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37
제437화 파훼되지 않는다
항소운이 남은 자들을 둘러보며 차갑게 웃었다.
감응이 미치는 곳이라면 명혼공간의 범위를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어서 수인 하나 죽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동료의 죽음에 수인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는지 너도나도 독약을 삼켰다.
이 독약은 겁주려는 용도가 아닌 진짜 독약이었다. 일전에 죽인 인황의 몸에서 찾은 것인데 딱히 쓸 데가 없어 가지고만 있다가 오늘에야 사용하게 되었다.
애기와 애려 등은 독약을 먹고는 못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항소운이 명령한 물건을 찾으러 떠났다.
앞으로 칠일 안에 물건을 찾아오지 못하면, 독이 퍼져 죽든 말든 제 알 바 아니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수인들이 떠난 후, 그는 훅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은자에게 주변을 지키도록 하고는 온 정신을 다해 회복에 집중했다.
사흘이 지나자,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주변을 찬찬히 훑어보니 이곳은 음풍간에서 꽤 거리가 먼 곳이었다.
한낱 바람에 이곳까지 떠밀려왔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이 주변에는 바람의 힘을 가진 약초가 많이 자라고 있으나, 하나같이 등급이 낮았다. 아무래도 상급 약초는 수인들이 따간 모양이었다.
주변에서 별다른 위험이 감지되지 않자, 그는 다시 좌선하고 수련에 집중했다. 바람의 힘을 높임과 동시에 바람에 대한 진의를 깨닫기 위함이었다.
마귀 얼굴이 온갖 것을 집어삼키고 내뱉은 것을 보면 바람의 힘에 대한 진의는 단순히 속도만 높이는 것이 아닌 훨씬 심오한 깨달음을 간직한 것 같았다. 특히 그 속에 감춰진 파괴력은 두고두고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바람의 진의를 깨닫기 위해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머릿속에서 마귀의 얼굴이 떠나질 않아 마음만 뒤숭숭해졌다.
마귀의 얼굴이 음풍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만 같아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건 대체 뭐지? 아까 수인들이 음풍마검이라 부르던데, 혹시 삭풍을 만들어내는 원천인가?’
요수와 수인들이 필사적으로 음풍간에 날아갔다가, 결국 마귀 얼굴에 잡아먹히고 만 일이 떠올랐다. 그 후, 마귀 얼굴이 내뱉은 건 그들의 시체나 다름없는 핏물이었다.
아무래도 그 속에는 어떤 무서운 존재가 도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봤자 상념만 커지는 터라 이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음풍초와 음풍석을 손에 넣으면, 바람의 진의를 깨달을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틀 후, 애기가 돌아왔다.
그는 중상을 당한 몸으로 힘겹게 나타났다. 항소운은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죽었어, 전부 죽었다고!”
애기는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대로 말해봐.”
항소운이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저, 전부 죽었어.”
말을 마친 애기는 정신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영액을 먹이고 한동안 휴식을 취한 끝에 차츰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사실 익우수인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애기와 같은 최상급 수인이 녹초가 되어 돌아왔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음풍마……. 그놈들이 이곳까지 내려왔어. 너무 강해서 우리는 상대가 되질 못 했다. 우리가 어렵사리 찾은 음풍초도 뺏기고, 음풍석 역시 놈들한테 있어.”
애기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음풍마? 그놈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항소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음풍마는 마풍수처럼 바람의 힘을 가진 마족으로, 전반적인 실력에서 마풍수보다 한 수 위였다.
통상 마족은 마연에 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음풍마가 이곳까지 나타나다니 혹 이곳이 마연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마족이 중원 대륙까지 침투했다는 뜻일까.
“이게 다 음풍마검 때문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그 안에 온갖 보물이 있다고 소문이 파다했거든. 그래서 음풍마검이 나타날 때면 우리 수인과 요수족은 어떻게든 그곳에 들어가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려 했다.
한데 몇 해가 지났어도 그 속에 들어갔다 살아나온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어. 그러다 이번에는 음풍마까지 나타난 거야. 분명 음풍마검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예전에는 음풍마가 나타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나타났다는 거지?”
“그래.”
“그럼 놈들은 지금 어딨어?”
애기가 막 대답하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음풍마가 바람에 펄럭이며 나타났다.
음풍마는 발 없는 시체의 모습이었다. 추악하고 끔찍한 몰골에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가슴까지 축 늘어졌고, 두 개의 촉수가 쉴 새 없이 흐느적거리며 입에서는 “우-”하고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귀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소름 끼치도록 끔찍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놈의 얼굴은 그 마귀 얼굴과 많이 닮아있었다. 더 뜯어볼 것도 없이 한 뿌리에서 나온 사악한 존재가 틀림없었다.
느린 듯 보여도 속도가 굉장히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항소운과 애기 뒤에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녀석은 총 다섯으로, 숫자는 많지 않으나 살을 에는 듯한 삭풍과 살기를 몰고 다니는 탓에 가까이만 가도 견디기 힘들었다.
녀석들은 항소운과 애기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공격을 퍼부었다. 입을 쩍 벌리자, 그 사이로 삭풍이 쏟아져 나오며 엄청난 힘을 발산했다.
항소운도 민첩하기론 따라올 자가 없으나, 상대의 공격은 훨씬 빨랐다. 바람의 힘에 얻어맞는 바람에 몸이 종잇조각인 양 휘청였고, 그 틈에 음살의 기운이 체내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위력에서 차이가 날 뿐, 일전에 음풍마검에게 당한 공격과 똑 닮아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충격은 아직 견딜 만했다.
