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87
제487화 큰 선물을 받았네
뒤쪽으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너도 마찬가지야!”
그러고는 자줏빛 검을 높이 들어 진법을 향해 재차 휘둘렀다. 진법을 건드려 항소운을 죽일 속셈이었다.
쿵 하고 둔탁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항소운은 화들짝 놀라 제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다행히 소리만 요란했지 진법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해서 진법의 한가운데 있던 항소운은 무사했다.
반면 항자헌은 반탄력으로 인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반탄력은 종전보다 훨씬 강해져서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정통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피를 훅 내뿜더니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대장로가 재빨리 날아와 항자헌을 붙잡고는 탑림 밖으로 날아갔다.
“안 돼요, 아직 석탑의 비밀은 알아내지도 못했단 말입니다. 이렇게 나갈 수는 없어요!”
항자헌이 놀라 소리쳤다.
“진법에 밀려난 순간부터 자네는 비밀을 알아낼 기회를 상실했네.”
대장로의 음성이 유유히 들려왔다.
“아니에요,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가면 석탑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요! 대장로님, 부탁입니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항자헌은 이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제발 기회를 달라며 애원했으나, 대장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흑백 호법 앞에 내려놓았다.
“이자는 실패했소.”
흑백 호법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대장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항자헌을 부축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항자헌도 자신이 실패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조용히 정좌를 하고 상처를 치료했다.
“하하, 내가 말했잖나, 이 녀석은 성공 못 할 거라고. 그렇게 안 믿더니만!”
노인은 박수까지 쳐가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이에 3장로와 7장로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항자헌은 자신들이 직접 선택한 인물이었다. 성정과 항가가 혼인 관계를 맺는다면, 자신들에게 막대한 이득이 생길 거라는 판단하에 추진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항자헌이 먼저 탈락하고 노인에게 조롱까지 당하자 마음이 말도 못 하게 괴로웠다.
노인이 으스대는 꼴이 보기 싫었는지 한 장로가 입을 열었다.
“벌써 기뻐하긴 일러. 그 녀석도 아직 통과는 못 했잖나.”
“허허, 실은 나도 그 녀석이 실패했으면 좋겠네.”
노인은 이러면서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으나, 장로 중 이 말을 믿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조롱이라 생각하고 다들 화만 삼켰다.
척발완아도 남몰래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저 사람이 실패해서 다행이야. 이제 할아버지가 출관하실 때까지 마음 놓고 기다려도 되겠어. 혼인이야 그 후에 결정하면 되지.’
그녀도 항소운이 이번 관문은 통과 못 할 거라 예상했다. 운이 좋아서 앞의 두 관문은 통과했지만, 마지막 관문은 어려울 거로 생각했다.
대장로는 다시 탑림으로 돌아갔다.
이 무렵, 항소운은 석탑에 근접한 상태였다.
탑에 가까워질수록 위험은 더욱 커져만 가서 안전한 곳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힘의 허실을 냉정히 판단했다. 거기에 통찰력까지 펼치자, 마침내 안전한 곳이 눈에 띄었고 천천히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시 석탑 앞에 이르자,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처음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그걸 모르고 아깝게 낭비하다가 이렇게 위기가 닥쳐야만 소중히 한다니까. 사람이란 참 간사해.”
그는 문득 석탑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탑 표면의 얼룩에서 예사롭지 않은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빛이 진법의 힘과 결합하자, 사람 형태의 허상이 희끄무레하게 나타났다.
혹여 그 속에 신비한 이치가 숨겨져 있을까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았으나, 특별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분명 이 허상에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한데 어떻게 푼담?”
항소운은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관찰을 거듭하고 지혜의 빛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끝에 점점 무언가 잡혀가는 기분이 들었다.
불현듯 탑신을 통하면 허상과 접촉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번득였다. 흙의 진의를 일으켜 석탑을 감응하자, 그의 힘과 석탑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주변을 둘러싼 진법의 힘이 완전히 활성화되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만에 하나 진법의 살기가 터져버린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그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광명 갑옷을 꺼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살기는 발동하지 않고 오히려 기이한 상황이 펼쳐졌다. 바로 사람의 허상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도 놀라 허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허상은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절세의 고수가 움직이는 것처럼 자유로움과 절도가 적절히 섞인 동작은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항소운은 허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각 동작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허상의 속도는 무척 빨라서 순식간에 몇 수를 펼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석탑에서 발산되던 진법의 힘도 수그러들면서 탑림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항소운은 제자리에 서서 머릿속으로 방금 본 동작들을 쉴 새 없이 떠올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 짧은 순간에 여러 동작을 기억하는 것이 어려울 테지만, 명혼공간을 가진 그에게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는 허상의 동작들이 ‘이형환영술’의 정수임을 깨달았다.
석탑이 품고 있던 비밀은 바로 이 비술이다.
이형환영술은 순식간에 이동하여 적의 공격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반격을 가하는 기술로, 금선탈각(金蟬脫殼)의 계를 써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비술이었다.
보법과 달리 원거리는 이동할 수 없고 공격력도 전무하지만, 순식간에 위치를 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가치가 있었다.
