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94
제494화 패왕의 사적인 일입니다
노인이 애타는 심정으로 말했다.
“마음이 진정되면 그때 얘기해 줄게요. 이 일은 그 사람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그녀는 이 말만을 남기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분통이 터졌으나, 그렇다고 항소운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한편, 우채접이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보니 오빠 우자양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도 시끄러워서 내 처소까지 들리더구나.”
우자양의 물음에 그녀가 풀이 죽어 대답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서 그 사람을 화나게 했어요.”
그러자 우자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디서 여자를 데려와 놓고선 오히려 너한테 화를 냈다고?”
오빠 입장에서는 여동생에게 상처를 준 항소운이 당연히 미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저도 너무 화가 나서 그의 말은 듣지도 않고 못된 방법을 썼어요.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니 아무래도 제가 너무 한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우가 성녀인 너한테 화를 낼 자격은 없어. 안 되겠다, 정신 바짝 차리라고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지.”
우자양은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장 1호 용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따라갈까 하다가 차마 항소운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어쨌든 그는 지금 폐관 중이라서 오라버니가 간다 해도 학당의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밖으로 끌어내지는 않을 터였다.
황소월의 상황도 비슷했다. 황천극은 동생이 울면서 돌아오자, 또 항소운과 충돌이 생겼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동생의 잘못이 분명해서 이번 일만은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런 그도 별안간 항소운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동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신비도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항소운에게 호감이 있는 것만 같아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래도 명색이 황자 전하라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자가 줄을 서는지 모른다. 한데 항소운은 한참 등급이 낮은 인황으로, 제아무리 최상의 체질을 타고났다 해도 대단한 가문 출신이란 얘기도 없는데 어찌 자신과 비교가 된단 말인가.
‘초급 전장에 가거든, 녀석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군.’
황천극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한편, 가장 양심에 가책을 느낀 사람은 아마도 한신비와 한씨 자매일 터였다. 항소운에게 여러 차례 도움을 받아놓고도 매몰차게 상처를 주었으니, 이제 무슨 낯으로 그를 본단 말인가.
“신비 언니,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
한설유가 눈물까지 흘리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강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소운이가 이 정도로 상처받을 줄은 몰랐어…….”
한신비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음이 약한 게 아니라 정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가장 가까운 우리가 몰아붙였으니,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요. 이번 일은 무조건 우리 잘못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한천유의 얼굴은 무척 괴로워 보였다.
자매는 항소운과 함께 보낸 시간이 있는지라 누구보다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지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상처를 받는가는 간과하고 있었다. 특히 항소운처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던 사람은 특히 믿음을 중요시했다. 그런데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다짜고짜 비난을 퍼부었으니, 누군들 상처를 받지 않겠는가.
“우선 기다리자. 용봉 전장에는 나올 테니, 그때 사과하는 게 좋겠어. 부디 마음이 풀려야 할 텐데…….”
한신비가 말했다. 한씨 자매도 딱히 다른 방도가 없어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 무렵, 1호 용원에는 십여 명에 이르는 패왕군단 단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항소운의 분노에 찬 포효를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나찰녀, 패왕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이호남이 맨 처음으로 도착하여 물었다.
“묻지 마세요. 패왕의 사적인 일입니다.”
나찰녀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걱정 마시고, 다들 돌아가세요. 이곳은 저 혼자도 충분합니다.”
이때, 우자양이 다짜고짜 들어오며 큰소리를 쳤다.
“항소운, 당장 나와!”
“염양 성자?”
이호남 등은 일순간 긴장했다.
우자양은 우씨 가문의 성자로, ‘염양’이라는 학당 내 서열 3위의 세력을 직접 만든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씩씩대며 항소운을 찾는 걸 보니,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이호남 등이 재빨리 막아 항소운을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
“염양 성자, 패왕께서는 지금 폐관 중이라 손님을 맞이할 수 없으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이호남이 공손하게 말했다. 어느덧 그는 4품 입룡경에 올라 제자들 중에서도 성장 속도가 빠른 편에 속했다.
“당장 비켜. 안 그러면 너희도 가만두지 않겠다!”
우자양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다른 사람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순간, 불의 기세가 휘몰아치는 바람에 이호남 등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우자양, 그만둬!”
이때, 멀리서 당용비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용비는 혼자가 아니라 이삼십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항소운의 처소인 1호 용원은 핵심 제자들의 처소 중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처소들이 밀집되어 있다 보니 주변의 다른 별원에서 동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하물며 아까 항소운이 내지른 포효는 아주 매서워서 누구라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당용비의 처소는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뒤늦게 등장했는데, 마침 항소운에게 따지러 온 우자양과 맞닥뜨렸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패왕군단은 당연히 항소운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우자양은 당용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대로 뜰 안으로 진격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항소운, 당장 나와라! 내 동생을 괴롭혔으니, 오늘 네놈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 능력 좀 있다고 설치지 말란 말이다!”
이러면서 불의 기운을 내뻗자 엄청난 기세가 주변을 압도했다. 8품 입룡경 정점의 무인이 발휘하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지난 1년간 품급을 한 단계 높이긴 했으나, 그만큼 토대는 훨씬 단단해졌다. 더군다나 경지가 높아질수록 한 단계 높이는 데도 엄청난 힘이 필요해서 성장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이호남은 서둘러 우자양을 막아섰다.
