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85
제485화 패배를 인정하는 게 어때
정주의 눈빛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흙의 진의를 거둬들이고 곧장 흙의 힘을 응집시켜 강력한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 위로 항소운이 주먹을 내리꽂자, 둔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단 일격으로 정주의 방어막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정주는 역시 노련한 자였다. 그는 이형환영(移形煥影)으로 예상치 못한 수를 펼쳤다.
정주는 본래 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른 자리로 이동하면서도 원래 있던 자리에 잔영이 그래도 남아 있어 상대방을 교묘히 속일 수 있었다.
항소운도 깜빡 속아 넘어가서 잔영을 향해 온 공격을 펼쳤다. 뜻하지 않게 측면과 후방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정주는 이때를 틈타 매섭게 공격을 날렸다.
순간, 강력한 힘이 훅 들어왔다. 그 충격으로 온몸이 다 저리고 아팠다. 오장육부에도 출혈이 생긴 것을 보니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정주는 반격할 기회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더욱 맹렬히 공격을 펼쳤다.
다행히 항소운은 단단한 육체 덕분에 맹공격 앞에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그는 정주에게 주도권을 뺏긴 순간, 바로 공격 형태를 바꿔 흙의 진의를 일으키더니 중력장을 만들어 상대의 힘을 크게 누그러뜨렸다.
“흙의 힘도 연마했단 말이냐? 게다가 깨달음도 아주 깊군.”
정주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정주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항소운은 다시 힘을 바꿔 이번에는 바람의 진의를 일으켰다. 그는 귀신 같은 몸놀림으로 정주에게 바짝 접근하더니 바람과 천둥의 힘을 일제히 터뜨렸다.
바람은 용이 되고 천둥은 범이 되어 함께 날아오르자 엄청난 위세가 연무대를 가득 뒤덮었다.
정주는 이형환영술로 공격을 피하려 했으나, 똑같은 수에 당할 항소운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미리 사방을 완전히 봉쇄하여 정주는 그 속에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용과 범이 포효하는 가운데, 바람과 천둥의 힘이 쉴 새 없이 휘몰아쳤다.
어찌나 위력이 거세던지 연무대 안쪽 상황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장로들은 그 광경을 보며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 천둥의 힘만 수련한 게 아니라 바람과 흙의 힘까지 연마했단 말인가? 게다가 꽤 적절하게 사용하는군.”
“정주님의 분신도 어째 제압을 못 하는 것 같은데. 기초가 아주 단단한 녀석이야. 역시 용봉 학당 제자라 다르긴 달라.”
“바람과 천둥의 힘을 융합할 생각을 다 하다니……! 게다가 위력은 최상급 인황에 버금갈 정도야. 저 녀석 대단한데.”
“흥, 여러 힘을 동시에 연마하면 성장이 더뎌져서 결국 재능이 빛을 잃는다는 이치도 모르는가?”
연무대 위에서 바람과 천둥의 힘이 사라지자, 마침내 항소운과 정주의 분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항소운은 안색이 창백하고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정주의 세찬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상황에서 다시 전력을 다해 역습을 펼치다 보니 체력 소모가 엄청난 모양이었다.
한편, 정주의 분신은 형체가 희미해져 더는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아주 잘했다. 내가 졌어.”
정주는 흐뭇한 어투로 칭찬을 하더니 연무대 위에서 이내 종적을 감추었다.
뜻밖의 상황에 장로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항소운이 정주를 이기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하하, 잘했다, 잘했어. 정주를 이기다니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노인은 너무 기뻐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봐, 말은 똑바로 하라고. 저건 정주님의 분신일 뿐이야.”
호연박이 콧방귀를 뀌며 볼멘소리를 했다.
“분신이라 해도 정주는 맞잖는가. 지면 진 거지 뭘 그리 따지고 그러나? 정주께서도 직접 패배를 인정하셨네.”
노인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데 자네들이 데려온 녀석은 어째 힘들어 보이는군. 아무래도 이기기는 힘들겠어.”
연무대의 반대편에서는 항자헌과 정주의 또 다른 분신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지금은 정주의 분신이 훨씬 우세해서 항자헌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항자헌은 연무대에 오르기 전, 황급 영액과 약초를 삼켜 체력을 거의 회복한 상태였다. 1품 제존으로 품급을 뛰어넘는 비범한 전투력을 펼쳤으나, 정주의 분신은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항자헌의 패색이 짙어지자, 3장로와 7장로 등은 안절부절못했다.
만일 이번 관문을 항소운만 통과한다면, 저 노인이 얼마나 비웃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항가의 흑백 호법 역시 안색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항자헌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정주에게 형편없이 당하는 그를 보면서 정주의 무공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
패배가 머지않은 그를 보며, 항소운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 뛰어나긴 해도 정주를 이기진 못하겠군.”
항자헌이 패한다면 항소운이 유일한 부마 후보가 되는 것이라 노인도 더는 그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 터였다.
정주의 분신이 필살기를 펼치며 승부를 끝내려는 순간, 별안간 항자헌의 손에 들린 무기가 한층 예리한 무기로 바뀌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자줏빛 번개가 번쩍하더니 천둥이 거대한 물결을 형성하며 무서운 위력을 자아냈다. 마치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듯 대단한 기세였다.
우르르 쾅쾅!
같은 힘을 연마하는 항소운조차 놀라서 몸서리를 쳤다. 자신이 저 안에 있었다면, 꼼짝없이 죽고 말았을 것이다.
