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43
제443화 그럼 우리도 출발하죠
구양전기는 기분이 상한 듯 톡 쏘아붙이더니 또 대뜸 물었다.
“그런데 술 있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려니 좀이 쑤셔서 말이야.”
“뭐야, 나한테 술이라도 맡겼어?”
말은 이렇게 해도 품에서 술 한 병을 꺼내 건넸다.
구양전기는 술병을 탁 쳐서 열더니 시원스럽게 한 모금 들이켰다.
“내 술은 진작에 떨어져서 말이지.”
항소운은 품에서 다시 술병을 꺼내 들었다.
“혼자 무슨 재미로 마셔? 나랑 같이 마시자고.”
그러고는 호탕하게 술을 들이켰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아무런 구속 없이 이렇게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고. 영성수가 뭐 별건가. 영성수를 얻건 못 얻건 다 팔자 아니겠어? 억지로 쫓으면 괜히 명만 재촉할 뿐이지.”
마치 영성수 따위는 아무런 흥미가 없다는 듯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항소운은 별말 없이 그저 웃으며 계속 술만 들이켰다.
‘어쭈, 연기는 그럴듯한데. 진짜 영성수에 관심이 없었으면, 뭐 하러 여길 왔겠어?’
두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 양 술을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학당 제자들은 그 광경을 보며, 제각기 생각에 빠졌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두 강자의 만남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자도 있었고, 구양전기가 신분을 낮춰 항소운과 친구가 된 것은 영리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비판하는 자도 있었다.
또 항소운은 얼마나 운이 좋길래 구양전기와 같은 천재적 인물과 친분을 맺은 거냐며 부러워하는 자도 있었다.
보는 관점은 달라도 다들 항소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점은 같았다.
9대 성진으로 아홉 가지 힘을 동시에 수련하는 것은 스스로 앞길을 망치는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항소운은 날로 강세를 드러냈고 구양전기와 같은 요물과도 친분을 맺고 있으니 장차 큰일을 해낼 인물임이 분명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당분간 패왕군단과는 척을 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흘 후, 마침내 영성기지가 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구덩이 상부에 하나둘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 사이로 알 수 없는 힘이 뿜어져 나오면서 아래쪽을 향해 세차게 몰아치는 것이었다.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듯 하늘과 땅이 요동쳤다. 연신 바위가 폭발하며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알 수 없는 힘이 세차게 굽이치며 사방을 뒤덮었다.
땅 위 사람들은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졌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힘이었다. 저 힘에 눌리는 순간, 자신 앞에 놓인 미래는 오직 죽음뿐이었다.
다들 황망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데 학당 장로 두 사람이 조용히 앞으로 나섰다. 빠르게 두 팔을 휘저어 방대한 힘을 날리자, 공간이 갈라지며 생겨난 힘이 온전히 막아지며 제자들을 지켜냈다.
다른 세력과 이족 쪽에서도 고수들이 속속들이 등장하여 그 힘을 막아냈다.
그러던 중 전천경의 성인이 아닌 자가 급히 나와 돕다가 꼼짝없이 힘에 짓눌리는 바람에 핏덩이가 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영성기지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사람이 죽는 불상사까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작 전부터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고수의 노력으로 공간의 힘이 크게 약해지자, 바로 장로의 호통이 들려왔다.
“금제의 힘이 약해졌는데, 어서 들어가지 않고 뭣들 하느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자들은 저마다 요수를 타고 공중으로 돌진했다.
상공은 순식간에 검은 그림자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때,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연합해서 남은 힘을 전부 부숩시다. 금제 공간에 무사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다들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력과 진영을 떠나 다 함께 남은 힘을 몰아냈다.
쾅쾅, 요란한 폭발음이 연신 귀청을 때렸다. 금제의 힘은 극도로 줄어들어 더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재빨리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하나둘 금제 공간으로 뛰어 들어온 사람들은 안쪽의 상황이 바깥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방에서 돌이 날아오고, 중력은 요동치며 공기는 또 극도로 탁해서 마음 놓고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들어온 사람들은 사정없이 날뛰는 돌의 공격 대상이 되어버렸다.
으아악!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돌의 습격을 맞는 바람에 다들 비명만 질러댔다.
게다가 중력의 혼란으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땅에 곤두박질치며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항소운도 나름 단단히 준비했지만, 막상 안에 들어서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그동안 백만 근의 갑옷으로 단련을 하고 흙의 진의를 깨달은 덕분에 중력이 혼란한 가운데서도 몸의 중심은 지킬 수 있었다.
그는 패왕군단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패왕군단은 이쪽으로 모여라!”
그 소리에 단원들은 너도나도 항소운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한데 중력이 요동치는 데다 돌들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탓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다들 뛰어난 실력을 지닌 무인이다 보니 쉽게 포기하는 법은 없었다. 무기로 돌을 쉴 새 없이 부수며 어떻게든 무게 중심을 유지해서 항소운이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물론 그중에는 무공이 약한 자도 있었다. 가령 약사인 중하의 경우, 약을 만드는 기술은 뛰어나나 무공은 상대적으로 약해서 지금과 같은 돌발 상황에서는 힘이 부치는 모양이었다.
이때, 거대한 바위가 중하를 향해 맹렬히 날아왔다. 속도가 붙어서인지 중급 인황의 공격력과 맞먹을 정도였다.
