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79
제479화 천지도 놀라고, 귀신도 울고 가겠던데요
영붕정은 재빨리 몸을 돌려 노인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저희는 살인범을 잡으러 왔을 뿐입니다.”
노인은 그의 말에 아랑곳도 하지 않더니 나귀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성가신 놈들이 우리 집 앞을 떡 하니 가로막고 있구먼. 나귀야, 실력 발휘 좀 해봐라.”
“나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네.”
늙은 나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짜고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범인은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귀는 호위대 앞에 서 있었다.
나귀가 뒷다리를 들어 힘껏 갈기자 멍하니 있던 호위병들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하늘로 솟구쳤다.
자그마치 수십 명에 이르는 호위병은 전부 입룡경 이상으로, 심지어 입룡경 정점의 인황도 있었으나 마치 나무 인형처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제야 당했다는 생각에 다들 아차 싶었다.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영붕정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는 호위대를 이끄는 통령으로, 혼태경의 무공을 지녔으나 노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늙은 나귀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어서 무공에서는 자신보다 한참 앞섰다. 나귀의 발길질에 당하기라도 하면 앞으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
“어르신, 이러시면…….”
영붕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차례가 되기 전에 나귀를 멈춰달라 부탁하려던 참이었다.
한데 노인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딴청을 피웠고, 어느새 나귀는 그의 앞에 다가와 궁둥이를 힘껏 들이밀더니 방귀를 시원스레 뀌는 것이었다.
냄새는 말할 것도 없고, 소리도 대단히 커서 영붕정의 머리카락을 화끈하게 태워버렸다. 그는 고약한 냄새에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근처에 있던 항소운도 정신이 아찔해져 황급히 코를 막았다.
‘웬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담.’
“얘야, 이 나귀님의 방귀가 아주 향긋하지 않더냐?”
나귀가 고개를 돌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항소운은 여전히 코를 쥐고 대답했다.
“네, 정말 대단해요. 천지도 놀라고, 귀신도 울고 가겠던데요. 대인의 능력에 진심으로 탄복했어요.”
“껄껄, 이 정도야 기본이지. 나중에 특별히 방귀대법을 전수해주마. 아니지, 좀 더 점잖은 이름으로 해야겠다. 그래, ‘탁원일기공(濁元一氣功)’이 좋겠구나. 너도 이 기술만 배우면 단번에 적을 날려 버릴 수 있을 거다.”
나귀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한데 제가 아둔하여 이렇게 강한 기술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항소운은 깜짝 놀라 에둘러 말했다.
흥, 이 기술을 배웠다가는 그동안 쌓아왔던 영민한 무인의 모습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좋다고 따라붙던 미녀들도 놀라 달아날 터였다.
“그래, 네가 아둔하긴 하지. 하나 열심히 연마하다 보면 깨우칠 수 있을 게다. 자, 그럼 먼저 입문부터 알려주마.”
늙은 나귀는 항소운의 속도 모르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인, 아무래도 이 일은 나중에 얘기하는 게 좋겠는데요. 아직 놈들이 여기 있잖아요.”
항소운이 황급히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저들은 신경 쓸 거 없다. 혼쭐이 났으니 이젠 설쳐대지 못할 거다. 혹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건방을 떨면, 그땐 이 몸이 탁원일기공으로 단숨에 날려버려야지.”
“나귀야, 그만하면 됐다. 이 청년은 네 방귀대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니, 나중에 네 후손이나 가르치거라.”
노인은 이렇게 말하며 항소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야, 무슨 일을 벌였길래 성정 호위대가 이곳까지 쫓아온 것이냐?”
“어르신, 사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항소운은 양장민을 구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이거 야단났구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노인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항소운은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노인까지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노인의 말대로라면, 그는 아주 위험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뜻이었다.
“어르신, 아니면 절 밖으로 내보내 주세요.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요.”
자신의 안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형님과 형수님은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노인에게 간청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느냐?. 다만 내 말을 잘 듣고 일만 잘 처리하면, 아무도 귀찮게 하진 않을 거다. 물론 덤으로 너도 아주 큰 이득을 얻게 될 게야.”
“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해 완수하겠습니다.”
항소운은 서둘러 대답했다. 이제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노인의 도움이 절실했다.
“허허, 벌써 장담하긴 일러.”
노인은 기분 좋게 웃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여기서 며칠 더 묵고 있거라. 때가 되면 찾으러 오마.”
“한데 저들이 다시 찾아오면 어쩌죠?”
항소운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호위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들도 이젠 겁이 나서 이곳에는 얼씬도 못 할 거다. 그럼 나귀더러 이곳에 남아 탁원일기공을 가르치라고 하면 되겠구나. 난 암호랑이의 화가 풀렸는지 보고 와야겠다. 화가 풀렸으면, 또 궁둥짝을 만지고 와야지. 정말이지 신선놀음이 따로 없어.”
그러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흥, 순 여자만 밝히고 친구는 뒷전이지.”
늙은 나귀는 분한 듯 몇 마디를 지껄이더니 항소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야, 그럼 이번에는 탁원일기공의 구결을 전수해주마. 아주 강력한 필살기니, 잘 배워야 한다.”