“염양 성자, 그만하십시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매정한 주먹뿐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갑자기 배가 욱신 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말했지? 내 앞을 막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우자양이 으르렁대며 소리쳤다.
“다 함께 저자를 밖으로 몰아냅시다!”
당용비가 큰소리로 외치며 장법을 날렸다. 그러자 금빛 용 두 마리가 포효를 내지르며 솟아오르더니 강한 힘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다른 자들도 있는 힘을 다해 공격을 펼쳤다. 용봉방 서열 5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죽을힘을 다해 싸워야 했다.
일순간, 맹렬한 기세가 떨쳐 오르며 우자양을 덮쳤으나 그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항소운이 풍소살의 별원에서 일 대 백으로 싸워 이겼다지? 그럼 난 오늘 너희 패왕군단을 상대로 이 몸의 위대함을 보여주마!”
순간, 화룡(火龍)이 하늘로 치솟는가 싶더니 그가 화권(火拳)을 휘두르며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매섭게 공격을 펼쳤다.
놀랍게도 권법의 위력은 패왕군단의 협공을 가볍게 뚫더니 단원들을 전부 날려버렸다.
최전선에 나섰던 당용비는 가슴에 직격탄을 맞는 바람에 갈비뼈가 움푹 패이면서 그대로 대문 밖까지 날아가 큰 부상을 당했다. 당용비도 무시 못 할 실력이지만, 우자양의 무공은 차원이 달랐다.
다른 자들도 차례로 쓰러지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1호 용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패왕군단도 겨우 이 정도였군.”
우자양은 한심하다는 듯 그들을 비웃었다.
항소운이 있는 폐관실로 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구양전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자양, 지금 우리 패왕군단을 무시하는 것이냐? 그럼 나와 한판 겨루자!”
뜰 안으로 성큼 들어선 그는 바닥에 쓰러진 단원들을 보자, 일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동안 무공 연마에 집중하느라 학당 내에 발생하는 분쟁에는 좀처럼 관여를 하지 않던 그였으나, 패왕군단의 부단장으로서 동료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우자양은 살짝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전의를 불태우며 말했다.
“좋다, 그렇지 않아도 너와 한번 겨뤄보고 싶었다. 너나 나나 불의 힘을 수련하여 사람들이 ‘두 개의 태양’이라 부르더군. 그럼 누가 더 강한지 오늘 승부를 내자.”
“나야 사양할 이유는 없지. 그럼 연무대에서 결판을 내자.”
구양전기는 물러섬이 없이 당당했다.
“난 오늘 항소운을 찾아온 거다.”
우자양은 여기서 나갈 의사가 없는 듯했다. 구양전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직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기지 못하면, 단장을 만나봤자 소용없을 텐데.”
구양전기가 태연히 말을 뱉자, 우자양이 상대의 뜻을 간파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보다 항소운의 무공이 더 강하다는 소리였다.
“네가 기꺼이 부단장을 맡은 이유도 그래서냐?”
우자양이 물었다.
“그래, 맞다.”
구양전기가 시원스럽게 인정하자, 우자양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자신과 구양전기의 무공은 비등한 수준인데, 구양전기가 제 입으로 항소운만 못하다고 하는 걸 보니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뜻일까.
분명 항소운은 자신들보다 경지가 몇 단계나 낮은 녀석이었다.
“어쨌든 그 녀석이 동생에게 상처를 줬으니, 나도 이대로는 못 물러간다.”
우자양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따끔하게 손만 봐줄 생각이었는데, 구양전기의 말을 듣고 나니 항소운의 실력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지 직접 겨뤄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구양전기가 우자양의 행보를 막으려 하는데, 어디선가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음성이 들려왔다.
“용봉 전장이 열리기 전까지 개인적인 싸움은 일체 금하며, 이를 어기는 자는 학당에서 추방하겠다.”
이 목소리는 1호 용원 뿐만 아니라 다른 별원에까지 선명히 들렸다. 이 소리에 제자들은 바짝 긴장했다. 규율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우자양은 8대 요물 중 한 명이긴 하지만, 그 역시 장로의 경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 말했다.
“이 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용봉 전장에서 똑똑히 보여주마.”
“좋다, 기대하지.”
구양전기가 담담히 대꾸했다.
그렇게 우자양은 거들먹거리며 1호 용원을 나섰고, 그가 홀로 여러 명과 싸워 이겼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사람들은 역시 요물은 다르다며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우자양이 떠난 후, 나찰녀는 부상당한 단원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자양이 전력을 다하지는 않아서 상태가 심각한 사람은 없었고, 며칠 쉬면 나을 정도의 부상이라 용봉 전장 참가에 지장은 없었다.
가장 부상이 심한 사람은 당용비였으나, 항소운이 주었던 황천이 있어 회복은 문제없었다.
한숨 돌린 구양전기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나찰녀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고, 사적인 일 때문이라고 하면서 항소운이 척발완아를 데려와서 생긴 일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어쨌든 이 일은 당사자인 항소운이 결정할 일이라 단원들도 끼어들기가 난처했다.
이때, 구양전기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일은 우리가 도울 수 없으니, 패왕이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립시다. 그리고 아무리 골치 아픈 애정 문제라도 참된 영웅을 혼란에 빠뜨리지는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