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396
제396화 지금은 안 되겠어요
순간, 그녀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오자 간신히 참고 있는 욕정에 불이 붙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양손으로 그녀의 몸을 쉴 새 없이 어루만졌고, 아랫도리가 뜨거워져 더는 억제할 수가 없었다.
나찰녀는 양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 나른해진 몸을 맡기고 있었다. 온몸에 짜릿하게 전율이 오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도취 되었다.
‘이제 소운이한테 날 줘야겠어.’
그녀는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다.
주장틈에게 두 차례나 험한 꼴을 당할 뻔하면서 그녀는 진작 항소운과 합방을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지금 눈앞에 기회가 찾아왔으니, 더는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창 끓어오르고 있는데 항소운은 문득 자신이 적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기서 나찰녀와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있다가 두 늙은이에게 발각이 되기라도 하면 그땐 어쩐단 말인가.
그는 어렵사리 이성을 회복하고 그녀를 살며시 밀어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은 안 되겠어요. 우선 안전이 먼저니까요.”
“당신 말에 따를게요.”
나찰녀는 못내 아쉬웠지만, 그녀 역시 지금이 좋은 때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고양이인 양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항소운과 나찰녀는 은자를 타고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은자 등 위에서 두 사람은 모처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항소운은 유혼화의 남은 힘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전부 정제했다. 아까 정신없이 도망치는 바람에 유혼화의 힘을 정제시킬 시간이 없어 힘이 대량으로 낭비되었는데, 지금이라도 남은 힘을 흡수해야 했다.
그렇게 남은 소량의 힘을 무구의 혼으로 흘려보내자, 무구의 혼은 한층 강해졌다.
한편, 나찰녀는 여전히 안색이 창백하고 몸에 힘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 금제(禁制)를 당한 상태인데, 현 무공으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었다.
동빙과 하화는 이 금제와 감응해서 언제라도 두 사람을 찾아낼 게 분명했다.
아까 그 자리에서 합방을 했다면 두 늙은이에게 꼼짝없이 붙잡혔을지도 모른다.
지금 동빙과 하화는 전속력으로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항소운이 단숨에 거리를 확 벌리는 바람에 잠시 헤매기는 했으나, 다행히 나찰녀에게 금제를 해 둔 덕분에 방향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그놈이 가지고 있던 성급 무기는 반드시 차지해야 돼.”
동빙이 하화에게 말했다.
“우선 놈부터 먼저 찾자고. 꽤 거리가 벌어져서 지금 속도면 이각(二角: 30분)은 가야 따라잡을 수 있어. 만에 하나 놈들이 금제까지 풀어버리면 찾을 방도가 없어지는 거야.”
두 사람은 지체할 새가 없다는 듯 전속력을 향해 날아갔다.
한편, 상적풍은 뒤늦게 사람들을 데리고 얼사령에 당도했으나 항소운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얼음에 뒤덮인 명옥마 괴뢰를 발견했다.
순간, 상적풍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설마 패왕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상적풍과 함께 온 노인이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여기서 한 사람이 뼈가 으스러져서 죽은 것 같습니다. 나이는 수백 살 정도 된 것 같으니, 도련님이 찾으시는 분은 아닐 겁니다.”
“우선 저 괴뢰부터 구해줘.”
상적풍은 사람들을 시켜 항소운과 나찰녀를 찾도록 했다.
잠시 후, 그들은 뜻밖에도 상처를 치료 중이던 주장틈을 발견했다.
주장틈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쪽 팔은 부러지고 부상이 심해서 치료를 하러 멀리 떠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9품 입룡경의 인황은 그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는 항소운을 죽이러 가겠다는 말만 남긴 채 그를 두고 가버렸다.
주장틈은 어느새 상적풍 앞으로 끌려왔다. 상적풍은 상대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항소운은 어디 있지?”
“그, 그건 나도 몰라.”
주장틈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상적풍이 다짜고짜 상대를 들어 내던지자,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정말 몰라?”