한참 후, 천둥의 힘이 완전히 사라졌다. 항자헌은 자줏빛 장검을 땅에 꽂은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정주의 분신은 어느새 완전히 빛을 잃고 ‘통과다’라는 말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빌어먹을, 저 녀석 성급 무기를 썼잖나!”
노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험한 말을 뱉었다.
다른 장로들도 상황을 파악하고 이내 눈빛이 복잡해졌으나, 다들 침묵을 지켰다.
“정주께서 통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 말은 성급 무기를 사용해도 괜찮다는 뜻이야.”
호연박이 한마디를 하더니, 대장로를 보며 말을 이었다.
“대장로님, 두 사람 다 체력 소모가 심한 것 같으니 반 시진 정도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장로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어서 바로 세 번째 관문을 치르겠으니, 다들 따라오게.”
이에 장로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이봐, 힘들면 그만 포기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게 어때.”
항소운이 항자헌을 돌아보며 자극했다.
비록 그도 부상이 가볍지는 않으나, 일찌감치 대결을 끝내고 은광뇌액과 황급 영액을 먹은 덕분에 지금은 부상이 거의 회복돼서 확실히 황자헌보다는 나은 상태였다.
“흥, 헛소리 마라.”
항자헌은 발끈해서 소리치더니 서둘러 황급 영액을 정제시켜 부상을 치료했다.
명문세가 출신인 데다 혼태경에 오른 제존이다 보니 크진 않아도 체내에 성해건곤은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필요한 물건은 충분했다.
“지난 두 관문은 어찌어찌하여 통과했지만, 마지막 관문은 힘들걸. 어른 말 안 들으면 꼭 후회할 일이 생기지.”
항소운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잖아.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말라고!”
항자헌도 질세라 눈을 부라렸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항소운은 턱을 치켜올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관문인 만큼 가장 어려울 터, 어쩌면 그의 무공으로는 뛰어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움츠러들 수는 없었다. 운 좋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지 누가 알겠는가.
얼마 후, 사람들은 대장로를 따라 후원 깊숙이 들어갔다.
호연박이 놀란 눈초리로 물었다.
“대장로님, 왜 금지(禁地)로 오신 겁니까?”
“세 번째 관문은 이곳 금지에서 진행될 걸세. 난 두 사람을 안내하고 올 테니,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게나.”
대장로가 말했다.
후원의 금지에는 석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각 석탑은 각기 다른 방향에 세워져 있어 그 속으로 들어가면 출로를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탑이 숲처럼 이루어졌다 하여 탑림(塔林)이라 불리는 이곳은 아주 오래전, 진법에 의해 구축된 곳으로 정체 모를 힘이 서려 있었다.
대장로는 두 사람을 데리고 탑림의 중심부로 향했다.
“바짝 따라오거라. 한눈팔면 영원히 이곳에 갇히는 수가 있어.”
대장로의 음성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들려왔다.
항소운은 대장로의 걸음을 쫓으며 명혼공간을 통해 이곳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듯 감응력을 펼쳤다.
주변 상황은 감지가 됐으나, 어찌 된 일인지 전방위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 수 없는 힘이 감응력을 막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역시 금지라 다르군. 도무지 뚫을 수가 없어.’
한동안 걸은 끝에 대장로는 어느 석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른 석탑보다 다소 높은 석탑으로, 탑 겉면에 드리워진 얼룩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 석탑의 비밀을 먼저 깨닫는 자가 마지막 관문의 승리자네.”
대장로는 이 말만을 남기고 고개를 돌려 떠났다.
항소운과 항자헌은 우뚝 솟은 석탑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항소운과 항자헌은 세 번째 관문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막상 대장로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은 기우일 뿐, 생각처럼 위험한 관문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다시 석탑을 올려다보았다. 석탑에서는 오랜 세월의 기운만 느껴질 뿐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더니 약속이나 한 듯 각자 걸음을 옮겼다.
항자헌은 석탑 주위를 빙 돌면서 석탑을 관찰했다.
항소운 역시 석탑을 찬찬히 훑어보았으나,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고작 네 실력으로 석탑의 비밀을 찾겠다는 거야? 괜히 헛수고하지 말고, 저쪽에 찌그러져 있어!”
항자헌이 항소운을 돌아보며 큰소리를 쳤다.
“허허, 누가 할 소릴. 힘 좀 세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아나 보지?”
항소운이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제 발로 가기 싫다면, 나도 다 방법이 있지.”
항자헌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혼태의 힘을 일으켜 석탑을 뒤덮자, 혼태의 힘이 곧장 날아와 부딪히는 바람에 항소운은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당하자, 항소운은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이놈이!”
“지금 몸이 이 모양이래도 너 정도는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어!”
항자헌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상대의 도발에 항소운은 당장이라도 명혼공간을 열어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차분히 대꾸했다.
“그럼 너 먼저 시도해 봐. 나보다 먼저 석탑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군.”
“하하, 내 통찰력이면 석탑의 비밀쯤은 금방 알아내지.”
항자헌은 곧 진지한 얼굴이 되어 혼태의 힘으로 석탑을 계속 비추었다.
상대가 그러든 말든 항소운은 제자리에 정좌하고 부상부터 완벽히 치료하기로 했다.
가만 보니 세 번째 관문은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무턱대고 달려든다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항자헌한테 먼저 기회를 주고, 자신은 휴식을 취하며 심신을 최고 상태로 만든 후에 비밀을 알아내는 편이 훨씬 유리했다.
정주와의 비무로 생긴 부상은 황급 영액 덕분에 차츰 회복되었고, 체력도 보충되었다. 그리고 힘은 되려 강해져서 용의 기운을 더욱 응집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