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399
제399화 끈질기게 살게 해주지
그들은 항소운에게 대접할 요량으로 좋은 술과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오도록 했다.
처음에는 항소운도 심드렁했으나,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차츰 마음이 풀어졌다.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보니 모처럼 마음이 편안해졌고, 자신을 속박하고 있던 부담감도 떨쳐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일 뿐이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심각한 일에만 몰두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눈앞에 술잔을 두고 내일 일을 걱정해서 무엇 하겠는가.
마음속의 번뇌를 항시 생각해서 무엇 하냐는 말이다.
이 점을 깨달은 그는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상아방, 혜우정과 마음껏 어울리기 시작했다.
상아방과 혜우정은 어느 순간 항소운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이전에는 존귀한 신분처럼 느껴져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면, 지금은 따뜻한 봄바람처럼 온화하고 웃는 낯이라 대하기에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실컷 놀다 보니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혜우정 무리는 앞으로 견마지로를 다할 테니 제발 아우로 받아달라며 떼를 썼다.
하지만 항소운도 용봉 학당에 돌아가야 하는 처지라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일전에 있었던 언짢은 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이들을 편한 친구로 삼았다.
이틀 후, 상적풍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항소운은 객원에 있다가 별안간 명옥마 괴뢰의 기운을 느꼈다.
명옥마 괴뢰에는 그의 의식이 심겨 있어 그가 죽지 않는 한, 웬만해선 소멸되지 않았다.
혹시 동빙과 하화가 상성까지 쫓아온 건 아닐까 걱정을 하는데 상적풍이 상아방과 함께 나타났다.
“항 도련님, 먼저 상성에 와계셨군요. 제가 얼사령에 너무 늦게 갔나 봅니다.”
상적풍이 송구하단 뜻을 내비쳤다.
여기는 용봉 학당이 아니다 보니 혹여 오해를 살까 봐 함부로 ‘패왕’이라 부를 수 없었다.
“적풍, 그런 말 말아요. 백부님께 들으니 절 도우러 수하들을 데리고 얼사령에 갔다면서요. 끝까지 기다렸어야 했는데 먼저 싸우는 바람에 헛걸음을 시켰으니, 당연히 제가 미안하죠.”
항소운도 미안하단 뜻을 내비쳤다.
“두 분 오라버니, 너무 예의 차리는 거 아니에요? 오글거려서 못 들어주겠어요.”
상아방의 말에 두 사람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맞는 말이네요. 우리 사이에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죠.”
그러면서 상적풍은 얼사령에 갔다가 명옥마 괴뢰를 데려오게 된 일을 얘기했다.
항소운도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비록 그 과정을 간단히 말하긴 했으나, 상적풍은 항소운이 상상도 못 할 위험에 직면했을 거로 생각했다.
“나찰녀도 같이 데려오지 그러셨어요?”
사람을 구해놓고 왜 혼자 왔냐는 말이었다.
“나찰녀는 지금 성안에 머물고 있어요. 당시 상가의 위치를 몰라 헤매다가 운 좋게 아방이를 만났거든요.”
그는 차마 나찰녀가 몸속에 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누가 믿기나 하겠는가.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학당으로 돌아갈까요?”
상적풍이 물었다.
“오라버니, 뭐가 그렇게 급해요?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며칠 더 있다 가요.”
상아방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항소운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명목상으로는 임무 때문에 나온 거니 차라리 얼사령에 가서 얼룡을 죽이고 임무를 완수해서 돌아가는 건 어때요?”
“얼룡이라면 저희 집에 있으니 그걸 가져다 제출하면 될 거예요.”
상적풍이 말했다. 상가는 얼사령에서 멀지 않은 터라 얼룡 뼈를 수집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라버니, 그건 부정행위잖아요. 정말 나쁜 짓이라고요. 아버지한테 일러야겠어요.”
“잠깐만, 너 오라버니가 혼나는 걸 꼭 봐야겠어?”
상적풍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또 뭔데 그래?”
“저도 얼룡 사냥에 데려가 주세요. 그럼 아버지한테 말 안 할게요.”
상아방이 능글맞게 웃었다.
이때, 잠자코 있던 항소운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적풍, 사실 얼룡을 잡자고 했던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예요. 바로 적풍 당신의 수하들을 빌려 제 적들을 잡고 싶어서죠. 그자들에게 내 사람을 건드리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어요.”
항소운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곤란하다면 방금 말은 없던 셈 치죠. 그래도 당신에게 빚진 건 그대로 있으니까요.”
나찰녀를 구해내긴 했어도 마음속의 화는 잠재울 수 없었다. 어떻게든 동빙과 하화를 붙잡아 제가에게 자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 상가에 은혜를 입었으니 일이 해결된 뒤 후하게 보답할 생각이었다.
상적풍이 물었다.
“주장틈은 제가 죽였는데, 얼사령에 아직도 적이 있어요?”
“현재 나찰녀 몸에 금제가 쳐진 상태라 녀석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찾아낼 거예요.”
“그렇다면 이번 일은 돕지 않을 수 없겠군요. 부디 이번에는 헛걸음하지 않아야 할 텐데요.”
상적풍이 선뜻 승낙하자, 항소운은 감격한 얼굴이 되었다.
“적풍, 정말 고마워요.”
사실 이번 일은 상적풍이 돕지 않는다 해도 전혀 탓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상적풍이 기꺼이 돕겠다며 나서자, 상대의 진심이 전해져 항소운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요 며칠 동빙과 하화는 마음이 극도로 초조해졌다.
