과 혼연일체가 되어 무형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명영둔을 사용해 달아나면 잡힐 염려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이 틈에 공격하면 실패 확률이 극도로 낮았다.
이래서 명영둔이 명황족의 3대 신기라 불리는 것이었다.
항소운은 명황족의 순수혈통은 아니지만, 명혼공간이란 신통한 재능을 타고난 걸 보니 명황족 중에서도 가장 강한 혈통의 직계 자손이 틀림없었다.
잔혼이 남긴 명황의 순수한 피를 삼키자, 혈맥의 순도가 한층 높아져서 명황족의 신통한 능력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한동안 쉴 새 없이 혈맥을 활성화하면서 그 안의 오묘한 이치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로써 명영둔을 수련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그렇게 한동안 적응을 거친 끝에 드디어 명영둔의 핵심을 깨닫게 되었다.
명황족이 명영둔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혈맥 속에 포함된 특별한 성질인 ‘은신’ 때문이었다.
혈맥이 육체와 주변 환경을 하나로 만들어 모습을 감추게 하는데, 다른 종족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혈맥의 힘을 쓰다 보니 명영둔은 시간적 제한이 따랐다.
지금 항소운은 어지러이 쌓인 돌밭에 있었다. 그는 기다란 창인 양 똑바로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바로 명상 상태에 들어갔다.
한참이 지난 후, 그가 소리를 질렀다.
“피야, 끓어올라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혈맥이 용솟음을 치더니 몸속 구석구석의 피가 기이한 변화를 보였다.
그리고 순간, 그의 몸이 돌밭과 혼연일체가 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은신한 채 갑자기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더니 근처에 있던 마황을 향해 돌진했다.
그것은 뿔이 여섯 달린 철마(鐵魔)로, 이 부근에서 서식하는 6품 마황이었다.
녀석은 넓은 공터에 엎드려 있었는데, 산처럼 거대한 몸집에 머리에는 철각(鐵角)이 여섯이나 달렸으며 단단하고 질긴 피부에는 철사 같은 털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이처럼 강한 상대는 선잠을 자는 상태에서도 만 리 안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항소운이 옆에 나타났는데도 녀석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잠에 푹 빠져있었다.
항소운은 뿔이 여섯 달린 철마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상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이만하면 명영둔 수련도 성공한 셈인걸.’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철마가 별안간 눈을 번쩍 떴다. 항소운은 깜짝 놀라 벌렁거리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 정도 마황이면 기습을 날려 상대를 죽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항소운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명혼공간을 해방하려 했으나, 철마가 다시 눈을 감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휴, 다행이다. 그럼 마음 놓고 저세상으로 보내주마.’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철마 곁으로 걸어갔다.
그는 철마의 목에 불룩 튀어나와 있는 돌출 부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부위의 피부는 다른 곳보다 몇 배는 두꺼웠다.
바로 철마의 급소였다. 이곳이 뚫리면 아무리 강한 철마라 해도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항소운은 살기를 번뜩이며 손에 든 환으로 철마의 급소를 힘껏 내리쳤다.
날카로운 무기가 철마의 급소를 단숨에 뚫었다.
컥!
철마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자, 마기가 사방에 가득 퍼졌다.
녀석은 최후의 발악을 하며 주변을 사정없이 뭉개버렸으나, 항소운은 이미 멀리 사라진 후였다.
강한 생명력을 지녔지만 급소가 뚫리는 바람에 녀석은 얼마 못 가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마치 인간이 심장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녀석에게는 그곳이 생명줄이었다.
덕분에 항소운은 너무나 쉽게 12만 점의 공적을 얻게 되었다.
다른 소왕급 무인들이 알게 된다면, 부러워 미칠 만한 일이었다.
항소운은 철마의 뿔 여섯 개를 그 자리에서 뽑고는 다른 중요 부위도 잘라서 잘 챙겨놓은 뒤 철마의 살을 구워 실컷 뜯어먹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귀문족에게 전부 넘겨주었다.
은자는 단 한 입도 먹지 않았는데, 녀석은 마연의 기운을 무척 싫어해서 성해건곤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항소운은 그런 은자를 못난 녀석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요수족이라 이곳의 환경에 적응이 안 된다 해도 모처럼 이곳까지 왔으니 당연히 밖으로 나와 전투력을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은자는 성해건곤에서 아홉 빛깔 구름을 느긋하게 즐기는 걸 좋아했고, 이미 그에 푹 빠진 것 같았다.
아홉 빛깔 구름만으로도 은자의 실력은 어느새 4품 요왕 후기에 이르러 5품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항소운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이 구름의 능력에 대해 더욱 기대가 커졌다.
하나 이곳은 아홉 빛깔 구름을 많이 응집시킬 수 없는 환경이라 마연에서 나간 후에야 구름을 강화할 수 있었다.
항소운은 바로 길을 떠나지 않고, 근처에서 마기석을 줍다가 옅게 붉은빛을 내는 새까만 최상급 현철(玄鐵)을 발견했다.
그는 그제야 만족한 듯 그곳을 떠났다.
그는 또 다른 마황의 구역으로 들어가 동일한 방법으로 마황을 몰래 죽였다.
현재 그가 가진 혈맥의 능력으로는 명영둔을 길어야 반각(半刻: 약 7~8분)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이라 할 수는 없지만,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공이 더욱 강해진다면, 은신할 수 있는 시간도 훨씬 늘어날 터였다.
그는 되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에 마수를 닥치는 대로 죽인다면 목적지에 이를 때쯤 공적도 웬만큼 쌓일 것이다.
3층에서는 한 무리의 강력한 인마가 입룡경 정점의 인황을 상대로 포위를 바짝 조이고 있었다.
