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26
제426화 무슨 책임이요?
“당연히 도움이 되고 말고요!”
한신비는 격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극한의 결정체는 극한의 기운이 오랜 세월 응집되어 만들어진 것이라 극도로 순수한 힘을 가지고 있죠. 게다가 결정 형태를 띠고 있어서 흡수나 제련도 훨씬 편리해요. 항 도련님, 정말 대단한데요!”
한신비는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씨 자매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전력을 높일 때도 쓰여서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영물이었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한 사람당 하나씩인데 이거면 충분하겠죠?”
항소운이 물었다.
“충분하고 말고요. 이게 작아 보아도 힘이 응축된 거라 하나면 충분해요.”
한신비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항소운에게 슬며시 다가서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더 있는 건 아니죠?”
“흠흠, 몇 개 더 있긴 해요.”
항소운은 놀라서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오, 좋아요. 그럼 저랑 전부 바꿔요!”
그녀는 아이처럼 신이 난 얼굴이었다.
상체만 앞으로 기울여서인지 봉긋한 가슴이 닿을락 말락 했다. 저도 모르게 푹신한 감각이 연상되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정말이지 사람 홀리는 여우 같다니까.’
“남은 건 제가 가지려고요.”
항소운이 대답했다.
비록 얼음의 힘을 수련하지는 않지만, 극한의 결정체의 힘을 흡수하는 건 문제없었다. 이미 얼음과 물에 관한 진의를 깨달은 터라 얼음의 힘을 실전에 사용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잘 챙겨뒀다가 패왕군단 중 얼음을 수련하는 자와 맞바꿔서 실력을 높일 수 있게 도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쓰일 데는 많았다.
“아무튼, 나랑 꼭 거래해야 돼요. 안 그랬다간 날 책임지라고 할 거예요!”
한신비가 애교 섞인 투로 말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웬만한 남자는 홀딱 빠져들 법했다.
“무슨 책임이요?”
항소운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흠, 당신이 한 일인데 당신이 제일 잘 알겠죠.”
한신비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대놓고 만질 땐 언제고 어딜 내빼려고?’
항소운이 그녀의 속마음을 들었다면, 억울하다며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사람을 구하려다 실수로 만졌을 뿐인데, 그리 정색할 필요가 있는가 말이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한씨 자매는 왠지 마음이 씁쓸해졌다. 아무래도 항소운과 한신비 사이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음이 쓰리긴 해도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마치 한 쌍의 연인처럼 잘 어울려서 질투는 고사하고 부러움만 생겼다.
“아, 알았어요. 그럼 딱 하나만 바꿔요. 이러면 됐죠?”
항소운은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에게, 겨우 한 개요? 안 돼요, 적어도 세 개는 바꿔야죠.”
“아니, 무슨 강도도 아니고 그걸 마음대로 정해요? 한 개 아니면 나도 안 바꿀래요!”
“어휴, 남자가 왜 그렇게 쩨쩨해요? 어차피 당신한테 아무 필요도 없는 물건이잖아요. 다른 사람이랑 바꾸느니 차라리 나랑 바꾸자는 거예요. 딱 세 개만 바꿔요. 물론 더 많으면 좋고요. 내가 섭섭지 않게 해줄게요.”
“이게 뭐 땅에 굴러다니는 건 줄 알아요? 두 개! 그 이상은 안 돼요.”
한참 입씨름한 끝에 결국 그녀는 항소운의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사실 항소운이야말로 억울할 노릇이었다.
극한의 결정체는 본래 자기 것이 아니던가. 그래도 선뜻 교환하겠다고 했더니 어떻게 된 게 상대가 더 밑지는 장사인 양 우는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항소운은 하는 수 없이 극한의 결정체를 두 개 꺼내 들었다.
“처음에 준 세 개는 당신들한테 선물로 준 거지만, 이 두 개는 무얼로 맞바꿀 생각이에요? 평범한 물건은 저도 사절합니다.”
