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81
제481화 난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지!
“언제 인황에 오를지도 모르는데……. 자신 없어…….”
양장민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아우가 있잖아요. 형수님을 따라잡을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방법이 있단 거야?”
“당연하죠. 한데 서둘러 경지를 돌파해서는 안 돼요. 당분간은 기초를 단단히 다지면서 이번 기회에 흙의 진의를 깨닫는 게 좋겠어요. 지성정은 흙의 힘이 아주 강한 곳이니까 형님이 수련하시기에 좋을 거예요.”
항소운은 품에서 저축계를 하나 꺼냈다. 안에는 영성수와 용의 액체 그리고 흙의 힘을 단련할 수 있는 황급 영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정도면 단시간 내 입룡경을 돌파하는 것도 문제없었다.
양장민은 아주 기뻤으나, 이내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소운아, 너무 귀한 물건들이라 못 받겠다.”
“한 번 형제는 영원한 형제잖아요. 전 이것 말고도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쓰세요.”
이에 양장민도 기분 좋게 받으면서 아우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속 깊이 간직했다. 부디 이 은혜를 갚을 날이 꼭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노인이 돌아왔다.
드디어 항소운에게 임무를 맡길 때가 온 것이다.
“얘야, 이만 가자. 이제 일하러 갈 때가 됐다.”
노인이 항소운을 향해 손짓했다.
“어르신, 무슨 일인지 알려주시면 안 돼요?”
“도착하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노인이 말하고 싶지 않다는데 별수 있겠는가. 그는 양장민과 무지군에게 당부의 말을 건넨 뒤, 노인을 따라나섰다.
노인은 항소운에게 나귀 모는 일을 맡긴 채 자신은 편안히 눈을 감고 쉬었다.
항소운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귀 다루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행여 누가 쳐다볼까 싶어 고개는 푹 숙인 채로 말이다.
목적지를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나귀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얼마 후, 저 멀리 성(城)이 눈에 들어왔다.
‘규모가 엄청난데……. 혹시 저기가 성정의 요충지인가?’
예상대로 나귀는 거대한 성문으로 향했다.
성의 웅장한 기세에 항소운은 화들짝 놀랐다. 규모도 크거니와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낸 비장함과 단단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득 일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여인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여인은 이곳에 사는 귀한 신분이리라.
경비가 삼엄한 데도 나귀는 주저 없이 성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병들은 나귀가 끄는 마차를 향해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노인의 지위가 꽤 높은 모양이었다.
성으로 들어서자, 화원식 정원이 펼쳐졌다. 다양한 양식의 부성(副城)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고 정중앙에는 주성(主城)이 있었다. 주성을 향해 직선으로 곧게 뻗은 돌길을 따라 양옆으로 백 팔 명의 호위병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이곳에 이르자, 호위병이 나귀를 저지했다.
“성정 내부는 함부로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몸을 일으켜 앉더니 호되게 꾸짖었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을 봤나. 네놈은 성로(聖老)도 모른단 말이냐?”
호위병은 노인을 향해 예를 올리더니 항소운을 가리키며 말했다.
“성로님은 들어가셔도 되지만, 저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무엄하다. 이분은 내가 직접 초대한 귀빈인데 왜 안 된단 말이냐?”
노인은 호통을 치더니 강력한 힘을 일으켜 호위병을 날려버렸다.
이곳은 성정의 요충지라 무공을 사용하여 남을 해치거나 싸움이 금지되어 있었다. 이를 어기는 자는 즉결 참수형에 처해 졌다.
그런데 노인은 이런 규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위에게 부상을 입힌 것이다.
항소운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설마 소란을 피우러 온 건 아니겠지?’
다른 호위들은 바짝 긴장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대전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유유히 들려왔다.
“이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군가 마차 앞에 등장했다.
항소운은 어리둥절했다. 분명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누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온 것이다.
“허허, 지금 누구 앞이라고 나서는 것이냐? 이 늙은이가 몇 년 자리 좀 비웠다고, 지금 보자마자 위세를 떠는 것이냐? 일곱째야, 참 많이 컸구나.”
노인은 마차 밖으로 걸어 나와 갑작스레 등장한 중노년의 남자와 마주 섰다. 노인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자는 7장로로 성정을 지키는 총책임자이며, 수하에 열여덟 명의 통령을 거느리고 있었다.
7장로는 노인의 말을 듣고 입술을 바르르 떨렸다.
“지금 성로님의 행동은 성정의 규율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성정의 법도에 맞서겠다는 겁니까?”
“난 들어가야겠으니 이만 썩 꺼지거라. 정주(庭主)께서 내 죄를 물으시나 어디 보자꾸나.”
노인의 말이 끝나자, 나귀가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걸어갔다.
7장로의 두 눈은 분노로 일렁였다. 호위병 앞에서 망신을 주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노인이 7장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몇 수 겨뤄보자는 거냐? 겨우 그 정도 실력으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러자 7장로가 코웃음을 치며 맞받아쳤다.
“다른 곳도 아닌 성정 요충지에서 내가 당신처럼 제멋대로 싸울 리 있습니까?”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전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노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겁먹을 줄 아나 보지? 내가 성정 대전에서 한창 바쁘게 일할 때, 흙장난이나 하며 놀던 녀석들이 어디서 지금 큰소리야.”
항소운은 노인을 향해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말 무법자가 따로 없네. 어르신만큼 강해지면 나도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 텐데.’
노인은 항소운을 보며 뿌듯한 얼굴로 물었다.
“어떠냐? 꽤 멋있었지?”
“네, 정말 멋있었어요.”