무리는 족히 오십 명이 넘었는데, 다들 입룡경의 인황이었다. 그중 우두머리는 입룡경 정점의 인황으로, 수하만 해도 9품 인황이 두 명이나 됐으며 나머지도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이었다.
이들은 강력한 요수를 타고 근처를 빈틈없이 봉쇄하고 있었다. 이곳에 살던 마황들도 이들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한 상태였다.
포위를 뚫고 달아나려던 인황은 출로가 전부 막히는 바람에 적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자는 서른다섯 남짓의 나이로 무척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형형한 눈동자에선 굳은 결기가 느껴졌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며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으나, 사람 두 명만 한 거대한 선홍빛 혈석(血石)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한파군(韓破軍), 네게 날개가 있다 해도 살아서 도망치진 못할 것이다. 혈견석(血繭石)을 내놓으면 네 목숨만은 살려주마!”
우두머리가 혈석을 든 남자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무리는 혈살방이었다. 그중 우두머리는 혈살방의 둘째 군주인 혈사(血砂)였다.
혈석을 받치고 있는 남자는 한파군으로, 한씨 자매의 숙부이자 한씨 가문의 2대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지도자였다.
한씨 가문은 제존급 인물을 단 한 명 배출했기 때문에 여전히 최상급 5품 세력에 머물러 있었다.
제존급 인물을 두 명 이상은 배출해야 6품 세력에 진입할 희망이 있는데, 한씨 가문에서 혼태경에 오를 수 있는 유력한 인물로는 이 한파군이 손꼽히고 있었다.
그는 남다른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백 살도 되지 않은 자가 입룡경 정점에 이르렀으니, 5품 세력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혈살방 무리에 둘러싸여 옴짝달싹도 못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바람에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 조무래기들아, 혈견석은 네놈들에게 절대 넘겨줄 수 없다. 내 친구가 이 안에 있으니, 혈견석을 가질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라!”
한파군이 혈석을 내려놓으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흥, 그렇단 말이지. 그럼 너희 두 놈을 저세상으로 함께 보내주마!”
혈사가 난폭하게 소리치며 앞장서 달려 나갔다.
옆에 있던 9품 고수 둘도 동시에 공격을 전개했다.
한파군은 무척 까다로운 상대라서 지금 죽이지 못하면 언제든 달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한 한파군이라 해도 지금은 힘이 다 소진된 상태라 세 명의 고수가 동시에 협공하자, 또다시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래도 저력이 있는 인물이라 부상에도 불구하고 9품 인황 중 한 명을 단숨에 죽여버렸다.
하나, 그 틈에 혈사가 일격을 날리자 중상을 입고 말았다. 한파군은 혈견석 옆에 풀썩 쓰러져서 더는 싸울 힘조차 없어 보였다.
“한파군,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다!”
혈사는 상대의 목숨을 끊어놓겠다는 각오로 다시 공격을 날렸다.
그 순간, 갑자기 혈견석에서 예리한 도광이 응집되더니 혈사를 향해 쭉 날아갔다.
“도의? 이제 보니 혈견석 안에는 두훤호 그놈이었군. 혈견석을 손에 넣을 수 없다면, 네놈도 철저히 망가뜨려 주마! 죽여라!”
혈사가 짙은 살기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리는 한파군과 혈견석을 향해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다.
“친구, 미안하네.”
한파군이 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바람처럼 빠르게 다가와 한파군과 혈견석을 들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파군은 평소 거만한 자라 친구가 별로 없어서 죽음을 앞에 둔 순간, 누군가 자신을 구해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적이 발생하여 절체절명의 순간, 누군가 자신을 구해준 것이다.
요란한 폭발음이 사라지고 나자, 혈사는 수하들에게 공격을 멈추라고 명했다. 한파군과 혈견석이 있던 자리를 보니 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다른 쪽을 살펴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 중얼거렸다.
“설마 명옥마?”
평범한 명옥마라면 그가 이렇게 겁내지도 않을 터였다. 이들 무리는 날래고 용맹해서 마수가 떼를 지어 나타나지 않는 한,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이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붓는 가운데 명옥마가 나타나 사람을 구해갔다면, 필경 그 명옥마는 평범한 녀석이 아닐 터였다.
자세히 감응해 보니 명옥마 옆에서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한 소년으로, 달처럼 둥그런 눈동자에 검은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용과 호랑이의 기세를 내뿜었고 어린 나이지만 위엄이 넘쳤다. 어떤 소녀가 본다 해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매력적인 젊은이였다.
그 젊은이는 바로 항소운이었다.
그는 원래 성가신 일을 싫어하고, 스스로 자신을 그리 좋은 사람이라 여기진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서서 돕고 있었다.
금수나 능린, 수사가 그러했고 한씨 자매나 한파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비록 자신을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리 보지 않았다.
그는 한파군이 혈살방 무리에게 둘러싸여 죽을 위험에 처했어도 선뜻 나설 생각이 없었다. 설령 한파군이 한씨 자매와 아는 사이라 해도 나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남의 일에 간섭할 만큼 심적 여유는 없었다.
그런데 혈견석 안에 두훤호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나자, 도저히 모른 척을 할 수 없었다.
두훤호는 수련을 위해 항소운보다 먼저 마연에 들어간 상태였다. 두훤호의 실력이면 3층에서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항소운은 3층에 도착해서도 굳이 그를 찾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이곳에서 위험에 빠진 두훤호를 마주치게 됐으니 당연히 도울 수밖에 없었다.
두훤호는 자신의 추종자이지만, 그는 두훤호를 큰형님처럼 존경하고 있었다. 누님인 획쟁 때문이 아니라 두훤호의 인품을 높이 평가했다.
“너, 너는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