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335
제335화 성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일전에 그는 항소운에게 한파군의 청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항소운에게 자신의 체면은 상관 없으니, 가장 재능이 뛰어나고 충성스러운 자를 수행원으로 선택하라고 일렀었다.
그러나 항소운은 결국 한파군의 청을 들어주었고, 게다가 두 자리를 선뜻 얘기하자 몹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항소운이 자신의 체면을 세워줬다는 생각에 솔직히 감동했다.
항소운은 항소운대로 나름 생각이 있었다.
우선 신뢰가 쌓이지 않은 낯선 자를 수행원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충성심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고 한씨 자매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장차 그녀들의 수련 재능을 완벽하게 다듬는다면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두훤호와 한파군의 관계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이상, 항소운이 그녀들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는 한씨 자매가 충성하도록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한파군은 항소운과 몇 마디를 더 나누고는 서둘러 조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씨 자매는 마침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걸 보니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았다.
“언니, 얼마 안 있으면 항소운이 용봉 학당에 갈 텐데 앞으로 다시 만나긴 힘들겠죠?”
한설유가 언니 한천유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한천유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러겠지. 그자는 잠룡(潛龍)이잖아. 언젠가는 하늘 높이 훨훨 날 텐데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어찌 같이 날 수 있겠어?”
자매는 항소운과 얼마 남지 않은 이별 때문에 슬퍼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들의 마음속엔 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때, 밖에서 한파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유, 설유야, 밖으로 나와 보거라.”
자매는 무슨 영문인가 싶어 밖으로 나갔다.
한천유가 물었다.
“숙부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주 즐거워 보이세요.”
“하하, 좋은 일이 있지. 아주 어마어마한 일이 생겼단다!”
한파군이 기분 좋게 웃더니 곧장 얘기를 털어놓았다.
“항 도련님께서 너희를 데리고 용봉 학당에 가겠다고 약속하셨단다.”
“진, 진짜요?”
자매가 동시에 물었다.
“진짜고 말고. 이 숙부가 체면 불고하고 어렵사리 얻은 기회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한파군이 진지한 얼굴로 당부의 말을 건넸다.
자매는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직 기뻐하긴 일러. 항 도련님 말이 두 친구가 시험에 통과해야만 너희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구나. 만약 친구들이 떨어지면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이다.”
한파군은 항소운이 제시한 조건을 한천유와 한설유에게 들려주었다.
자매는 그 얘기를 듣고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굴러들어온 복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너희가 항 도련님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건 안다. 그래서 너희 중 한 사람을 도련님의 짝으로 맞춰주려 했는데 그분이 동의하질 않더구나. 그저 너희에게 바라는 건 충성심을 갖고 보필하는 거라고 했어.”
한파군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한씨 집안의 여식을 항소운에게 시집보낸다면 든든한 배경이 생기는 셈이니 한가에 이만큼 좋은 일은 없었다.
숙부의 말에 자매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한파군은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낙담할 필요 없어. 앞으로 항 도련님과 지낼 시간이 많을 테니 너희가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면 그분도 마음이 흔들릴 거다. 남자는 여자 마음을 얻기 힘들어도 여자는 또 다르지. 그러니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너희 자신에게 달렸어.”
“설유야, 넌 온화하고 다정다감하니까 항소운도 분명 널 좋아하게 될 거야.”
한천유가 말했다.
“아니에요, 언니. 전 너무 멍청한걸요. 언니는 똑똑하니까 소운이는 언니를 좋아할 거에요.”
한설유가 말했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항소운은 나한테 호감도 없는걸. 그 애는 널 신경 쓴다고.”
“말도 안 돼요. 언니는 소운이한테 좋은 대책도 알려줬잖아요. 전 바보같이 아무것도 모르는데, 절대 절 좋아할 리 없어요.”
자매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 양보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한파군이 끼어들었다.
“뭘 서로 양보하고 그래? 이 숙부의 말을 못 들었느냐? 항 도련님은 지금 너희 두 사람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니까 그러네.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우선 열심히 수련해서 네 존재를 각인시켜야 하는 거란다. 결국 항 도련님이 누굴 좋아하게 될지는 하늘만이 알 수 있겠지.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자매간의 우애가 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알겠느냐?”
“예, 숙부님.”
자매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래, 그럼 됐다. 용봉 학당에 가거든 열심히 수련해서 꼭 항 도련님을 따라잡아야지, 절대 뒤처져선 안 돼. 무엇보다 너희 체질을 보완할 수 있는 기물을 찾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장차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한파군은 저축계 두 개를 꺼내 조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며 말했다.
“이 안에 수련 자원들이 들어있으니 요긴하게 쓰도록 해라. 어쩌면 너희 두 사람이 장차 우리 집안을 이끌어갈 수도 있단다.”
자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항소운은 두훤호에게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인계하고 있었다.
그는 두훤호가 서귀를 도와 고루방에서 괜찮은 인재를 선별하여 장차 그를 위해 힘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곳의 자원은 당전이나 청귀가 사람을 보내면 함께 관리하기로 했다.
지금은 이런 일을 직접 처리할 시간이 없어서 두훤호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루빨리 무공을 높이는 것뿐, 앞으로 이곳이 어떻게 될지는 시간이 증명해줄 터였다.