항소운이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잘 보고 배워라. 괜히 내 체면 구기지 말고.”
노인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마차는 어느새 대전 앞에 이르렀다.
마차도 더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항소운은 마차에서 내려 노인을 따라 대전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마치 ‘나 여기 있소’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같았다.
반면, 항소운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대전 안을 힐끔 쳐다보던 그는 이곳의 웅장함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대전 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고, 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벽에는 기이한 형태의 돌들이 박혀 있었는데 눈이 부시도록 영롱한 빛을 발산했다.
또 벽 곳곳마다 예스럽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벽화가 새겨져 있었다. 백 미터에 이르는 돌기둥 십여 개가 성을 단단히 받치고 있었으며, 황금으로 만든 수십 개의 의자가 좌우로 나란히 놓여있어 존귀함을 더했다.
성정의 대전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중앙의 편좌(偏座)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앉아있었다.
비록 얼굴을 가리기는 했지만, 보름달처럼 둥그렇고 맑은 눈동자는 보는 이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무엇보다 큰 키에 풍만한 몸매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좌우 양쪽의 황금 의자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기운을 숨긴 채 노인과 항소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동 할아범, 오셨군요.”
편좌에 앉아있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이 여인은 노인이 데려왔던 그 아름다운 여인으로, 현(現) 성정 정주의 하나뿐인 손녀 척발완아(拓拔婉兒)였다.
“예, 왔습니다. 제가 안 왔다가 누가 아가씨를 괴롭히기라도 하면 어찌합니까.”
노인이 자애로운 얼굴로 대답했다.
“자네 지금 그게 무슨 뜻인가?”
상좌에서 왼쪽 두 번째 자리에 앉아있던 3장로가 입을 열었다.
“허허,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내 누굴 지목한 것도 아닌데 알아서 나서는군. 재밌네, 재밌어.”
노인은 껄껄 웃더니 3장로를 가리키며 다짜고짜 소리쳤다.
“호연박(呼延博), 그래, 널 두고 한 말이다. 감히 아가씨한테 시집을 가라고 압박해? 정주님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시니 이제 그 자리까지 탐나더냐?”
그러자 3장로 호연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을 쳤다.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 모함하지 마라!”
“그럼 아까는 왜 발끈한 것이냐? 마음속에 켕기는 것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
노인이 되물었다.
“난 네가 추태 부리는 게 꼴 보기 싫었을 뿐이다. 게다가 아까는 호위까지 부상을 입혔다지? 정말 무법천지가 따로 없군. 여러 장로님들, 이 안건까지 함께 심판해주십시오.”
호연박이 목소리를 높였다.
7장로 사한표(沙悍彪)도 거들고 나섰다.
“맞습니다. 저자는 우리 성정의 법도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엄히 중벌로 다스려야 합니다.”
뒤이어 몇몇 장로들도 동의하고 나섰다.
보아하니 노인은 장로들과 사이가 아주 안 좋은 모양이었다.
노인이 계속 공격을 당하자, 항소운은 절로 식은땀이 났다.
‘영감탱이, 소란을 피우러 올 거면 난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지!’
노인은 장로들을 쭉 둘러보더니 별안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입만 살아서 나불대기는. 그럴 능력이 있으면 한꺼번에 덤비지 그러냐? 네가 너희들을 겁내기라도 할 것 같으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은 강대한 기운을 일으켜 이곳에 자리한 모든 사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다른 장로들 역시 비범한 실력이지만, 노인은 혼자 힘으로 저들을 압박하고 있으니 실로 무서운 경지였다.
“그만들 해라. 중요한 손님도 와 계신데 너희끼리 싸우면 우리 성정이 웃음거리밖에 더 되겠느냐!”
연륜이 느껴지는 음성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 자는 상좌의 오른쪽 첫 번째 자리에 앉은 자로, 외양은 노쇠하나 눈빛만은 날카롭게 살아있었다. 손에는 뱀 모양의 지팡이를 쥐고 있으며, 무형의 기세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성정의 1장로로, 정주를 제외하면 이곳에서 가장 지위가 높았다.
사실 노인은 2장로라서 무공에서는 대(大)장로보다 한 수 아래였다. 그렇다면 대장로의 무공은 얼마나 강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대장로가 매섭게 꾸짖자, 노인은 기세를 거둬들이고 제 자리로 가서 앉았으나 이내 다리를 꼬고 앉아 장로의 체통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항소운은 노인 곁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으나, 누군가의 질책 섞인 질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데 이 녀석은 누군가? 왜 대전까지 데리고 온 게야?”
누가 한 질문인지는 모르나, 항소운은 절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곳에 자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라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벌레 죽듯 죽임을 당할 수 있었다.
“저자는 내 귀빈이라네. 어서 의자를 내오지 않고 뭣 하느냐!”
노인은 기분이 상했는지 호통을 쳤다.
“이봐, 겨우 3품 인황이 귀빈이라고? 지금 우리와 장난하자는 겐가?”
3장로가 다시 시비를 걸고 나섰다.
“넌 손님을 초대해도 되고, 난 안 된다는 거냐? 참 어이가 없군.”
노인은 욕을 퍼붓더니 대장로를 보며 말했다.
“형님, 진지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아이는 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제가 데려온 아이입니다. 적어도 제게 기회는 주셔야죠. 정주께서 안 계시니 저나 형님이나 아가씨를 위해 뭔가는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애들 장난도 아닌데 너무 실력이 낮은 것 아니냐?”
대장로가 항소운을 힐끔 보더니 성에 차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그럼 아가씨께 결정을 맡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