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55
제455화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장로원.
제림의 시체는 사도명우에게 고이 보내졌다.
사도명우는 제자의 시체를 보며 쯧쯧 혀를 찼다.
“폭황단까지 줬건만 이렇게 죽다니, 내 얼굴에 먹칠만 했구나.”
말은 이렇게 해도 제림의 머리를 가져다 목 위에 정성스레 올려놓았다. 그는 품에서 액체가 든 병을 꺼내더니 머리와 목이 닿는 부분에 부었다.
영액에 신통한 능력이 있는 건지 별안간 연기가 뿌옇게 일어나면서 성스러운 빛이 넘실대더니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제림의 머리와 목은 감쪽같이 이어져 상처조차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신비한 광경이었다.
대체 무슨 영액이길래 잘린 머리가 다시 붙고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단 말인가.
어쩌면 성급 영액이거나 심지어 신천(神泉)일지도 모른다.
“깨어나라!”
이렇게 외치며 손에 무언가를 쥔 채 제림의 머리를 탁 치자, 별안간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나더니 곧장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한참 후, 제림의 머릿속에서 움직임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별안간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여, 여기가 어디에요?”
제림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하, 아들아! 이 아비를 알아보겠느냐? 널 위해 완벽한 육신을 준비했단다. 조금 손상되긴 했지만, 잘 먹고 쉬다 보면 괜찮아질 거다.”
사도명우가 기쁨에 겨워 말했다.
“아, 아버지? 제, 제가 살아난 거예요?”
제림은 여전히 흐리멍덩한 얼굴이었다.
“그렇단다. 여기 혼천이 있으니, 이것부터 마시거라. 영혼력이 강해지고 나면, 이 육신과도 완전히 합일을 이뤄 다시 예전처럼 활기차게 살 수 있을 거다.”
사도명우는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앞의 제림은 더 이상 예전의 제림이 아니라 그의 영혼 대신 사도명우의 아들이 그 자리를 꿰찬 것이다.
일찍이 사도명우에게는 사도요천(司徒耀天)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재능도 출중하여 제림과 마찬가지로 고급 8성 지체를 타고났으나, 타고난 성진체가 없다는 점에서 살짝 뒤처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요천은 젊은 세대를 이끄는 뛰어난 무인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는 전천 경지를 돌파하다가 뜻밖의 사고로 죽고 만다.
육신은 완전히 훼손되고, 영혼도 파괴될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사도명우가 적시에 도착한 덕분에 영혼만은 지킬 수 있었다.
지난 세월, 그는 아들을 살릴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용봉 학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제림이었다. 아들과 외모가 비슷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급 8성 지체라는 체질이 같다 보니 이 아이의 육신이면 아들을 살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아들을 덜 고생시키고 싶은 마음에 제림이 제존이 된 후 아들의 육신으로 대체하려 했으나, 이번 대결에서 항소운에게 죽임을 당하는 바람에 서둘러 아들을 살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만큼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아들이 되살아났으니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다.
하나 이 일은 그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아직 제림의 영혼은 완전히 붕괴되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사도요천의 영혼이 들어오자, 두 영혼은 육신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비록 제림은 항소운과의 대결에서는 패했으나, 영혼력이 크게 손상된 사도요천에 비하면 아직 영혼력만은 건재했다. 결국 사도요천의 영혼은 제림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물론 사도명우가 이 사실을 안다면, 땅을 치며 통곡을 했을 것이다.
지금 사도명우와 대화를 하는 ‘제림’은 제패천의 아들 ‘제림’이었다. 다만 사도요천이 가진 기억의 일부를 흡수하면서 영혼에 이변이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제림은 훨씬 무서운 존재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날 제자로 들이고 왜 그렇게 공들여 가르치나 했더니 과연 못된 마음을 품고 있었구나. 다행히 하늘이 도와서 영혼이 살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 늙은이한테 꼼짝없이 당했겠어.
기왕 하늘이 다시 살려주셨으니 내 반드시 천하를 군림하여 항소운 그놈을 찢어 죽이고 말겠다! 그리고 영감탱이, 너도 곱게 죽진 못할 거다!’
제림은 피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맹세했다.
1호 용원 폐관실.
항소운은 이곳에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저 지난 세월이 생각났을 뿐, 제림을 죽인 일이 후회되는 건 아니었다.
배신을 당하고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다가 오늘 제림을 제 손으로 죽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역경이 있었던가.
이제 한시름 놓게 됐지만, 어쩐 일인지 생각만큼 기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왜 배신을 당했던 걸까. 어째서 하루아침에 소종주 신분을 잃고 길바닥에 나앉게 된 것일까. 단지 제패천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정녕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단 말인가?
어릴 적, 문파의 노신(老臣)들은 제발 먹고 노는 데만 집중하지 말고, 무공을 연마하라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하나 이런 충고조차 귓등으로 흘린 채 제멋대로 굴던 그였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까. 신하들은 날로 불만이 커졌고, 그에게 종주 자리를 물려받을 재량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제패천을 지나치게 신임한 것도 문제였다. 일이 터져도 모르는 척 넘어가기 일쑤였고, 전적으로 제패천에게 맡긴 탓에 문제는 산처럼 불어나서 결국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당시 자신이 분발했더라면 미래가 바뀌었을까.
하나 흘러간 시간을 어찌 되돌리며,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 없었다.