그들은 본래 항소운이 덫에 걸려들기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포획해서 자릉종에 끌고 갈 계획이었다. 한데 항소운을 잡기는커녕 인질을 뺏기고 체면까지 구긴 터라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얼사령에 다시 돌아왔을 때, 명옥마 괴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주장틈은 이미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눈앞의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금제를 푼 건지 나찰녀의 행방도 묘연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항소운을 찾는 걸 포기하고, 용봉 산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일곱째 도련님께서 그곳을 찾으셨다는데, 그게 진짜일까? 종주께서 이곳 일을 마치면 사람들과 합류하라 하셨으니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어.”
동빙이 하화에게 말했다.
“응, 아마도 십중팔구 그곳이 맞을 거야. 용봉 학당 측에서 발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 그쪽이 먼저 발견하면, 우린 본전도 못 찾고 되돌아갈 수밖에 없어. 그건 그렇고 항소운 그놈 아주 괘씸하단 말이지. 매번 쥐새끼같이 내뺀단 말이야. 이대로 뒀다간 분명 큰 후환이 되고 말 거야.”
“하여튼 항양전 아들이라 다르긴 달라. 진작 이런 재능을 드러냈더라면 사람들이 종주의 편에 서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동빙이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시 만나면 그땐 꼭 놈을 붙잡고 말겠어!”
하화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비행을 계속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별안간 동빙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계집 몸에 쳐뒀던 금제의 힘이 느껴졌어.”
“그게 무슨 말인가?”
하화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잠깐, 다시 감응을 해봐야겠네.”
동빙은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잠시 후,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얼사령 반대편이야. 어서 가보세.”
“잠깐, 뭔가 이상한데.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왜 갑자기 감응이 된 거지?”
“아마도 항소운 그놈이 금제를 차단하려고 뭔가 꼼수를 썼겠지. 그러다 더는 차단할 방도가 없고, 우리가 멀리 간 것 같으니까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닐까?”
“자네 말도 일리가 있어. 아마도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은 거겠지. 그럼 그쪽으로 가보세.”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방향을 바꿔 얼사령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수풀이 가득 우거진 그곳에는 항소운과 상적풍, 상아방이 있었다.
항소운은 일찌감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찰녀를 밖으로 불러낸 상태였다.
상적풍과 상아방은 별안간 나찰녀가 등장하자, 몹시 놀란 눈치였다.
그들과 함께 온 제존들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도 항소운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캐묻지 않았다. 누구나 비밀은 있는 법이었다.
그는 나찰녀를 불러내고 상가의 제존들을 숨게 한 뒤, 빙동과 하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동빙과 하화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곳까지 온 이상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안에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번 계획은 실패였다.
‘두 늙은이가 꼭 나타나야 할 텐데…….’
항소운은 속으로 조용히 빌었다.
과연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동빙과 하화가 숲 상공에 나타났다.
“뭔가 이상한데?”
하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동빙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즉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들은 무턱대고 뛰어들지 않고, 정신을 집중하여 아래 상황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들은 항소운과 나찰녀 그리고 젊은 남녀 한 쌍을 발견했다.
“그래, 내 느낌이 맞았어. 놈들을 잡으러 가야겠어!”
동빙은 옳다구나 싶어 아래쪽으로 돌진했다. 하화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뒤따라갔다.
“항소운, 이번에도 놓칠 것 같으냐!”
동빙은 버럭 호통을 치며 빙장(冰掌)으로 냉기를 쏘아냈다.
폭이 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얼음 거울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상가 남매까지 전부 가둬버리려 했다.
바로 그때, 주변에 숨어 있던 상가의 제존들이 마침내 행동을 개시했다.
사방에서 강력한 힘이 쏟아지며 빙장을 깨뜨리더니 동빙과 하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길, 속임수였어!”
두 사람은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동빙, 하화. 이제 얌전히 죗값을 치러라!”
항소운은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저들이 누구인가. 제패천의 최측근이 아니던가. 그런 자들을 붙잡았다는 사실에 속이 다 후련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동빙과 하화는 싸움을 포기하고 포위부터 뚫기로 했다.
그러나 상가 쪽에는 9품 제존이 있어 혼자서도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옆에서는 다른 제존들이 합심하여 돕고 있었다.
큰 이변 없이 두 사람은 제존들의 협공 속에 꼼짝없이 붙잡히고 말았다.
비록 마지막까지 발악하며 협공술을 전개하긴 했으나, 9품 제존에게 단숨에 뚫리면서 도망칠 의지마저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제존들은 항소운의 요청대로 두 사람을 생포해서 초주검을 만들었다. 혹여 체력을 회복해서 달아날까 싶어 혼태까지 봉쇄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존들이 동빙과 하화를 끌고 오자, 항소운이 감격하여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런 말 마십시오. 비록 두 사람을 제압해놓긴 했지만, 또 무슨 수를 쓸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함께 온 강자 중 우두머리 노인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제부턴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항소운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곧이어 그는 사람들과 몇 마디를 나누고는 두 사람을 데리고 조용한 장소로 갔다. 명룡혼주로 동빙과 하화를 통제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발이 잘리고 오장육부에 큰 부상을 입으며 혼태까지 봉쇄되는 바람에 당분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꿈에도 몰랐겠지?”
두 사람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항소운이 냉소를 지었다.
“주, 죽일 테면 어서 죽……여라…….”
동빙이 힘겹게 말을 뱉었다.
“그, 그래. 우리가…… 눈이라도 깜빡할 줄 아느냐…….”
하화도 목소리를 높였다.
“걱정 마,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네놈들이 아주 끈질기게 살게 해주지.”
항소운은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