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393
제393화 지금 날 찾고 있는 건가?
마기호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항소운이 말을 받았다.
“그거라면 놈들은 일찌감치 준비를 마쳤을 겁니다. 그러니 용봉 학당 밖에서 일을 꾸민 거겠죠. 어쨌든 다들 돕겠다고 하니 이참에 제맹 녀석들을 박살 냅시다. 그리고 나찰녀를 구하는 일은 저 혼자 맡겠습니다.”
이때, 상적풍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패왕은 잘 모르시겠지만, 얼사령(孽砂岭)과 저희 상가(尙家)는 꽤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항소운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하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농담을 하겠습니까?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순간이동 진을 이용하면 제때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무척 중요한 일인데, 집에 미리 기별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항소운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말했다. 대단한 세력이라 해도 제존급 고수를 싸움에 내보내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상적풍이 집안에서 지위가 꽤 높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제존급 고수를 움직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이래 봬도 가문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마세요. 사안이 시급하니 어서 출발하시죠.”
상적풍의 말에 항소운도 크게 감격했다.
“그러죠. 저 항소운, 이 은혜는 꼭 기억하겠습니다.”
항소운은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상적풍이 도와준다고 하니, 여러분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곳에 남아 무공을 높이는 데 힘써 주세요.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제맹을 집어삼킬 날이 올 겁니다!”
“예, 패왕. 승리하고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른 자들이 목청 높여 말했다.
잠시 후, 항소운과 상적풍은 임무당으로 향했다. 학당을 무턱대고 나갈 수는 없어서 임무 수행과 같은 정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제갈전천의 보고에 따르면, 나찰녀가 임무당에서 수령한 임무는 얼사령에서 얼룡(孽龍)을 죽이고 그 뼈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얼룡은 악룡(惡龍)의 혈통을 지닌 사악한 요수로 교룡만큼 힘이 세며, 이들의 뼈는 무기를 만드는 데 고급 재료로 쓰였다.
얼룡은 강하긴 하지만, 무리를 지어 살지는 않았다. 나찰녀는 이런 임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할 거란 생각에 홀로 얼사령으로 떠났다.
평소 사람들과 교류가 적던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의 표적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의 그녀를 여러 명이 작정하고 공격하자, 꼼짝없이 붙잡히고 말았다.
한편, 항소운과 상적풍은 순간이동 진을 통해 용봉성으로 이동한 뒤 다시 얼사령 근처의 성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도착한 후, 항소운은 상적풍과 흩어졌다.
두 사람이 용봉 학당을 떠난 뒤로 누군가 계속 뒤를 밟았고, 항소운도 그 사실을 눈치채긴 했으나 상대가 따라붙든 말든 내버려 두었다. 그래봤자 제맹의 졸개일 뿐, 진짜 대결은 얼사령에 펼쳐질 터였다.
‘제림은 어떻게 해서든 날 죽이려고 벼르고 있겠지. 얼사령에 어떤 계략을 꾸며놓았을지 모르니, 진짜 조심해야겠다.’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썩 자신이 없었다.
그에게 명옥마 괴뢰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 상대방은 이미 대비를 마쳤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제존을 두세 명은 동원해서 그의 숨통을 끊어놓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을 터였다.
얼사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모해 보이긴 해도 자신의 여인인 나찰녀가 붙잡혀 있는데 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저 지금은 상적풍의 원군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얼사령 근처에 도착한 그는 명영둔으로 모습을 감췄다.
뒤를 쫓던 자는 당황해서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쥐새끼처럼 사악한 면상의 사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거지?”
사내는 키가 작달 만하고 생김새도 추해서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뛰어난 추적술로 주장틈의 눈에 들었고, 수행원 신분으로 용봉 학당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는 이번에 특별히 항소운의 뒤를 밟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사람을 놓치자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곳은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어디 숨을 만한 곳도 없는데 상대가 까닭 없이 사라지자,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날 찾고 있는 건가?”
항소운의 목소리가 유유히 울려 퍼졌다.
땅에 바짝 엎드려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는 너무 놀라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감응력을 최대로 확대해봐도 사람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데 목소리가 들리니 귀신이 나타났나 싶었다.
‘내가 환청을 들은 건가?’
사내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항소운이 거리를 두고 앞에 서 있는데도 사내는 전혀 느끼지를 못했다.
“용봉 학당에서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추적술이 꽤 뛰어나군.”
항소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내는 기겁을 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어, 어디 있는 거냐?”
“바로 네 앞에 있는데, 안 보이나 보지?”
항소운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헛소리 말고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사내는 뒤쪽으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상대에게 발각된 이상 이곳에 남을 필요는 없었다.
하나 항소운이 쉽게 보내줄 리 없었다.
항소운은 빠르게 다가가 사내의 목을 움켜쥐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목을 옥죄는 힘은 더욱 강해졌고 숨이 막혀오면서 끝도 없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항소운은 사내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사내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무형의 고문자가 그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도모(刀耗)는 항소운을 추적하던 사내의 이름이었다.
그는 사람을 몰래 추적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으나, 어쩐 일인지 항소운에게는 금세 발각되고 말았다.
항소운은 명룡혼주를 통해 상대를 제압한 뒤, 이번 일의 내막을 전부 불게 했다.
