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22
제422화 이제 들어가죠
항소운은 호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물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음은 더욱 깊어졌으나, 단시간에 완벽히 깨닫기란 불가능했다.
이럴 것이 아니라 물속으로 들어가서 물과 하나가 되어야 그 진의를 깨달을 수 있을 터였다.
한신비와 한씨 자매는 얼음의 힘을 수련하는 무인답게 얼음의 힘을 정신없이 흡수하고 있었다.
얇은 얼음 알갱이가 그녀들의 몸을 감싸면서 무척 아름다운 얼음 조각상이 생겨난 것만 같았다.
그녀들은 빙한의 체질을 타고난 터라, 이곳의 힘을 빌려 무공이 더욱 상승할 수 있었다.
한씨 자매의 경우 아직 비천경에 불과하지만, 이곳의 힘을 흡수한 뒤로 기초가 한층 단단해지면서 입룡경 돌파를 목전에 두게 되었다.
한편, 빙산 꼭대기에는 나이 많은 얼음 늑대가 항소운 일행을 굽어보고 있었다. 야수성이 느껴지는 짐승의 눈빛이 아닌 사람처럼 지혜를 지닌 눈빛이었다.
“고얀 놈들! 또 인간들이 빙산지심(冰山之心)을 빼앗으러 왔군. 이번에는 곱게 보내지 않겠다!”
항소운은 호수 앞에서 꼬박 칠 일간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물의 힘에 대한 깨달음은 한층 깊어졌고 얼음의 힘에 관해서도 적잖은 성과를 거두었다.
얼음과 물의 힘은 본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또 이곳은 얼음과 물이 서로 공존하고 있다 보니 황결을 통해 깨달음이 한층 깊어지면서 성과도 자연스레 많아졌다.
드디어 명상에서 깨어난 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이제 들어가죠.”
칠 일간, 물의 성진도 제법 채워진 터라 이 정도면 심해에 들어가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그의 부름에 한신비와 한씨 자매가 얼음을 깨고 나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꽃이 활짝 피어난 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특히 한신비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워서 빼어난 미인인 한씨 자매도 그녀 옆에선 평범해 보였다.
“그럼 들어가죠. 다들 방어력을 최대로 높이세요.”
한신비의 말에 준비를 마친 네 사람이 호수로 들어갔다.
물속에 들어가자, 빙한의 기운이 훅하고 밀려와 항소운은 덜덜 떨었다. 한기가 뼛속 깊이 스며들어 온몸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평소 누구보다 강인하다고 자부하던 터라 혹한 정도는 가볍게 넘길 줄 알았는데 호수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손발이 얼어붙겠다 싶어 힘을 일으켜 빙한의 기운을 막기 시작했다.
그러나 깊숙이 들어갈수록 기운은 더욱 거세져 결국 운지염의 힘을 일으켜 체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빙한의 기운이 정말 대단하구나. 평범한 인황이라면, 바로 얼어붙고 말겠는데.’
호숫물은 맑고 투명해서 앞서 나가는 한신비와 한씨 자매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녀들은 호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건지 인어인 양 물속 깊숙이 헤엄쳤다.
물에 옷이 함빡 젖은 탓에 그녀들의 아름다운 몸매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아름다운 여체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피가 끓어올라 추위마저 잊었다.
한신비는 그런 시선을 눈치챘는지 항소운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평소와 다른 것을 느끼고, 그녀는 괜스레 부끄러워졌으나 이내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호색한이 따로 없네!’
그녀의 질책하는 눈빛에도 불구하고 항소운은 전혀 위축되는 기색 없이 여전히 대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난 단지 저들을 지키려는 것뿐이야!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한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지.’
어느새 네 사람은 수백 미터까지 깊숙이 내려갔다. 이곳의 한기는 인황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도 운지염의 힘이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진작 얼음덩이가 됐을 터였다.
그와 달리 한신비와 한씨 자매는 여전히 유유자적했다. 오히려 이곳의 한기가 그녀들에게는 최고의 보양식이라도 되는 듯 사뭇 상기된 표정이었다.
이때, 별안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세 여자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그녀들 쪽으로 다가갔다.
순간, 슥-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형체가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항소운이 잇달아 장력을 날리자 물이 한데 뭉치면서 검은 형체를 막아냈다. 그 뒤, 통찰력을 발휘해 전방을 확인하니 뜻밖에도 거대한 빙어가 나타났다.
빙어는 생김새가 무척 기이했다. 몸은 잉어 같은데 머리는 화살처럼 뾰족해서 무엇이라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마리가 등장하자, 곧이어 사방에서 빙어가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어림잡아도 족히 이삼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세 여자는 흠씬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한신비는 침착하게 빙정(冰晶)으로 방어막을 만들어 자신과 한씨 자매를 단단히 둘러쌌다.
한씨 자매도 잇달아 힘을 일으키자 한신비의 힘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강력한 빙벽이 형성되며 빙전어(冰箭魚)를 모조리 막아냈다.
한편, 항소운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는 그녀들과 사용하는 힘의 성질이 다르다 보니 빙벽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혼자 힘으로 싸워야만 했다.
“내가 뒤를 맡을 테니, 먼저 가요!”
항소운이 전력을 다해 전음을 보냈다. 물속이다 보니 근거리는 가능해도 거리가 멀어지면 소리를 전할 수 없었다.
“그럼 조심해요!”
한신비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와 한씨 자매는 빙벽에 의지해서 빠르게 전진했다.