인계를 다 마친 후, 그는 천고루 등 3대 방주를 불러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항소운이 어떤 말을 하든 세 사람은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의 실력도 꽤 괜찮은 편이라, 그는 서귀가 이들을 제존 경지까지 올려놓길 바랐다.
그는 당초 유혼화란 약초를 이용해 천고루가 혼태를 응집하도록 도울 생각이었으나, 결국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혈살방이 없어졌으니 천고루가 혼태경에 빨리 올라야 할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유혼화를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명황족의 혈맥이 깨어나면서 유혼화가 명혼공간을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알게 된 것이다.
다음 날, 항소운이 성주부에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를 뵙고자 찾아왔다며 수하가 아뢰었다.
그들은 죄혈성에서 이름깨나 있는 세력들로, 목적은 단 하나 수행원 자격을 얻기 위해서였다.
항소운은 한숨을 푹 쉬며 수하에게 이르길, 수행원 자리는 이미 찼으니 그만 돌아가라고 전하라 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언짢은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잠시 후, 항소운은 성주부로 향했다.
이젠 서살이 귀찮게 하진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성주부와 귀면교가 동시에 성명을 내서 죄혈성에 들어오는 서살 무리는 전부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성안 사람들은 거대 세력들이 왜 동시에 저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서살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두 세력의 경고를 무시할 배짱은 없다고 생각했다.
항소운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거대한 산이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는 쉴 새 없이 기를 운용해 갑옷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천만 근의 갑옷이 원망스럽기는커녕 한가로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 보니 어느덧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죄혈성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이 강해진 것도 기뻤지만, 자신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체내의 혈맥이 각성하는 등 여러 문제가 술술 풀린 것이다.
이로써 수련 방향이 더욱 확고해졌고, 어머니의 행방을 찾는데 실마리가 잡혔다.
깊이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사방에서 여인들이 추파를 던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항소운이 아랑곳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자, 여인들은 입을 샐쭉했다.
모처럼 잘생기고 범상치 않은 소년을 봐서 마음이 설렜는데, 상대는 그녀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얼마 후, 항소운이 성주부에 거의 도착할 무렵 누군가 앞을 막아섰다.
“항 도련님, 우월각으로 모셔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웬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누구신지요?”
항소운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상대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우월각으로 모신다고 하는 걸 보니 필경 우가(虞家) 사람일 터였다.
“제 이름은 엽엽(葉燁)으로, 우주(虞州) 엽가(葉家)의 집사 노릇을 하고 있지요. 저희 도련님께선 항 도련님의 명성을 익히 들으시고 이렇게 저를 보내 꼭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엽가? 그런 가문은 들어본 적도 없고, 지금은 시간도 없습니다.”
항소운은 주저 없이 거절했다.
“항 도련님, 그렇게 거절부터 하진 마십시오. 저희 도련님께선 우가 외척의 자손으로, 우가와 가족이나 다름없지요. 항 도련님께선 우가 준사위의 자격을 얻으셨으니, 저희 도련님과도 대화가 잘 통하실 겁니다.”
엽엽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자 항소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진짜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급할 것 없습니다. 저희 도련님과는 오늘 밤 만나셔도 됩니다.”
상대가 집요하게 나오자, 항소운도 우채접의 체면을 생각해서 하는 수 없이 승낙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밤 약속장소로 가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상대는 이렇게 말하며 항소운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한쪽으로 물러섰다.
항소운은 별다른 생각 없이 성주부의 정문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상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멈춰라! 누구길래 감히 성주부에 들어오려는 것이냐?”
아직 가까이 가지도 않았는데 정문을 지키던 병사가 다짜고짜 큰 소리로 외쳤다.
“전 항소운이란 자로, 성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항소운이 태연히 대답했다.
“아, 항 도련님이셨군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병사는 항소운의 이름을 듣더니 험상궂던 얼굴이 금세 공손하게 변했다.
항소운이 찾아오거든 바로 안으로 모시라는 당용비의 분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의 말에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성주부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성주부는 큰 성이라 불리는 죄혈성에서도 압도적인 권력을 지닌 대단한 세력이었다. 그런데도 그 안은 널찍하고 고풍스럽기는 해도 필요 없이 화려하진 않았다.
희귀한 석재로 포장된 돌길을 지나 대전에 다다를 무렵, 당용비가 나는 듯 달려 나와 항소운을 맞이했다.
“소운아, 드디어 왔구나. 이거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드네.”
당용비가 기뻐하며 말했다.
“당 형, 미안해요. 요 며칠 처리할 일이 많아서요.”
항소운이 미안한 낯으로 말했다.
“그 정도는 형님도 이해하지. 자, 어서 안으로 들어와. 아버지께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셔.”
당용비는 항소운의 손을 잡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당용비의 따뜻한 환대에 항소운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대전으로 들어가니, 당전이 상석에 앉아 있었다.
당전 뿐만 아니라, 좌우 양쪽으로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당용비가 데려온 항소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성주의 공자가 친히 맞이하러 나간 자가 누군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대는 나이 어린 소년이었다.
“조카, 백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항소운이 당전에게 예를 올렸다.
“소운아, 마침 잘 왔구나. 네게 소개할 친구들이 있단다. 이쪽은 우신백(宇臣伯)으로, 편하게 우 백부라 불러도 된다. 이 아이는 딸인 우문황(宇文凰)이고, 그리고 이쪽은 언본개(言本開)와 아들인 언성추(言聖秋)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