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370
제370화 책을 읽고 싶어 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수릉 장로가 전수해준 신비로운 고결이 떠올랐다. 고결로 아홉 가지 힘을 융합하는 시도를 하자, 예상 밖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츰 힘이 융합되는 조짐을 보였으나, 뭔가 부족한지 완벽히 융합되진 않았다.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자, 그는 불현듯 걱정이 밀려왔다. 장차 아홉 가지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또 경지를 계속 높여나갈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긴 끝에 성해건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고서에 따르면, 성해건곤은 물품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무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공간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한데 성해건곤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담을 수 있다는 내용은 어느 서적에도 나와 있지 않은데, 그의 성해건곤은 온갖 약초와 요수가 살아 숨 쉬는 생명이 움트는 공간이었다.
문득 성해건곤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상태에 놓인 아홉 가지 힘은 융합되기 힘들어도, 성해건곤에 들어간 뒤 저절로 변화가 발생하여 아홉 빛깔 구름을 형성하지 않았던가. 그야말로 완벽한 결합을 통한 새로운 힘의 탄생이었다.
그 힘은 엄청난 생명력과 파괴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어쩌면 또 다른 거대한 힘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 힘을 성해건곤에 쏟아붓자, 그 힘들이 단단히 응집되어 아홉 빛깔 구름이 형성되었다.
항소운은 아홉 빛깔 구름을 재빨리 뽑아내고는 힘들을 척추로 흘려보냈다.
어느새 척추를 지나 갈비뼈도 점차 자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온몸의 뼈가 자주색으로 변하면, 항가에서 가장 강한 뇌골(雷骨)이 되는 셈이다. 그것은 항가에서 대대손손 전해 내려오는 체질로 항가 선조 외에 오직 항정천만이 완벽한 뇌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항소운은 뇌골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항가의 혈통이란 사실이 썩 좋진 않았다. 애당초 천둥의 힘만을 수련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아홉 빛깔 구름이 자줏빛 뼈로 스며들자, 9대 성진의 힘이 일제히 번쩍였다. 전결이 운용됨에 따라 아홉 빛깔 구름은 용의 기운으로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르릉!
별안간 자줏빛 뼈에 있던 자줏빛 용의 형상이 포효하며 변화하는 아홉 빛깔 구름과 한데 융합하자 용의 기운이 더욱 빠르게 형체를 갖추며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척추의 최하단부터 용의 기운이 끓어오르면서 기반이 단단해졌고, 척추는 용의 등허리 마냥 생동감이 넘쳤다.
슉-
용의 기운이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1푼, 2푼, 3푼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모르더니 9푼이되어서야 어렵사리 억제되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에 그 자신도 말문이 막혔다.
처음이다 보니 용의 기운을 1, 2푼 정도만 응집시켜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단번에 9푼까지 치솟으면서 입룡경의 문턱 앞에 들어선 것이다.
그가 9푼에서 힘을 억제한 이유는 아직 입룡경에 올라설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서였다. 게다가 지금이 경지를 돌파하기에 최적의 시기라는 확신도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용의 기운이 오색찬란하게 빛을 내면서 성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항소운은 너무 기뻐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드디어 용의 기운을 만들어냈다! 성해건곤이 그 열쇠였어.”
그는 일전에 수릉 장로의 염려 섞인 말을 듣고 너무 놀란 나머지 의지마저 흔들렸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생기면서 더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달 만에 밖으로 나온 항소운은 한층 범상치 않은 기개를 드러냈는데, 용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결과였다.
그는 몸을 깨끗이 씻은 뒤,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정원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곳을 돌볼 관리인이 필요하겠군.”
한씨 자매를 빙하궁으로 보낸 뒤, 나찰녀도 폐관 수련을 하러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고 당용비와 우문황도 수련에 매진하느라 지금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은자와 흉조 세 마리를 밖으로 불러냈다.
“형님, 무슨 분부라도 있으세요?”
은자가 항소운에게 물었다. 녀석은 인간의 모습으로 바꾸고 싶지 않은 듯 여전히 본래의 작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홉 빛깔 구름이 그렇게 좋아? 통 밖으로 나오질 않더라.”
항소운이 물었다.
“그럼요. 그건 가장 순수한 힘이라 실력이 강해지는 건 물론이고, 혈맥까지 상승하거든요.”
은자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넌 천둥의 몸을 타고났잖아. 아홉 빛깔 구름은 여러 힘이 합쳐진 건데 그래도 너한테 도움이 된다는 거야?”
항소운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니깐요.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힘만 삼켰다 하면 몸이 달라지는 건 분명해요. 얘들만 봐도 그래요, 여기 온 지 일 년여밖에 안 됐는데 벌써 소왕급에 오르려고 하잖아요.”
은자가 흉조 세 마리를 힐끔 보며 말했다.
그러자 흉조들은 의기양양해서 몇 차례 지저귀었다.
흉조는 본래 머리가 나쁜 짐승으로 알려져 있으나 녀석들은 유달리 영리했다. 다시 말해서 녀석들은 혈통의 고유한 능력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이것도 아홉 빛깔 구름과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항소운은 부쩍 자란 흉조를 보며 내심 흐뭇해졌다. 아홉 빛깔 구름의 능력이 강해질수록 그의 자신감도 증폭됐다.
그는 은자와 흉조들을 바깥세상에 적응시킬 요량으로 성해건곤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녀석들의 성장을 위해선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해서 녀석들은 이곳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지금은 그가 폐관 수련을 끝낸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는 이때를 틈타 학당 안에 위치한 장서각으로 향했다.