알고 보니 나찰녀를 납치한 주동자는 주장틈이었는데, 그는 제림 수하 중 제1 맹장이라 불리는 자여서 이번 일도 제림과 무관하지 않았다.
‘주장틈은 나찰녀를 납치했을 뿐, 진짜 날 노리는 자는 제가 그놈들이 틀림없어!’
항소운은 생각 끝에 도모란 사내를 역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도모를 시켜 주장틈에게 서신을 보내도록 했다. 항소운이 무리를 거느리고 오고 있으며, 사흘 후면 얼사령에 당도한다는 내용을 보냈다.
물론 무리는 용봉 학당의 제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적풍이 따로 고수들을 데려올 거란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서신을 보내면, 주장틈이 당분간 안심할 테니 이때를 틈타 부지런히 달려가서 나찰녀를 구할 작정이었다.
그는 도모더러 뒤따라오라 하고는 전속력을 다해 얼사령으로 내달렸다.
그놈들이 나찰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한시바삐 움직여야 했다.
‘내 여자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봐. 전부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테니까!’
항소운은 내달리는 와중에 명혼공간을 열어 귀문족에게 마정을 먹였다.
“귀척, 현재 경지가 어떻게 되지?”
“현재 6품 귀문황입니다.”
항소운의 물음에 귀문족 족장 귀척이 응수했다.
“벌써 그렇게 됐단 말이야? 한데 아직 그걸로는 부족해.”
귀문왕 정점이던 귀척이 2~3년 만에 이만큼 성장했으니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만약 귀척이 귀문황 정점까지 오른다면 제존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테고, 제존을 한두 명쯤 암살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혼자서도 나찰녀를 너끈히 구할 수 있었다.
한데 성장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단번에 귀문황 정점에 오르는 건 불가능했다.
사실 혈맥의 능력이 높지 않은 귀문족이 이만큼 성장한 것도 대단한 일이어서 항소운이 원하는 수준에 오르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그는 귀문족에게 진작 상급 마정을 먹이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미리 해뒀더라면 귀척이 제존급 귀문이 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얼사령 근처에 도달했다.
얼사령에 들어가면 어디서 적이 공격할지 몰라 다시 명영둔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현재 그는 명옥마 괴뢰 외에 제존과 싸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이런 상태로 나찰녀를 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사령은 산이 굽이굽이 이어진 곳으로 용봉 산맥처럼 사방으로 뻗어있지는 않지만, 예전에 갔었던 백수산만큼 규모가 컸다.
나무가 빽빽이 숲을 이루고 있어 겉으로 봐선 산속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외곽에서 가장 가까운 산에는 주장틈 무리에게 붙잡힌 나찰녀가 큰 나무에 묶여 있었다.
나찰녀는 어느새 가면이 벗겨져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얼굴은 몹시 추해서 아무도 그녀에게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녀는 학당에서 나오기 전, 사람 가죽으로 얼굴을 바꾼 덕분에 다행히 능욕만은 면할 수 있었다.
현재 이곳은 주장틈이 아닌 인황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예사 실력이 아니었는데, 한 명은 입룡경 정점이고 다른 한 명은 9품 입룡경 초기였다.
그들은 명목상 이곳에 서 있을 뿐, 실제로 이곳을 지키는 자들은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고수라서 보통 사람은 발견도 쉽지 않았다.
주장틈은 항소운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온 두 노인과 함께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비천서(飛天鼠: 하늘을 나는 쥐)가 가져온 서신을 읽더니 두 노인에게 말했다.
“항소운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길어도 사흘이면 도착한다고 하네요.”
노인들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중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이 일이 끝나거든 넌 돌아가거라.”
“네.”
주장틈이 공손히 대답했다.
두 노인은 일찍이 다길을 뒤쫓던 동빙과 하화란 제존이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이들의 무공도 한층 높아져 있었다.
자릉종이 제존급 후기의 인물을 둘씩이나 보낸 걸 보니 항소운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주장틈은 두 노인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서 혼자 나찰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형님들, 이 여자랑 얘기나 하고 싶은데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항소운이 이삼일 후에나 도착한다니까 계속 지킬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는 나찰녀를 지키고 있던 두 인황에게 말했다.
그러자 9품 초기의 인황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넌 이런 여자한테도 흥미가 있는 거냐? 아주 취향 한번 독특하구나.”
그러자 주장틈이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계속 참았더니 안 되겠는걸 어쩌겠어요. 그러지 말고 형님들, 사정 좀 봐주세요. 아마 어르신들도 별말 안 하실걸요.”
“하하, 어르신들이 괜찮다 하시면 우리야 상관없지. 그럼 우린 저쪽으로 갈 테니 실컷 풀으라고.”
9품 인황이 껄껄 웃더니 어서 가자며 동료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 이곳에는 주장틈과 나무에 묶인 나찰녀만 남게 되었다.
그는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이리저리 훑으며 전음을 보냈다.
“흥, 사람 가죽을 뒤집어썼다고 내가 속을 줄 알았나 보지? 모르긴 몰라도 이 가면 아래에는 꽤 예쁘장한 얼굴이 숨겨져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항소운의 여자가 됐겠어?”
그 말에 나찰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만지며 읊조렸다.
“항소운이 오기 전에 실컷 즐겨보자고. 어쨌든 그놈은 곧 죽을 테니까. 뭐 날 만족시킨다면, 널 살려줄 수도 있지.”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나찰녀의 봉긋한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