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76
제476화 여기가 어디예요?
항소운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나귀 다루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사방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렇게 창피한 순간은 난생처음이었다.
‘언젠가는 꼭 저 영감탱이가 나귀를 몰게 만들어야지!’
늙은 나귀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어느 술집 앞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벽에 걸린 천에 ‘황사 주루’라고 큼지막하게 글씨가 쓰여 있었다.
노인은 상기된 표정으로 마차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황사주(黃沙酒)야. 여전히 그 맛이려나.”
노인은 한 줄기 바람 마냥 주루로 직행했다.
항소운도 뒤따라 주루에 들어선 순간, 무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더니 여러 물건이 앞다퉈 날아왔다.
재빨리 손을 뻗어 물건들을 받아내고 나니 웬 아주머니의 욕설이 들려왔다.
“저 영감탱이가 또 왔네! 당장 나가, 확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기 전에!”
“이봐, 공짜 술 좀 마셨다고 이리 매몰차게 대하는 겐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게 말로 하는 걸 고마운 줄 아셔. 온 김에 지난번 술값이나 내놔. 안 그랬다간 나도 가만히 안 있을라니까.”
아주머니가 고래고래 악을 썼다. 마치 사자가 포효하듯 엄청난 기세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악스럽게 생긴 아주머니가 의자를 들고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인이 외상값을 갚기 전에는 절대 안 물러날 기세였다.
노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정수리에는 달걀노른자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앞쪽에는 깨진 그릇이 수북했다.
노인은 들어서자마자 거센 저지를 당한 모양이었다.
항소운은 고개를 돌리고 몰래 웃었다.
‘영감탱이도 호되게 당할 때가 있구나.’
그러다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인은 대단한 무공을 갖고 있으면서 왜 저 여인에게 고스란히 당하고 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오늘 갚으려고 했다고. 얘야, 이리 와서 아주머니한테 중품 수정 열 개만 주거라. 그것도 없으면 오늘 술은 글렀어.”
노인이 손짓하며 말했다.
“중품 수정 열 개요?”
항소운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노인에게 이 정도 돈도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수정을 꺼내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그녀는 항소운을 힐끗 보며 수정을 받더니 다시 허리에 양손을 얹고 노인을 보며 말했다.
“이건 본전이고, 이자도 내야지. 여기서 술 먹고 싶으면 이자까지 내놓으라고.”
“알았네, 알았어. 이자도 내야지. 얘야, 아예 오늘 먹을 술값까지 넉넉히 내드려라.”
노인의 말에 항소운이 중품 수정 백 개를 꺼내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술이나 실컷 가져다주세요.”
험상궂던 아주머니의 얼굴에 그제야 웃음꽃이 피었다.
“알았어, 젊은 총각이 참 싹싹하네. 한데 저 영감탱이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아주 유명한 사기꾼이거든. 몇 년 동안 술값 한 번 안 내다가 오늘에서야 총각더러 내라고 한 거잖아.”
아주머니는 넌지시 일러주고는 물통처럼 굵은 허리를 흔들며 술을 가지러 갔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얘야, 저 여자 참 괜찮지 않으냐? 저 허리 흔드는 것 좀 봐라, 참 곱지? 궁둥이도 펑퍼짐하니 크고. 만지면 참 폭신할 거야.”
항소운은 절로 구역질이 올랐다.
‘참 취향 한번 독특하네.’
외모는 평범하지만, 허리가 무척 두꺼운 여자였다. 게다가 뒷모습의 굴곡은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됨직해서 누가 봐도 후덕한 여자였다. 그런데도 아주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호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노인이 아주머니의 욕을 왜 잠자코 듣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주머니는 술을 가지러 가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영감탱이, 나 훔쳐보고 있던 거 아니지?”
그러자 노인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냐, 그냥 주변에 뭐가 있나 둘러보고 있었어.”
“흥, 또 훔쳐보기만 해 봐, 눈을 확 뽑아 버리라니까!”
아주머니는 사납게 쏘아붙이더니 이내 항소운을 보며 눈을 찡긋했다.
“젊은 총각이 참 잘생겼네. 나랑 같이 이 술집을 운영해보는 건 어때?”
이에 항소운이 황급히 대답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전 이분의 시종일 뿐이에요.”
“그렇지, 이 녀석은 내 시종이야.”
노인은 어깨에 힘을 잔뜩 주더니 이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실은 나도 자네랑 같이 이 술집을 꾸리고 싶네만.”
“흥, 꿈도 야무지네!”
아주머니는 욕지거리를 하며 노인 쪽으로 술을 내던졌다.
노인은 기깔나게 술을 받아들고는 향을 맡으며 연신 감탄했다.
“그래, 바로 이 향이지. 참 향기롭구나.”
항소운과 노인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인이 건넨 술을 맛본 그는 하마터면 구역질할 뻔했다.
술맛은 참으로 거칠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축의 오줌인 양 지린내가 풍겨서 한 모금 삼키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런데도 노인은 술맛이 좋다며 연신 들이켰다.
‘어쩌면 이게 사랑이겠지.’
그는 노인을 보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술은 접어두고, 안줏거리만 두어 가지 더 시켜 먹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에 잠겼다.
어쨌든 지성정에 왔으니 이곳에 어떤 신비로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인마가 술집으로 들이닥쳤다. 그중 한 사내가 항소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자를 잡아라. 저항하면 죽여도 무방하다!”
술집에 들이닥친 자들은 일전에 노인과 함께 왔던 아가씨의 호위대였다.
호위대가 다짜고짜 끌어가려 하자, 항소운은 당황해서 노인을 쳐다보았다.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노인은 술을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위병들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자, 항소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따라가 보면 알 거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냉랭히 말을 뱉었다.