항소운은 싫다며 거절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편, 영붕정을 비롯한 호위대는 하나둘 조용히 자리를 떴다.
영붕정의 머리는 괴상하게 타버려서 항소운은 저도 모르게 쿡 하고 웃었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항소운을 노려보았다.
‘네 녀석은 반드시 잡고 말겠다.’
그는 호위대를 이끌고 성정의 요충지로 되돌아갔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건축 양식이 웅장했다. 성벽에는 오래된 조각품이 가득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고대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 신비로워 보였다.
그리고 갑옷에 무기를 든 병사들이 동서남북 사방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성루는 한층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호위병들을 돌려보낸 뒤, 옷차림을 정리하고 그중 한 성(城)으로 향했다.
그곳은 편전으로, 이곳의 주인은 대단한 신분을 가진 자였다.
영붕정은 통령급 인물이라, 성정령을 가지고 있어 출입에는 제한이 없었다.
경비병에게 신분을 알리자 잠시 기다리라는 말이 돌아왔다.
얼마 후, 경비병이 다시 돌아와 안으로 들라 했다.
영붕정은 대전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상석에 앉아있는 노인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제7호위통령 영붕정, 3장로님께 인사 올립니다.”
성정의 3장로란 자는 보통 체격에 머리는 흰 천으로 묶고, 턱 밑에 노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엄숙한 표정에 예리한 눈동자를 번뜩일 때면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쉽게 대하기 어려운 고위층 인사였다.
3장로는 고개를 돌려 영붕정을 보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는 어쩌다 그 꼴이 되었느냐?. 쯧쯧, 채신머리하고는.”
그러자 영붕정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장로님, 소신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옵고 동(童) 어르신의 나귀가 이리 만든 것입니다. 제 수하들도 나귀 발길질에 당해 전부 부상을 입었습니다.”
“어쩌다 그자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냐?”
3장로가 태연히 물었다.
이에 영붕정이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말의 과장도 보태지 않았다. 혹여 털끝만큼 거짓말이라도 했다가 3장로가 아는 날에는 무슨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다.
3장로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의 무공이 정말 3품 입룡경이라고?”
“네, 확실합니다. 한데 품급을 뛰어넘는 전투력을 지닌 것을 보니 아주 뛰어난 천재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아가씨가 마음에 둔 남자는 아니겠군.”
3장로는 뭔가 고민하는 듯싶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 녀석 기생오라비처럼 아주 잘생겨서 혹 아가씨께서 현혹되신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동 어르신도 그 녀석을 유달리 챙기는 눈치였습니다.
어쩌면 어르신께서는 아가씨와 그 녀석이 잘 되길 바라시는 건지도 모릅니다. 녀석을 데려와서 장로님께 심문을 받게 하면 좋으련만, 도저히 데려올 방법이 없어 이런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음, 앞으로도 놈을 유심히 지켜보거라. 노인네가 지키겠다고 작정하고 나섰으니, 성정 내부에서도 녀석을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에는 그 노인네가 또 어떤 유치한 술수를 쓸지 지켜봐야겠군.”
3장로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더니 잠시 후 말을 이었다.
“항가에서 보낸 사람들은 도착했느냐?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아마도 내일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미리 수하들을 시켜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래, 그럼 네가 직접 가서 그들을 맞이하도록 해라. 그들을 만나 먼저 얘기를 나눌 것이니, 다른 일들은 네가 알아서 준비하도록 해라.”
절망사막에 낯선 무리가 등장했다.
날래고 용맹한 군사들로 이루어진 무리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이동했다.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는 자청사(紫晴獅)라는 사자를 탄 젊은이였다.
서른 살쯤 되었을까. 외모가 준수하고 풍채는 당당했다. 머리에는 깃털을 꽂고, 자주색 검을 등에 멘 채 늠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대단한 인재라며 감탄할 만한 자였다.
그의 양옆에는 검은 옷과 흰옷을 입은 두 명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신묘한 기운이 감돌고 보법이 탄탄한 것을 보니 입신지경에 오른 고수가 틀림없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흑백 호법이라 불렀다.
“백숙(白叔),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젊은이의 물음에 흰옷을 입은 백 호법이 대답했다.
“곧 도착할 겁니다. 한데 바로 들어갈 수는 없고, 그쪽에서 안내자가 나와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곳이 그렇게 신비로운 곳인가요? 설마 옛날 방식만 고수하는 소지방은 아니겠죠?”
“도련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절대 만만히 볼 곳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하 황조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지요. 도련님께서 이번 여정에서 깨달음을 얻으신다면, 장차 가주에 오르시기도 수월하실 겁니다.”
흑 호법이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곳이란 말이에요? 그럼 이번 기회에 제대로 견문을 넓혀야겠네요.”
젋은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일행을 향해 물었다.
“항가에서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백 호법이 대답했다.
“전 성정에서 보낸 인솔자입니다. 따라오시죠.”
지성정. 어느 허름한 흙집 앞에서 항소운은 우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죽상을 하고 늙은 나귀의 탁원일기공을 듣고 있었다.
나귀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나귀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양장민과 형수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때마침 밖으로 나왔다. 덕분에 항소운도 핑계를 대고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