상적풍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 여, 여자를 구하고선 제존 둘한테 쫓기고 있어. 나도 그들이 지금은 어디 있는지 진짜 몰라! 앞으로 패왕군단에 충성을 다 할 테니, 제발 날 놔줘.”
주장틈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소상히 말하더니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항소운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상적풍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는 수하에게 주장틈을 죽이도록 한 뒤, 다시 사람들을 데리고 항소운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주장틈은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촉망받던 천재가 주인을 잘못 만난 대가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 것이다.
그 사이에 항소운은 유혼화의 힘을 전부 흡수하고 영혼력이 한층 상승했으며, 명혼공간도 다시 확장되었다.
나찰녀가 항소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난 성해건곤에 있는 편이 좋겠어요. 몸에 쳐진 금제 때문에 그자들이 언제 쫓아올지 모르잖아요.”
“그럼 우선 성해건곤에서 쉬고 있어요. 금제를 풀 만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당분간 그렇게 해요.”
그는 나찰녀와 은자를 다시 성해건곤에 거둬들였다.
곧이어 그는 돌무더기 쪽으로 내려가 흔적을 만들어놓고는 명영둔으로 모습을 감춘 뒤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동빙과 하화를 교란시킬 목적이었다.
항소운은 은신술로 모습을 감추고 미친 듯이 앞으로 내달렸다. 어떻게 해서든 도시에 당도해서 용봉 학당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틀 후, 그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행인에게 물어보니 뜻밖에도 이곳은 상씨 가문이 관리하는 상성(尙城)의 관할 구역이었다.
‘상적풍이 원군을 데려왔어도 지금으로선 헛걸음을 친 것밖에 안 돼. 아마도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겠지? 안 되겠다. 우선 상성으로 가서 상적풍과 만나야겠어.’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상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성은 상씨 가문이 활동하는 근거지로, 용봉성만큼 넓고 화려하진 않아도 자릉성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이색적인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길에는 사람들이 활발히 오갔으며 강한 무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상성이 얼마나 번창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항소운은 상씨 가문의 위치를 몰라 사람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주루로 들어가 술과 요리를 시킨 뒤 우선 배부터 실컷 채웠다.
배불리 먹고 난 뒤, 점원을 불러 수정을 넌지시 쥐여주며 물었다.
“이보게, 상가가 어디 있는지 아나?”
그 말에 점원은 수정을 도로 건네며 겁먹은 눈초리로 대꾸했다.
“전 잘 모르니,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십시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어가 버렸다.
‘그냥 길 좀 물은 것뿐인데 뭘 그리 겁내지?’
항소운은 하는 수 없이 주루에서 나와 성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상가를 아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주루에서 나오자마자,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는 것이 느껴졌다.
조용히 가늠해보니 상대는 소왕급 무인이라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마도 방금 상가의 위치를 물어본 것과 관련이 있으리라.
‘이런 식으로 상가 쪽 사람을 유인하면 더 좋지 뭐.’
항소운은 씩 웃으며 성안을 성큼성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인마가 앞을 가로막더니 그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아가씨,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상가의 위치를 물어보고 다녔습니다. 도둑놈처럼 생긴 걸 보니 절대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녀석 나쁜 짓을 계획한 게 틀림없습니다.”
한 사람이 항소운에게 삿대질을 하며 옆의 소녀에게 말했다.
항소운은 그 말을 듣고 화가 솟구쳐 올라 피를 뿜을 뻔했다. 도둑놈처럼 생겼다니! 난생처음 듣는 소리였다.
항소운은 어려서부터 외모에 자신감이 있었다. 시원스럽게 잘생긴 덕분에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았는데, 무당전이나 운애각, 용봉 학당에서 수많은 사저와 사매가 그를 쫓아다닌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만 여자에게 애정을 쏟을 시간이 없다 보니 곁에 소수의 여자만 있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명문가 공자 같은 그에게 도둑놈처럼 생겼다니, 난생처음 듣는 소리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체 어떤 놈이 이런 말을 지껄였냐 싶어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호라, 이제 보니 상대방이 딱 도둑놈 면상이었다. 눈은 옆으로 쭉 째지고 위로 올라가서 감은 건지 뜬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고, 턱 끝이 뾰족한 것이 원숭이를 닮았으며 눈썹처럼 가느다란 팔자수염이 축 늘어져 무척 우스꽝스러웠다.
