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331
제331화 편히들 얘기 나누십시오
두 사람이 대전으로 들어가자, 나찰녀가 대전의 정중앙에 앉은 청귀에게 공손히 말을 건넸다.
“교주님, 항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파란 도깨비 가면을 쓰고 있는 청귀는 유난히 험상궂어 보였다.
“그런데 저자는 누구냐? 왜 상관도 없는 자를 들여보낸 거지?”
청귀는 이렇게 말하며 불쾌한 시선으로 서귀를 훑어보았다.
나찰녀가 설명하려 하자, 항소운이 먼저 나섰다.
“이건 나찰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제가 이 사람도 꼭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흥, 네게 대답하라고 한 적 없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데려오지 않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청귀가 살기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그러자 별안간 서귀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 아주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설마 우리 둘을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청자(靑刺)야!”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청귀가 옆에 있던 옥 탁자를 내리쳐 산산조각을 냈다. 그의 파란 눈동자는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순식간에 거대한 힘이 대전을 뒤덮자, 그 바람에 항소운과 서귀는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청귀가 손가락만 까딱하면 두 사람은 바로 죽은 목숨이었다.
“청자야, 지금 이 스승을 죽이려는 게냐?”
서귀가 근엄한 음성으로 호통을 쳤다.
동시에 그의 영혼이 밖으로 나와 노기 띤 얼굴로 청귀를 노려보았다.
청귀는 상대의 영혼을 보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방금까지 두 사람을 죽일 듯 내리누르던 엄청난 기세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나찰녀에게 손짓하자, 그녀는 무형의 손에 이끌려 대전 밖으로 밀려났다.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드리워지면서 이곳은 바깥세상과 단절이 되었다.
“스, 스승님?”
청귀가 자리에서 일어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 세상에서 나 말고 네 아명을 아는 자가 또 있더냐?”
서귀는 담담히 말을 뱉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설마 이 스승도 몰라보는 건 아니겠지?”
청귀는 몇 걸음 앞으로 걸어와 양 무릎을 꿇고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제자, 스승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는 영고호남의 모습을 한 서귀를 알아보지는 못했으나, 스승의 영혼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명이 ‘청자’라는 건 오직 스승님만이 알고 있었다.
청귀라는 이름은 서귀의 문하로 들어온 뒤 바꾼 이름이었다.
청귀는 죄혈성에서 가장 무공이 뛰어난 사람 중 하나로, 이미 제존을 초월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자가 인황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 장면을 성안의 늙은 요물들이 봤다면 너무 놀라 턱이 빠졌을 것이다.
“허허, 그래도 아직 이 스승을 잊진 않은 게로구나.”
서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어느새 영혼은 서귀의 몸속으로 돌아가 있었다.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제자는 스승님이 돌아오시기를 자나 깨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항 대인께서 화를 당하신 후, 스승님을 찾으러 바로 항가(項家)에 갔으나 항가는 정신이 없는 상태였고 저 역시 실력이 미천하여 항가 문턱도 넘지 못했습니다. 그 후, 항가가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만 년 동안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스승님의 소식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곳으로 돌아와 귀면교를 키우게 되었고요. 그런데 다행히 하늘이 도와 오늘 이렇게 스승님을 다시 뵙게 된 겁니다.”
청귀의 눈빛에선 진심이 묻어났다.
청귀가 서귀에게 이토록 극진한 이유는 예전에 서귀가 잘해줘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서귀는 제자들에게 유난히 엄격해서 수련을 시킬 때면 제자의 생사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이런 혹독한 수련에도 청귀는 스승님의 깊은 은혜를 절대 잊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 도적 떼에 의해 부모를 잃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먹을 것이 없다 보니 개밥을 뺏어 먹기도 하고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며 거지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한번은 개밥을 훔치다가 개에게 물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개 주인이 뛰어나와 죽도록 때리더니 강제로 똥오줌까지 먹이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그는 눈물과 핏물이 뒤범벅된 얼굴로 살기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이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서귀가 그를 구해주었다.
서귀는 장법으로 개와 개 주인을 날려버리고는 어린 그에게 말했다.
“꼬마야, 앞으로 내 곁에 있거라. 내 너에게 개를 때리는 법을 알려주마.”
이렇게 해서 작고 어렸던 청자는 서귀의 가장 어린 제자가 되었고, 이름도 ‘청귀’로 바꾸었다.
그는 그날 서귀가 했던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 그 후, 스승님이 혹독하게 수련을 시켰어도 그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쓴소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승님으로부터 진짜 ‘개를 때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이로써 존엄을 갖춘 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지, 미처 은혜를 갚기도 전에 스승님께 화가 닥쳤다.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소식을 알 수 없자, 그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항가는 중원을 거의 장악하면서, 각 주(州)의 큰 세력들을 복종시킬 뻔했으나 결국 최상급 세력들이 연합하는 바람에 항정천이 붙잡히게 되었고, 그의 스승은 항정천의 5대 장군 하나였으니 당연히 화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스승은 무사했다.
비록 스승의 모습이 예전과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존경심이 사라지진 않았다.
스승님이 돌아가시진 않았어도 그만큼 큰 변화를 겪으면서 이런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무공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남의 육신을 빼앗아 다시 살아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서귀는 극진히 예의를 갖추는 청귀를 보며 모처럼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흘렀다.
“자, 그만 일어나거라. 네가 이 스승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하느니라.”
그제야 청귀도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는 서귀를 상석에 앉도록 청했다.
“스승님, 앉으시지요.”
그러자 서귀가 항소운을 보며 말했다.
