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Overlord RAW novel - Chapter 504
제504화 패왕군단에 들어갈게요
그렇다고 항소운이 뭐라 따질 입장은 아니었다.
본래도 치열한 전장이었다.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만일 패왕군단이 저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도 이번 일만큼은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이 넓은 땅에서 단원들을 전부 찾기란 불가능했다.
또한, 혼자 힘으로 세 세력을 상대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다.
검문 정도의 세력과 동맹을 맺지 않는 한, 불리한 입장을 뒤바꿀 만한 방법은 없었다.
어느덧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매일 사람들이 전장에서 사라졌고, 남은 자들은 운 좋게 자신이 몸담은 세력과 합류하여 식물마류를 닥치는 대로 죽이며 점수를 빠르게 늘려갔다.
이 와중에 귀한 영물을 획득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런 자들은 무공이 놀라운 속도로 상승했다.
전장에 숨겨져 있던 비석들도 사람들에 의해 하나둘 발견되었다.
비석은 모두 각기 다른 내용이 새겨져 있어 사람들은 더 많은 비석을 찾길 원했다.
이 무렵 항소운의 곁에는 어느덧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전장에 참여한 패왕군단 단원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인원들로, 나머지는 전장에서 탈출했거나 아직 못 찾은 상황이었다.
일행은 각기 다른 곳에서 비석 두 개를 찾아냈다.
하나는 제급 도법(刀法)이 기록되어 있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전결이나 전투기술이 아닌 뜻 모를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비석 중앙에는 돌로 만든 열쇠가 박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제급 도법은 이들과 같이 뛰어난 무인에게 별달리 흥미를 끌지 못하지만, 이 비석에 새겨진 도법은 남다른 점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최상급 도법이 틀림없었다.
첩랑칠중참(疊浪七重斬)이란 이름의 이 도법은 물의 힘으로 칼의 위력을 한층 강하게 만들어 해일에 바닷물이 몰아칠 때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항소운이 가진 도법이라고는 전천구도가 유일했다.
그것도 천둥의 힘을 사용하다 보니 물의 힘을 사용하는 도법은 전무했는데, 이 첩랑칠중참이란 도법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물의 힘을 쓸 수 있는 칼이 필요했다.
아직은 연마할 생각은 없는지라 우선 머릿속에 기억만 해두었다.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연마할 테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한편, 또 다른 비석에서 찾은 열쇠는 왠지 모르게 흥미로웠다.
비석에 새겨진 기록에 따르면, 이 돌 열쇠는 다섯 개의 열쇠 중 하나로 비밀의 문을 열 수 있다고 한다.
비밀의 문 안쪽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상상만 해도 기대가 되었다.
학당 측에서 하나의 열쇠를 다섯 개로 만들어 묘한 궁금증을 자아낸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곳은 용봉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 장소인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번 전장의 마지막 관문일 수도 있었다.
그 관문만 통과한다면, 분명 대단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다만 반년 만에 우연히 열쇠를 하나 찾았을 뿐인데 나머지 네 개는 어디서 찾으며, 또 비밀의 문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항소운 일행은 또다시 열쇠가 박혀 있던 비석을 찾아냈다.
다만 아쉽게도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가져간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도 비밀의 문에 대해 알기 시작한 모양이군. 한데 다섯 개의 열쇠를 전부 모을 수나 있을까.”
항소운은 한숨을 쉬더니 당용비를 보며 말했다.
“형님, 우리에게 열쇠가 하나 있다고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그랬다가 위험해지는 거 아냐?”
당용비가 물었다.
지금쯤 많은 사람이 열쇠의 비밀을 궁금해하고 있을 터였다.
이런 때 소문을 퍼뜨렸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면 분명 강탈하러 오는 자가 있을 것이었다.
“이제 우리도 사람 수가 많아져서 대단한 세력이 아니고선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지금 이런 소문을 퍼뜨리면, 누구 손에 열쇠가 있는지 자연히 알게 되겠죠. 그때 우리가 가서 빼앗는 거예요.”
항소운의 말에 당용비가 뭐라 대꾸를 하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소란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뒤이어 한 무리의 인마가 패왕군단 앞에 나타났다.
그들을 본 항소운의 얼굴이 살짝 굳는가 싶더니 불쾌한 낯빛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만 출발합시다.”
갑자기 등장한 사람들은 빙하궁의 한신비와 한씨 자매였다.
그녀들 뒤로 이십여 명 정도가 따르고 있었는데, 패왕군단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였다.
한신비는 용봉 학당의 제2 미녀로 인기가 무척 높았으나, 얼음과 물의 힘을 수련하는 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 보니 빙하궁은 좀처럼 세력을 확장하지 못했다.
얼마 전, 빙하궁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큰 곤경에 처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탈락했고, 일부는 아직 행방이 묘연하여 현재 소궁주인 그녀 곁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이대로는 남은 사람까지 전부 탈락당할 위기였다.
그렇게 된다면 소궁주로서 단원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는 죄명을 면하기 어려웠다.
이후에 학당으로 돌아가서도 빙하궁은 더욱 쇠락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패왕군단과 마주치자, 한신비는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빙하궁은 패왕군단과 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과거 협력한 경험도 있는지라 이들과 동맹을 맺는다면 지금보다는 안전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패왕군단은 그녀들이 오자, 바로 고개를 돌려 떠나는 것이었다.