허상의 동작들을 반복해서 살펴보고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성정 정주와 비무를 펼치던 장면이 떠올랐고, 마침내 이형환영술의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번쩍 눈을 뜬 그는 상기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세 번째 관문에서 큰 선물을 받았네.”
이형환영술은 적과 대치상태에 놓였을 때, 상대를 단숨에 처리할 수 있는 숨겨진 한 수였다.
그는 허상이 펼쳤던 동작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작이 뻣뻣하고 서툴렀으나, 수차례 반복해서 연마하다 보니 제법 그럴듯해졌다. 물론 아직 정주의 분신만큼 민첩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나 이렇듯 짧은 시간에 비술의 본질을 깨우쳤다는 것은 통찰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그 후로 한동안 연마를 계속하다 마침내 걸음을 멈췄다. 이제 이형환영술은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돼서 앞으로 꾸준히 연습만 거치면 완벽히 구사할 수 있는 터라 이곳에서 계속 연마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멈춰선 순간, 석탑 앞으로 허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정주의 분신으로, 이전보다 훨씬 선명해서 이목구비까지 또렷이 보였다.
상대는 잘생기고 위엄 있는 사내였다. 강인한 얼굴에 형형한 눈동자는 세상 만물을 꿰뚫는 것 같았고, 고고한 자태는 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바로 지체 높으신 성정의 정주였다.
“정주 대인께 인사 올립니다.”
항소운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만 일어나거라. 이형환영술을 깨달았으니, 세 번째 관문도 통과했느니라.”
정주의 분신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항소운은 벅차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노인이 말한 임무를 전부 완수했으니, 이제 이곳을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
“성정의 부마가 돼서 아주 기쁘지?”
정주의 물음에 항소운이 서둘러 웃음기를 거둬들이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슨 뜻이냐?”
정주가 재차 물었다.
“저, 저는 비술을 깨달아서 기뻤던 것입니다. 정주 대인, 큰 선물을 하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수도 있어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것뿐이냐?”
항소운은 황급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예.”
“고얀 놈!”
별안간 정주가 불같이 화를 냈다.
항소운은 영문을 몰라 눈만 휘둥그레 떴다.
“내 손녀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냐?”
그러면서 항소운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혹 “그렇다”라고 했다가는 당장 장법을 날릴 기세였다.
그제야 항소운도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정주는 자신의 손녀를 누구보다도 끔찍이 아끼고 있었다.
“아가씨는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제가 지금껏 본 여인 중에 가장 아름다우세요. 그런 분을 부인으로 얻는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딨겠어요? 한데 제가 어찌 감히 아가씨를 신경 쓰지 않겠어요?”
“그래도 눈치는 있구나. 세 관문을 전부 통과했으니, 우리 성정의 부마가 될 자격이 주어질 게다. 내 폐관을 끝내고 나면, 너희 두 사람의 혼례를 올려주마.”
정주는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말을 늘어놓더니 한쪽에 대고 말했다.
“대장로, 이리 나오게.”
그러자 누군가 귀신같이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정주님, 부르셨습니까.”
대장로가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이 녀석은 자네들이 데려왔다지?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긴 한데 경지가 너무 낮은 게 흠이라면 흠이군. 방법을 강구해서 경지를 높여놓게. 두 사람의 혼례는 출관 후, 진행하도록 하게.”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자, 항소운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렇다고 정주 대인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자니, 기만죄로 목이 달아날 것 같았다.
“정주 대인, 제 생각에 아직 전 아가씨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 무공이 아가씨만큼 높아지면, 그때 가서 다시 혼사를 논하는 게 어떨까요?”
지금은 무조건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이렇게 말해놓고 지성정에서 빠져나간 후 다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완아는 재능이 무척 뛰어나서 네가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거다. 우선 혼례부터 올리고, 무공은 천천히 높이거라. 그럼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짓겠다.”
그러고는 또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다.
항소운이 재차 말하려 했으나 이미 사라진 후였다.
이때, 대장로가 항소운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부마님, 축하드립니다.”
항소운은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대장로님, 이러지 마세요.”
“세 관문을 전부 통과하시고 정주님의 인정까지 받으셨으니, 곧 우리 성정의 부마가 되실 분 아닙니까. 아가씨와 혼례를 올리시면 정식으로 부마가 되실 테니 당연히 예를 갖춰야지요.”
대장로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부마님, 이제 가시지요. 다른 사람들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대장로는 앞장서 걸어가며 길을 안내했다.
항소운은 혼란스러운 상태로 탑림을 걸어 나갔다.
항소운이 세 관문을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은 오로지 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성정을 무사히 빠져나가 외부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함도 있었다.
이곳에 남아 척발완아의 부군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상대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현재로서는 상대에게 걸맞지도 않을뿐더러 그는 외모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유형도 아니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었다. 더군다나 장가를 든다면 당연히 부인은 우채접이어야지, 잘 알지도 못하는 여인과 혼인할 수는 없었다.
비록 그녀는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나, 그렇다고 한평생을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