음풍마가 재차 공격을 가하려는데 별안간 항소운 앞에 귀문 여러 마리가 등장했다.
귀문의 체격은 몰라보게 커졌고, 마성(魔性)은 더욱 짙어졌다. 귀문이 날개를 휘두르자, 기이한 힘이 넘실대며 멀리 퍼졌다.
그러자 연신 나풀대던 음풍마가 꼼짝도 못 하고 제자리에 멈춰서더니 마치 술에 취한 양 휘청이는 것이었다.
귀문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날아가 음풍마 다섯 마리를 꿀꺽 삼켜버렸다. 음풍마는 저항도 못 하고 너무나 쉽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이 귀문들은 심해낭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녀석들로, 그중에는 귀척도 있었다.
그들은 흑암의 본연의 힘을 삼킨 뒤로 실력이 황급 후기까지 급상승했다.
그 후 극한의 기운에 당해 얼어 죽을 뻔했다가 어렵사리 목숨을 건졌는데, 동료의 시체를 먹고 혈맥을 다시 강화한 끝에 실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들은 8품 마황의 실력을 지니게 되었고, 귀척은 마황의 정점에 올라 어느덧 마제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날개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날개에는 환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어 눈이 마주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일종의 환각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음풍마는 이 술법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많은 종족이 귀문을 꺼리는 것도 이들이 가진 타고난 능력 때문이었다.
귀문이 갑자기 등장하자 애기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음풍마를 귀문이 너무나도 쉽게 처리해버리자, 그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귀문은 항소운이란 자의 심복인 것 같았다.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여 항소운에게 경외심마저 들었다.
죽은 음풍마의 시체를 뒤져보니 음풍초와 음풍석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물건들을 가진 녀석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넌 빨리 부상부터 치료해. 직접 그 음풍마를 찾으러 가야겠어.”
항소운이 애기를 보며 말했다.
“아, 그래, 알겠다.”
애기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서둘러 부상을 치료했다.
그동안 항소운은 어떻게 음풍마를 상대할지 생각에 잠겼다.
익우수인을 여러 마리나 죽이다니 대체 얼마나 강한 놈들일까. 모르긴 몰라도 아까 상대했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를 터, 아마도 마제 이상일 터였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바람의 진의를 깨닫기 위해서야. 음풍마와 싸운다면, 바람의 힘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긴 하겠지.
한데 숫자가 너무 많단 말이야. 나 혼자선 상대가 안 될 것 같고, 설령 귀척이 돕는다 해도 힘들 거야.’
고민을 해봐도 확실히 쉽지 않은 문제였다.
반나절쯤 지나자, 애기의 상태도 많이 호전되긴 했으나 다시 싸우기는 무리였다.
항소운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해독약을 주고, 음풍마가 있는 쪽을 물은 뒤 혼자 길을 떠났다.
얼마 후, 잡초가 무성한 곳에 도착했다.
삭풍이 휙휙 불고 살기가 도처에 가득하며, 시체는 한가득하고 돌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음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공중에는 음풍마가 한가로이 날아다니며 시체를 제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었다.
이곳에 접근하는 자는 수인, 요수 할 것 없이 이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음풍마는 항소운을 발견하고는 시체 무리를 조종해 그를 포위하도록 했다.
허나 그는 시체와 싸울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는 곧장 공중으로 날아올라 음풍마와 대치했다.
“네놈들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볼까!”
항소운은 자세를 취하며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음풍마는 귀신처럼 빠르게 적을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바람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바람의 힘으로 제힘을 키우고, 바람에 따라 나부끼며 그 힘을 이용해 공격했다.
항소운은 이들과의 대결을 통해 바람에 관한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지난 경험을 비추어보면, 대결을 치를 때 비로소 전투 의지가 급상승했고 깨달음도 한결 깊어졌다.
그는 음풍마 쪽으로 내달리며 바람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거기다 보법의 의경까지 깨달음을 더하자, 바람과 하나가 된 듯 속도가 극에 달했다.
음풍마와 겨루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양손을 예리한 칼날처럼 좌우로 가르며 빠르게 전진했다.
음풍마는 속도에서 우위를 점했으나, 항소운이 그들만큼 빨라지자 더는 우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속도만 빠를 뿐, 방어력은 형편없어서 일격에 무너지며 중상을 당했고 더러 죽는 녀석까지 발생했다.
그렇다고 쉽게 전멸될 놈들은 아니었다. 음풍마 여럿이 재차 속도를 가하며 입에서 바람의 힘을 연신 내뱉자 나무며 바위가 정신없이 나뒹굴며 혼란의 도가니를 만들었다.
살을 에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에는 음살의 기운까지 스며있어 바위와 수풀 사이를 닥치는 대로 헤집고 다니는 탓에 피하고 싶어도 마땅히 피할 데가 없었다.
항소운은 통찰력을 발휘해 음풍마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빈틈을 뚫고 반격을 가했다.
하나, 상대의 수가 워낙 많은 데다 협공을 펼치면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공격하고 방어하면서 음풍마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렇게 싸우다 보니 불현듯 음풍마의 특성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고 방어조차 못 하게 만드는 ‘속도’의 차이가 음풍마의 공격에 큰 힘을 더하고 있었다.
속도는 바람의 힘이 가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천하의 무공 중 파훼되지 않는 것이 없으나, 오직 속도만은 파훼되지 않는다 했던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한 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