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340
제340화 명심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사흘이 지나가고, 드디어 용봉 학당으로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이날은 바람도 잔잔하고 날씨도 맑아 죄혈성의 온 하늘이 청명했다. 마치 상공을 뒤덮고 있던 마기와 혈기까지 엷어진 것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목욕 재개를 마친 항소운은 한씨 자매, 서귀와 함께 곧장 귀면교로 향했다.
도착한 곳엔 나찰녀가 벌써 나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식인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몸에 꽉 끼는 무사복은 그녀의 터질듯한 가슴을 도드라지게 했고, 한씨 자매는 나찰녀를 보며 왠지 모를 열등감을 느꼈다.
용모만 놓고 보자면 한씨 자매가 절대 뒤지진 않지만, 전체적인 몸매는 나찰녀가 월등히 뛰어났다. 게다가 그녀는 평범한 여자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거친 야성미까지 있어 남자의 욕망을 자극했다.
“가죠.”
항소운이 나찰녀의 손을 잡으며 담담히 미소 지었다.
“네.”
나찰녀는 항소운에게 손을 맡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경을 본 순간, 한씨 자매는 몽둥이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자매는 언제쯤 항소운의 여인이 될 수 있을지 줄곧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항소운이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있는 걸 보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한천유는 괴로운 심정을 가까스로 눌렀으나, 한설유는 그만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항소운은 그런 한설유를 보며 설명도 않고, 그저 나찰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한천유는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상대를 욕할 이유도 없었다.
항소운은 이미 숙부를 통해 그녀들에게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었다.
다시 말해서 항소운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 해도 수행원인 자신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었다. 반면, 그녀들은 도련님인 항소운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사실 항소운이 나찰녀의 손을 잡은 건 일부러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만약 한씨 자매가 이 정도도 견뎌내지 못한다면, 수행원이 될 자격도 없었다.
“설유야, 울지마. 그럼 저 못된 놈이 우릴 우습게 볼 거라고. 세상에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저만 좋아할 줄 아나 보지!”
한천유가 한설유에게 전음을 보냈다.
동생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지만, 실은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했다.
한설유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가요, 언니. 우린 저 사람의 연인이 아니라, 수행원이잖아요. 그러니 상심할 자격도 없어요.”
마음 아파하는 동생을 보며 한천유가 말했다.
“많이 힘들면, 우리 지금이라도 관둘까?”
그러자 한설유가 금세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아뇨, 전 이제 약자는 되기 싫어요.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어요.”
한천유는 그런 동생에게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앞서가는 남녀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만 복잡해졌다.
나찰녀는 한씨 자매가 뒤따라오는데도 항소운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묻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는 것으로 족했다.
확실히 나찰녀는 다른 여자들과 달랐다.
어려서부터 받은 훈련과 환경 때문인지 그녀의 사고방식은 한씨 자매처럼 순진하진 않았다.
지금은 남자가 처첩을 여럿 거느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설령 항소운이 한씨 자매에게 다른 뜻을 품고 있다 해도 그녀는 놀랄 사람이 아니었다.
얼마 후, 그들은 성주부에 도착했다. 당용비와 우문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성추는 먼저 떠났다고 했다.
이게 다 항소운 때문에 엽가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언가는 우주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엽가의 눈치를 자연히 볼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우문황은 걱정이 적었고 당용비를 마음에 두고 있어서 끝까지 남아있었다.
이때, 당전과 우신백이 밖으로 나왔다. 당전은 활짝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격려했다.
“이번에 용봉 학당에 가서 너희들 모두 바라는 대로 시험에 합격하길 바라마.”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당용비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우신백도 딸에게 몇 마디 당부의 말을 건넨 뒤, 일행은 용봉 학당을 향해 떠났다.
일행은 용봉 학당까지 날아가는 대신 죄혈성에 있는 순간 이동진을 이용해 용봉 학당 근처까지 가기로 했다.
다른 지역에는 용봉 학당 근처까지 가는 순간 이동진이 없을지 몰라도 죄혈성이라면 없을 수 없었다.
죄혈성은 중원에서 가장 중요한 요지이다 보니, 4대 학당에서도 이따금 제자들을 이곳으로 보내 경험을 쌓게 했다. 그래서 성안에는 특별한 순간 이동진이 있었다.
순간 이동진은 성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4대 학당의 장로들이 지키고 있어 4대 학당 소속이 아닌 자들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당용비는 위치를 알고 있는 터라 일행을 데리고 빠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하고 보니, 이곳은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은폐된 장소도 아니었다.
이미 많은 젊은이가 그 앞에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천경 후기의 경지였다.
그들은 강한 요수를 타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항소운과 당용비 등이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집중되었다.
당용비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사를 했고, 안면이 없는 자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를 건넸다.
당용비도 담담한 태도로 반응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배경과 재능을 지닌 자들이라, 아무리 그가 죄혈성 성주의 아들이라 해도 그들에게 등을 돌릴 순 없었다.
“여기에는 순간 이동진이 총 네 개 있는데, 용봉 학당 것은 저쪽이야.”
당용비는 이렇게 말하며 앞장서 걸어갔다.
그곳에는 혈기 왕성한 노인 한 분이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젊은이들이 건네는 옥패를 받고 있었다.
이 옥패는 일종의 통행증이자 신분증이었다.
항소운이 특별 제자의 옥패를 꺼내며 노인에게 말했다.