“따라가는 거야 상관없지만, 동(童) 어르신께 그래도 되는지 여쭤는 보셨습니까?”
항소운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노인이 말을 않겠다면 억지로라도 끌어들여야 했다.
그러나 호위대는 노인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항소운을 붙잡으려 했다.
“지금 누구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게냐!”
노인이 탁자를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호위대는 깜짝 놀랐는지 우두머리가 황급히 말했다.
“어르신, 이해해주십시오. 저희는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뭐 명령에 따라? 대체 누구의 명이란 말이냐? 이 녀석은 내 시종이다. 그런데도 잡아가겠다면, 내 체면을 깎는 것과 뭣이 다르단 말이냐?”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호위병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성정에서 노인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 같은 조무래기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돌아가서 통령(統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우두머리는 호위대를 데리고 바로 돌아갔다.
“주인만 믿고 설쳐대는 개들이로구나. 정주(庭主)도 날 함부로 못 대하는데, 지들이 뭐라고 설쳐대는지.”
노인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르신, 역시 대단하세요.”
항소운이 연신 손뼉을 치며 노인을 치켜세웠다.
“알면 됐다. 앞으로 이 몸을 잘 보필하면, 네게도 좋은 일이 있을 거다.”
노인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영감탱이, 뭐가 잘났다고 어깨에 힘주고 있어? 확 쫓아버릴까 보다!”
여주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노인은 흠칫 놀랐다.
“아냐, 아무 말도 안 했어. 아직 술도 한참 남았으니까, 제발 쫓지만 마.”
“쯧쯧, 그새 또 꼬랑지를 내리네. 자, 여기 술이나 받아. 이건 돈 안 받을 테니.”
여주인은 그러면서 술 항아리 두 개를 휙 집어 던졌다.
노인은 잽싸게 받아들고는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가만히 보니 노인과 여주인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항소운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일이 성사되려는 건가?’
항소운은 눈치껏 빠지기로 했다.
“어르신, 전 나귀 대인께 술 좀 드리고 올게요.”
그러고는 술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려는 배려였다.
그는 밖으로 나와 늙은 나귀에서 술 단지를 건넸다.
“대인, 술 좀 드세요.”
“그건 너나 실컷 먹어라. 말 오줌보다 냄새가 고약한데 저 할배는 어찌 참고 먹는 건지 원.”
늙은 나귀가 투덜대며 말했다.
항소운은 코를 만지며 씩 웃었다. 나귀는 노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문득 소백이가 생각났다. 벌써 몇 해를 못 봤는데, 잘살고 있으려나?
항소운은 무료한 틈을 타 나귀에게 물었다.
“대인, 그런데 여기가 어디예요?”
“아까 보았잖느냐. 지성정이라고.”
“아뇨, 어느 지역에 속한 곳인지 궁금해서요.”
“절망사막이다.”
나귀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대답해줄 수 없으니 더는 묻지 마라. 계속 캐물었다간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야.”
나귀의 진지한 말투에 항소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웬 비밀이 이렇게 많담. 아무튼, 사막에서 사라진 문명 세계인 것만은 분명해. 대체 이곳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구석구석을 거닐며 지성정에 대해 알아보고 싶지만, 호위대가 자신을 노리고 있어 섣불리 행동할 수는 없었다. 호위대 생각에 문득 의구심이 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잡아들이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혹시 그 아름다운 여인과 잠깐 접촉했기 때문일까.
그렇다 해도 죽을죄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 여인은 아주 특별한 신분일지 모른다. 그런데 공교롭게 자신을 구해주었고, 그 일로 자신까지 연루된 모양이었다.
이때, 술집 안에서 또다시 호통이 들려왔다.
“이 영감탱이가 미쳤나! 감히 내 엉덩이를 만져? 어디 내 손에 죽어봐라!”
뒤이어 쨍그랑하고 접시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노인이 밖으로 후다닥 뛰쳐나왔다. 그는 항소운과 나귀는 쳐다도 보지 않고 냅다 도망쳤다.
“난 먼저 간다! 나귀야, 저 녀석은 네가 데리고 와라!”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쯧, 못난 할배 같으니.”
나귀가 욕을 툭 뱉었다.
“요 나귀 놈이 내 가게 앞을 막고 있었네. 네놈 때문에 손님들이 다 도망가잖냐. 어서 저리 안 가! 확 잡아서 솥에 넣어버릴까 보다!”
여주인은 어느새 밖으로 쫓아 나와 칼을 들고 소리쳤다.
나귀는 화들짝 놀라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정신없이 도망쳤다.
항소운은 전속력을 다해 뒤쫓으며 웃음을 삼켰다.
‘역시 대단한 분들이야.’
얼마 후, 노인과 나귀를 따라잡은 그가 물었다.
“어르신,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당연히 집에 가야지.”
노인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드디어 그 암호랑이 궁둥이를 만졌다. 역시 기분이 아주 좋더구나.”
‘으이구, 색마가 따로 없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으나, 겉으로는 노인의 비위를 맞추었다.
“어르신이 마음만 먹으면 그 주인장 정도는 얼마든지 사로잡을 수 있죠.”
“그냥 관두련다. 워낙 성질이 사나워서 나도 힘에 부쳐. 그냥 가끔 놀러나 가야지.”
또 항소운은 이곳의 상황에 대해 물었으나, 노인과 나귀는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대답을 피했다.
잠시 후, 이들은 아주 허름한 흙집에 도착했다.
궁벽한 곳에 자리 잡은 작은 집을 보며, 항소운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곳이 노인의 집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