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496
제496화 패자(覇者)의 기세가 돌아왔구나
항소운은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마음에 입은 상처는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난날을 곱씹어 보았다.
머릿속에 여러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들과 보낸 시간이 스치듯 지나갔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들에게 비난받을 만한 짓은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매섭게 몰아간 그녀들을 향한 그의 마음은 차디차게 식어버렸다.
‘어쩌면 사랑 따윈 내게 사치인지 몰라…….’
그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문득 여동생 야조모가 떠올랐다.
동생만이 자신의 곁을 변함없이 지키며 그를 위해 변호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여자들은 이제 필요 없었다.
“앞으로 자릉종도 되찾아야 하고 제패천을 죽여 복수도 해야 해. 이제 의미 없는 일들은 더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완아도 자유를 찾기 위해 나와 정혼한 거였잖아. 이제 바라던 대로 됐으니, 나도 더는 필요 없겠지.”
항소운이 깊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머리카락을 뒤로 젖혔다.
그제야 자신의 머리칼이 검고 길어진 것을 발견했다.
마치 새까만 버드나무 가지처럼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에서 형언할 수 없는 마성이 느껴졌다.
뜻밖에도 머리카락의 강도는 일반 황급 무기 정도로 단단해져서 무기 대신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게 바로 마족의 머리카락인가? 생각보다 멋있군.”
그는 삐딱하게 웃음을 짓더니 바로 머리를 묶었다.
이색적인 분위기에 소년티가 사라져버려 한층 잘생겨진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내면은 한결 성숙해지고 냉정해져서 소년티를 완전히 벗은 성숙한 청년의 모습이 되었다.
이번에 받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또다시 모든 것을 상실한 느낌을 받았지만, 폭풍이 지나가고 평온이 찾아오자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욱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용봉 초급 전장이 열리는 시간이 다가왔다.
1호 용원의 사람들은 항소운이 나타나기를 눈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한번 닫힌 철문은 좀처럼 열릴 기미가 없었다.
사람들도 차츰 실망하기 시작했다.
그가 학당 행사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혹여 그가 이대로 주저앉을까 봐 걱정이 컸다.
학당 측이 소집령을 내리자,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철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훤칠한 남자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여러분께 걱정을 끼쳤군요. 이제 용봉 전장으로 떠납시다.”
* * *
학당에서 가장 큰 연무장 앞.
용봉 초급 전장에 참가하기 위해 제자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이번에는 특별히 학장이 직접 나와 제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다들 우수한 성과를 거두길 바란다면서 앞으로 용봉방 100위 안에 드는 자는 순위에 맞춰 상을 내릴 것이며, 1,000명 안에 든 자들도 공적 점수를 상으로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1,000명 안에 들지 못하면 아무런 상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뒤이어 장로가 호신옥(護身玉)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호신옥은 대단히 신기한 물건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 이 옥을 깨뜨리면 전장에서 신속히 빠져나와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도전이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호신옥은 제자들을 지킴과 동시에 탈락자를 가리는 물건이었다.
호신옥을 깨뜨리지 않고 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바로 최후의 승리자였다.
장로의 설명이 한바탕 끝나고 나자, 제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전장에서 식물마류(植物摩類) 즉, 마성을 띤 식물을 죽이는 일이었다.
수마(樹魔)나 식인화, 살인등(殺人藤)과 같은 기괴한 마물(魔物)을 죽이는 것이었다.
식물이라 우습게 보면 안 되는 녀석들이었다.
놈들은 지능이 있고 위장에도 능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공격을 날려 상대를 꼼짝 못 하게 만들기도 했고, 대부분이 맹독을 품고 있기도 했다.
아주 위험한 놈들이었다.
원고삼림에는 이런 식물이 아주 흔했다.
이들은 오랫동안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며, 치명적인 독 때문에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곳에서 일 년을 버틴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식물마류를 죽이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제자들끼리 서로 공적 점수를 뺏는 것이 허용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최종 순위를 가리는 중요한 열쇠였다.
즉, 경쟁을 통해 우열을 가려 용봉방에 오를 최후의 100인을 결정짓는 것이었다.
얼마 후, 순간이동진 앞에서 한신비와 한씨 자매는 항소운을 발견했다.
그의 머리가 갑자기 흑발이 되어 길어진 것을 보고 그녀들의 가슴 속에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다가가 말이라도 붙이고 싶었으나, 항소운은 그녀들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패왕군단을 데리고 스치듯 지나쳤다.
마치 비수가 날아와 꽂힌 듯 세 여인은 마음이 몹시도 아팠다.
“어, 어째서 저렇게 변하신 걸까요?”
마음 약한 한설유는 그의 냉정한 태도에 상처를 받은 듯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꼈다.
“우리를 낯선 사람 대하듯 했어요.”
한천유도 한숨을 쉬며 괴로워했다.
한신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리 속에 섞여 있던 우채접도 마침 그 광경을 보았다.
그녀는 복잡해진 눈빛으로 생각에 잠겼다.
‘패자(覇者)의 기세가 돌아왔구나…….’
만일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들었더라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무슨 말인가 싶었을 것이다.