“당신은 아홉 가지 힘을 수련하니까 다양한 종류의 영물이 필요할 거 아니에요? 제게 물의 힘을 지닌 최상급 약황이 있어요. 또 우연히 불의 성질을 띤 황급 영물도 손에 넣었고요. 그밖에 다른 힘을 지닌 물건도 많으니 편히 고르세요.”
한신비는 이렇게 말하며 물건을 한 무더기 꺼내 놓았다.
전부 황급 물건들로 가치가 상당했으나, 그의 눈에 들 만한 물건은 없었다. 극한의 결정체만큼 값어치가 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에게는 크게 쓰임도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빙하궁 소궁주신데 겨우 이 정도 물건밖에 없어요? 그러지 말고 어서 좋은 물건이나 꺼내 봐요. 아니면 저도 안 바꿉니다.”
항소운의 말에 한신비가 눈을 살짝 흘기며 대꾸했다.
“흠, 역시 패왕이라 안목이 까다롭네요.”
그녀는 다른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이번에는 항소운도 만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그중 세모꼴의 약초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줄기는 가늘고 작으나, 잎사귀는 무척 컸고 세모꼴에 녹황색을 띠었다. 은은한 약향(藥香)이 사람을 매료시키는 약초였다.
이것은 삼각엽초(三角葉草)란 약초로, 잎마다 강한 약성을 띠고 있어 한 줄기가 최고 수준의 황급 약초 세 줄기에 버금가는 가치였다.
다음으로 전투 기술이 적힌 책 한 권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이란 초급 제급(帝級) 기술로, 어둠의 힘을 수련하는 무인이 이 기술을 단련하게 되면 범이 날개를 단 격이었다.
현재 그에게 제급 기술은 몇 가지 없었고, 어둠의 힘을 단련하는 제급 기술은 단 한 가지도 없어서 마침 아주 열망하던 것이었다.
“이렇게 하죠. 이 전투 기술과 삼각엽초, 그리고 약황 몇 그루까지 더해서 바꾸는 거로 해요.”
항소운이 물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삼각엽초는 흉대, 흉이, 흉삼을 위한 것이었다. 흉조 삼 형제는 아홉 빛깔 구름의 영향을 받은 뒤로 혈맥의 힘이 눈에 띄게 강해져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녀석들이었다. 훗날을 위해서라도 녀석들을 위한 준비는 필요했다.
“진짜 욕심도 많네요. 뭐, 알았어요. 다 가져가요. 나도 쩨쩨한 사람과는 따지기 싫거든요.”
한신비의 말에 항소운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처음에 공짜로 세 개나 줬던 건 기억 못 하고 왜 자신더러 쩨쩨하다고 하는지 따지고 싶었다.
항소운은 물건들을 살뜰히 챙긴 후 극한의 결정체 두 개를 한신비에게 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따로 계획이라도 있어요?”
항소운이 물었다.
한신비는 대답을 하려다 말고 항소운의 뒤쪽을 가리키며 얼굴을 굳혔다.
“항 도련님, 뒤, 뒤에 뭔가 나타났어요. 빨리 도망쳐요!”
한신비의 다급한 외침에 항소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방 상황을 감응했다.
뒤쪽에선 늑대 무리가 대거 몰려오고 있었다. 무리의 선두는 아주 나이 많은 얼음 늑대로, 이들의 우두머리 같았다.
몸집은 크고 건장했으며, 나이에 따른 노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윤기 나는 흰 털과 범의 눈을 쏙 빼닮은 형형한 눈동자에선 총명함마저 느껴졌다.
이 늙은 얼음 늑대는 이미 제급 요수의 경지에 올라있었다. 이렇다 보니 한신비도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늑대 무리에는 요황급도 적지 않았다.
한신비는 한씨 자매의 손을 잡아끌고 서둘러 도망쳤고, 항소운도 걸음을 재촉했다.
“인간들이여, 두려워할 필요 없다. 너희를 괴롭히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다.”
늙은 늑대의 목소리가 유유히 들려왔다.
항소운과 한신비 등은 그 말을 듣고, 절로 걸음을 멈췄다.
