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50
제450화 오, 보는 눈은 있는데
한편, 항소운은 멀어져가는 제림 무리를 보면서도 전혀 조급한 기색이 없었다.
이때, 한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구양전기가 다가왔다.
“왜 그렇게 태평해? 혹시 무슨 대책이라도 있는 거야?”
“대책은 무슨, 그냥 여기서 죽는 수밖에 없지.”
그러고는 능글맞은 얼굴로 구양전기에게 물었다.
“아니면 자네가 진공도를 거둬들여서 날 구해주는 건 어때?”
“내게 그럴 능력이 어딨어? 나도 이건 손도 못 댄다고.”
비록 모조품이긴 하나, 성급 무기를 모방한 것이다 보니 성인(聖人)급 무인이 아닌 이상 다루기 힘들었다.
물론 다른 성급 무기가 있으면, 진공도를 파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성급 무기가 어디 흔하던가. 전천경의 성인이라 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인 경지에 이른 무기 제련사가 극히 적다 보니 자연히 성급 무기도 드물었다. 물건이 적다 보니 자연스레 가치가 올라 더욱 구하기 힘든 물건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난 틀린 것 같네.”
항소운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구양전기는 복잡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항소운의 얼굴에서 초조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필경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데 항소운이 생각하는 방법이 대체 무얼지 그의 머리로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내기할까?”
갑자기 항소운이 말했다.
“무슨 내기?”
뜬금없긴 하지만 구양전기도 궁금한 눈치였다.
“내가 여기서 빠져나가면, 우리 군단에 들어와서 부단장이 되는 거야. 어때?”
구양전기는 그 말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항소운이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한가 싶었다. 만약 자신이 갇혔더라면, 저렇게 침착하진 못할 터였다.
“뭐야, 무슨 속임수를 쓰려고? 난 절대 안 당해.”
“그래도 똑똑하네. 설마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항소운이 재밌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가 그렇게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무슨 수가 있겠다 싶은 거지.”
구양전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무예에 일가견이 있는 자라면 다들 자신만의 비장의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항소운처럼 고급 9성 지체를 타고난 자라면 쉽게 죽을 운명은 아닐 터였다.
항소운의 태도가 침착할수록 굉장한 무기를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됐다, 됐어. 뭔 사람이 이렇게 재미가 없담. 됐으니 이만 가봐.”
항소운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구양전기를 잘 구슬려서 승낙을 받아내려 했는데, 녀석은 생각보다 똑똑해서 꾐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단한 녀석이라 패왕군단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는데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난 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구양전기가 말했다.
“정말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니까 그러네! 너도 여기서 나랑 같이 죽을 참이야? 주변 기류가 갈수록 어지러워지는데, 이러다간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
항소운이 울상을 짓자, 구양전기의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 녀석의 엄살이 심해졌다는 생각에 그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럼 거기서 무사히 빠져나오고 진공도까지 거둬들이면, 네 말에 따를게.”
“진짜지?”
항소운은 금세 신이 난 표정이었다.
“나 구양전기는 번복 따윈 안 해.”
구양전기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좋아, 그럼 잘 보고 있으라고!”
항소운은 품에서 곧장 환(環)을 꺼내 들었다. 환에 힘을 불어넣어 움직이자, 거대한 위력을 발산하는데도 진공도의 힘과 전혀 충돌도 일으키지 않은 채 빠르게 밖으로 돌진했다.
구양전기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자, 이제 나왔어!”
항소운은 멋스럽게 땅에 내려섰다.
“너, 너 공간을 뚫는 성급 무기가 있었어?”
구양전기는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 보는 눈은 있는데.”
그러고는 진공도 앞으로 성큼 걸어가 환을 날렸다.
환이 진공도에 부딪히자, 깡 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그 탓에 진공도는 이내 빛을 잃고 속박 기능마저 상실했다.
항소운이 손짓하자, 환과 진공도가 다시 고스란히 돌아왔다.
진공도를 보니, 아까 충격으로 균열이 생겨서 더는 쓸 수 없게 돼버렸다.
“자, 구양 부단장, 이 진공도는 내가 특별히 주는 선물이니까 사양하지 말고 받게.”
항소운이 진공도를 건네며 말했다.
구양전기는 여러 군데 금이 가 버린 진공도를 보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패왕, 감사합니다.”
구양전기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홀로 자유로이 다니는 생활에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남의 꾐에 넘어가 세력에 들어가게 되고 게다가 직책도 부단장이라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의 무공이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거대 세력을 만드는 것쯤은 문제도 아닌데 말이다.
구양전기는 약속을 목숨처럼 지키는 남자였다. 기왕 항소운과 약속한 이상, 번복할 수는 없지만 또 항소운의 의도대로 순순히 움직일 마음은 없었다.
“패왕, 절 부단장으로 들이고 싶다면 이 수하가 승복할 만한 실력은 보여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구양전기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저리 돌려 말해도 결국 항소운의 진짜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항소운이 소사와 대결을 벌여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소사는 그리 대단한 녀석이 아닌데, 어떻게 항소운이 패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항소운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결론뿐이었다.
확실히 그의 예상대로 당시 항소운은 제 실력을 전부 발휘하지 않았다.
작정하고 싸우면,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다.
항소운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쳐다보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그러고는 곧장 명혼공간을 열어 구양전기를 그 속에 가둬버렸다.