그렇게 칠일 밤낮을 꼬박 보내고 나자,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깊은숨을 몰아쉬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제림은 죽어야 할 놈이었어. 다만 철없이 살았던 내 잘못도 크지. 앞으로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끼고 감사하며 살아야겠어. 그래, 그렇게 사는 거야.”
삶의 방향이 명확해지자 차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가슴에 맺혔던 원한도 옅어졌다.
제림과 하운석에 대한 미움이 가장 컸던지라 둘 중 한 사람을 제거하고 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을 터였다.
밖으로 나오자, 패왕군단의 중역들이 화원에게 기다리고 있었다.
“패왕 나오셨군요!”
마기호가 가장 먼저 발견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당용비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패왕, 괜찮으십니까?”
이에 항소운이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다들 걱정이 많았죠. 가벼운 부상이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그제야 사람들도 한시름 놓은 눈치였다.
이때, 당용비가 제안을 하고 나섰다.
“패왕, 우리 기세도 왕성해졌으니 이참에 제맹을 전부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놈들도 중심을 못 잡고 뿔뿔이 흩어진 모양입니다.”
제맹은 우두머리를 잃으면서 붕괴 직전의 상황에 놓였다. 혼란한 틈을 타 맹주 자리를 꿰차려는 자도 있었고, 다른 세력에 의탁하려는 자도 있었으며 더는 학당에 머물 엄두가 안 난다며 아예 임무를 받고 외부로 나간 자도 있었다.
얼마 못 가 제맹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항소운은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우리 패왕군단은 제맹 일원의 입단을 환영한다는 내용으로 널리 소식을 전하세요. 나와 제림은 사적인 원한일 뿐, 다른 자들에게 딱히 원한 같은 건 없으니까요.”
이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항소운이 이런 결정을 내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얼굴이었다.
잠시 후, 당용비가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패왕, 놈들이 한 짓이 있는데 그냥 봐주자는 겁니까?”
제맹은 틈만 나면 패왕군단을 괴롭혀서 호되게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항소운의 의도는 좋지만, 단원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했다.
이때, 제갈전천이 항소운의 의견에 찬성하고 나섰다.
“부단장, 제가 보기에 패왕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각 세력의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용봉 학당의 제자들이지 않습니까? 그들이 굳이 세력을 나눠 진영을 세운 것은 학당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맹이나 우리나 큰 나무를 찾아 의지하려는 건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의지하던 나무가 쓰러졌다고 굳이 그들에게 화풀이할 필요는 없지요. 우리가 기꺼이 받아준다면, 저들도 감격해서 충성을 다해 패왕을 따를 것입니다.”
말에 빈틈이 없는 걸 보니 진작부터 이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이에 상적풍도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저도 찬성합니다.”
다른 자들도 제갈전천의 말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했는지 항소운의 생각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자 당용비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다들 찬성한다니 그럼 그렇게 합시다. 하추화란 녀석은 제가 책임지고 데려오겠습니다. 잘만 쓰면 분명 좋은 인재가 될 겁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듣자 하니 벌써 4품 입룡경에 올랐다던데요.”
상적풍이 말했다.
“하하, 그럼 아직은 싸워볼 만하니 당장 겨뤄봐야겠군.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말일세.”
당용비가 껄껄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와 하추화는 싸우면서 정이 든 사이였다. 벌써 세 차례나 겨뤘으나, 매번 승부가 나지 않았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두 사람은 내심 상대의 무공에 감탄했고 존중하는 마음마저 싹텄다.
과거에는 각기 다른 주인을 섬겼으나, 이제 제맹이 사라지게 생겼으니 당용비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추화를 데려오고 싶었다.
항소운은 이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 왈가왈부하지 않고, 제갈전천을 시켜 단원들을 전부 소집하도록 했다.
대승을 거두었으니, 대장으로서 아랫사람을 독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영성수와 단원들이 가진 물건을 맞바꿔 인심을 더욱 단단히 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일전에 그는 영성기지에서 영성수를 꽤 많이 가져왔다. 그중 대부분은 성해건곤을 확장하는 데 썼고, 일부는 아직 남아있었다. 하나 그 수가 많지 않아서 팔백 명에 이르는 단원들에게 전부 나눠줄 수 없기에 교환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단원들이 대거 모이자, 1호 용원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항소운은 우선 자신의 상황을 알려 단원들을 안심시킨 후,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라며 다독였고 부족한 수련 자원은 서로 교환하라는 당부의 말도 건넸다.
과연 지도자다운 면모였다. 단원들은 그를 보며 더욱 단단히 뭉쳤다.
이후, 패왕군단의 서열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얼마 후면 거대 세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항소운은 사람들을 전부 돌려보냈다.
당용비와 제갈전천, 마기호도 전부 내보내서 이제 화원에는 그와 나찰녀 단둘만 남았다.
“나찰녀, 우리 얘기나 해요.”
항소운이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고된 싸움을 끝내고 나자, 지금은 다른 것보다 푹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찰녀는 곁에 앉아 술과 안주를 꺼내놓았다.
“패왕, 대승을 거두신 걸 축하드려요.”
그녀가 잔을 들며 말했다.
항소운은 취했다.
오랜만에 진탕 마셨는지 술에 흠뻑 취했다.
그의 무공이면 취하려고 작정하지 않는 이상, 술에 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랬다. 그는 술에 취하고 싶었다. 배신자를 제 손으로 직접 죽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