지난 사오 년간 수련에 매진하느라 머릿속에 지식을 채울 시간조차 없었는데, 마침 도전자도 없으니 장서각에서 책이나 실컷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조용한 오솔길로 접어들자, 길을 오가던 제자들이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학당에서 유명인사나 마찬가지였다. 비천경의 무인이 사조방 300위권에 이름을 올렸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가.
사람들은 폐관을 마친 천재들에게 당장 항소운에게 도전하라며 서둘러 소식을 전했다. 항소운이 입룡경에 오르기 전,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데도 항소운은 전혀 불쾌한 기색 없이 오히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특히 여제자들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을 때면 그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방금 항소운이 나보고 웃은 거 맞지? 설마 날 좋아하고 있던 걸까? 아,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어쩌면 좋아.”
“어휴, 저 사람이 언제 널 봤다고 그래? 그냥 날 뚫어지라 쳐다보더만. 분명 날 좋아하는 걸 거야. 무공은 평범하지만 뭐 얼굴이 잘생겼으니 고백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줘야지. 내가 원래 거절하고 이러는 거 잘 못 하잖아.”
“살다 살다 너처럼 뻔뻔한 애는 처음 본다. 너 사조방에서 삼천 명 안에도 못 들지 않아? 게다가 가슴이며 엉덩이며 뭐 하나 볼 것도 없는 게 뭐 못 이기는 척 받아줘? 으, 속이 다 울렁거리네.”
“저 사람은 분명 나한테 마음이 있어.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아마 꼼짝 못 할걸.”
항소운은 여제자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흡족해졌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잠시 후, 그는 엄숙한 분위기가 감도는 웅장한 건물 앞에 이르렀다. 강력한 기운이 주변을 둘러싼 가운데 아주 복잡한 진(陣)이 사방에 처져있어 이곳을 보호하고 있었다.
바로 용봉 학당의 장서각이었다.
용봉 학당의 장서각은 세상의 책을 전부 소장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반 세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장서량이 엄청났다.
항소운은 어릴 적 책을 유달리 좋아하여 자릉종의 서각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는 했다. 한데 7품 세력인 자릉종은 역사가 짧다 보니 일반적인 7품 세력에 비해 장서량이 무척 적었다.
그는 무예를 연마한 뒤로 지난 몇 년간 제대로 책을 펼쳐보지도 못한 터라 마침 한가로운 이때 지식을 마음껏 늘리고 싶었다.
무학을 배움에 따라 중원에 대한 자신의 지식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분명 용봉 학당이라면 지적 욕구를 채워줄 책들이 가득할 거로 생각했다.
장서각 앞에는 한 노인이 나무 의자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이따금 백우선(白羽扇: 흰 새의 깃을 모아서 만든 부채)을 놀려 천천히 부채질을 하는 모습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항소운은 노인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대인, 장서각에서 책을 읽고 싶어 왔습니다.”
노인은 눈도 뜨지 않고 대꾸했다.
“옆에 설명을 잘 읽어 보거라.”
항소운은 그제야 입구 옆에 걸려 있는 편액을 발견했다. 천천히 읽어내려가던 그는 불평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거 너무 하는 것 아냐?’
편액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1층에서 한 시진 동안 책을 열람하려면 공적 점수 오백 점이 필요했다. 꼬박 하루 동안 책을 보려면, 육천 점이 필요하단 소리였다. 2층은 더욱 조건이 가혹했는데 한 시진마다 이천점을 지불해야 했고 3층은 일만 점, 4층은 십만 점, 5층은 백만 점부터 시작했다.
단위가 하루라면 몰라도 매 시진마다 공적 점수를 지불해야 한다니, 보통 액수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평이한 내용의 책을 보거나 전결 혹은 전투 기술을 하나만 외우려고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이곳의 열람 조건대로라면 책 한 권을 보는 데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항소운은 비무에서 5연승을 거두면서 본래 일만 점이었던 공적 점수가 삼십 이만 점까지 불어나 있었다.
이 정도면 제자들 사이에서 꽤 부유한 편이나, 장서각에선 4층에서 겨우 세 시진 머물 정도였다.
항소운이 다시 문지기 노인에게 말했다.
“대인, 잘 봤습니다. 여기 제 옥패를 맡기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는 옥패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장서각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마치 특별한 장소에 들어선 것처럼 바깥 기운과 완벽히 차단된 것을 느꼈다.
과연 4대 학당답게 십만 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장서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각 책장은 유형별로 분류되어 있어 역사서, 전투 기술, 전결 등의 팻말이 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1층의 전결과 전투 기술은 등급이 높지 않아 기껏해야 5급 정도가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천재들에게 큰 의미는 없으나, 참고용으로 쓰일 수는 있었다.
길은 달라도 이르고자 하는 곳은 같다는 말처럼 상급 전투 기술 역시 하급 기술이 발전된 것이다 보니 하급 기술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항소운도 이런 이치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흥미가 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역사서나 잡기(雜記: 잡다한 일을 기록한 책), 이족에 관한 백과사전이 훨씬 흥미를 끌었다.
그는 책 한 권을 골라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내용이 재미가 없어서인지 책장을 휙휙 넘기는 것이 그냥 대충 훑어보는 것 같았다. 하나 실상은 집중력과 기억력이 남달리 뛰어나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