구양전기는 침착하게 주변을 감응하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명혼공간? 명황족의 피가 흐르는 겁니까?”
“맞아, 명혼공간에 들어온 사람은 거의 죽어 나갔지.”
그러면서 그는 명황수옥의 힘을 발휘하여 구양전기를 둘러쌌다. 그렇다고 바짝 옥죄지는 않았다.
구양전기는 제존급에 달하는 위력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상대가 얼마나 범상치 않은 인물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좋습니다. 부단장 자리는 제가 맡겠습니다.”
구양전기가 호쾌하게 대답했다.
항소운은 바로 명혼공간을 거둬들이고 물었다.
“사실 자네도 나와 겨룰 만한 실력은 충분히 되잖아. 그런데 왜 싸워보지도 않고 바로 승낙한 거야?”
그는 명혼공간을 통해 구양전기의 무공이 8품 입룡경에 올랐음을 느꼈다.
구양전기보다 서열이 높은 우자양만 해도 7품 입룡경에 불과하니 확실히 놀라운 실력이었다.
사실 구양전기의 실력이면 전력이 제존급에 달할 테고, 거기다 각종 비장의 수단까지 발휘하면 명혼공간 정도는 너끈히 깨뜨릴 수도 있었다.
이에 구양전기가 손사래를 치며 씩 웃었다.
“전 이기지 못할 싸움은 안 합니다. 제 실력이 더 높아지거든, 그때 가서 제대로 겨뤄보시죠.”
그는 명혼공간의 신비로운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외부 환경과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물론, 상상 밖의 능력을 발휘하여 그 속에 갇힌 사람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항소운의 경지가 자신보다 낮다고는 하지만, 상대의 영혼만은 아주 견고했다. 그것은 아주 숱하게 단련된 영혼으로, 이미 인황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런 이유로 굳이 항소운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싸운다 해도 무승부일 확률이 높았다.
또 항소운이 환이란 성급 무기를 가진 걸 보면, 상대는 지금 환경에서 자신보다 훨씬 유리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지금은 대결을 미루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더군다나 그는 항소운에게 호감이 있어서 친구가 되는 것이 더 좋겠다 싶었다.
“좋아, 자네가 나중에 대결을 피한 데도 내가 꼭 싸우자고 할 거야.”
항소운은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구양전기 같은 인물이 자기 세력으로 들어왔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이제 패왕군단은 앞길이 훤히 트여서 고속 성장을 하게 될 테고, 장차 5대 세력 안에 들 수도 있을 터였다.
그때가 되면 누가 감히 패왕군단의 위엄에 도전한단 말인가.
“그건 그렇고 이제 곧 폭발할 것 같으니, 어서 나가시죠.”
구양전기는 이렇게 말하며 먼저 날아올랐다. 항소운도 질세라 빠르게 뒤쫓았다.
구양전기는 그새 장난기가 발동해서 겨뤄보고 싶은 마음에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항소운이 따라올 수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물론 항소운이 실망시킬 리는 없었다. 일보씩 내디딜 때마다 천 미터를 훌쩍 뛰어넘으면서 격차를 빠르게 좁혔다.
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보법의 의경 중 두 번째 단계인 축지법에 이른 결과였다.
이 단계에 이르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속도가 빨라져 어느새 구양전기를 따라잡았다.
구양전기는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녀석 뭐야!’
경지가 몇 품급이나 아래인 녀석이 속도에서는 전혀 밀림이 없었다. 그래도 천재 중의 천재라며 명성이 자자한 자신인데 항소운과 비교하니 어쩐지 밀리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무예의 경지마저 따라잡히면, 그때는 격차가 현격히 벌어질 것이다.
어느덧 영성기지는 괴멸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돌들은 가루가 돼버렸으며, 각갑괴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녀석들은 미친 듯이 사람을 공격하며, 출구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성수를 찾고 있던 사람들도 겁을 집어먹고 서둘러 밖으로 도망쳤다.
“빨리 도망쳐! 곧 폭발한다!”
“젠장, 영성수는 찾지도 못했는데 정말 이대로 나갈 거야?”
“잔말 말고 어서 나가. 영성수가 목숨보다 중요해? 우선 살고 보자고.”
“어서 가자. 많지는 않아도 챙기긴 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해.”
금제 공간 밖으로 사람들이 속속 빠져나왔다.
그들은 곧장 학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일행이 나오길 기다렸다.
한편, 패왕군단이 모인 곳에서는 누군가 당용비에게 항소운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에 당용비가 소스라치게 놀라 물었다.
“뭐라고? 패왕이 제맹 때문에 지금 갇혀 있단 거야?”
“예, 그…… 그게 저희를 구하려고 놈들이 쳐놓은 덫에 들어가셨어요. 아마도 사, 살아남기는…….”
“머저리 같은 놈! 너희 모두 머저리야!”
당용비는 상대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불같이 화를 냈다.
“제맹,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나찰녀도 이를 부득 갈며 소리쳤다.
때마침 제맹이 공간 밖으로 빠져나오며, 사도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한 것이 어디서 주둥이를 나불대는 거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순간, 패왕군단은 제맹을 일제히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항소운이 갇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맹이 태평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패왕군단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항소운이 저놈들 때문에 당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제맹은 패왕군단을 위협적으로 느끼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적대시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두 무리 사이에 원한이 깊은 가운데, 항소운의 일은 직접적인 불씨가 되어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