한신비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대인, 그럼 무슨 일로 저희를 찾아오신 겁니까?”
요수족은 믿음을 아주 중시하는 종족인지라, 괴롭히지 않겠다고 한 이상 공격할 의사는 없었다.
“너희 여자들이 아니라, 이 소년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왔다.”
늙은 늑대가 항소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항소운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대인, 절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너와 긴히 나눌 얘기가 있는데 가능하겠느냐?”
‘이렇게 떼로 몰려와 놓고 어떻게 거절을 하란 거냐?’
항소운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사람을 찾아오신 거면,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한신비는 이 말만을 남기고는 한천유와 한설유의 손을 잡아끌고 서둘러 떠났다.
자매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한신비를 따라 먼저 떠났다.
‘저 의리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
항소운은 속으로 욕을 퍼붓고는 태연한 척하며 늙은 늑대에게 물었다.
“대인, 말씀하십시오. 저 항소운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자 늙은 늑대가 물었다.
“너 얼음신 대인을 뵌 적이 있다지?”
“얼음신 대인이요? 혹시 현무 말씀하시는 거예요?”
“보아하니 정말 대인을 뵌 적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분은 우리 같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이곳을 수호하고 계신단다.”
늙은 늑대의 눈빛이 어느새 공손해졌다.
아오오-
별안간 늙은 늑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울부짖었다.
다른 늑대들도 뒤따라 길게 울부짖으며, 온 빙산을 늑대 울음소리로 가득 메웠다.
도처에 수련 중이던 제자들은 늑대들이 공격해오는 줄 알고 기겁을 했다.
기나긴 울음소리가 멈춘 뒤, 늙은 늑대가 항소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얼음신 대인을 뵙고도 살아나왔다는 건 대인께서 널 중히 여기신다는 뜻일 테지. 그럼 날 대인께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내 긴히 그분께 할 말이 있다.”
항소운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현무한테 데려다 달라니, 차라리 귀신한테 데려다 달라는 게 낫겠네. 죽을 뻔한 걸 겨우 살아왔는데 어떻게 또 가란 말이야!’
“사실 얼음신 대인께서는 방해받는 걸 무척 싫어하십니다. 현재 깊은 수면 상태에서 수련 중이신데 방해라도 했다간 아마 뼈도 못 추릴 겁니다.”
항소운은 태연한 얼굴로 거짓을 고했다.
늙은 늑대는 의심도 않고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 말도 맞지. 대인은 좀처럼 세상에 나오질 않으신단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희 인간족이 이 바다를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했을 거다.”
늑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넌 대인을 뵀으니, 그분께 인정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이제 넌 우리 얼음 늑대족의 귀인이다. 자, 이건 네게 주는 선물이다.”
늙은 늑대는 그러면서 한 무더기의 물건을 뱉었다. 빙무화(冰霧花), 푸른 산호(珊瑚), 나각(螺角) 껍질처럼 얼음과 물 두 종류의 힘을 가진 좋은 물건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황급 물건이었고, 극히 보기 드문 진귀한 보물도 있었다.
몇 마디 거짓말이 뜻밖에도 풍성한 선물을 가져온 것이다. 왠지 미안해져서 썩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대인, 뭘 이렇게 많이 주세요. 아무것도 도와드린 게 없는걸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혹여 늑대가 말을 바꿀까 싶어 손은 쉴 새 없이 물건을 챙기고 있었다.
“아니다, 얼음신 대인이 살아계신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만도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대인께서 이곳을 지켜주신 덕분에 우리 얼음 늑대족도 그분의 보호 아래 영원히 번창할 수 있는 것이지.”
항소운은 그제야 얼음 늑대족에게 현무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알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얼음신 대인의 무공은 날로 강해지셔서 영생불사한 존재로 계속 이곳을 굳건히 지키실 거예요.”
그는 늙은 늑대가 자신의 말을 믿게끔 계속 속이는 수밖에 없었다.
늑대는 이 말에 기분이 좋았던지 다시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