빙전어는 쉴 새 없이 몰려와 빙벽과 부딪혔다. 그럴 때마다 얼음 갈리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고 얼음 알갱이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빙전어의 입은 화살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빙벽을 충분히 뚫을 수 있을 테지만, 이곳은 특수한 환경이다 보니 빙벽이 뚫리더라도 다시 금세 얼어붙어 공격이 전혀 먹혀들질 않았다.
그러자 녀석들은 공격 대상을 바꿔 이번에는 항소운을 노리기 시작했다.
“으악!”
그는 괴성을 지르며 전력을 다해 물의 성진의 힘을 일으켰다. 어떻게 해서든 빙전어를 따돌려야겠다는 생각에 발버둥을 치는데 물속이다 보니 원체 속도가 나질 않았다. 결국 그는 빙전어 수백 마리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다급해진 나머지 금갑을 일으켜 공격부터 막기로 했다. 한데 금갑도 물의 영향을 받은 건지 위력이 꺾이는 바람에 빙전어의 날카로운 입에 힘없이 뚫리면서 가시처럼 몸에 박혔다.
그래도 다행히 백만 근짜리 갑옷이 최후의 방어막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이 갑옷은 제존급 갑옷에 버금가는지라 이 정도 공격은 끄떡없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는 일렀다.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타고난 천둥의 힘을 일으켰다. 그러자 주변이 삽시간에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얼음물로 변하면서 빙전어가 놀라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천둥 번개의 위력은 처음 겪는지라 녀석들은 무방비 상태로 쓰러졌고, 다른 녀석들도 겁을 먹었는지 다신 공격하지 못했다.
항소운은 식은땀을 훔쳤다.
‘천둥의 힘이 물에서 위력이 강해져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저놈들한테 꼼짝없이 죽을 뻔했네.’
그는 다시금 천둥의 힘을 일으키며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어렵사리 빙전어 떼를 벗어나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이들 앞에는 더욱 흉악한 존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별안간 바다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검은 형체가 드러났다. 상대는 기이할 만큼 거대한 몸집으로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세 여자는 검은 형체를 발견하고, 곧장 멈춰 섰다.
상대가 두렵기도 했지만, 그보다 극한의 기운이 검은 형체 아래서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상대를 피해 극한의 기운을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한신비와 한씨 자매는 너무 놀란 나머지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저 거대한 몸뚱이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짓이겨질 것만 같았다.
항소운도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뭐가 저렇게 큰 거야?’
명혼공간을 통해 전방을 감응해 보니 그곳에는 산만한 크기의 거북 등껍질이 보였다. 족히 수만 년은 살았음 직한 늙은 거북이였다.
한데 조용한 것을 보니 다행히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았다.
네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라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극한의 기운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목숨까지 걸 수는 없었다.
한신비가 항소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마도 이것은 전설 속의 현무(玄武)일 거예요. 괜히 건드렸다간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니, 이만 돌아가요.”
현무는 청룡, 백호, 주작과 함께 4대 요수로 불리고 있었다. 공격력은 나머지 3대 요수에 비해 미약하나, 방어력만은 최강이었다.
그런 요수를 이들 네 사람이 상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저 극한의 기운이 한천유와 한설유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게 맞아요?”
항소운이 한신비에게 물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도움이 돼요. 한데 아무리 쓸모 있다 해도 목숨을 잃을 바엔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나아요.”
그녀는 한씨 자매에게 우선 이곳을 떠나자고 말했다.
“그럼 세 사람은 먼저 가요. 난 극한의 기운을 차려갈 수 있는지 살펴보고 갈게요.”
항소운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목표물이 어디 있는지 아는 마당에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비장의 수단을 쓴다면, 현무를 피해 극한의 기운을 몰래 가져오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미쳤어요?”
한신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잠들어있던 현무가 들썩이는 바람에 네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그러지 말고 어서 가요. 금방 쫓아갈게요.”
항소운은 이 말만을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한신비는 당황해서 눈만 깜빡였다.
‘어디로 간 거지?’
빙하궁 소궁주인 그녀는 북강(北疆) 지역에서 나름 보고 들은 것도 많은 터라 강력한 비기(秘技)라면 꽤 알고 있었다. 한데 항소운처럼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는 기술은 난생처음이었다.
‘설마 명황족의 은신 능력? 아냐, 그건 말이 안 돼. 저자는 인간족이잖아! 아니면 은신 망토라도 두른 건가? 그것도 아니면 속임수?’
한신비는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상념을 떨쳐내고는 한씨 자매와 함께 호수 위쪽으로 헤엄쳐갔다.
항소운은 그녀들이 멀리 갈 때까지 제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감응력을 발휘해 극한의 기운을 느껴보려 했으나, 현무의 거대한 몸집에 가로막혀 그 이상은 알아낼 수 없었다.
극한의 기운은 분명 현무 아래에 있을 터. 지금 상황에서는 가만히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현무 주위를 돌며 기회를 포착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한기가 가장 강한 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분명 극한의 기운이 있을 터였다.
현무 옆으로 살며시 내려서니 몸통에 온갖 복잡미묘한 무늬가 가득해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무늬가 복잡할수록 현무의 나이는 오래되고 실력도 그만큼 강했다.
‘제발 깨어나지 마라.’
항소운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연신 빌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현무의 턱을 따라 아래로 쭉 내려가자, 아래턱 최하단에서 한기가 쉴 새 없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바람에 호숫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서 몸이 덜덜 떨려왔다.
운지염으로 체온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한기가 몸속으로 끝도 없이 침투하는 탓에 괴로울 지경이었다. 최상급 인황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추위였다.
하나 항소운은 서두르지 않고, 한기가 나오는 곳을 자세히 살폈다. 가능하다면 극한의 기운을 거둬들여서 한신비와 한씨 자매에게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