항소운은 늘 기세가 대단하지 않았던가.
그는 적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천재라 불리는 자들을 잇달아 이기며 지금의 명성을 획득했다.
게다가 용봉방에 오른 사람들까지 흠씬 때려준 것도 모자라 제림을 죽이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제림이 누구던가.
선대 장로인 사도 장로의 직전 제자였다.
비록 사도 장로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조용히 끝날 리는 없었다.
이런 사건들만 보더라도 항소운은 충분히 패기가 넘치는 자였다.
“항소운, 내 동생에게 상처 준 일은 전장에서 꼭 결판을 내고 말겠다.”
우자양이 나타나더니, 항소운을 쏘아보며 말했다.
우자양이 공개적으로 선전포고를 하자, 사람들은 크게 놀란 눈치였다.
그러자 항소운 옆의 구양전기가 말을 받았다.
“그럼 먼저 나부터 이겨야 할 거다.”
“흥, 너희 둘 다 한주먹거리도 안 될걸.”
우자양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허허, 아주 자신만만한 모양이군. 한데 네가 그럴 수 있을까.”
항소운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우자양이 누구던가.
8대 요물 중 다섯 번째로 강한 인물이었다.
백리일소와 전무쌍은 차치하더라도 구양전기, 황천극과 비등한 실력을 지닌 자였다.
한데, 항소운이 면전에 대고 저런 소리를 지껄였으니 사람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항소운은 대체 무슨 배짱으로 우자양에게 시비를 건 걸까? 정말 대적할 만한 힘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사실 이곳에 모인 사람 중 항소운의 경지를 간파한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우자양은 항소운의 경지가 상당히 높아진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저런 말을 지껄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상대의 오만방자함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구양전기도 항소운이 큰소리를 치자 뜻밖이라는 표정이었다.
항소운의 평소 모습과 달랐기 때문이다.
“오냐, 좋다. 네가 한 말은 똑똑히 기억하마. 내 반드시 너희 둘을 혼쭐을 내주고 말겠다!”
천재로 추앙만 받다가 이런 대접은 수년 만에 처음이었다.
우자양은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호통을 쳤다.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자양 형, 그러지 말고 항소운은 나한테 넘기는 게 어떻습니까. 저도 고급 9성 지체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겨뤄보고 싶어서요.”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자 황천극과 황소월 그리고 황가단(皇家團) 단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황천극이 말한 것이었다.
황소월은 놀랍다는 눈길로 항소운을 쳐다보았다.
며칠 못 본 사이 항소운의 변화는 커 보였다.
항소운은 고개를 돌려 황천극을 보더니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한꺼번에 덤벼도 상관없다.”
건방진 녀석!
그야말로 오만방자함의 극치였다.
용봉방 서열 1, 2위를 다투는 백리일소나 전무쌍이라고 해도 감히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지 말고 여기 황자 전하는 내게 양보하는 게 어때? 제황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했거든.”
옆에서 구양전기가 말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멀찌감치 떨어졌다.
네 사람의 무공은 실로 대단해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화를 당할 수도 있었다.
아직 용봉 전장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적의가 들끓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일이 항소운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이제 관건은 그가 나머지 세 사람만큼 강하냐는 것이었다.
“어서 순간이동진에 들어가지 않고 다들 뭣 하고 있느냐? 시간이 지나면 기회는 없어!”
때마침 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광로인 양 활활 타올랐던 분위기도 장로의 목소리를 따라 사그라들었다.
다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 진짜 대결은 용봉 전장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의 대결이 어서 펼쳐지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 * *
원고삼림은 남황(南荒) 대산맥의 험지였다.
남황은 구주 대륙 중 산맥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
원시림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중 가장 오래된 곳에 원고삼림이 있었다.
용봉 학당 제자들이 순간이동진을 통해 도착하고 보니, 눈앞에는 용이 꿈틀대며 기어가는 모습처럼 거대한 산맥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산에는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고목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었다.
늙은 요수와 독충이 가장 좋아할 만한 환경이었다.
이름 모를 기괴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고 아주 희귀한 생물과 마주칠 법한 곳이었다.
그만큼 이곳에서 수련하는 무인들은 예상외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산속 깊이 들어갔다가 비명횡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원고삼림은 9대 수련 장소 중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무의 힘만큼은 다른 어느 곳보다 풍부해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짙은 생명력이 느껴졌다.
나무의 힘은 곧 생기를 뜻했다.
원고삼림에 도착했다고 해서 바로 용봉 초급 전장에 다다른 것은 아니었다.
학당 장로가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순간이동진을 통해 제자들을 목적지로 보내는 과정을 거쳤다.
원고삼림은 워낙 넓기도 하고 위험해서 학당 측에서는 따로 장소를 마련하여 초급 전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제자들은 순간이동진을 통해 초급 전장에 도착하긴 했으나, 각자 흩어져 다른 장소에 떨어졌다.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다시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낯선 곳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지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으나, 그래도 다들 수준이 낮지 않은 인황들이라 금세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러나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맹렬한 공격이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다 보니 그중에는 참다못해 호신옥을 깨뜨리고 전장 밖으로 빠져나오는 사람까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