“전 이 두 사람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노인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항소운을 보더니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풍류를 좋아해서 그렇지, 아주 훌륭한 아이구나. 학당에 가거든 남녀 간의 사랑일랑 접어두고,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거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노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확인했다.
순간 이동진은 일정한 수가 모여야 작동이 가능했다.
죄혈성에서 용봉 학당까지의 거리가 멀기도 하거니와, 이동 횟수에 따른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다들 시험을 보러 가는데 유독 항소운만이 특별 제자다 보니, 다들 열망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상대에게 이미 수행원이 있다는 걸 알고는 금세 실망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너도나도 다가와 인사를 했다. 용봉 학당의 제자가 되겠다는 목표는 같으니 미리 얼굴을 익혀 잘 지내보자는 뜻이었다.
항소운과 당용비도 오만한 기색 없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얼마 후, 인원이 갖춰지자 드디어 용봉 학당으로 출발했다.
용봉주(龍鳳州)에 위치한 용봉 학당은 용봉주 전체를 관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동령대주(東嶺大州)와 남황대주(南荒大州)의 경계 지역으로, 두 주(州)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소주(小州) 하나의 면적은 성(城) 수백 개에 해당하며, 인구만 해도 수백 조에 이르러 규모가 상당했다.
그러나 용봉 학당이 있는 용봉주는 인구가 많지 않았는데, 첩첩산중이다 보니 사람보단 요수족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이종(異種) 생명체들이 이 깊은 산속을 좋아했다.
용봉 학당은 용봉 산맥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면이 사방으로 둘러싸인 데다 요수족과 서로 인접하여 천연 요새나 다름없었다.
항소운 일행은 순간 이동진을 통해 용봉 산맥 외곽에 위치한 용봉 성지(城池)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상품(上品) 수정을 수도 없이 사용한 끝에 서막대주를 건너 이곳에 이를 수 있었다.
용봉 성지는 중원에서 가장 번화한 성지 중 하나로, 용봉 학당이 직접 관할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광경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사면팔방으로 쭉 뻗은 길에는 마차가 쉴 새 없이 오가며 활기찬 기운을 내뿜었다.
이곳에는 용봉 학당의 역대 제자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각 지역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성안은 싸움이 일절 금지여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용봉 학당 집법대(執法隊)의 처벌을 받게 된다. 이 점에선 죄혈성과는 완전히 달랐다.
다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들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제사매들, 이곳에 온 걸 환영한다. 난 너희들의 바로 윗사형인 휴역(休易)이야.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테니 우선 휴식부터 취하면서 시험을 기다리도록 하지.”
서른 살 남짓의 남자가 말했다.
항소운은 휴역이란 자를 잠자코 살펴보았으나, 상대의 무공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보아하니 보통 실력이 아닌 듯했다.
젊은이들은 휴역에게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휴역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숙소로 안내했다.
용봉성은 용봉 학당에 속하여 이곳의 시설이며 자원도 전부 용봉 학당 것이었다. 성안에 거주하거나 장사를 하려는 사람은 거액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했다.
다만 용봉 학당에 엄청난 공헌을 한 자는 일정한 땅을 개인 소유로 가질 수 있는데,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에 팔 수 없었다.
용봉 학당은 이곳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다른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전면적으로 막고 있었다.
항소운을 비롯한 젊은이들은 휴역을 따라 걸으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각 지역에서 날고 긴다는 천재들이었지만, 용봉성처럼 거대한 성은 처음 와보는지라 흥분된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빽빽이 늘어선 건물들은 호화롭기 그지없었으며, 가는 곳마다 상점이 즐비하고 온갖 물건을 다 파는 데다 거리는 인파로 넘쳐나서 그야말로 큰 성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큰 주루 앞에 도착했다. 용이 꿈틀거리듯 정교하게 조각된 용기둥이 주루를 단단히 받치고 있었고, 번쩍 들린 높은 처마는 붉은 기와가 화려함을 더했으며 황색 벽과 격자무늬 창에선 고상한 기품마저 느껴졌다.
주루 현판에는 ‘용봉 주루’라는 네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용사비등(龍蛇飛騰: 용과 뱀이 날아오르는 것처럼 글씨가 힘차다는 뜻)의 필체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힘이 있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현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용봉 학당의 사업장 중 하나로, 새로 들어온 제자들을 접대하는 곳이었다.
휴역은 앞장서서 주루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수천 방에 달하는 주루 안에 젊은이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앉아 있는 풍채만도 위풍당당해서 단단한 자신감이 느껴졌고, 무공 역시 비천경 정점이었다.
그들도 용봉 학당에 시험을 보러 온 젊은이들이었다.
휴역은 항소운 등을 아무도 없는 쪽으로 데려가서 앉으라고 한 뒤 입을 열었다.
“곧 있으면 주루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그 후엔 객실표를 나눠줄 거다. 사흘 후, 전부 모이면 시험을 진행하게 될 거고.”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들에게 몇 가지 당부할 말이 있다. 첫째, 소란을 피우거나 개인적인 싸움은 금물이다. 혹여 발각되는 자는 즉시 시험 자격을 박탈한다. 정 대결이 필요하다면 연무대에서 해결하도록. 둘째, 시험에 불참하는 자는 시험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휴역은 주의 사항을 알려준 뒤, 곧장 자리를 떴다.
잠시 후, 점원이 맛있는 요리를 잔뜩 내어왔다.
그들은 요리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 옆에 앉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로 간의 정을 돈독히 하면서 시험 볼 때 잘 부탁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소운아, 우리 성안이나 돌아다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