눈썰미가 좋은 한신비가 선두의 항소운을 발견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항소운, 잠깐만요!”
그러나 그는 짐짓 못 들은 척 계속 전진했다.
그는 아직 한신비와 한씨 자매에게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만큼 상처가 깊다는 뜻이니, 도량이 좁다고 욕해도 어쩔 수 없었다.
한신비는 잰걸음으로 달려가 앞을 막아섰다.
“항소운, 아직도 우리한테 화 난 거죠? 그 일은 우리가 잘못했어요. 이렇게 사과할게요.”
그녀가 누군가에게 머리를 굽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어여쁜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패왕군단과 빙하궁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며 항소운에게 크게 탄복했다.
‘제2 미녀까지 사로잡다니 역시 패왕은 대단해…….’
아무리 봐도 한신비는 그에게 호감이 있었다.
평소 당차던 그녀가 유독 항소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태연히 대꾸할 뿐이었다.
“사과는 받을게요. 전장에 온 이상, 우리는 사냥하고 점수도 쌓아야 해서 당신과 노닥거릴 시간은 없습니다.”
한신비는 그의 매몰찬 태도에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제 난 친구도 아니에요?”
“허허, 친구라……. 내게 그럴 자격이나 있습니까?”
그는 차디찬 웃음을 짓더니 몸을 홱 돌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항 도련님, 큰언니한테 화내지 마세요. 탓하시려거든 저희를 탓하세요. 때리고 욕하셔도 달게 받을게요.”
어느새 한천유가 달려와 항소운에게 애원했다.
그는 자매의 목숨을 여러 차례 구해줬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자신들의 처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와 동등한 신분이라 여겼으며, 심지어 그의 여자가 되겠다는 헛된 꿈마저 꾸었었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자신들과 다른 차원의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이미 항소운을 탓하고 원망까지 했으니, 생명의 은인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그들이었다.
한설유도 애원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저희가 잘못했어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자매는 한신비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알아주는 미인들이었다.
세 여인은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체면이 크게 서는 일이었지만, 항소운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담담히 대꾸했다.
“나한테 그렇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 당신들 일은 나와 상관없으니, 사과할 필요도 미안해할 필요도 없어요. 그럼 우리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 말에 한씨 자매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 그는 자신들과 분명히 선을 긋고 있었다.
“항소운, 그러고도 남자라고 할 수 있어요? 왜 이렇게 쩨쩨하게 굴어요!”
한신비가 참다못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음대로 생각해요.”
항소운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제 그에게 있어 남녀 간의 애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잠깐만요! 예전에 신세 진 건 갚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 소원 지금 말할게요.”
한신비의 말에 그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말해요. 뭘 해주면 되죠?”
그는 한신비가 무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당시 그녀에게 한씨 자매를 받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나중에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비록 그 후 빙산에서 영물을 손에 넣고 한신비와 한씨 자매에게 나눠주기는 했으나, 그걸로 신세를 갚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우리 빙하궁은 패왕군단과 동맹을 맺고 싶어요. 전장이 끝날 때까지 말이에요.”
한신비가 거침없이 말했다.
이에 항소운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단칼에 거절했다.
“당신들과 동맹을 맺을 수는 없어요.”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한신비의 불만 섞인 외침에 항소운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난 빙하궁이 우리 패왕군단에 들어오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부단장 자리를 줄게요.”
“뭐라고? 사람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지! 소궁주, 이만 가죠. 저런 놈한테 애원할 필요 없습니다.”
빙하궁 단원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다른 자들도 항소운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나 항소운은 그저 태연한 얼굴로 한신비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도 하필 이런 때 항소운이 이러한 요구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화가 나서 흥분됐던 마음은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지그시 항소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말 진심이에요?”
“네.”
항소운이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패왕군단에 들어갈게요. 앞으로 빙하궁은 없습니다.”
한신비의 태도는 아주 시원스러웠다.
그녀의 말에 빙하궁 사람들은 놀라서 얼떨떨한 눈길로 소궁주를 쳐다보았다.
반면, 패왕군단은 뜻밖의 결과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빙하궁이 같은 편으로 들어온다면, 기세가 크게 높아지는 것은 물론, 8대 요물 중 한 명인 한신비가 든든히 지켜줄 것이었다.
지금보다 상황이 안정될 터였다.
항소운도 한신비가 흔쾌히 승낙할 줄은 예상치 못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패왕군단에 들어온 이상,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는 곧장 강력한 기세를 일으켰다.
최상급 인황, 아니 훨씬 강한 기세가 빙하궁 사람들을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
한신비도 중압감을 느끼며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항소운의 실력이 이렇게 강해졌을 줄이야!’
이에 그녀가 빙하궁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다들 와서 패왕께 인사 올리세요. 물론 떠나겠다는 자는 막지 않겠습니다.”
빙하궁은 그렇지 않아도 남은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혼자 떠난다면 전장에서 탈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떠날 결심을 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너덧 명 정도만이 한신비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자기들끼리 길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패왕군단의 전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새롭게 들어온 이십여 명 때문이 아니라 한신비라는 대단한 요물 덕분이었다.