‘날 질투하는 게로군.’
그는 시선을 옮겨 준마를 탄 소녀를 보았다.
매미 날개처럼 얇고 가벼운 옷은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를 은근히 드러냈고, 희고 매끄러운 두 다리가 햇빛 아래 눈부신 광채를 발산했다. 거기다 어여쁜 얼굴까지 갖추고 있어 무척 매력적인 소녀였다.
소녀 옆에 소왕급 무인 여럿과 인황이 있는 걸 보니 예사 신분이 아닌 듯했다.
소녀는 채찍으로 항소운을 겨누며 목소리를 높였다.
“넌 누구길래 우리 상가의 위치를 물은 것이냐?”
평소 같았으면 다짜고짜 채찍부터 날렸을 테지만, 소녀는 항소운의 잘생긴 용모와 매력적인 눈빛에 반한 나머지 평소처럼 횡포를 부릴 수 없었다.
항소운은 봄바람처럼 환히 웃으며 응수했다.
“난 항소운이라고 해. 이곳에는 상적풍이란 사람을 찾으러 왔어.”
“무엄하다! 감히 큰 도련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도둑놈 면상의 사내가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치자, 별안간 소녀가 채찍으로 사내를 힘껏 내리쳤다.
사내는 너무 아파 비명을 질렀다.
“아가씨, 왜, 왜 저를 때리시는 겁니까?”
사내는 억울하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지금 어디라고 나서는 거야? 잠자코 저쪽에 있어!”
소녀가 버럭 호통을 쳤다.
사내는 얼굴을 감싸 쥐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나처럼 잘생긴 사람이 또 어딨다고, 아가씨는 왜 허구한 날 나만 때리냔 말이야? 이렇게 살아서 뭐 하냐고!’
“우리 오라버니를 알아?”
소녀가 항소운에게 물었다.
“상적풍이 네 오라버니야?”
길 한복판에서 상적풍의 동생을 만나다니, 이런 우연이 또 어디 있는가.
“그래, 설마 오라버니한테 아주 사랑스러운 여동생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은 거야?”
소녀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말에서 뛰어내려 항소운 앞에 다가섰다.
“혹시 지금 날 속이는 거 아냐? 오라버니는 지금 집에 없다고.”
마음이 동하긴 했어도 상대방이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판단할 정신은 있었다.
항소운은 상아방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입을 열었다.
“네 오라버니는 용봉 학당에 있잖아. 그리고 며칠 전 집에 들르지 않았어?”
상아방은 입을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소식을 아는 걸 보니 진짜 오라버니 친구가 맞구나. 그럼 나랑 같이 집에 가면 되겠네. 아까 이름이 뭐라고 했죠?”
상아방은 예전부터 오라버니를 가장 존경했다. 오라버니는 무공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지혜로워서 어떤 일이든 너끈히 해냈다. 그렇다 보니 오라버니의 친구들 역시 하나같이 걸출한 인물이었다.
이 잘생긴 친구만 봐도 그렇다. 오라버니보다 잘생긴 데다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까지 지닌 사람이었다.
“난 항소운이라고 해. 네 오라버니와는 형제 같은 사이니 편하게 이름을 불러도 될까?”
항소운이 다정하게 웃으며 물었다.
“네, 그럼 소운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돼요?”
상아방이 수줍어하며 물었다.
“당연히 되고말고. 만나서 반가워.”
“저도요. 그럼 저와 함께 집으로 가요. 한데 오라버니가 언제 집에 돌아올지는 모르겠어요.”
이렇게 항소운은 상아방을 따라 상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