“소주님, 상석에 앉으시지요.”
순간, 청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그저 복잡한 눈빛으로 항소운을 보았다.
문득 그는 스승이 예전에 모셨던 주인과 항소운이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 단지 더 젊어졌을 뿐이었다.
‘혹시 저 소년도 항 대인이 새 육신을 빌어 살아나신 건가?’
청귀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때, 항소운이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이곳은 청귀 교주님의 구역이니, 저분이 앉든지 아니면 자네가 앉는 게 좋겠어. 난 괜찮네.”
“소주님은 제 주인이시고 이 아이는 제 제자입니다. 소주님이 상석에 앉지 않는데 어찌 저희가 감히 앉겠습니까? 청귀는 그런 걸로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아무 걱정 마십시오.”
서귀가 몹시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청귀는 잠시 머뭇거리다 한마디 거들었다.
“맞습니다. 소주님, 상석에 드시지요.”
그는 스승을 뼛속 깊이 믿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이 소년이 소왕의 실력이긴 하나, 필경 예사롭지 않은 신분일 터였다.
그러니 4대 학당의 대인들도 이 소년을 특별 제자로 데려가려고 실랑이를 벌인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항소운이 청귀를 보며 말했다.
“훗날 제 무공이 교주님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면, 그때 이 자리에 앉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스승님을 만나 할 얘기가 많으실 테니, 편히들 얘기 나누십시오. 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비록 서귀가 소주님으로 모시고 있기는 하나, 그도 자신의 주제는 잘 알고 있었다. 경솔하게 상석에 앉는다면, 청귀도 마음이 불편할 터였다.
서귀는 한마디 하려다가 항소운의 확고한 표정을 보고 말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우선 바깥을 둘러보고 계시지요. 전 청귀와 얘기 좀 나누겠습니다.”
그러자 청귀가 즉시 나찰녀를 불렀다.
“나찰녀, 네가 책임지고 항 도련님을 잘 챙겨드려라. 혹여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네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대전을 가로막던 힘이 사라지자, 나찰녀가 안으로 들어와 공손히 말했다.
“예, 교주님.”
그녀는 곧장 항소운에게 말했다.
“항 도련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항소운은 나찰녀를 따라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가고 나자, 청귀는 다시 서귀에게 상석을 권했다.
이번에는 서귀도 거절하지 않고 성큼 걸어가 늠름한 자태로 상석에 앉았다.
서귀가 청귀에게 말했다.
“네가 묻고 싶은 게 많을 줄로 안다. 이제 자세히 말해줄 테니 잘 듣거라.”
청귀는 서귀가 지난 세월 동안 겪은 일을 숨죽이고 경청했다.
서귀는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얘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떻게 혼천 아래에 감금이 되었고 항소운이 어떻게 자신을 구했는지, 그리고 어쩌다 지금 모습이 됐는지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청귀는 송구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제자가 무능하여 스승님이 그리 고생하신 줄도 몰랐습니다.”
“이게 뭐 고생이라고. 이렇게 다시 살아났으니 그동안 받았던 걸 하나하나 되돌려주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서귀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제가 스승님이 안 계시는 동안 귀면교를 발전시켰습니다. 미력하나마 스승님께 도움이 될 겁니다.”
청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서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혼자 힘으로 전천(戰天)의 경지에 오르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한데 지금 실력으론 최상급 세력과 견줄 수 없다.”
전천의 경지는 전천 성인의 경지라 불리기도 한다. 바로 혼태경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경지였다.
전천의 경지에 오르면 환골탈태하여 성체(聖體)가 되고 대자연에 대항할 힘이 생기며, 손을 휘두르면 천지가 뒤집히고 발을 내디디면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보통 사람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이 경지에 오르면 만년의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전천의 경지에 오른 청귀는 어디를 가나 주목받는 아주 강한 인물이 되어있었다.
이런 자는 7품 세력도 충분히 창시할 수 있는데, 귀면교 역시 7품 세력에 해당했다.
다만 귀면교는 활동 무대를 죄혈성에 국한하고 조용히 움직이는 터라 이들의 진정한 저력을 아는 자는 많지 않았다.
“스승님께 비하면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청귀가 겸손히 대답했다.
“음, 네 경지도 높아졌으니 스승이 그동안 쌓은 경험과 완전한 전결을 네게 전수해주마. 분명 네게 도움이 될 거다.”
서귀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나 반드시 소주님께 충성해야 한다. 안 그랬다간 스승이고 뭐고 없을 줄 알아!”
“스승님, 혹시 소주님이 항 대인입니까?”
청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뭐 아니기도 하고.”
서귀가 단정 짓기 어렵다는 듯 말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주인님이 맞든 아니든 아무튼 중요한 건 그분이 주인님의 전승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항가의 직계 자손이기도 하지. 그래서 나도 그분을 소주님으로 택하게 된 거고, 주인님께서 못다 이루신 꿈을 그분이 이룰 수 있게 돕고 싶은 거란다.”
“항 대인인지 확실치도 않은데 스승님께서는 왜 그리 그분을 고집하시는 겁니까? 그러지 말고 귀면교로 돌아오세요. 교주 자리는 스승님께 드리겠습니다. 우리 귀면교도 크게 번창해서 패업(覇業)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청귀가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서귀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스승의 매서운 눈빛 앞에 청귀는 내심 두려워졌으나, 이제 그도 예전의 어린 제자가 아니었다. 그는 곧장 대답했다.
“스승님의 능력이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다른 사람 밑에 계신단 말입니까?”
“흥, 남 밑에 있기 싫은 건 바로 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