방금까지도 돌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거대한 바위가 날아오자 숨이 턱 막혔다.
다른 자들도 제 코가 석 자인지라 누구 하나 도울 사람이 없었다.
마침 항소운은 중하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는 쏜살같이 달려가 흙의 진의를 이용해 거대한 바위를 아래로 밀치고는 곤경에 빠진 중하를 구했다.
이에 중하가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패왕, 감사합니다.”
“한 식구끼리 고맙긴요.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우선 여기 있어요. 다들 합류하고 나면, 따로 챙겨줄 사람을 붙여줄게요.”
그러고는 곧장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는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돌을 아래로 밀치고, 심지어 공격 방향마저 바꿔놓았다.
덕분에 패왕군단은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다들 모였으니, 원래 계획대로 열 개의 조로 나누어 행동하겠습니다. 각 조는 오십 명으로 구성되고, 한 식구니만큼 서로 챙기고 도와야 합니다. 상황이 복잡하니, 서둘러 영성수를 찾도록 하세요.
누구든 영성수를 찾는 사람은 지체하지 말고 바로 이곳을 떠나세요. 오래 있어 봤자 좋은 곳이 아닙니다. 자, 그럼 각자 조별로 모이세요!”
항소운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은 신속하게 열 개의 조로 나뉘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출발했다.
그가 속한 조는 나찰녀와 마기호 외에는 전력이 현격히 떨어졌다.
특히 수사와 암강, 중하는 전투에 능하지 않다 보니 이런 위험한 곳에서는 짐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조에 넣은 이유는 패왕으로서 이들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들이 다른 조에 가게 될 경우 전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신이 이만큼 수하들을 아낀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도 있었다.
“자, 그럼 우리도 출발하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다들 방어력을 최대로 높이세요.”
항소운이 조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에 사람들은 일제히 방어 장비를 착용하여 방어력을 단단히 높였다.
“패왕,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마기호가 임무를 자청하고 나섰다. 호위단 선봉장답게 늠름한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애기와 함께 앞장서세요.”
항소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그는 이번 일에 특별히 애기까지 합류시켰다. 황급 정점의 수인(獸人)은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했다.
중력이 제멋대로 요동치기는 해도 산이며, 강, 나무 등 있을 것은 다 갖춰져 있었다.
다만 산은 금방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고, 강물은 사방으로 흩날렸으며 나무는 돌과 함께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상식 밖의 세상이었다.
이런 혼란 속에 영성수가 있다고 누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영성수를 찾기도 전에 또 다른 위험이 사람들을 덮치고 있었다.
영성기지 안은 혼란으로 가득해서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곳의 힘에 섣불리 당하지 않기 위해 방어력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사실 이곳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돌덩이가 아니라 이곳을 가득 메운 불안정한 힘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천지의 기운조차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이렇다 보니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주변 힘을 쓸 수 없어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싸워야 했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수정이나 약초로 힘을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혼란의 도가니 속에 생물이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상황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체가 있었다. 바로 ‘각갑괴(角甲怪)’라는 괴상한 이름의 생물이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생물로, 곤충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한 괴생명체였다.
전체적으로 납작하고 둥그스름하며 가장자리를 따라 톱니처럼 날카로운 가시가 둘러싸고 있었다.
웅크리면 돌 만했다가 몸을 쫙 펼치며 진짜 정체를 드러냈다.
이렇다 보니 평소에는 돌에 엉겨 붙어 있다가 돌이 부서지고 나면, 정체를 드러내며 사람을 공격했다.
특히 가시가 무척 단단해서 황급 갑옷도 뚫을 정도였으니, 이 가시에 당한 사람만도 수없이 많았다.
사람들은 각갑괴가 숨어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공격을 당하는 바람에 온몸에 상처를 입었고, 심지어 머리를 공격당해 그 자리에서 숨진 사람도 여럿 되었다.
사방에서 사상자가 속출하자,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다들 조심해!”
“어서 저것들을 죽여야 돼!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죽고 만다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힘을 합쳐 괴생명체에 대항했다.
그렇게 협공을 펼쳤어도 상대는 잠시 움찔할 뿐 별다른 충격이 없는 듯했다. 그만큼 녀석의 방어력은 대단했다.
항소운이 이끄는 무리 역시 각갑괴의 공격에 부딪혔다.
선두에서 나아가던 마기호는 뒤늦게 각갑괴의 존재를 눈치챘으나, 미처 공격을 피하지 못해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너무나 아픈지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다행히 애기는 순발력이 상당해서 공격에 당하지는 않았다. 무척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속도가 빠르다 보니 여러 면에서 유리했다. 허나 혼자 힘으로 각갑괴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각갑괴 한 마리가 항소운의 정면을 향해 날아왔다.
지금 그는 흙의 진의를 이용해 돌이 무리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있었다. 돌이야 무생물이라 제어할 수 있다 쳐도 살아있는 생물을 무슨 수로 제어한단 말인가.
그래도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어 재빨리 힘을 응집시켜 냅다 주먹을 날렸다.
각갑괴는 정통으로 얻어맞고 휙 날아갔으나,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오히려 반탄력을 이용해 튕기듯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녀석들에게 환경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저 바람 따라 물결 따라 흘러가는 종이배처럼 이리저리 나부끼며 눈에 띄는 사람을 닥치는 대로 공격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